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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7일 묵상] 고린도전서 15장 35절-49절,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6월 27일 묵상] 고린도전서 15장 35절-49절,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180장, 하나님의 나팔소리
  • 새 찬송가 179장, 주 예수의 강림이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더 자주 묻게 됩니다. “이 몸이 이렇게 약해지는데, 정말 부활이 있을까?” 병원에 다녀오고, 여기저기 쑤시고,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겪고 나면 부활은 교리책의 문장이 아니라 내 현실 속의 질문이 됩니다. 성경에도 그런 질문이 있었습니다. 오늘 35절입니다. 

  • 고린도전서 15:35,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이건 장난스러운 질문이 아니라, 두려움이 묻어 있는 질문입니다. 끝이 정말 끝이 아닌지, 무덤이 인생의 마지막 장소인지 묻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 앞에서 바울은 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보게 하고, 그리스도를 보게 하고, 마지막에는 우리를 소망으로 이끕니다.

오늘 우리의 연약함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입술로는 부활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눈앞의 약함과 죽음의 현실 앞에서는 쉽게 흔들립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분명히 말합니다. 성도의 몸은 무덤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흙에 묻힌 몸을 버리지 않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의 몸으로 다시 일으키십니다. 그러니 오늘 말씀 앞에서 이렇게 귀를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내 눈에 보이는 연약함보다, 주님의 약속을 더 크게 보게 하소서.”



본론


1. 하나님은 묻힌 몸을 영광으로 일으키십니다.

36절부터 44절까지 바울은 씨앗의 비유를 들고, 이어서 네 번의 강한 대조로 부활의 몸을 설명합니다. 이 구절들 중에 4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고린도전서 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사도 바울은 먼저 말합니다. 씨앗이 땅에 들어갈 때 사라지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거기서 전혀 새로운 생명의 형체를 일으키십니다. 38절의 핵심은 사람의 상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이 “그 뜻대로” 몸을 주십니다. 그러니 부활은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은 창조 세계 안에서 씨와 줄기, 땅의 몸과 하늘의 몸, 해와 달과 별의 영광을 다르게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44절에서 바울은 두 표현을 씁니다. 육의 몸은 σῶμα ψυχικόν(소마 프쉬키콘), 신령한 몸은 σῶμα πνευματικόν(소마 프뉴마티콘)입니다. 여기서 “육의 몸”은 물질이라서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약하고 제한되고 죽음을 향해 가는 몸을 가리킵니다.

반대로 “신령한 몸”은 유령 같은 몸이 아니라, 성령의 다스림 아래 완성된 몸입니다. 그러니까 부활은 몸을 버리는 탈출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몸을 영화롭게 완성하시는 사건입니다.

이 진리는 예수님 안에서 이미 드러났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똑같은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십자가에 죽으셨고, 실제로 부활하셨습니다. 무덤은 예수님의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무덤도 끝이 아닙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듯이, 그리스도께서 먼저 죽음을 지나 생명으로 나오셨고, 그 길을 따라 그의 백성도 일으킴을 받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내 몸이 약하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허리가 굽고, 무릎이 아프고, 약봉지가 늘어나도 그것이 여러분의 마지막 모습이 아닙니다. 병든 몸이 결론이 아닙니다. 지금의 몸은 심기는 몸입니다. 장차 하나님이 영광으로 일으키실 몸입니다. 그러니 몸의 약함 때문에 믿음까지 약해지지 마십시오. 오히려 연약할수록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주님, 내 몸은 쇠해도 주의 약속은 쇠하지 않습니다.”


[6월 27일 묵상] 고린도전서 15장 35절-49절,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2.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습니다.

이어서, 45절부터 49절까지 바울은 씨앗 이야기에서 더 깊이 들어가,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조합니다.

  • 고린도전서 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리고 마지막 49절에는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라고 선언합니다.

바울은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을 나란히 세웁니다. 첫 사람은 흙에 속한 자입니다. 그래서 아담 안에 있는 인생은 연약함과 썩음과 죽음 아래 살아갑니다. 여기서 흙에 속한 자라는 표현은 χοϊκός(코이코스)입니다. 흙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한계와 죽음의 현실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단지 살아 있는 분이 아니라 “살려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바울은 49절에서 “형상”이라는 단어로 εἰκών(에이콘)을 씁니다. 우리는 지금 아담의 형상을 입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눈물도 있고, 병도 있고, 죽음도 피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는 자의 마지막은 아담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입니다. 장차 우리는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습니다.

여기에는 아주 큰 위로의 은혜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만 사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끝까지 책임지십니다. 주님은 영혼만 건지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몸까지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복음은 단지 죄책감 해결에 머무르지 않고, 최종적으로는 전 존재의 영화로움으로 나아갑니다.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새 인류의 머리이십니다. 아담 안에서는 죽음이 흘렀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생명이 흐릅니다. 우리가 부활하는 이유는 우리가 강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대단해서도 아닙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하늘에 속한 분이시기에, 그분 안에 있는 자도 마침내 하늘의 형상을 입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오늘부터 달라야 합니다. 우리는 땅만 보는 사람처럼 살 수 없습니다. 세상 형편이 전부인 사람처럼 살 수 없습니다. 몸은 약해도 소망은 약해지지 않습니다. 살림이 팍팍해도 정체성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낡아 가는 몸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장차 영광의 몸을 입을 사람으로 봅니다. 그러니 서로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더 오래 참아 주고, 더 따뜻하게 품어 주어야 합니다. 오늘도 이렇게 기억합시다.

나는 흙에만 속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형상을 입을 사람이다.” 라고 고백하며 오늘을 시작합시다.


[6월 27일 묵상] 고린도전서 15장 35절-49절,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심긴 몸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썩는 몸을 썩지 않을 몸으로, 약한 몸을 강한 몸으로, 욕된 몸을 영광의 몸으로 일으키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무덤이 마지막이 아닙니다. 병든 몸이 결론이 아닙니다. 아담의 형상으로 시작한 인생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완성됩니다.

그러니 오늘도 자신을 붙들지 말고 부활하신 주님을 붙드십시오. 부활은 막연한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 연합한 자의 약속입니다. 예수님께 자신을 맡기십시오. 그리고 성령께 구하십시오. “성령님, 약한 내 마음에 부활의 소망을 살아 있게 하소서.”라고 말입니다. 성령님께서 오늘도 우리 안에 부활의 소망을 새롭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주님, 흙에 속한 몸의 연약함 때문에 자주 낙심하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썩는 몸을 바라보다가 소망을 잃지 않게 하시고,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소서. 오늘도 병든 몸, 지친 마음, 두려운 생각을 주님 손에 맡깁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부활의 소망을 더욱 선명하게 하셔서, 땅의 현실 속에서도 하늘의 형상을 기다리며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연약한 육신보다 부활의 약속을 보는 믿음을 주소서.
  • 아담의 두려움보다 그리스도의 소망이 더 큼을 깨닫게 하소서.
  • 성령의 위로로 오늘도 하늘 소망 붙들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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