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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7일 묵상] 고린도전서 11장 2절-16절, 주 안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교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6월 17일 묵상] 고린도전서 11장 2절-16절, 주 안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교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 새 찬송가 454장,, 주와 같이 되기를



서론: 새벽을 깨우는 성도들을 향한 축복과 차선 비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이른 아침, 단잠을 깨우고 새벽 공기를 뚫고 주님 앞으로 나오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은혜가, 사랑하는 여러분의 모든 삶의 자리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아침 차를 몰고 길을 나설 때 도로 위에 선명하게 그려진 하얀 차선들을 혹시 눈여겨보셨습니까? 만약 이 도로에 차선이 단 하나도 없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처음에는 '야, 이제 내 마음대로 넓게 달릴 수 있겠구나!' 하고 자유를 만끽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내 사방에서 차들이 뒤엉키고, 경적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질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끔찍한 사고로 이어지고 말겠지요. 그렇습니다. 선이 없는 자유는 참된 자유가 아니라 무서운 재앙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이와 참 비슷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종종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심에 갇혀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공동체를 향한 깊은 '배려'와 거룩한 '질서'를 잃어버릴 때가 참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아주 실제적이면서도 본질적인 예배의 태도, 그리고 공동체의 아름다운 질서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6월 17일 묵상] 고린도전서 11장 2절-16절, 주 안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교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본론


1. 하나님의 질서는 우리를 얽매는 사슬이 아니라 세워주는 사랑입니다.

먼저 본문 3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서 일어났던 구체적인 갈등 하나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여성들이 예배 중에 머리에 쓰는 수건, 즉 베일을 벗어 던진 일이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 고린도전서 11: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그 당시 고린도 사회에서 정숙한 여성이 공공장소나 모임에서 머리에 수건을 쓰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문화적 예의였습니다. 그것은 남편과 가정의 질서를 존중한다는 외적인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해방과 자유를 얻었다는 소식에 취한 몇몇 여성들이, 공적인 예배 자리에서 이 수건을 훌훌 벗어버린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남녀가 다 하나인데, 거추장스럽게 이 수건이 무슨 소용이냐!" 하면서 소리 높여 자유를 외쳤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 거침없는 행동은 오히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큰 오해를 불렀고, 교회 공동체의 거룩한 명예에 깊은 상처를 주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단순한 옷차림의 유행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실 때 부여하신 아름다운 '창조의 질서'를 가볍게 여기는 행위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3절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고린도전서 11: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성도 여러분, 여기서 '머리'라는 표현을 결코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군림하고 억압하는 독재자를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헬라어 원어로 머리는 κεφαλή(케팔레)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지배의 개념이 아니라, 생명의 따뜻한 '근원'과 품어주는 '보호'를 뜻합니다. 성부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의 머리가 되신다는 사실 역시, 두 분 사이에 높고 낮음이 있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본질적으로는 완전히 동등하시지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성자 예수님이 기꺼이 낮아지사 아름다운 구원의 질서에 온전히 순종하셨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하늘 보좌의 모든 영광을 누릴 특권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위해 그 권리를 다 내려놓으시고, 십자가를 지기까지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이 순종은 결코 강요된 굴복이 아니었습니다. 온 세상을 구원하신, 가장 위대하고 은혜로운 사랑의 능력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질서를 지키고 성도들을 배려하는 일은 결코 나의 권리를 빼앗기는 비참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를 위해 전부를 내어주신 예수님의 겸손한 순종을 닮아가는 가장 영광스러운 길인 줄 믿습니다. 주님이 주신 자유는 내 고집을 채우는 도구가 아니라,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는 거룩한 축복입니다.


[6월 17일 묵상] 고린도전서 11장 2절-16절, 주 안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교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2. 주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가득 채워주는 소중한 동역자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11절과 12절에서 질서가 도달해야 할 진짜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선포합니다. 1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고린도전서 11: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바울은 한쪽 성(性)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지배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최초의 여성이 남자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모든 남자는 어머니인 여자의 몸을 빌려 이 땅에 태어납니다. 그리고 이 남녀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의 궁극적인 근원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결국 주님 안에서 우리는 결코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고 서로를 빛내주는 너무나 소중한 믿음의 동역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지으시고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라며 가장 알맞은 '돕는 배필'을 지어주셨습니다. 여기서 돕는 배필은 히브리어로 עֵזֶר(에제르)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돕는 단순한 보조자를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보다 강한 자가 나를 건져주고 채워주는 '동반자'이자 '구원자'를 뜻할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이 아름다운 창조의 원형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 복음 안에서 마침내 온전하게 살아난 줄 믿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어떻습니까? 끝없는 경쟁과 편 가르기 속에서 "내가 너보다 잘났다", "내 권리가 먼저다"라며 서로를 이기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세워진 교회는 전혀 달라야 합니다. 교회는 서로의 다름을 차별의 이유로 삼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풍성함을 경험하는 은혜의 현장입니다.

오늘 이 고요한 새벽, 우리의 마음에 조용히 물어보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내 곁에 묵묵히 앉아 기도하는 성도들을 참으로 존귀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내 영적 자유와 신앙적 확신을 앞세우며, 혹시 믿음이 연약한 형제자매의 마음에 차가운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조용히 돌아봅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온몸을 찢으시며 우리 사이의 높은 담을 모두 허무셨듯이, 우리 역시 서로를 귀하게 대하며 동역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야 합니다. 형제의 부족한 부분을 나의 은사로 채워주고, 자매의 아픈 눈물을 나의 무릎 기도로 덮어줄 때, 비로소 주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예배 공동체로 거듭나게 될 줄 믿습니다.


[6월 17일 묵상] 고린도전서 11장 2절-16절, 주 안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교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결론: 십자가의 사랑으로 세상을 품는 삶으로 나아갑시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참된 예배는 내 자유를 내 뜻대로 마음껏 휘두르는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질서에 나를 묵묵히 맞추고, 이웃을 내 몸처럼 소중히 배려하는 고백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이미 십자가 은혜로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유를 선물로 받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 자유가 이웃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기꺼이 절제하는 성숙함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오늘 하루도 나의 목소리와 나의 권리를 먼저 주장하기보다, 우리를 살리려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며 걸어갑시다.

우리의 연약한 힘과 이기적인 마음으로는 이 사랑을 끝까지 실천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내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님의 따뜻한 도우심을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오늘 이 새벽, 눈물로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성령께서 우리의 거친 마음을 부드럽게 만져주시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서로를 진심으로 축복하고 안아주는 넉넉한 예수의 마음을 우리 가슴마다 부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고요한 새벽에 고린도전서 말씀을 통해 참된 예배의 태도와 교회의 거룩한 질서를 가르쳐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신앙의 자유를 이기적인 고집이나 무질서함으로 함부로 쓰지 않게 하시고, 늘 형제자매의 연약함을 먼저 배려하는 따뜻한 사랑을 가지게  하옵소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아름다운 사랑과 질서를 본받아, 교회와 가정에서 서로를 아끼며 동역하게 하소서. 오직 십자가 사랑만을 자랑하고, 성령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을 따라 이웃의 덕을 세우는 복된 날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믿음의 자유를 이웃을 섬기고 교회의 덕을 세우는 데 사용하게 하소서.
  • 성도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주 안에서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게 하소서.
  • 나의 권리를 내려놓고 예수님의 겸손함과 영적 질서를 따르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우리에게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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