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시고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그 누구도 주님의 마음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고 고통의 순간에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마가복음 3장 1절부터 19절을 큐티하고 새벽예배설교문을 준비하였습니다.
마가복음 3장 1절-19절,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여든 이유들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324장, 예수 나를 오라 하네
- 새 찬송가 401장, 주의 곁에 있을 때
서론 :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한 강사
신학교를 다녔다가 동양 철학도 깊이 공부한 강사 한 사람이 자주 나와서 강연하는 EBS 방송의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저도 몇 번 봤습니다만, 자신이 신학교를 조금 다니고 나름대로 공부한 것을 토대로, 예수님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내용의 강연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강사의 강연은 가만히 듣고 있으면, 성경을 성경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생각과 동양 철학으로 해석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동양 철학으로는 결코 해석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신학으로도 예수님을 모두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의 결론은, 그가 예수님의 이름을 팔아서 자신의 명성을 얻으려 하고 부(富)를 누리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이름을 팔아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처럼, 2천년 전에도 각자의 목적에 따라 예수님 곁에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본론 :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여든 이유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마가복음 3장 1절부터 19절의 말씀에는, 세 가지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 가지의 사건이란, 가버나움 회당에서 안식일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신 사건과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사방에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온 사건, 그리고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신 사건입니다. 그런데, 각각의 사건들을 유심히 보면, 예수님의 주변에 서로 다른 목적이나 이유로 사람들이 몰려 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여든 각각의 이유들이 무엇일까요?
첫째, 고발하기 위하여
가장 먼저 예수님을 예의 주시하고 예수님의 주변에 모여 들었던 사람들 중에는, 회당에 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예의 주시하고 주변에 모여 들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가복음 3: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이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는 6절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예의 주시하고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주시하고"(παρατηρέω, 파라테레오) 있었습니다. 이 단어의 헬라어적 의미는 "숨어 기다렸다", "감시했다"입니다. 그리고 형태는 미완료 형태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주시하고 있는 행동은 계속적이고 반복적이었음을 뜻합니다. 2절에 의하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쫓아다니며 주변에서 숨어 기다리고 감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만지기 위하여
예수님의 주변에는 예수님을 만지기 원해서 물려 들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의 대부분은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가복음 3:10,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이들의 정체는,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라고 마가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들은 각종 질병이나 귀신이 들린 채로 고생하고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버림 받거나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질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던 당시의 상황을 본다면,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 받고 소외되며 손가락질을 당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께로 나온 것이지, 예수님께서 전해 주시는 복음과 영생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단순히 예수님을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으로만 생각했을 뿐,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셋째, 함께 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주변으로 모여 들었던 마지막 종류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수님과 함께 하며 예수님께서 하시는 사역을 따르기 위해 모여 들었던 사람들입니다. 14절과 15절입니다.
마가복음 3:14-15,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예수님과 함께 하기 위해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부르신(προσκαλέομαι, 프로스칼레오마이) 사람들이었으며 "함께"(μετά, 메타)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들에게 두 가지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과 함께 하며 예수님을 돕는 사명이었고, 둘째는 사람들에게 나아가서 귀신을 쫓아냄으로써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전하고 증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에 대한 개인적인 욕심이나 자기만의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오직 부르심에 응답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예수님의 곁으로 몰려 들었던 사람들입니다.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예수님의 주변에는 크게 세 종류의 사람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예수님을 반대하며 고발하기 위해 감시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의 주변으로 몰려 들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와 함께 하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 온전히 헌신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오며 주님을 따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는 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까? 혹시라도 성경의 잘못된 부분이나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을 찾아 내려는 것입니까? 아니면, 무엇인가 신기한 일을 경험하고 내가 바라는 일들을 이루기 위해서입니까? 열두 제자들처럼 주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과 날마다 동행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까?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예수님께 가까이 나오는 우리의 삶이 되길 바랍니다.
결론 : 주님을 혼자 두지 마십시오.
성도 여러분! 예수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 각자는 자신들의 목적을 가지고 주님 곁에 머물렀습니다. 일부는 주의 부르심을 받아 주와 함께 하며 주를 돕고 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주변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실 때는 아무도 주와 함께 깨어 있지 못했고, 그분이 재판 받으실 때 아무도 그의 곁에 없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철저히 혼자이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성경을 통해 알고 있는 우리는, 어떤 순간에도 주님을 떠나지 않겠노라 결단합시다. 주님을 또다시 혼자 두지 말고, 항상 주님 곁에 머무르고 주님의 기쁨이 되는 주의 백성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함께 하는 기도
죄악 가운데 살아가던 나를 먼저 찾아 오신 예수님!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내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내 마음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여 주와 동행하기 보다는, 내 뜻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 믿음을 이용하려는 유혹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깊이 깨닫고 전심으로 주님만 사랑하며 주와 동행하는 삶을 살게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참고할 글
- 마가복음 3장 1절-19절, 열둘을 세우셨으니 - 매일성경 큐티 구조와 주석
- 마가복음 3장 1절-19절, 병자에게 안식을 주신 예수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설교요약
- 마가복음 3장 1절-19절, 주님이 함께 하는 삶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