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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6일 묵상] 고린도전서 15장 20절-34절,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6월 26일 묵상] 고린도전서 15장 20절-34절,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162장, 부활하신 구세주
  • 새 찬송가 160장, 무덤에 머물러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죽음 앞에 서면 갑자기 말이 줄어듭니다. 건강 이야기를 할 때는 웃으며 말하다가도, 병원 이야기, 장례식 이야기, 마지막 이야기만 나오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죽음 앞에서는 누구도 담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장년의 시기를 지나는 우리는 이 문제를 더 현실적으로 느낍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고, 주변의 이별 소식이 잦아지고, 어떤 날은 “내 앞에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불쑥 떠오릅니다. 또 죽음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의 허무도 우리를 흔듭니다. 열심히 살았는데 남는 것이 없는 것 같고, 버티며 살아왔는데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날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바울은 바로 그 자리에 복음의 문을 엽니다.

  • 고린도전서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 한 분만의 기적이 아닙니다. 우리의 미래를 여는 사건입니다.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오늘을 함부로 살지 않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해 꼭 붙들어야 할 한 문장이 있습니다.

주님이 살아 계시면, 우리의 미래도 살아 있습니다.

이 진리가 오늘 우리 마음에 다시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본론


1.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미래를 이미 여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첫 열매라는 말은 헬라어 ἀπαρχή(아파르케)입니다. 단순히 첫 번째라는 뜻이 아닙니다. 뒤따를 수확 전체를 보증하는 첫 열매라는 뜻입니다. 곧, 예수님의 부활은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의 부활을 미리 열어 놓으신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이게 얼마나 큰 위로입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만 살아나셨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께 속한 자들도 반드시 살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말합니다. 우리 함께 21절과 22절을 읽겠습니다.

  • 고린도전서 15:21-22,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여기서 “삶을 얻으리라”는 헬라어 ζῳοποιηθήσονται(조오포이에데손타이)입니다. 생명이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이 생명은 사람이 움켜쥐어 얻는 보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또 바울은 “각각 자기 차례대로”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차례는 헬라어 τάγμα(타그마)입니다. 질서, 배열, 정하신 순서를 뜻합니다. 먼저는 그리스도, 그 다음은 그의 강림하실 때 그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다시 말해 성도의 미래는 우연에 맡겨져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질서 안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씀은 죽음을 가볍게 여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죽음은 여전히 슬프고, 아프고, 무겁습니다. 예수님도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셨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죽음이 끝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은 성도의 미래가 비어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마지막에는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이 무너지고,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라고 말합니다. 사망은 피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마침내 깨뜨리실 원수입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 몸이 약해지는 것이 두렵습니까? 병원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무겁습니까? 먼저 떠나보낸 가족의 빈자리가 여전히 아픕니까?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강해져라”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보라”라고 말합니다. 첫 열매이신 주님을 보라고 말합니다.

주님이 살아 계시면, 우리의 미래도 살아 있습니다. 이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소망입니다. 이 부활 신앙, 이 소망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6월 26일 묵상] 고린도전서 15장 20절-34절,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2. 부활 신앙은 오늘을 거룩하고 담대하게 살게 합니다

이제 바울은 미래의 이야기만 하지 않습니다. 곧바로 오늘의 삶에 대해 고백합니다. 3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고린도전서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바울은 왜 이렇게까지 살았습니까? 부활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바울의 삶은 너무 손해 보는 삶입니다. 그러니 32절을 통하여 바울은 아주 직설적으로 말합니다.

  • 고린도전서 15:32,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부활이 없다면 그렇게 사는 것이 차라리 솔직합니다. 오늘만 즐기고 끝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은 상상도 아니고 감정도 아니고 실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은 달라집니다.

오늘 손해 보는 것 같아도 헛되지 않습니다. 오늘 눈물로 순종해도 허무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죄를 거절하는 선택이 외로워 보여도 결코 바보 같은 일이 아닙니다. 부활이 참이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예전처럼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단지 우리의 미래만 책임지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와 부활로 오늘 우리 삶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거룩은 하나님께 사랑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이미 부활의 생명을 받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열매입니다.


[6월 26일 묵상] 고린도전서 15장 20절-34절,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미래는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보증된 소망입니다. 또한 부활 신앙은 오늘을 바꿉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면 오늘을 함부로 살 수 없습니다.

혹시 오늘 죽음 때문에 마음이 약해진 분이 계십니까? 믿음은 있는데 두려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분이 계십니까? 주님께 다시 나오십시오.

“주님, 제 마음을 깨워 주십시오. 부활의 소망으로 저를 붙들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십시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부활의 복음을 살아 움직이게 하시면, 우리는 두려움 대신 소망으로, 허무 대신 순종으로, 낙심 대신 담대함으로 걷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주님이 살아 계시면, 우리의 미래도 살아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도 소망으로 일어나십시오. 오늘도 거룩으로 걸어가십시오. 오늘도 부활의 주님을 붙들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부활의 주님, 죽음이 마지막이라고 느끼는 연약한 마음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흔들리는 현실보다 살아 계신 주님을 더 크게 보게 하소서. 사망을 이기신 주의 능력으로 오늘도 죄를 멀리하고 의를 행하게 하시며, 낙심 대신 소망으로, 두려움 대신 담대함으로 살게 하소서. 성령님, 우리를 깨우시고 끝까지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부활의 소망으로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게 하소서.
  • 날마다 죄를 멀리하고 의를 행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 사망보다 크신 부활의 주님만 바라보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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