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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8장 21절-36절, 스스로 겸비하여 간구하였을 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11월 12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에스라 8장 21절-36절 말씀은, 에스라가 긴 여정을 앞두고 왕의 군대를 구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는 내용과 그 결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에스라는 왜 왕의 군대를 구하는 것은 부끄러워 하였을까요? 위험한 여정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금식하며 간구하였을 때, '하나님의 손'이 어떻게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건지셨는지 살펴봅니다. 세상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의지하는 겸손한 기도의 능력을 확인해 보십시오.


에스라 8장 21절-36절, 스스로 겸비하여 간구하였을 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에스라 8장 21절-36절, 스스로 겸비하여 간구하였을 때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 새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서론: 신앙인의 '부끄러움'


여러분, 살면서 혹시 "이럴 때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기 참 부끄럽다"라고 느껴본 적 있으십니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돈 문제로 절절매고, 자녀 문제로 낙심하고, 건강 문제로 두려워 어쩔 줄 모르는 내 모습을 볼 때입니다.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십니다!"라고 큰소리쳤는데, 정작 내 삶의 위기 앞에서는 가장 세속적인 방법을 먼저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우리는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오늘 본문의 지도자 에스라가 바로 그런 부끄러움에 직면했습니다. 에스라는 지금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1,500km의 위험한 여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여정에는 막대한 양의 금과 은(오늘날 가치로 수백억 원)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 길에는 강도와 대적들이 매복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왕에게 "군대를 붙여주십시오"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스라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22절 말씀을 보십시오.

  • 에스라 8:22,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에스라는 왕에게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지키십니다!"라고 이미 간증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사실 좀 불안하니 군대 좀 보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의 간증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지금 신앙고백과 현실의 안전 사이에서 깊은 딜레마, 즉 '거룩한 부끄러움'에 빠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수 믿으면 평안합니다"라고 전도해놓고, 정작 작은 문제에도 안절부절못하는 내 모습이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본론


이 부끄러움 앞에서 에스라는 무엇을 합니까? 타협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 '부끄러움'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1. 부끄러움을 '겸비함'으로 바꾸라.

에스라가 선택한 첫 번째 행동은 '선포'였습니다. 21절입니다.

  • 에스라 8:21, 그 때에 내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에스라는 자신의 부끄러움, 연약함, 딜레마를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왕의 군대(세상의 힘)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로 결정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스스로 겸비하여'(לְהִתְעַנּוֹת, 레히트안노트)입니다. 이것은 그냥 '마음이 겸손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원어의 뜻은 '스스로를 괴롭게 하다', '스스로를 낮추다'입니다. 즉, 금식을 통해 자신의 육체적 욕망과 의지를 꺾고 하나님만 바라보겠다는 적극적인 순종의 행위입니다.

그들은 왜 금식했습니까? "하나님, 우리는 왕의 군대를 의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명예가 걸린 이 일에, 하나님이 친히 개입해주십시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만 기다리겠습니다!"

이것이 '스스로 겸비함'입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 앞에서, 세상의 방법과 하나님의 방법 사이에서 갈등할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스스로 겸비하는 것'입니다. 내 힘과 내 계획과 내 통장 잔고를 의지하려는 마음을 꺾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 문제는 내 힘으로 안 됩니다. 주님이 아니면 길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며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금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인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습니까? 재정의 압박, 자녀의 탈선, 건강의 위기 앞에서 세상의 방법을 먼저 기웃거리고 있습니까? 그 부끄러움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십시오. 그리고 '스스로 겸비하여' 금식을 선포하십시오. "하나님, 나는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 의지합니다."라는 겸비함의 고백이 시작될 때,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2. 겸비함은 '간구'로 이어진다.

겸비함은 단순한 자기 비하로 끝나지 않습니다. 겸비함은 반드시 하나님을 향한 '간구'로 이어져야 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 에스라 8:23,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에스라와 귀환자들은 그냥 겸손하게 앉아만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간구'(נבקש, 니브카쉬), 즉 '간절히 찾고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우리에게 '평탄한 길'(דרך ישרה, 데렉 예솨라)을 주십시오!"

그들이 구한 '평탄한 길'은 그저 편안하고 사고 없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곧은 길', '올바른 길'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돈과 예물을 무사히 가져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여정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목적지의 성공뿐만 아니라 과정의 거룩함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피땀 흘려 '간구'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유일하고 '평탄한 길'(곧은 길)이 되시기 위해 스스로 그 험한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간구할 때, 우리는 단순히 문제 해결을 넘어,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길'로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3. 간구는 '하나님의 손'을 움직인다.

기도는 추상적인 외침이 아닙니다. 기도는 현실 세계에서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는 능력입니다. 23절에서 "간구하였더니 응답하심을 입었다"라고 선언한 에스라는, 8일 뒤인 31절에서 그 응답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생생하게 증언합니다. 3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에스라 8:31, 첫째 달 십이 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놀랍지 않습니까? 그들은 왕의 군대(보병과 마병) 없이 출발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손'만을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길에는 '대적의 손'과 '매복한 자의 손'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위험은 실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해치려던 '대적의 손' 위에, 그들을 지키시는 더 크고 강한 '하나님의 손'이 있었습니다. 왕의 군대는 눈에 보이지만, 하나님의 손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에스라 공동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눈에 보이는 '대적의 손'보다 강하다는 것을 믿음으로 선택했고, 겸비함으로 간구했으며, 마침내 현실에서 경험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본향을 향해 가는 순례자들입니다. 이 세상 길에는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영적 '대적'(사탄)과 '매복한 자'(죄의 유혹, 세상의 가치관)가 가득합니다. 우리는 이 길을 무엇으로 통과하겠습니까? 내 경험입니까? 내 돈입니까? 내 인맥입니까? 그것들은 아닥사스다 왕의 군대와 같습니다. 유용해 보이지만, 영적인 대적 앞에서는 무력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손'만이 우리를 지키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겸비하여 간구할 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내 가정을, 내 자녀를, 내 직장을, 내 교회를 대적의 손과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져주실 줄 믿습니다!


에스라 8장 21절-36절, 스스로 겸비하여 간구하였을 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결론: 겸비한 간구, 완전한 도착


에스라와 백성들은 마침내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32절). 그들은 가져온 예물을 정확하게 계수하여 성전에 드렸고(33-34절), 하나님께 감사의 희생 제사(예배)를 드렸습니다(35절). 그들의 여정은 '겸비한 간구'(21절)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보호'(31절)를 거쳐, '완전한 감사 예배'(35절)로 끝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 여정은 지금 어디쯤 있습니까? 아직 아하와 강가에서 출발도 못 하고, 세상의 군대를 구할지 하나님의 손을 의지할지 망설이며 부끄러워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미 여정을 시작했지만, 길에 매복한 대적들로 인해 두려워 떨고 있습니까?

오늘 에스라의 고백을 우리의 고백으로 삼읍시다. 우리의 '평탄한 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십시오. 세상의 힘을 의지하려던 부끄러움을 내려놓고, '스스로 겸비하여' 하나님께 간구합시다. "하나님, 내 힘으로는 이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오직 주의 손이 나를 도우사, 대적의 손에서, 매복한 자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시옵소서."

우리가 이렇게 겸비하게 부르짖을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이 우리의 남은 모든 여정을 지키시며, 마침내 저 본향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한 감사 예배를 드리게 하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손'을 붙들고 이번 한 주도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하나님!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힘을 구하려 하였던 부끄러운 모습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손'이 지금까지 나를 인도하시고 건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첫 시간에 '스스로 겸비하여' 간구하오니, 오늘도 올바른 길을 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세상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게 하소서.
  • '스스로 겸비하여' 간구하는 기도의 능력을 회복시켜 주소서.
  • 인생의 대적과 매복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고 보호해 주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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