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8일의 묵상 본문인 학개 2장 1-9절 새벽예배 설교문입니다. 과거 '이전 영광'과 비교하며 오늘의 연약함에 낙심하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굳세게 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한다'라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나중 영광'은 예수님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로 참 성전이 되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심을 믿고, 주님 안에서 위로와 평강, 소망을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학개 2장 1절-9절, 나중 영광이 더 크리라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210장,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 새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서론: '왕년'에 갇힌 시선
혹시 여러분! "아, 옛날엔 그랬는데… 왕년에는…" 하는 말을 자주 하십니까? 우리는 과거의 빛나는 성공이나 건강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지금의 모습과 비교하며 마음이 작아질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 뜨겁게 부흥했던 시절, 내가 건강하게 헌신했던 그 '왕년'을 떠올리며, 지금의 연약한 모습에 낙심할 수 있습니다. "이전의 영광은 다 어디로 갔나?" 하는 탄식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 학개서의 백성들이 정확히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그들은 포로 생활에서 돌아와 무너진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했지만,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본론
오늘 본문은 이처럼 과거의 영광과 초라한 현실 사이에서 절망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우리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보잘것없는 오늘 속에서, 어떻게 더 큰 영광을 약속하고 계십니까?"
1. '보잘것없는' 현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 3절은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라고 묻습니다. 과거 솔로몬 성전의 화려함을 기억하던 노인들은, 지금의 초라한 성전 모습에 낙심했습니다. 그래서 16년 동안이나 성전 건축은 중단되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4절을 통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 학개 2: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유다 귀환 공동체가 지금 예루살렘에서 굳세게 일해야 할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4절에서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5절에서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덕분입니다.
하나님은 건물 크기나 외형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핵심은 '크기'가 아니라 '임재'였습니다. "너희가 지금 보는 것은 보잘것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만군의 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한다. 그것이 중요하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과 교회의 영광은 눈에 보이는 성과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는가'에 달려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만국의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
더 나아가 하나님은 9절에서 충격적인 약속을 유다 공동체에 주십니다. 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학개 2: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역사적으로 이 두 번째 성전은 솔로몬 성전의 영광에 미치지 못했고 결국 파괴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9절의 이 약속은 건물이 아닌, 한 인격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모든 나라의 보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첫째, 진정한 '나중 영광'은 이 초라한 두 번째 성전에, 하나님의 본체이시며 영광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걸어 들어오셨을 때 성취되었습니다. 솔로몬 성전은 피조물인 금으로 가득 찼지만, 이 성전은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친히 가르치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이 '성전'의 개념을 완성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 2:19).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그 성전이 무너졌으나,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영광스러운 '참 성전'으로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셋째, 이제 그 '나중 영광'은 우리에게로 이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의 영을 모신 저와 여러분이, 바로 그 '살아있는 성전'이 되었습니다(고전 3:16).
이것이 복음입니다. "나중 영광이 더 크리라"는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제 그 영광스러운 주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라는 성전을 통해 성취되고 있습니다. 또한 9절의 약속,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는 약속 역시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3. '나중 영광'을 살아가는 성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됩니까? 우리는 오늘 말씀을 어떻게 삶의 자리에서 지켜나가야만 합니까?
첫째, 개인적인 적용입니다. 더 이상 나의 '왕년'과 '오늘'을 비교하며 절망하지 마십시오. 나이가 들고 몸이 쇠약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젊은 시절의 건강이 '이전 영광'이었다면, 이제 우리에게는 '나중 영광'이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낡은 찻잔처럼 쇠하여 갈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만국의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하십니다. 우리의 '나중 영광'은 겉모습이 아닌,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쇠약해지는 겉사람이 아닌, 그리스도로 인해 새로워지는 속사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둘째, 공동체적인 적용입니다. 우리 교회의 '외형'이 아닌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붙드십시오. 교회 건물이 작아 보이고 모이는 숫자가 줄어든 것처럼 보여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굳세게 할지어다.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우리 교회의 영광은 숫자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재에 있습니다.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는 이곳이 바로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결론: 가장 큰 영광은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학개 시대의 백성들은 눈앞의 초라한 돌무더기를 보며 울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너머로, 이 땅에 오실 '만국의 보배'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육신과 초라한 현실을 보며 탄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과 우리를 통해 이루실 '더 큰 영광'을 보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이전 영광'은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된 '나중 영광'은 지금 우리와 함께하며, 영원토록 이어질 것입니다.
이 새벽, 과거에 대한 미련과 현재에 대한 낙심을 내려놓고, 우리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그 참된 영광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굳세게 일어서라, 내가 너희와 함께한다"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오늘 하루도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유다 공동체에게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신 임마누엘의 하나님! 오늘 우리와도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비록 우리는 남과 비교하고 가장 좋을 때와 비교하며 절망에 빠져 있었지만,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함께 하시고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기로 결단합니다. 나중 영광을 바라보고 천국을 바라보며, 오늘도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과거가 아닌, 오늘 함께 하시는 주님을 보게 하소서.
- 우리를 성전으로 삼으신 주의 영광을 날마다 보게 하소서.
- 오늘 주신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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