11월 16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에스라 10장 9절-44절은, 진정한 회개는 감정적인 뉘우침을 넘어선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유다 귀환 공동체는 비를 맞으며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라고 결단하며 자신들의 거룩한 정체성을 지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아픈 수술과 체계적 순종을 결단하였습니다. 죄를 끊어내는 결단과 그리스도의 속건제 은혜를 묵상합니다.
에스라 10장 9절-44절,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272장,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 새 찬송가 285장, 주의 말씀 받은 그 날
서론 (진단, 그리고 수술)
성도 여러분, 혹시 건강검진에서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의사 앞에 앉아 ‘암입니다’라는 진단을 받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진단이 끝이 아닙니다. 의사는 곧이어 말합니다. "이제, 수술 날짜를 잡으시죠." 진단(Diagnosis)도 고통스럽지만, 진짜 고통은 수술(Surgery)입니다. 내 몸을 칼로 째고, 아픈 부위를 도려내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에스라 9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를 '진단'받고, 에스라와 함께 옷을 찢고 통곡하며 회개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거기까지는 은혜로울 수 있습니다. ‘아, 우리가 잘못했구나’ 깨닫는 것은 중요합니다.
본론
하지만 오늘 본문인 10장은, ‘수술’의 장입니다. 진단에 동의하는 것을 넘어, 이제 그 죄의 환부를 도려내는 아픈 결단의 현장입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보십시오.
“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들이 삼 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이니 때는 아홉째 달 이십일이라 무리가 하나님의 성전 앞 광장에 앉아서 이 일과 큰 비 때문에 떨고 있더니”
백성들은 지금 비를 쫄딱 맞으며 광장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추위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들이 저지른 ‘이 일’과 그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이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에스라가 일어나 선포합니다. (10-11절) “여러분이 언약을 배반했습니다! 이방 여인을 아내로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고백하고, 그분의 뜻을 행하십시오! 이방 민족과 여러분의 이방 아내들을 ‘끊어 버리십시오’(בָּדַל, 바달, 분리하라)!”
이것은 끔찍한 요구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녀들과 헤어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이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우상숭배와의 완전한 '분리' 요구였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무너진 모습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죄를 고백하는 것(진단)에는 동의하지만, 그 죄를 끊어내는 것(수술)은 고통스럽기에 망설입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이것까지 끊어내면 무슨 재미로 사나'라며 죄와 타협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진정한 회개가 감정적 뉘우침을 넘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기 위한 아프지만 마땅한 순종으로 나아가야 함을 강력하게 선포합니다.
1. 감정적 동의를 넘어, 결단적 순종으로
에스라의 충격적인 '분리' 요구에 백성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놀랍게도, 그들은 단 한마디로 대답합니다. 12절입니다. 다 함께 읽어볼까요?
- 에스라 10:12, 모든 회중이 큰 소리로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그들은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너무하십니다", "현실을 모르시는군요"라고 항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비를 맞고 떨면서도, 그것이 '고통스럽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임을 인정했습니다.
왜 이것이 '마땅한' 일입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거룩한 씨'(9:2)로 구별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방 여인과의 통혼은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그들의 정체성을 무너뜨리고 다시 우상숭배의 길로 돌아가는 '언약 배반' 행위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끊어 버리라"고 명령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 그것은 음란한 동영상이나 인터넷 검색 습관일 수 있습니다.
- 그것은 내 삶의 우선순위에서 하나님을 밀어낸 '돈 사랑'이나 '자녀 우상'일 수 있습니다.
- 그것은 관계를 파괴하는 '거짓말'이나 '뒷담화' 습관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죄인 줄 압니다. 끊어내는 '수술'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내 백성이라면, 그것이 너의 거룩을 무너뜨린다면, 마땅히 끊어내야 한다!"
잠시 오해를 바로잡겠습니다. 오늘 이 본문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는 배우자와 이혼하라'고 적용하면 절대 안 됩니다.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7장은 오히려 믿는 자가 믿지 않는 배우자를 거룩하게 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여기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영원한 원리는, 우리의 거룩한 정체성을 위협하는 '우상숭배적 가치관'과 '세상과의 타협'을 단호히 끊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고통스러운 순종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이는 우리의 정체성이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쾌락이나 안정이 주는 유익보다,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라는 정체성이 비교할 수 없이 더 가치 있음을 알기에, 우리는 기꺼이 그 '수술'을 감당하기로 결단할 수 있습니다.
2. 즉흥적 결단을 넘어, 체계적 순종으로
백성들은 "마땅히 행하겠다"고 결단했지만, 그들은 감정적으로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13절과 14절에서 아주 현실적인 제안을 합니다. 14절입니다.
- 에스라 10:14, 이제 온 회중을 위하여 우리의 방백들을 세우고 우리 모든 성읍에 이방 여자에게 장가든 자는 다 기한에 각 고을의 장로들과 재판장과 함께 오게 하여 이 일로 인한 우리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하나
그들은 순종을 위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을 세웠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수련회에서 펑펑 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상으로 돌아가 삶을 재편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들은 이 일을 즉시 시작하였습니다(16절). 열째 달 초하루(10월 1일)에 시작해서 첫째 달 초하루(다음 해 1월 1일)에 마쳤습니다(17절). 무려 3개월이 걸렸습니다. 그들은 춥고 지루한 3개월 동안, 한 사람 한 사람 조사하며 이 아픈 수술을 감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요나단 같은 반대자들(15절)도 있었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죄를 끊어내는 것은 단번의 결심으로 되지 않습니다. 순종은 '체계적인 과정'입니다.
- '새벽기도를 하겠다'고 결심했다면, 알람을 맞추고 전날 밤 일찍 자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 '말씀을 읽겠다'고 결심했다면, 핸드폰 첫 화면에 성경 앱을 꺼내놓고 시간을 정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순종이 '작심삼일'로 끝나는 이유는, 결단은 있지만 '체계적인 과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지루한 과정을 우리가 어떻게 감당합니까?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체계적인 순종'의 완벽함에 달려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아, 나는 이렇게 연약하구나. 나는 3개월은커녕 3일도 못 가는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연약함 때문에, 이 모든 과정을 이미 완벽하게 끝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이 서툰 순종의 과정을 도우시며, 결국 우리를 거룩하게 빚어가십니다.
3. 익명적 회개를 넘어, 책임적 회복으로
설교하기 가장 어려운 부분이 본문의 마지막, 18절부터 44절까지입니다. 왜 성경은 이 죄지은 사람들의 이름을 이렇게 길고 지루하게 나열하는 것일까요?
이 '이름 목록'은 회개의 '책임성'과 '공개성'을 보여줍니다. 회개는 '우리 모두 죄인입니다'라는 익명의 고백 뒤에 숨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 바로 '나'입니다. 내 이름 'O O O'이 죄인입니다"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특히 보십시오. 이 명단은 누구로부터 시작합니까? 18절, "제사장의 무리 중에서"입니다. 지도자들부터, 가장 거룩해야 할 레위인들부터 그들의 죄를 공개적으로 인정했습니다.
책임은 거룩의 방패입니다. 우리가 죄와 싸울 때, '나 홀로' 싸우면 반드시 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공동체(구역, 셀, 목장) 안에서 "사실 제가 이런 어려움이 있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라고 나의 죄를 '공개'하고 '책임'을 나눌 때, 우리는 비로소 죄를 이길 힘을 얻습니다.
그런데 이 명단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이 있습니다. 19절입니다. 제사장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 에스라 10:19, 그들이 다 손을 잡아 맹세하여 그들의 아내를 내보내기로 하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숫양 한 마리를 속건제로 드렸으며
그들은 아내를 내보내는 '결단(행위)'을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죄에 대한 대가로 '속건제(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우리의 '결단'과 '행위'만으로는 죄의 '값'(Guilt)을 치를 수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죄를 끊어내려고 발버둥 쳐도, 나의 행위는 나의 과거를 덮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피가 필요합니다. 반드시 '속건제'가 필요합니다.
에스라 시대의 이 제사장들은 숫양을 바쳤지만, 오늘 우리는 누구를 바라봅니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우리의 영원한 속건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이름은 부끄러운 '죄인의 명단'(Ezra 10)에 기록되어 마땅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의 이름은 영광스러운 '어린 양의 생명책'(계 21:27)에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죄와 싸울 동력입니다. 죄를 끊어내야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고', '이미 그분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고', '이미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기'에, "마땅히" 죄와 분리되는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의 마땅한 순종)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에스라 10장에서 진정한 회개의 '수술'을 보았습니다. 백성들은 비를 맞고 떨면서도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라고 결단했습니다. 그들은 3개월간 지루한 조사를 감당하며 체계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임졌으며, 동시에 '속건제'의 은혜를 의지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성령께서 당신의 마음에 "끊어 버리라"고 말씀하시는 영역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럽든지, 얼마나 큰 손해처럼 보이든지, 오늘 비를 맞고 섰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믿음으로 고백합시다.
"주님, 아프지만... 주님, 어렵지만...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하겠습니다!"
우리의 힘이 아닌, 우리의 영원한 속건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여, 이 거룩한 순종의 걸음을 내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죄악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세상과 타협하며 안일하게 살았던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십자가 위에서 모든 죄의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거룩한 자녀를 삼아 주신 은혜에 감사 드립니다. 오늘 말씀처럼, 고통스럽더라도 죄를 끊어낼 결단과 용기를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죄를 끊어낼 수 있는 구체적인 용기를 주소서.
- 말씀 앞에서 변명 대신 순종을 선택하게 하소서.
- 우리 가정과 교회가 거룩함을 회복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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