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은 에스라 9장 1절-8절로, 거룩한 백성의 세상과의 타협(죄)를 보고 '기가 막혀 앉았던' 에스라의 거룩한 절망에 대해 묵상하고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죄에 대한 무감각함을 회개하고, '남은 자'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나눕니다.
에스라 9장 1절-8절, 기가 막혀 앉았더니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406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 새 찬송가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서론: 무감각의 시대
여러분, 혹시 "영적 무감각증"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너무 잦은 자극에 노출되면 나중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는 현상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끔찍한 뉴스를 보고도 금세 잊어버리고, 세상의 죄악에 대해 분노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지"라며 체념하곤 합니다.
더 무서운 것은, 이 무감각이 우리 신앙의 영역까지 침투했다는 사실입니다. 내 삶 속에서 반복되는 죄, 우리 공동체 안에 스며든 세속적인 가치관을 보고도 우리는 더 이상 충격을 받지 않습니다. '기가 막혀' 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에스라는 우리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기 위해 페르시아 제국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1,600km의 험난한 길을 거쳐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부푼 꿈을 안고 도착한 그에게 들려온 첫 번째 소식은 충격적이었습니다. 1절과 2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들을 이방 족속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지도자들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그토록 '가증하다'고(1절) 하신 이방 민족의 풍습을 따르고, '거룩한 자손'의 정체성을(2절) 스스로 내던지며 그들과 통혼하고 있었습니다. 바벨론 포로라는 끔찍한 심판을 겪고 돌아온 지 불과 몇십 년 만에, 그들은 심판의 원인이었던 바로 그 죄를 똑같이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에스라의 반응이 오늘 설교의 제목입니다. 3절입니다.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그는 옷을 찢고, 자기 머리털과 수염을 뜯었습니다. 이것은 고대 근동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극심한 고통과 절망, 그리고 수치심의 표현입니다. 그는 저녁 제사 시간까지, 몇 시간이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기가 막혀' 앉아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에스라의 '거룩한 절망'을 통해, 죄에 무감각해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기 원합니다.
본론
1. 죄를 직시하는 '거룩한 절망'
에스라가 '기가 막혀' 앉아 있을 때,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4절입니다.
- 에스라 9:4, 이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가 사로잡혔던 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다 내게로 모여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
에스라의 절망은 전염성이 있었습니다. 그의 모습을 본 사람들 중,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떨 줄 아는' 소수의 사람들이 그에게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거룩한 절망'입니다.
세상적인 절망은 우리를 주저앉혀 포기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거룩한 절망은 죄를 직시하게 하고, 애통하게 하며, 회개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됩니다. 우리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죄를 보고도 기가 막혀 하지 않습니다. 세상과 타협하는 것을 '지혜'나 '관용'이라고 포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떨기보다, 세상의 평가에 더 떨고 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그 처참한 십자가를 지셔야 했습니까? 우리의 죄가 바로 그만큼 '기가 막힌'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타협의 대상으로 보지 않으십니다. 찢어 죽여야 할 만큼 '가증한 것'으로 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악을 보시고 '기가 막혀' 절망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첫 번째 은혜는, 바로 이 '거룩한 절망'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나의 죄가, 우리 교회의 타협이, 이 세대의 악함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깨닫고 에스라처럼 가슴을 치며 '기가 막혀' 하는 것입니다. 죄를 깨닫고 애통하는 마음. 이것이 바로 회복의 시작입니다.
2. '나'의 죄로 고백하는 '공동체적 책임'
해가 저물고 저녁 제사를 드릴 시간이 되자, 에스라는 기가 막힌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듭니다. 그리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의 기도는 이상합니다. 그는 죄를 지은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6절입니다.
- 에스라 9:6,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그들"의 죄가 아니라, "우리"의 죄라고 고백합니다. 에스라는 페르시아에서 막 돌아왔습니다. 그는 이 죄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나는 저들과 달라"라고 선을 긋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공동체 의식 안에서 그들의 죄를 '자신의 죄'로 끌어안고 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공동체적 책임'입니다. 우리는 죄의 문제를 너무 개인적인 것으로만 축소하곤 합니다. "저 사람이 문제야", "우리 교회는 괜찮은데 저 교회가 문제야"라고 손가락질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죄가 전혀 없으신 그분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분은 "나는 너희와 다르다"고 외면하지 않으시고, 친히 '우리'가 되셔서 "우리의 허물"을 짊어지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중보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너'를 향한 비난을 멈추고 '우리'의 죄를 고백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가정의 죄, 교회의 죄, 이 나라의 죄를 안고 에스라처럼 부끄러워하며 기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3. 절망 속에서 붙잡는 '은혜의 발판'
에스라의 기도는 7절까지 절망의 끝을 달립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가 왕들에게 넘겨지고, 오늘날과 같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습니다.
그때, 에스라의 입에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8절입니다.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 에스라 9:8,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시 동안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 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가 종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생하게 하셨나이다
이 8절은 절망의 한복판에서 터져 나오는 복음입니다. 에스라는 깊은 절망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남겨두신 '은혜'를 발견합니다.
그 은혜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제 우리가 다시 강대국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자신들의 상태를 '종살이'(8절)라고 부릅니다. 그가 발견한 은혜는 고작 "잠깐 동안" 주어진 것이고, "약간의 소생함"일 뿐이며, 겨우 도망쳐 나온 "남은 자"에게 허락된 "발판" 하나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완전한 절망 속에서는, 그 작은 '은혜의 발판' 하나가 모든 소망의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나 자격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의 '종살이' 가운데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의 발판'을 하나 박아 주셨습니다. 그 발판의 이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 때문에 "남은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약간의 소생함"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잠깐 동안"의 은혜가 아니라, "영원한" 은혜의 언약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죄에 대해 '기가 막혀' 본 사람만이, 이 작은 '은혜의 발판'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죄에 대해 절망해 본 사람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유일한 소망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결론: 기가 막힌 자리에서 은혜의 발판으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떤 자리에 앉아 계십니까?
혹시 죄악이 만연한 세상을 보며, 혹은 내 안의 끊어지지 않는 죄를 보며 에스라처럼 '기가 막혀' 앉아 계십니까? 잘 오셨습니다. 그 거룩한 절망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혹은, 너무 무감각해져서 죄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된 자리에 앉아 계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성령께서 우리의 무딘 마음을 찢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떨며 '기가 막혀' 할 줄 아는 영적 민감성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어느 자리에 있든, 우리의 소망은 하나입니다. 우리의 절망과 무감각을 뚫고, 하나님께서 "잠깐 동안"이 아닌 영원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우리의 '종살이'를 끝내기 위해, "약간의 소생함"이 아닌 완전한 부활을 주시기 위해, '은혜의 발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이제 그만 절망의 자리에 주저앉아 있지 마시고, 기가 막힌 그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의 죄를 고백하며, 유일한 소망이신 '은혜의 발판' 예수를 굳게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여, 절망을 넘어 소망으로 나아가는, 거룩한 '남은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하나님! 주의 백성이라고 불리면서도 세상과 타협하며 가증한 일을 따랐던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죄를 보고도 기가 막혀 할 줄 모르는 무딘 마음을 회개합니다. 오늘 우리 마음에 죄에 민감한 마음을 주옵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오늘도 그 사랑 속에서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죄를 깨닫고 애통하는 영적 민감성을 주소서.
- '우리'의 죄를 고백하는 공동체적 회개를 이루게 하소서.
- 은혜의 발판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굳게 붙잡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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