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543장, 어려운 일 당할 때
- 새 찬송가 91장,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서론: '열심히'라는 이름의 굴레를 벗고
여러분, 오늘 이 새벽에 어떤 마음으로 나오셨습니까? 우리는 흔히 한국인을 ‘열심의 민족’이라고 부릅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성실해야 한다”, “남보다 더 많이 해야 성공한다”는 말을 들으며 자라왔습니다. 직장에서는 성과 지표(KPI)와 인사 고과에 시달리고, 가정에서는 좋은 부모, 효도하는 자녀가 되기 위해 숨 가쁘게 뛰어다닙니다. 심지어 교회에서조차 “기도 생활을 더 열심히 해야 응답받는다”, “이 정도 봉사는 해야 집사답다”는 식의 ‘실적 중심적 신앙’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영적 번아웃(Burnout)을 경험하곤 합니다. “오늘 내가 한 일이 부족해서 하나님이 나를 덜 사랑하시면 어쩌지?” 혹은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왜 내 삶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이 우리 영혼을 잠식할 때가 많습니다.
본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무리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묻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28절) 그들은 하나님께 점수를 따기 위한 ‘해야 할 일들의 목록(To-do list)’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전혀 다른 답을 들려주십니다. 이 새벽, 우리의 분주한 손을 멈추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진짜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인생의 풍랑 속에서 '표적'보다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오늘 본문은 제자들이 바다 위에서 풍랑을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직후, 제자들은 예수님 없이 배를 타고 가다가 거센 바람과 파도를 만납니다. 인생의 위기는 늘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열심히 노를 저어보지만 제자리걸음일 뿐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십니다. 제자들은 두려워하지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20절 말씀입니다.
- 요한복음 6:20,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이 사건 이후,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했던 무리들이 배를 타고 예수님을 찾아 가버나움까지 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찾아낸 것에 대해 스스로 대견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열심 뒤에 숨은 동기를 날카롭게 지적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26절)
무리들은 예수님을 ‘내 삶의 결핍을 채워줄 수단’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의 주관자가 아니라,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해 줄 ‘떡을 만드는 기계’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기적(표적) 속에 담긴 예수님의 권능을 본 것이 아니라, 기적의 결과물인 ‘떡’에만 집착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풍랑 위를 걷는 사건을 통해 자신이 자연 만물을 다스리는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단순히 ‘떡’을 주러 오신 분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풍랑 속의 배’에 타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혹시 우리도 “이 문제만 해결해 주시면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거래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손’에 들린 떡보다 ‘주님의 얼굴’ 그 자체를 구하기를 원하십니다. 인생의 풍랑이 일 때, 해결책을 찾아 헤매기보다 “내니 두려워 말라” 말씀하시는 주님을 먼저 영접하십시오. 주님이 배에 오르실 때, 인생의 풍랑은 잔잔해집니다.
2. 하나님의 일은 '나의 행위'가 아닌 '예수의 완성'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적에 당황한 무리들은 다시 묻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28절) 여기서 그들이 사용한 ‘일들(ἔργα, 에르가)’은 복수형입니다. 그들은 구원을 얻기 위해, 혹은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 지켜야 할 율법 조항이나 특별한 종교적 행위가 무엇인지 물은 것입니다. “무엇을 더 해야 합니까? 어떤 노력을 더 보여드려야 하나님이 만족하시겠습니까?” 이것이 종교적인 인간의 본능적인 질문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충격적인 선언을 하십니다. 우리 함께 29절을 읽겠습니다.
- 요한복음 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무리들이 말한 복수형의 '일들'을 단수형인 '일(ἔργον, 에르곤)'로 바꾸어 대답하셨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일은 우리가 땀 흘려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믿음’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늘 “I do(내가 한다)”의 관점에서 신앙을 보지만, 예수님은 “It is done(다 이루어졌다)”의 관점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믿음은 내가 주님을 위해 무언가를 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위해 하신 일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결코 이룰 수 없었던 율법의 요구를 완벽히 성취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며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어야 할 유일한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스펙'이 아닌 주님의 '희생'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신앙의 무게’ 때문에 힘들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에게 완벽한 도덕성이나 엄청난 봉사 실적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연약한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와 “주님, 주님만이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주님이 다 하셨음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은 게으름이 아닙니다. 내 자아를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는 가장 치열한 영적 활동입니다.
결론: 썩을 양식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선택하십시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두 가지 ‘양식’ 사이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하나는 먹어도 다시 배고픈 ‘썩을 양식’입니다. 세상의 인정, 재물이나 사람들의 칭찬이 그것입니다. 이것을 얻기 위해 우리는 평생을 ‘일’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인자가 주시는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입니다. 이것은 노력의 대가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주어지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애쓰지 말고, 믿으라.” 이 말씀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가 ‘내가 주님께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은혜에 너무나 감사해서 자연스럽게 마음 속에서부터 나오는 반응’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 이 새벽, 여러분의 기도가 바뀌길 소망합니다. “하나님, 오늘 제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테니 복을 주십시오”라는 거래의 기도를 멈추십시오. 대신 “주님, 주님이 제 인생의 폭풍 가운데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그 사랑이 오늘도 나를 살게 함을 믿습니다. 이것이 제가 오늘 감당할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일입니다”라고 선포하십시오.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찾아오셔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확신을 주실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는 여러분의 오늘 하루가, 썩지 않을 영원한 생명의 열매로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하나님 아버지, 무언가 행함으로 자격을 얻으려 했던 교만을 회개합니다. 풍랑 속에서도 찾아오시는 주님의 손을 잡게 하소서. 썩을 양식을 구하는 열심보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는 믿음의 사역에 집중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의 모든 수고가 주님을 향한 신뢰 안에서 평안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이 땅의 썩어질 양식보다 영원한 생명을 구하게 하소서.
- 나의 열심을 추구하기보다 주님의 완전하심을 신뢰하게 하소서.
- 삶의 풍랑 속에서 오직 주의 음성만을 듣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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