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 새 찬송가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서론: 선지자의 절규와 우리의 새벽
샬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 새벽, 피곤한 몸을 이끌고 주님 앞에 나오신 여러분의 발걸음을 축복합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마치 전쟁터 같고, 때로는 우리가 의지했던 것들이 흔들리는 불안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쌓아왔다고 생각했던 삶의 터전이 위태로워 보일 때, 우리는 깊은 탄식을 내뱉게 됩니다.
오늘 본문 속의 미가 선지자는 바로 그 무너짐의 현장 한가운데 서서, 옷을 벗고 벌거벗은 몸으로 울부짖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그를 절망하게 만들었으며, 하나님은 왜 당신의 백성에게 이토록 무서운 경고를 보내시는 걸까요? 오늘 이 새벽, 미가의 절규 속에 담긴 하나님의 진짜 마음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 역시 똑같은 위험 앞에 서게 될지도 모릅니다.
본론
1. 하나님이 성전에서 나오실 때: 거짓된 안전은 무너집니다
오늘 본문은 미가 선지자가 본 묵시, 즉 환상으로 시작됩니다. 그는 남유다 왕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하며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와 남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미가가 본 첫 장면은 충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처소, 곧 예루살렘 성전에서 나오셔서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십니다. 그러자 산들이 밀랍처럼 녹아내리고 골짜기들이 갈라집니다(3-4절). 창조주 하나님의 임재 앞에 피조 세계가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이토록 진노하신 모습으로 강림하셨을까요?
성경은 그 이유가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 족속의 죄" 때문이라고 명확히 밝힙니다(5절). 그리고 그 죄의 핵심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 즉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백성들의 마음과 삶 속에 있었습니다. 7절입니다.
- 미가 1:7, 그 새긴 우상들은 다 부서지고 그 음행의 값은 다 불살라지며 내가 그 목상들을 다 깨뜨리리니 그가 기생의 값으로 모았은즉 그것이 기생의 값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은 하나님도 섬기면서 동시에 풍요를 가져다준다는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들이 '안전하다', '견고하다'고 믿으며 쌓아 올린 사마리아의 성벽과 우상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기생이 번 화대처럼 더럽고 허망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의지하던 모든 것을 포도원 밭을 일구듯 완전히 뒤엎어 버리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사마리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며, 내 삶의 안전을 보장해 줄 것이라 믿는 '견고한 성'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돈이든, 자식이든, 혹은 나의 경력이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는 순간 그것은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거짓된 안전을 밟으실 때, 우리가 견고하다고 믿었던 것들은 밀랍처럼 녹아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2. 선지자의 절규: 하나님의 아픈 마음
동족의 멸망을 예고하는 미가 선지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그는 냉정한 심판관처럼 메시지만 전하지 않았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 미가 1:8, 이러므로 내가 애통하며 애곡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행하며 들개 같이 애곡하고 타조 같이 애통하리니
미가는 "벌거벗은 몸"으로 울부짖습니다. 이것은 극도의 수치와 슬픔을 표현하는 행동입니다. 들개(자칼)와 타조의 울음소리처럼 처절하게 통곡합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의 상처가 고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 죄악의 영향력이 자신의 조국인 유다, 곧 예루살렘 성문 앞까지 이르렀기 때문입니다(9절).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보면서도 "우리는 괜찮다, 우리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다"며 안심하고 있던 남유다 백성들의 영적 무감각이 미가를 더욱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미가의 울음은 곧 죄에 빠진 자식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찢어지는 마음입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닙니다. 어떻게든 돌이키게 하려는 하나님의 아픈 사랑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죄악과 교회의 타락을 보며 얼마나 아파하고 있습니까?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미가처럼 벌거벗은 심정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이 땅을 위해 울어줄 중보자가 필요한 때입니다. 내가 우리 가정을 위한 중보자, 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위한 중보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다가오는 심판의 발자국 소리
본문 10절부터 16절까지는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향해 진격해 오는 경로에 있는 성읍들의 이름을 열거하며, 그 이름의 뜻을 이용한 언어유희로 그들이 겪을 고통을 묘사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 미가 1:10, 가드에 알리지 말며 도무지 울지 말지어다 내가 베들레아브라에서 티끌에 굴렀도다
'가드'의 의미는 '알리다'이지만 '알리지 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들레아브라'의 의미는'티끌의 집'이라는 의미인데 '티끌 속에서 굴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사빌'의 의미는'아름다움'인데 '벗은 몸에 수치를 무릅쓰고 나갈 것이라'라고 말씀하시며, 마롯의 의미는 '쓰라림'인데, '근심 중에 고통을 당할 것이라'라고 선언하십니다. 마지막으로, '라기스'의 의미는'준마'인데, '준마에 병거를 메고 도망갈 준비를 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도시들은 모두 유다의 요새들이었습니다. 유다가 자랑하던 아름다움(사빌)은 수치가 되고, 그들의 견고함은 티끌(베들레아브라)이 되며, 그들의 삶은 쓰라림(마롯)으로 변할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문 앞까지 재앙이 임박했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그들이 사랑하던 자식들, 즉 우상숭배의 결과물들을 잃고 대머리 독수리처럼 머리털을 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16절). 이는 가장 큰 슬픔과 수치를 상징합니다.
이 두려운 경고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네가 의지하는 '안전'이 진짜 안전이냐?"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음성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서 안전을 찾으려 할 때, 그 모든 시도는 결국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결론: 참된 안전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미가 선지자의 절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초대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으며 붙잡고 있는 우상들을 하나도 빠짐 없이 내려놓으라는 외침입니다. 하나님 없는 풍요, 하나님 없는 성공은 양초와 같이 녹아내릴 헛된 꿈일 뿐입니다.
오늘 이 새벽, 미가 선지자의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갑시다. 내 안에, 우리 가정 안에, 우리 교회 안에 무너져야 할 '사마리아의 산당'은 없는지 돌아봅시다. 그리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합시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안전, 무너지지 않는 영원한 반석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오늘 하루도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오직 주님만을 나의 견고한 요새로 삼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사랑의 주님, 오늘 미가 선지자의 절규를 통해 우리가 의지하던 헛된 우상의 실체를 깨닫습니다. '안전하다' 믿으며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세상의 성벽들을 이 시간 내려놓습니다. 심판 너머에 있는 아버지의 아픈 사랑을 알게 하시고, 무너질 것들에 소망을 두지 않게 하옵소서. 오직 영원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가정과 삶의 참된 요새가 되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내 안에 숨겨진 우상을 발견하고 거짓된 안전에서 돌이키게 하소서.
-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품고 이 시대를 위해 눈물로 중보하게 하소서.
- 무너질 세상이 아닌 영원한 반석이신 주님만 나의 피난처로 삼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우리에게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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