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는 찬송
- 새 찬송가 171장, 하나님의 독생자
- 새 찬송가 164장, 예수 부활 했으니
서론: 현대인이 외면한 죽음, 그 차가운 진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죽음'은 철저히 격리되고 소외된 단어입니다. 과거에는 집 마당에서 가족들의 손을 잡고 마지막을 맞이했다면, 이제 죽음은 병원의 하얀 벽과 기계 소리 가득한 중환자실, 그리고 차가운 장례식장 지하실로 숨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마치 '나와는 상관없는 통계'처럼 취급하거나, 의학의 발달로 언제든 미룰 수 있는 '정복 대상'으로 여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 우리 삶에서 보이지 않게 될수록, 죽음에 대한 공포는 더 기괴한 방식으로 우리를 짓누릅니다. 누군가는 죽음을 '완전한 소멸'로 보며 허무주의에 빠지고, 누군가는 죽음 이후의 불확실성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의 쾌락에만 매몰됩니다.
특히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뒤 마주하는 '슬픔과 고통'의 시간 중에 우리는 가장 깊은 절망을 경험하게 됩니다. "조금만 더 일찍 병원에 갔더라면", "그때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는 현대인의 마음속에 거대한 상처와 구멍을 내기도 합니다.
본론: 절망의 자리에 임한 생명의 주
오늘 본문의 마르다 역시 이 현대적인 절망과 맞닿아 있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이미 나흘, 유대인들의 관점으로 보면 영혼마저 몸을 완전히 떠나버린 '절대적 끝'의 시점입니다. 현대 의학이 사망 선고를 내리고 장례 절차가 끝난 것과 다름없는 이 절망의 현장에서, 우리는 "이미 늦었다"는 체념과 마주합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도 이미 '마감 기한'이 지나버려 악취가 나기 시작한 꿈이나 관계, 혹은 영적인 생명력이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주님은 그 차가운 무덤가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1. "만약에"라는 과거의 감옥에서 벗어 나십시오.
마르다가 예수님을 맞이하며 처음 내뱉은 말은 신앙 고백이 아니라 탄식이었습니다. 21절 말씀을 보십시오.
- 요한복음 11: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마르다가 내뱉은 이 말은 우리 삶의 가장 흔한 단어인 '만약에(If only)'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과거에 붙들려 삽니다. "만약에 그때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그때 그 사람을 잡았더라면" 하는 후회는 우리를 현재에 살지 못하게 하는 감옥이 됩니다.
마르다의 믿음은 '과거의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능력을 '시간'이라는 물리적인 제약 속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조금만 일찍 오셨더라면 병을 고치셨을 텐데, 이제 나흘이나 지났으니 주님도 어쩔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주님께는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흘이나 기다리셨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가능성이 0%가 될 때까지 기다리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지나간 과거'보다 크신 분입니다. 주님은 과거를 추억하며 후회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그 무덤 같은 과거 위에서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언젠가는"이라는 미래의 막연함을 현재로 가져오십시오.
예수님이 "네 오라버니가 다시 살아나리라"라고 말씀하시자,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답합니다. 이 대답은 매우 모범적인 정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회피하는 신앙'입니다. 지금 당장의 고통과 슬픔을 '먼 미래의 이야기'로 덮어버리려는 시도입니다. 마치 우리가 "천국 가면 다 해결되겠지"라며 오늘 내게 주신 생명의 능력을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자기 계시의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2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요한복음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여기에서 예수님은 "내가 부활의 역사를 나타낼 것이다"라고 미래형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지금) 부활이다"라고 현재형으로 선언하셨습니다. 부활은 먼 미래에 일어날 사건이 아니라, 지금 내 앞에 서 계신 예수 그 자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무력한 이유는 부활을 '보험'처럼 여기기 때문입니다. 죽고 나서 탈 수 있는 보험금 정도로 부활을 생각하니, 살아있는 오늘 하루는 여전히 세상의 논리에 눌려 죽은 자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이미' 생명을 소유한 자입니다. 부활은 죽음 이후의 보상이 아니라,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오늘을 살게 하는 권능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네가 이것을 믿느냐"는 질문에 응답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주님은 아주 개인적이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십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말입니다. 이 질문은 마르다의 지식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믿음'에 대해 물으시는 것입니다.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이 현장에서, 너는 여전히 나를 생명의 주인으로 인정하느냐?"라는 질문입니다.
바로 이 때, 마르다는 위대한 고백을 예수님께 고백합니다. 2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요한복음 11: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이 고백은 상황이 변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사로는 여전히 무덤 속에 있고, 슬픔의 눈물은 채 마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문제를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생명 자체'이신 주님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 질문은 여전히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돈이 생명이라고, 건강이 생명이라고, 성공이 부활이라고 외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결국 '나흘 된 시체'처럼 부패의 과정을 겪을 뿐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원히 썩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공급하십니다. 여러분의 '삶의 자리'가 절망과 한숨에서 "주는 나의 생명이십니다"라는 고백으로 바뀌길 축복합니다.
결론: 성령의 능력으로 일어서는 오늘
말씀을 맺겠습니다. 요한복음 11장의 드라마는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오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그 진정한 시작은 마르다의 마음속에서 죽음의 공포가 떠나가고 예수님이 생명으로 자리 잡은 순간부터였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죽음이 지배하는 것 같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질병은 여전하고, 이별의 슬픔은 아프며, 우리 육신은 날로 쇠약해집니다. 이 사실은 여전히 육신을 입고 이 세상을 살아가야만 하는 연약한 우리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이신 주님을 '이미' 믿음으로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새벽, 여러분이 주님 앞에 들고나온 그 '나흘 된 문제'가 무엇입니까? 도저히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관계, 썩은 냄새가 나는 것 같은 경제적 상황, 영적 침체의 늪입니까?
예수님은 그 무덤 앞에서 울고 계신 여러분의 손을 잡으며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 질문에 마르다처럼 응답하십시오. "예, 주님! 주님만이 나의 유일한 소망이십니다."라고 말입니다.
성령님은 오늘 이 고백을 하는 여러분의 삶에 생기의 바람을 불어넣으실 것입니다. 과거의 후회를 끊어내고, 미래의 불안을 잠재우며, '지금 여기'에서 천국을 사는 부활의 증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나흘이나 지나 냄새나는 절망의 현장 같은 저희 삶에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막연함 속에 갇혀 오늘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소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말씀하신 주님을 지금 이 순간 뜨겁게 신뢰하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죽어가는 소망을 깨우시고, 오늘 하루 주님과 함께 부활의 기쁨으로 걷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과거의 상처와 후회를 믿음으로 극복하게 하소서.
- 오늘 나의 삶의 자리에서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소서.
- 예수님을 향한 확신 있는 고백을 할 용기를 주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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