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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 묵상] 고린도전서 9장 1절-23절, 복음을 위해 내려놓는 자유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6월 14일 묵상] 고린도전서 9장 1절-23절, 복음을 위해 내려놓는 자유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497장, 주 예수 넓은 사랑
  • 새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벽 공기가 아직 차갑지요. 눈은 떴는데 마음은 아직 무거울 때가 있습니다. 어제 못 푼 문제, 쌓인 피로, 관계의 서운함, 생활비 걱정, 자녀 문제, 건강 염려... 이런 삶의 문제들이 아침부터 마음을 꽉 채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불만들이 있습니다.

“내가 왜 이것까지 해야 하지?” “내 권리도 좀 지키고 싶다.” “나도 힘든데 왜 내가 먼저 내려놔야 하지?”

오늘 바울도 바로 그와 같은 상황 속에 있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통하여 권면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로서의 자신의 권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본문에서 자신의 권리만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본문의 핵심은, 복음 앞에서 내 자유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묻는 말씀입니다. 바울에게도 권리가 있었습니다. 먹고 마실 권리, 지원받을 권리, 사도로 인정받을 권리 말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권리를 붙들지 않고, 복음을 위해 모든 권리를 내려놓습니다.

성경에도 그런 장면이 많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자기 손으로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영광을 버리고 종의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오늘 바울은 바로 그 예수님의 길을 따라갑니다.

우리의 연약한 인간적 본성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사랑하지만, 그 자유를 사랑으로 쓰기보다 자기중심으로 쓰기 쉽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우리를 정죄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편지가 아니라, 우리를 다시 복음 앞으로, 다시 예수님의 마음 앞으로 나아오라는 권면의 말씀으로 쓰여진 편지입니다.



본론


1. 복음은 내 권리를 부정하지 않고, 그 권리를 붙드는 방식을 바꿉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이 사도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는 권리가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권리가 있는데도 쓰지 않은 사람입니다. 왜 그럴까요? 12절을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 고린도전서 9: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바울은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였는데, 그 이유가 복음에 장애가 없도록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여기서 참 놀라운 것은, 바울이 권리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권리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내 권리가 복음보다 앞설 때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내가 맞다”라는 마음이 앞설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맞는 말이 언제나 복음을 드러내는 말은 아닙니다. 내 자존심을 지키는 일과 형제를 살리는 일이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주님은 가장 큰 권리를 가지셨지만 십자가까지 지시며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가셨습니다. 바울은 그 십자가를 본 사람답게 말합니다. “나도 내려놓겠다.

성도 여러분, 복음은 우리를 약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을 만큼 강하게 만듭니다. 그러니 오늘 이렇게 적용해 봅시다.

  • 말 한마디에서 이기려 하지 말고, 사람 하나를 살리십시오.
  • 섭섭함을 바로 갚지 말고, 기도 속에 한번 더 묻어 두십시오.

“내가 왜?” 대신 “복음을 위해 내가 무엇을 내려놓을까?” 그렇게 질문해 보십시오.

다시 한 번 더 마음에 새기고 기억합시다. 참된 자유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자유가 아닙니다. 복음을 위해 내려놓을 수 있는 자유입니다.


[6월 14일 묵상] 고린도전서 9장 1절-23절, 복음을 위해 내려놓는 자유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2. 복음을 아는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어도 잃지 않습니다.

바울은 더 나아가 말합니다. 1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고린도전서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여기서 바울은 복음 전도 전략을 말하기 전에, 복음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아는 사람은 자기 모습만 고집하지 않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처럼 다가갑니다. 진리를 버린 것이 아닙니다. 사랑 때문에 자세를 낮춘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러셨습니다. 주님은 세리의 집에도 들어가셨고, 병든 자 곁에도 서셨고, 우는 자와 함께 우셨습니다. 하늘의 진리를 조금도 낮추지 않으시면서, 죄인에게 가장 가까이 가셨습니다. 바울은 그 길을 따라갑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벽예배를 드리는 성도라고 해서 모두 같은 형편은 아닙니다. 어떤 분은 몸이 아프고, 어떤 분은 사업이 막막하고, 어떤 분은 집안이 조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정답만 던지는 곳이 아니라, 서로의 짐을 함께 지는 곳이어야 합니다.

복음을 아는 사람은 “왜 저래?”라고 말하기보다 “어떻게 다가갈까?”를 묻습니다.

복음을 아는 사람은 체면보다 영혼을 먼저 봅니다.

복음을 아는 사람은 자기 스타일보다 구원을 먼저 생각합니다.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네 자유는 누구를 살리고 있느냐? 네 말은 누구의 마음을 회복시키고 있느냐? 네 삶은 복음의 문을 열고 있느냐, 닫고 있느냐?


[6월 14일 묵상] 고린도전서 9장 1절-23절, 복음을 위해 내려놓는 자유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의 길은 무거운 도덕적 기준이나 짐을 지는 길이 아닙니다. “참아라, 포기해라”라는 말만 남기지 않습니다. 그 길의 중심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권리를 버리고 오신 예수님, 종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 십자가에서 자기 생명까지 내어주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억지로 내려놓는 사람이 아니라, 은혜를 입었기에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위하여 살아라. 사람을 얻는 일을 포기하지 말아라. 네 권리보다 내 사랑을 붙들어라.”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새벽, 우리 힘으로는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 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상한 마음을 만지시고, 자기중심의 습관을 꺾어 주셔야 합니다.

오늘 하루, 내 권리를 붙들기보다 복음을 붙들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내 자유를 주장하기보다 사람을 살리게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오늘도 살아가는 주님의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주님,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지만 그 자유를 내 마음을 세우는 데 쓰지 말고 복음을 세우는 데 쓰게 하소서. 바울처럼 권리를 붙들기보다 사람을 얻는 마음을 주시고, 예수님처럼 무릎을 꿇고 다른 이들을 섬기게 하소서. 오늘도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을 이끄셔서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복음의 문을 여는 사람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오늘도 내 권리보다 복음을 먼저 붙들게 하소서.
  • 겸손히 낮아짐으로 사람을 얻는 사랑을 주소서.
  • 성령님의 능력으로 복음의 전파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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