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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6장 16절-28절, 대역전의 드라마 - 매일성경큐티 주석과 해설 정리

매일성경큐티의 본문인 다니엘 6장 16절부터 28절까지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사자 굴 속에 던져진 다니엘을 지키시고 보호하심으로써 자신을 온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매일성경큐티와 새벽설교를 준비하기 위한 주석과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다니엘 6장 16절-28절, 대역전의 드라마


다니엘 6장 16절-28절, 대역전의 드라마



16절, 주석과 해설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마지막 대투쟁에서도 세상의 최고 권력자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만이 그들의 생명을 지켜주실 수 있으시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목숨은 오직 하나님께만 달려있음을 기억하자. 왕이 다니엘에게 한 말 외에 다니엘이 한 말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다니엘은 겸손하게 죽든지 살든지 온전히 하나님께 자신을 맡겼음이 분명하다.



17절, 주석과 해설


왕이 그의 도장과 귀족들의 도장으로 봉하였으니

왕과 귀족들이 공식적으로 봉인하는 것에는 이중 목적이 있었다.

  • 그 도장은 왕에게, 다니엘이 사자에게 해를 입지 않을 경우, 다른 방법으로는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증이 되었다. 다리오는 다니엘의 하나님이 그분의 충성스런 종을 사자에게서 구원하시기를 원했기 때문에, 다니엘의 생명을 취하려고 결심한 자들 편의 어떠한 간섭도 용인하지 않는다는 표가 되었다.
  • 그 도장은 다니엘의 원수들에게, 그 상황에서 그가 야수들에게 즉시로 찢겨 조각이 나지 않을 경우에도 어느 누구도 그를 구원하기 위한 시도를 할 수 없다는 보증을 주었다.

봉인된 애굽의 무덤들은 입구를 봉인하는 기술을 설명해 주는 데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문을 닫은 후에 그 위에 석고를 바르고 젖은 석고 전체에 도장을 찍거나 그 위에 원통 인을 굴렸다. 사자 굴을 막고 봉인하는 경우에도 이와 유사한 과정이 따랐을 것이다. 그 봉인하는 일에는 필시 원통 인을 사용했을 것인데, 앗수르, 바벨론, 바사에서는 그런 것들이 흔하게 사용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순전히 겉으로만 판단할 때, 다니엘의 대적들이 분명히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상황에서, 간단하게 전세(戰勢)를 역전시키신다.



18절 주석과 해설


18절-19절의 개요

18-19절의 본문은 왕이 다니엘을 얼마나 아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왕이라 할지라도 진정으로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 사람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다(렘 3:23).



20절, 주석과 해설


슬피 소리 질러

왕은 자기의 가장 충성스러운 신하가 사자들에게 던져지는 모습을 보아야 하는 시련을 겪었다. 그 두려운 경험에 이어 길고도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다. 그의 음성이 자기 내면의 불안, 걱정 그리고 통렬한 자책감을 드러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실 그가 슬피 소리 지른 것은 다니엘이 살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주 불가능 가운데 역사하신다. 그런데 이 시대에 그런 기적들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현 세상의 종교 자유 체제 안에서의 평안함 때문이며,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믿음의 부족 때문이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바치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의 원수들은 다니엘을 가리켜 ‘사로 잡혀 온 유다 자손’이라고 했지만, 왕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이라고 부른다. 이런 호칭을 듣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다(사 61:6).



22절, 주석과 해설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다니엘이 ‘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그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맺는 관계가 없는 신앙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다. 히브리서 기자는 다니엘의 이 경험을 언급하면서 그 선지자가 구원받은 것은 믿음에 의한 것이었다고 말한다(히 11:33).


그의 천사를 보내어

‘그의 천사를 보’냈다는 말에서 ‘천사’는 하나님 자신을 가리킬 수도 있고,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일 수도 있다. 출 3장에는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난 분을 여호와의 ‘사자(천사)’라고 하기도 하고 ‘여호와’라고 하기도 한다(출 3:2-5). 하나님의 천사가 내려와 보호했다고 해도 결국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그렇게 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시 34:7).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왕과 다니엘의 대적들은 사자 굴의 입구를 봉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려는 인간의 어떠한 시도나 계략도 하나님께서는 아주 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다.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아마도 다니엘은 사자들에게 던져지기 전에 자기 자신이나 자기 행동을 변호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무슨 말을 하든지 그의 원수들에게는 나약함이나 두려움의 표시로 해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 구원해 주시기를 합당하게 여기신 이후에 다니엘은 자기의 무죄함을 선언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비굴하게 보이지 않기 위하여 입을 다물어야 할 때가 있는 반면, 반대로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진리를 선포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다니엘은 자신의 무죄함이 하나님 앞에서 명백하다고 말한다. 무죄함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때만 진정으로 무죄한 것이다. 우주의 만물은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사람이 짓는 모든 죄는 하나님께 짓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자칭 무죄함은 자기변명이나 합리화에 불과하다(창 39:9, 시 51:4). 그러므로 하나님께로부터 죄의 용서함을 받고 무죄로 인정된 사람은 복이 있다(시 32:1, 시 32:5).



23절, 주석과 해설


심히 기뻐서

여기서 ‘심히’는 아람어로 ‘삭기’인데, 6:14의 ‘심히’와 같은 말이다. 왕의 심히 큰 근심이 심히 큰 기쁨으로 바뀐 것이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들은 결국 이 땅의 큰 환난에서 벗어나서 큰 기쁨을 누릴 것이다(계 7:14, 17). 그러므로 이 땅에서 환난이나 고난이 많아도 기쁨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특권이다(고후 7:4).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왕이 내린 조서의 요구조건은 충족되었다. 그 조서는 범법자의 사형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단지 사자 굴에 던져 넣을 것을 요구하였다(단 6:7).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졌고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생각된 충분한 시간이 경과하였으므로 왕이 그를 사자 굴에서 옮기는 일을 막을 이유가 없었다.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 구절은 3장에서 다니엘의 친구들이 불에서 나왔지만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은 이야기를 기억하게 한다(단 3:27). 하나님은 항상 이런 극적인 방법으로 기도에 응답하시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다니엘의 기도를 분명히 듣고 응답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기적적으로 구원함을 받은 것은 다음의 두 가지 이유가 작용되었다.

  • 다니엘을 하나님과 다리오 왕 앞에서 무죄하였다(22절).
  • 그가 자기 하나님을 믿었다(23절). 즉 다니엘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뢰하였다.



24절, 주석과 해설


그들을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문자적으로 그들의 아내들과 그들의 아들들이 처형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딸들은 언급되지 않았으나, 아들들이라는 말에 딸들도 포함되었을 수 있다. 분노한 왕은 당시의 전형적인 관례를 따라 행동했다. 고대 역사는 그런 행동의 수많은 사례들을 제시한다. 헤로도투스와 암미아누스 마르첼리누스(Ammianus Marcellinus)는 둘 다 정죄를 당한 남자들과 함께 그 처자들을 죽음에 내어 주는 것은 바사의 관습과 일치한다고 증언한다. 이런 형벌의 주요 목적은 가족의 생존자로부터 복수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 음모자들은 받아 마땅한 벌을 받았다. 벨사살이 느부갓네살의 일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같은 죄를 범했기 때문에 그가 정죄 받아 마땅했다(단 5:22-23). 마찬가지로 다니엘을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은, 그의 무죄함과 또 70 여년에 걸친 그의 탁월한 봉사를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와 같이 악을 자행하였다. 그들은 진리를 거부한 것이다(살후 2:9-10).

하지만, 악을 계획한 당사자들은 마땅한 벌을 받았지만 그들의 처자들까지 처벌을 받은 것은 공정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이것은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이것이 죄인의 형벌에 가족까지 포함시키는 페르시아 법에 따라 왕이 결정하고 시행한 조치임을 주목해야 한다. 고대에는 가족 중 하나가 지은 범법 행위에 대해서 가족 전체가 책임을 져야 했다. 그것이 옳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페르시아 법 테두리 안에서 이 사건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성경이 이 사건을 그대로 기록했을 뿐, 왕의 조치를 지지한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실 성경은 부모의 죄로 인한 자녀의 사형을 명백하게 금지하고 있다(신 24:16).
  • 하지만 좀더 숙고해보면 그들도 마땅한 벌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 음모자들이 가정에서 다니엘에 관해 이야기 했을 때, 그 처자들도 그들의 계획에 동조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에스더서에서 하만의 아내 세레스도 남편과 뜻을 같이 했다가 함께 처벌을 받았다(더 5:14, 8:1-2). 오늘날의 많은 가족들도 악한 말이나 악한 계획에 동조한다면 이와 다를 것이 없다(약 3:8, 마 12:36-37).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곧 그들을 움켜서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은 사자 굴에 던져진다. 그런데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그들을 움켜서 뼈까지도 부서뜨렸다. 이것은 다니엘이 사자 굴에 있는 동안 다니엘을 구하기 위하여 사자들에게 별도의 먹이를 제공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다니엘의 원수들은 자기가 판 함정에 자기가 빠졌다(전 10:8-9, 잠 11:25-27).



25절, 주석과 해설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이 구절은 법령이 한 성읍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제국 전체에 내려졌음을 알려준다. 26절에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언급한 것도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다.



26절, 주석과 해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다니엘의 친구들이 풀무불에서 구원을 받은 후에 느부갓네살은 자기 왕국의 모든 민족에게 이 히브리 사람들의 하나님에 대하여 경솔하게 말하면 죽음의 형벌을 당할 것이라는 금령을 내렸다(단 3:29). 마찬가지로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기적적으로 보호함을 받은 후에 다리오는 유사한 방법으로 자기 영역 내의 모든 민족에게 다니엘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할 것을 명하는 칙령을 내린다. 그러나 참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명령이라 할지라도 강요와 강제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방법이 아니다. 단 3:29 주석을 참조하라.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다리오의 조서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점이 있다.

  •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요,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 하나님은 영원하시기 때문에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다.
  • 그의 속성에 일치되게 하나님은 기적적인 방법으로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6장 20절에서도 왕은 “살아계시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 표현은 죽은 하나님과 대비되는 표현이다. 즉 아무런 움직임이 없고, 듣는지 아니 듣는지 모르는 신이 아니라 살아서 활동하는 신, 기도에 분명하게 응답하는 신임을 암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이방의 신들과는 다르게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들에게는 자기가 섬기는 신에 대한 확신이 없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에게는 확신이 있다.



27절, 주석과 해설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비슷한 의미를 가진 두 다른 말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구원과 구출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그분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데, 구체적으로 다니엘을 사자의 입에서 구원하신 것이다.


사자의 입에서

여기서 ‘입’은 원어로 ‘야드’인데 문자적으로 ‘손’(hand)을 가리킨다. 손은 성경에서 ‘권세, 능력, 소유’ 등을 의미한다. 단 5:5의 주석을 참고하라. 이 조서의 내용을 보면 다리오가 유대교로 개종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느부갓네살의 회심을 상기시킨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의 믿음과 충성을 통하여 이방의 왕들을 개심시킨 것이다.



28절, 주석과 해설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

이 말은 바사 제국을 메대에서 분리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한 사람은 메대의 통치자이며 다른 사람은 바사의 통치자임을 구별하는 것이다. 이 문장의 구조는 고레스가 다리오와 함께 통치한 자이거나 그 후임자라는 해석을 할 수 있게 한다. 이 구절은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단 1:21)는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이 구절들은 다니엘이 두 대제국에 걸쳐 살았음을 보여주며, 낮아진 포로가 대 제국의 왕들보다 더 오래 존속했음을 보여준다. 1장의 마지막과 6장의 마지막에 고레스의 이름이 언급된 것은 그가 다니엘과 유대민족에게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유대민족을 포로생활에서 귀환할 수 있도록 최초로 허락한 왕이었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그가 그토록 소망했던 예루살렘의 회복의 시작을 볼 수 있었다.

고레스 대왕은 그의 통치 원년 즉 B.C. 537년 가을에 제1차 포로 석방령을 내렸다(대하 36:22, 라 1:1, 5:13). 그리고 그 다음 해 즉 536년 봄에는 실제로 유대의 포로들이 귀환길에 오르게 되었으니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정확히 70년 간의 포로생활이 끝난 것이다. 이런 석방령이 있기 전에 사자굴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성경의 예언 성취의 기초가 되었다.

그렇다면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가는 위험을 무릅쓰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한 기도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그 대답이 9장에 나타나 있다.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단 9:1-3)

그토록 오래 기다려온 예언의 성취가 명약관화(明若觀火) 해진 때, 이 예언의 성취가 철저한 회개와 순종을 조건으로 하고 있음(렘 18:7-10)을 깨달은 다니엘은 그와 백성들의 죄 때문에 그 성취가 지연되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기도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사탄이 시기심에 불타는 적대자들을 충동하여 사자 굴로 위협하며 다니엘의 기도를 중단시키려 한 것이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였다. 사탄은 다니엘의 기도를 중지시키고, 예언의 성취가 이루어지지 않게 하려고 총력을 기울였으나, 다니엘의 생명을 건 믿음의 기도로 그의 목적은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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