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2월 22일 묵상] 요한복음 7장 14절-24절, 사람의 영광인가, 하나님의 영광인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2월 22일 묵상] 요한복음 7장 14절-24절, 사람의 영광인가, 하나님의 영광인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 새 찬송가 452장,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서론: '자격'을 묻는 시대, 진리의 근원을 찾아서


최근 한 달 사이, 우리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슈 중 하나는 전문직종의 권위와 그 자격에 대한 사회적 갈등이었습니다. 특정 분야의 정책 변화를 두고 전문가 집단과 정부, 그리고 시민들 사이에서 "누구의 말이 옳은가?", "그 제안의 숨은 의도는 무엇인가?"를 따지는 고통스러운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상대방의 주장이 담긴 본질보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자격'이나 '학벌', 혹은 '집단 이기주의' 여부를 먼저 따지며 불신을 키워갔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피로감은 "진정으로 믿을 만한 권위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권위의 정당성'에 대한 도전은 성경 역사 속에서도 반복되었습니다. 구약 민수기 16장을 보면, 고라와 다단, 그리고 아비람이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사건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지도력이 하나님의 선택이 아닌, 인간적인 독점이라고 비난하며 외적인 평등을 내세워 영적 질서를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모세가 배운 학문이나 그의 지위가 그를 지도자로 만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이 그 권위의 근거였음을 그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본론


오늘 본문 속 유대인들 역시 동일한 실수를 범합니다. 명절 중간에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을 향해 그들은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라며 학문적 배경, 즉 '스펙'을 문제 삼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어느 랍비 문하에서 공부했는지, 어떤 자격증을 가졌는지를 따지느라 그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는 세상이 말하는 '자격'의 프레임을 넘어, 우리 주님이 보여주시는 참된 권위와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1. 가르침의 권위는 '배움'이 아닌 '보내신 이'로부터 옵니다.

유대인들의 의구심에 대해 예수님은 단호하게 답변하십니다. 16절 말씀입니다.

  • 요한복음 7:1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예수님의 권위는 당대 유명한 랍비의 추천서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와의 하나되심에서부터 나왔습니다. 주님은 지식을 전달하는 강사가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과 뜻을 운반하는 아들이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영적 원리가 등장합니다. 17절에서 예수님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알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깨닫는 비결은 지적 능력에 있지 않고, '순종하려는 의지'에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말씀의 깊이를 맛보지 못하는 이유는 성경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 삶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키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전체를 통해 오직 아버지의 말씀에만 집중 하셨습니다. 광야의 시험에서 기록된 말씀으로 사탄을 물리치셨고, 마지막 십자가의 길까지 말씀의 성취를 위해 걸어가셨습니다. 우리의 신앙 권위 역시 세상의 자랑이 아닌, 주님의 말씀 앞에 엎드리는 순종의 태도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내 지식을 자랑하기보다 주님의 뜻에 "예"라고 화답하는 순종의 권위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2월 22일 묵상] 요한복음 7장 14절-24절, 사람의 영광인가, 하나님의 영광인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2. 참된 진리는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와 참된 목자를 구별하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누구의 영광을 구하는가"입니다. 1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요한복음 7: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자기 영광을 구하는 자는 결국 자만과 거짓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타인의 인정과 칭찬이 자신의 존재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내신 이, 즉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며 그 속에 불의가 없습니다.'

요즘 우리는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전시하고 증명해야 하는 '자기 영광의 시대'를 삽니다. 교회 안에서의 봉사와 사역조차 때로는 나의 유능함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철저히 자신을 지우셨습니다. 그분은 병자를 고치시고도 입단속을 시키셨고, 사람들이 왕으로 삼으려 할 때 홀로 산으로 피하셨습니다. 오직 아버지께서 영광 받으시는 일에만 집중하셨습니다.

우리의 사역과 삶의 현장에서 "내가"라는 주어가 커질 때, 복음의 빛은 가려집니다. 주님은 십자가라는 가장 수치스러운 자리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가장 찬란하게 드러내셨습니다. 우리 역시 내가 죽고 주님이 드러나는 삶을 살 때, 비로소 세상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2월 22일 묵상] 요한복음 7장 14절-24절, 사람의 영광인가, 하나님의 영광인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3. 외모의 판단을 넘어 '사람을 살리는 공의'를 선택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안식일 논쟁을 통해 율법의 본질을 찌르십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 것을 두고 '율법 위반'이라 정죄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안식일에도 아기에게 할례를 행하는 관습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23절입니다.

  • 요한복음 7:23,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유대인들은 율법의 문구라는 '외모'만 보았고, 예수님은 그 속에 담긴 '사람을 향한 긍휼'이라는 공의를 보셨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형제의 허물을 지적하며 나의 의로움을 증명하려 합니까? 신앙적 전통과 형식이 사람을 살리는 사랑보다 앞서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외모로 우리를 판단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의 공의로 우리를 껴안으셨습니다. 공의로운 판단이란 무조건적인 정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게 하는 판단입니다. 오늘 만나는 이들을 나의 편견과 잣대로 재단하지 말고, 그 영혼의 아픔을 보시는 주님의 심장으로 대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공의로운 판단'입니다.



결론: 성령의 능력으로 진리를 사는 삶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리는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내 영광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단할 때, 성령님은 우리 눈에 덮인 세상의 비늘을 벗겨주실 것입니다. 세상의 화려한 스펙과 외적인 기준에 주눅 들지 마십시오. 우리에겐 하늘로부터 온 권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 사람을 살리는 공의와 오직 주님만 높이는 진실함으로 승리하는 모든 성도님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사랑의 주님, 오늘도 말씀으로 우리 영혼을 깨우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사람의 인정과 자기 영광을 구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열망을 부어주셔서, 세상의 겉모습에 휘둘리지 않고 주님의 공의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하옵소서.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나의 영광이 아니라 오직 주의 영광만을 구하게 하소서.
  • 주의 말씀 앞에서 즉시 순종하는 믿음을 주소서.
  •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볼 수 있는 안목을 주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