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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 묵상] 창세기 26장 12절-33절, 양보의 골짜기에서 발견한 르호봇의 축복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4월 17일 묵상] 창세기 26장 12절-33절, 양보의 골짜기에서 발견한 르호봇의 축복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549장, 내 주여 뜻대로
  • 새 찬송가 412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서론: 다툼의 시대, 생존의 우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새벽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나오신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고대 중동에서 '우물'은 단순한 식수원이 아니라 가문의 생존과 직결된 최후의 생명줄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생명과 관련된 우물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삭이 우물을 팔 때마다 시기하여 빼앗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삭은 온유함을 유지했고, 결국 더 큰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각자의 우물이 있습니다. 직장에서의 승진, 사업터의 거래처, 고단한 살림살이를 버티게 하는 소중한 재정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우물을 지키려 매일 발버둥 칩니다. 남에게 조금이라도 양보하면 내 밥그릇을 빼앗기고 경쟁에서 영영 도태될 것만 같은 깊은 불안감이 우리 영혼을 짓누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권리를 지키기 위해 날 선 말을 내뱉고, 때로는 가까운 이웃과도 쉼 없이 다투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아픈 현실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속 이삭은 억울하게 생명줄을 빼앗기는 위기 속에서도, 세상의 팍팍한 생존 공식과는 전혀 다른 십자가의 방식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4월 17일 묵상] 창세기 26장 12절-33절, 양보의 골짜기에서 발견한 르호봇의 축복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본론


1. 시기와 다툼을 넘어서는 온유함

이삭이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의 마음에 시기가 불타오릅니다. 그들은 이삭의 아버지가 팠던 우물을 흙으로 메워버리고, 이삭을 내쫓습니다. 억울한 일입니다. 분노할 만한 상황입니다. 이삭이 골짜기로 물러나 다시 우물을 파자, 그랄 목자들이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며 다툽니다. 그래서 그 우물 이름을 다툼이라는 뜻의 '에섹'이라 불렀습니다. 이삭이 다른 우물을 파니 또 다툽니다. 그곳은 대적함이라는 뜻의 '싯나'였습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놀라운 것은 이삭의 반응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 창세기 26: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이삭은 에섹이라는 우물을 판 후, 억지 주장에 맞서 싸우지 않고 조용히 물러나 또 다른 우물을 팝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이삭은 물의 근원이 우물 자체가 아니라, 우물을 허락하시는 하나님께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그분은 창조주이심에도 피조물들에게 조롱당하시고 십자가라는 싯나(대적함)의 자리로 밀려나셨습니다. 그러나 맞서지 않으시고 기꺼이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눈앞의 작은 우물을 지키려다 믿음의 양심을 버리지 마십시오. 빼앗기는 것 같아도,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채우시는 하나님을 믿고 분노하여 다투기보다는 용납하고 베푸는 하루를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4월 17일 묵상] 창세기 26장 12절-33절, 양보의 골짜기에서 발견한 르호봇의 축복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2. 르호봇, 지경을 넓히시는 하나님

에섹과 싯나에서 두 번이나 우물을 빼앗긴 이삭은 분노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묵묵히 이동하여 세 번째 우물을 팝니다. 놀랍게도 이번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더 이상 쫓아와 다투지 않았습니다. 2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창세기 26: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이삭은 그 우물을 '넓다'는 뜻의 '르호봇'(רְחוֹבוֹת)이라 부르면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번성하리로다"라고 벅찬 신앙을 고백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이삭은 억울하게 밀려나고 권리를 빼앗긴 실패자였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눈으로 보면, 이는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삭을 더 넓고 안전한 은혜의 지경으로 '밀어내어 인도하시는' 주권적인 손길이었습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직장과 일터에서 억울한 오해를 받거나 사람들의 시기에 밀려 뼈아픈 손해를 보는 '에섹과 싯나'의 좁은 골짜기를 통과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가 공급자이신 하나님을 굳게 신뢰함으로 십자가의 온유함을 선택할 때, 주님은 반드시 우리를 참된 평안의 '르호봇'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라는 가장 좁고 고통스러운 죽음의 자리에 스스로를 내어주심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는 한없이 넓은 은혜의 공간인 영원한 르호봇을 열어주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 친히 우리의 좁아진 마음과 삶의 지경을 넓히사, 세상이 결코 빼앗을 수 없는 평강의 샘물로 가득 채워주실 것입니다.


[4월 17일 묵상] 창세기 26장 12절-33절, 양보의 골짜기에서 발견한 르호봇의 축복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결론: 영원한 우물이신 주님께 나아가라


말씀을 맺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싸워서 쟁취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네 우물은 네 힘으로 지켜야 한다." 그러나 오늘 이삭의 삶과 십자가의 복음은 전혀 다른 진리를 선포합니다. 진정한 생수와 넓은 안식은 나의 억센 고집과 주장이 아니라, 내 모든 권리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드릴 때 비로소 열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손에 꽉 쥐고 있는, 결코 빼앗기고 싶지 않은 그 '우물'은 무엇입니까? 오늘 이 새벽, 내 것을 지키려 아등바등하며 상처 입고 메말라버린 이기적인 마음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읍시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생명이라는 가장 귀한 우물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영원한 반석이시요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결심이나 의지로는 세상을 향해 양보할 용기를 낼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을 의지할 때, 우리는 에섹과 싯나의 골짜기에서도 온유함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억울함과 두려움을 넘어,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될 영원한 르호봇의 안식을 대망하십시오. 주님께서 친히 여러분 삶의 막힌 담을 허물어 주시고, 상한 심령 깊은 곳에 영원히 마르지 않는 은혜의 샘물을 터뜨려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생수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 작은 이익을 지키려 남과 다투며 살아온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하소서. 이삭처럼, 그리고 십자가의 주님처럼 묵묵히 양보하고 온유하게 하옵소서. 억울하고 답답한 에섹과 싯나의 골짜기를 지날 때 포기하지 않게 하시고, 마침내 지경을 넓히시는 르호봇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소서. 우리 삶을 책임지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생존의 불안을 내려놓고 공급자이신 하나님만 신뢰하게 하소서.
  • 가정과 직장에서 다툼을 멈추고 십자가의 온유함으로 품게 하소서.
  • 우리 교회가 세상을 품고 살리는 르호봇의 축복을 누리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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