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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9일 묵상] 요한복음 6장 41절-59절, 영원한 생명을 위한 참된 양식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2월 19일 묵상] 요한복음 6장 41절-59절, 영원한 생명을 위한 참된 양식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235장,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 새 찬송가 252장, 나의 죄를 씻기는



서론: 풍요 속의 빈곤, 무엇으로 허기를 채우고 계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새벽, 주님의 전을 찾으신 여러분에게 하늘의 신령한 은혜가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탐식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TV 채널을 돌리면 온통 맛있는 음식을 먹는 '먹방'과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넘쳐납니다. 사람들은 맛있는 빵 한 조각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오픈런'을 마다하지 않고, 건강보조식품과 유기농 식단에 엄청난 돈과 시간을 투자합니다.

서점에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법, 몸에 좋은 음식에 관한 책들이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우리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몰두하며, 육체의 생명을 연장하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잘 먹고 건강을 챙기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이 겪는 마음의 병과 영혼의 공허함은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육체는 비대해졌지만 정신은 빈약해졌고, 수명은 늘어났지만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잃어버렸습니다.

화려한 식탁 앞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갈증 때문에 우울증과 불안 장애를 호소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눈에 보이는 떡, 육신의 양식만으로는 결코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배고픔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본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이와 똑같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했고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 육신의 배부름이 너무나 좋아서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 했고, 기적을 더 보여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앞에 서 있었지만, 정작 예수님이 누구신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의 배를 채워줄 '떡'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영혼을 살릴 '생명'에는 무지했습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는 육신의 떡을 찾아 헤매는 세상의 흐름을 멈추고, 우리 영혼이 진정으로 먹어야 할 참된 양식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는 인생이 아니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부름받은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 익숙함의 함정을 넘어 하나님의 이끄심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내가 곧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다"라고 선포하시자, 유대인들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본문 41절은 그들이 "수군거렸다(γογγύζω, 공귀조)"고 기록합니다. 이 단어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모세와 하나님을 향해 불평할 때 쓰였던 단어입니다. 그들이 수군거린 이유는 무엇입니까? 42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그들의 발목을 잡은 것은 바로 '익숙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고향이 어디인지, 아버지가 누구인지, 가족 관계가 어떤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성과 경험, 그리고 인간적인 정보가 도리어 영적인 눈을 가려버린 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아는데, 저 사람은 그냥 목수의 아들이잖아." 이 선입견이 그들로 하여금 눈앞에 계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가장 큰 적도 때로는 '익숙함'일 수 있습니다. "나도 성경 좀 안다", "내가 신앙생활을 몇 년을 했는데", "저 목사님 설교는 내가 뻔히 알지"라는 교만한 마음이 들 때, 하나님의 말씀은 더 이상 우리 심령에 들리지 않게 됩니다. 예배가 습관이 되고, 십자가의 복음이 더 이상 가슴 뛰는 감격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유대인들처럼 영적인 수군거림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인간의 논리로 설득하려 하지 않으시고, 구원의 주권을 선포하십니다. 44절을 보십시오.

  • 요한복음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여기서 '이끈다((ἑλκύω, 헬퀴오)'는 표현은 그물을 끌어올리거나 칼을 뽑을 때 쓰는 전쟁용 단어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지적 동의나 감정적 선택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완고한 고집을 꺾으시고, 우리의 영혼을 강권적으로 끌어당기셔야만 가능한 기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새벽에 단잠을 깨우고 이 자리에 나오신 것이 여러분의 의지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이끌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내 생각, 내 경험, 내 판단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 생각에는 이게 맞는데"라는 수군거림을 멈추고, 나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항복하십시오. 그때 비로소 요셉의 아들이 아닌, 하늘로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신 주님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2월 19일 묵상] 요한복음 6장 41절-59절, 영원한 생명을 위한 참된 양식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2. 예수님을 '먹고 마신다'는 것은 전적인 연합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수군거리는 그들에게 한 걸음 더 나아가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51절입니다.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그리고 5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요한복음 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이 말씀에 유대인들은 "어떻게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며 서로 다투었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식인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의 행위를 가장 감각적이고 실제적인 언어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음식을 먹는 행위를 생각해 보십시오. 음식을 눈으로만 보거나, 냄새만 맡거나, 분석만 해서는 배부르지 않습니다. 그 음식을 입에 넣고 씹어서 삼켜야 합니다. 그러면 그 음식은 형체가 사라지고 내 몸속에서 소화되어 내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에너지가 됩니다. 음식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을 객관적인 지식의 대상으로, 혹은 4대 성인 중 한 명으로 존경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밥을 먹듯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내 영혼 깊숙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56절의 말씀은 이 신비의 절정입니다. 우리 함께 56절을 읽겠습니다.

  • 요한복음 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여기서 '거한다(μένω, 메노)'는 단어는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에서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는 상태를 묘사할 때 쓰인 단어입니다. 이것은 '상호 내주(Mutual Indwelling)'의 신비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생명으로 살아계시고, 내가 주님 안에 온전히 잠기는 연합입니다.

우리는 매일 밥을 먹지 않으면 기력이 쇠하고 결국 죽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영혼도 매일 예수님을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무엇으로 사십니까? 뉴스의 헤드라인입니까? 주식 시장의 등락입니까? 자녀의 성적입니까? 그것들은 잠깐의 기쁨을 줄지 몰라도 우리를 살리지는 못합니다. 오직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묵상하고, 기도로 그분의 호흡을 마시는 것만이 우리를 살립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의 결정과 말과 행동 속에 예수님의 생명이 흐르게 하십시오. 내 혈기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의 성품이 드러나게 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의 삶입니다.


[2월 19일 묵상] 요한복음 6장 41절-59절, 영원한 생명을 위한 참된 양식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결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의 떡을 취하라


오늘 말씀을 맺겠습니다. 본문 58절에서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이스라엘 조상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이 내려주신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것은 기적의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만나를 먹은 사람들도 결국 다 늙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육신의 양식은 아무리 대단한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생명을 영원히 보존해주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추구하는 돈, 명예, 건강, 성공이라는 떡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잠시 배부르게 할 뿐, 결국 다시 배고프게 만들고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63절)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썩어질 양식을 얻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수고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부름받은 자들입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의 식탁에 무엇을 올리시겠습니까?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감사와 믿음이라는 메뉴를 선택하십시오. 무엇보다도 나를 위해 찢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보혈의 은혜에 감사 하십시오.

이 믿음의 선택으로 하루를 시작할 때, 마지막 날에 우리를 다시 살리시는 부활의 능력이 오늘 여러분의 삶 현장 가운데 충만하게 임할 줄 믿습니다. 생명의 떡이신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하루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생명의 떡이신 주님, 육신의 배고픔은 민감하면서도 영혼의 굶주림에는 무감각했던 저희를 용서하소서. 오늘 하루, 주님의 살과 피를 믿음으로 받아들여 주님과 온전히 하나 되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헛된 양식이 아닌, 오직 예수님으로만 만족하게 하시고,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이 하루를 거룩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익숙함에 젖은 신앙을 깨고 날마다 주님을 새롭게 만나게 하소서.
  • 주님의 살과 피를 의지하여 내 안에 예수 생명이 충만하게 하소서.
  • 우리 가정이 세상 떡보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를 귀히 여기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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