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에스라 7장 1절-10절의 말씀은, 이 책의 주인공인 에스라가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선한 손을 힘입어 말씀을 연구하고 준쟁하며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무너진 삶의 자리를 말씀으로 재건하는 이 3가지의 거룩한 결단을 통하여, 은혜 안에서 우리가 나아갈 길을 제시합니다.
에스라 7장 1절-10절, 하나님의 선한 손, 준비된 마음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85장, 주의 말씀 받은 그 날
새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서론: 결심은 왜 무너지는가
요시야 왕은 남유다의 가장 깊은 영적 암흑기에 왕이 되었습니다. 성전을 수리하던 중, 수백 년간 잊혀졌던 율법책이 기적적으로 발견됩니다. 요시야는 그 말씀을 듣자마자, 자기 옷을 찢으며 통렬히 회개했습니다. 그는 말씀을 '연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에만 머물지 않고 즉시 '준행'에 나섭니다. 온 땅에 가득했던 우상들을 제거하고 산당을 파괴하며 율법대로 유월절을 회복시켰습니다. 나아가 그는 모든 백성을 예루살렘에 모으고, 그 율법책의 모든 말씀을 백성들의 귀에 읽어주며 '가르쳤습니다'.
성도 여러분, 새해가 되면 많은 '결심'을 합니다. "올해는 꼭 성경 1독을 하겠다", "새벽기도를 시작하겠다", "하루 30분 꼭 기도하겠다". 헬스장에 등록하고, 새 다이어리를 삽니다. 하지만 그 결심이 얼마나 갑니까? 우리의 뜨거웠던 결심은 '작심삼일'로 끝나고, 성경은 다시 책장에 꽂히고, 우리는 금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본론
왜 요시야는 결단하여 성전을 정결하게 하고 신앙을 다시 회복하였지만, 우리의 결심은 이토록 연약하여 금방 무너지고 마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은 성전이 재건된 지 60년이 지난 이스라엘의 모습을 배경으로 합니다. 성전은 다시 세워졌지만, 백성들의 신앙은 무너져 있었습니다. 정체성을 잃고 세상과 뒤섞여 버렸습니다.
요시야와 우리는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오늘 본문 10절은 그 비밀을 알려줍니다. 우리의 결심이 무너지는 이유는, 그것이 내 힘과 내 의지에만 근거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대한 거룩한 결심,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준비된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에스라의 결심을 통해, 어떻게 우리의 무너진 삶을 말씀으로 다시 재건할 수 있는지, 그 3가지 거룩한 결심을 나누고자 합니다.
1.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한 손'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은 에스라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소개합니다. 1절부터 5절까지, 그는 대제사장 아론의 16대손입니다. 족보가 완벽합니다. 6절을 보니, 그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입니다. 최고의 스펙입니다.
- 에스라 7:6,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하지만 성경은 그의 스펙 때문에 일이 가능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6절 하반부를 보십시오.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9절 하반부도 보십시오.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에스라의 여정과 사역, 그가 왕에게 인정을 받고 4개월의 위험한 길을 무사히 통과한 이 모든 것의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의 선한 손'이 그를 덮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결심하기 전에, 우리가 노력하기 전에, 먼저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선한 손'이 있습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그 선한 손이 이미 나를 붙들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당신의 힘으로 결심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의지를 믿고 있습니까? 먼저 그 '선한 손'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주의 선한 손으로 나를 붙들어 주십시오." 이 은혜의 고백이 모든 결심의 출발점입니다.
2. 말씀을 '연구하기로' 결심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에스라가 무엇을 결심했습니까? 10절입니다.
- 에스라 7: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놀랍지 않습니까? 6절에서 그는 이미 '율법에 익숙한 학자', 즉 전문가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다시 '연구하기로' 결심합니다. '연구하다'(דָּרַשׁ, 다라쉬)는 말은,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파고들다', '탐구하다', '샅샅이 찾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에스라는 자기 지식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더 깊이 말씀을 알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모든 영적 재건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 말씀을 향한 거룩한 갈망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연구해야 합니까?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요 5:39).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말씀 속에서 살아계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여러분의 성경은 어디에 있습니까? 혹시 스마트폰 앱에 밀려, 알람 소리에 밀려 펴보지도 못한 채 먼지만 쌓여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피상적인 '읽기'를 넘어, 말씀을 '연구'하는 시간을 확보하십시오. 큐티 노트를 펴고, 설교를 다시 들으며 그 의미를 파고드십시오. 내 삶을 재건할 능력은 오직 말씀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에서 나옵니다.
3. 말씀을 '준행하기로' 결심하십시오.
에스라의 결심은 연구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10절을 다시 보십시오.
- 에스라 7: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에스라는 말씀을 연구할 뿐 아니라, '준행'(עָשָׂה, 아사)하였습니다. 이것이 세상을 바꾸는 능력의 핵심입니다. '아는 것'과 '사는 것'의 간극을 메우는 결심입니다. 당시에도 율법을 많이 아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알기만' 하고 '행하지' 않았습니다. 에스라는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이 먼저 그 말씀대로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말씀이 '정직하라' 하면 정직하고, '사랑하라' 하면 사랑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말씀을 '준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또 실패합니다. 그러나 여기 복음,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키지 못한 그 율법을 완벽하게 '준행'하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완벽한 순종을 덧입어(의의 전가), 이제 성령의 능력으로 순종을 '배워가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이 '연구'한 말씀, 오늘 들은 설교 말씀 중에 '준행'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용서하라는 말씀입니까? 감사하라는 말씀입니까? 지식으로만 남은 말씀은 죽은 것입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준행'할 때, 내 삶의 무너진 곳이 재건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4. 말씀을 '가르치기로' 결심하십시오.
에스라의 결심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10절 마지막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에스라 7: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에스라는 "가르치기로"(לָמַד, 라마드) 결심하였습니다. 그의 결심은 '개인 경건'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의 최종 목표는 '공동체'였습니다.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나만 아는 말씀, 나만 지키는 말씀은 복음의 능력을 가두는 것입니다. 복음은 흘러가야 합니다.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명령하셨습니다.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 28:19-20). '가르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누구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저는 학자가 아닌데요." 에스라처럼 학자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당신이 '연구'하고 '준행'한 그 말씀을 나누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는 당신의 자녀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구역(목장) 식구들에게, 당신의 친구들에게 당신이 만난 예수님을 나누십시오.
내가 먼저 연구하고(Study), 내가 먼저 살아내고(Do), 그것을 다음 세대와 이웃에게 전수할 때(Teach), 나 한 사람을 넘어 가정과 교회가 재건되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손을 의지한 거룩한 결심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우리는 에스라의 위대한 3단계 결심을 보았습니다. 에스라는 연구하고 준행하며 가르치기로 결단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이 결심조차 우리의 힘으로는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또 '작심삼일'로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이 모든 결심의 시작은 '하나님의 선한 손'(6, 9절)이었습니다. 우리의 연약한 결심을 붙드시는 분이 계십니다. 율법의 완성이요, 우리의 완벽한 순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시간, 우리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선한 손'을 의지하며 결단합시다. "주님, 내 힘으로는 안 됩니다. 주의 선한 손으로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준비'시켜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성령님, 내 마음을 준비시켜 주옵소서.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가르칠 수 있는 거룩한 결심을 주옵소서. 에스라를 도우셨던 그 '선한 손'으로 오늘 나를 붙드실 줄 믿습니다."
이 거룩한 결심이, 하나님의 선한 손의 능력 안에서, 여러분의 무너진 삶과 가정을 재건하는 시작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지 않고, 알면서도 준행하지 않았으며, 가르치지 못했던 나의 게으름과 불순종을 회개합니다. 불쌍히 여겨 주시고 용서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선한 손으로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에스라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연구하고 삶에서 순종하며 가르칠 수 있는 결심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말씀을 연구하는 지혜와 부지런함을 주소서.
- 알고 있는 말씀을 준행하는 용기를 주소서.
- 말씀을 가르치는 사명에 헌신하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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