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붙잡아 공회에 넘기는 일에 열정적이었던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오늘 매일성경 본문인 사도행전 9장 1절-19절은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세례를 받으며 회심하는 장면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큐티하고 새벽예배설교문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도행전 9장 1절-19a절, 회심한 사울을 통해 깨닫는 세 가지 교훈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 새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서론 : 아들의 믿음이 가져다 주는 기쁨
존 웨슬리는 "나는 예수를 열심히 믿었고 교회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종으로서 억지로 일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나서는, 종의 믿음이 아니라 아들의 믿음으로 기쁘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 은혜에 감격하게 되면, 우리도 아들의 믿음으로 헌신하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열정보다 은혜로 변화된 사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론 : 회심한 사울을 통해 깨닫는 세 가지 교훈
교회의 핍박자였던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사울의 극적인 변화를 기록하고 있는 본문에 나타난 사울과 아나니아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가 깨닫게 되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첫째, 열심의 방향이 중요합니다.
사울이라는 사람이 공문을 청했을 때,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그에게 공문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사울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 사이에서 인정 받는 사람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스스로 예루살렘에서 다메섹이라는 먼 곳까지 가서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으려는 뜨거운 열정까지 있었습니다.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도행전 9: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사울은 유대교와 율법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신봉하는 율법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을 제거하려 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열정이 있었지만 그 열정의 방향이 잘못되었던 것입니다.
열왕기상 12장에는 북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던 여로보암이,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세워서 섬기게 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 백성들의 인기와 영향력을 르호보암과 예루살렘 성전에 빼앗기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왕으로 세워 주신 하나님을 배반하고 금송아지를 세운 것입니다. 권력에 대한 잘못된 열정으로 북이스라엘 왕들 대대로 범죄하게 만든 "여로보암의 죄", "금송아지"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복음에 대한 열정, 말씀에 대한 열정, 기도에 관한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열정이 없이는 어떤 성장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열정의 방향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열정은 나를 드러내고 나를 높이기 위한 열정입니까? 아니면, 우리의 푯대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열정입니까? 이 새벽 시간에 스스로 돌아볼 수 있기 바랍니다.
둘째, 순종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두번째로 우리가 함께 생각해야 할 내용은, 주께서 부르실 때 우리의 대답입니다. 주께서 우리 이름을 부르실 때, 반항적으로 대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겸손과 순종의 자세로 대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도행전 9: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환상 중에 아나니아를 부르셨을 때, 아나니아는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아나니아의 이 대답은, 무슨 말씀이든지 듣겠다는 겸손한 마음가짐과 자세를 보여 줍니다.
실로의 성막에서 잠을 자던 어린 사무엘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무엇이라고 대답하였습니까?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9)라는 겸손한 대답이었습니다. 창세기의 노아도 보십시오. 그는 산꼭대기에 방주를 지으라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에도 겸손히 순종하여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해할 수 없는 질문, 비상식적인 명령을 내리실 때도 있습니다. 교회의 핍박자인 사울에게 안수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나 산꼭대기에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순종하였을 때, 핍박자 사울이 전도자 바울이 되었으며, 40일간의 홍수에서도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모두 이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완전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주의 명령에 겸손하게 순종합시다.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우리를 통하여 놀라운 계획들을 이루어 나가실 것입니다.
셋째, 오직 은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은혜 덕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핍박자 사울이 하나님의 택함 받은 그릇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열정이나 율법적인 지식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그를 선택하신 은혜 덕분입니다. 15절입니다.
사도행전 9: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예수님께서는 사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주님의 "그릇"(σκεῦος, 스큐오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께서 "택하신 종"이라는 의미입니다. 비록 사울이 스데반의 죽음에 관여되고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를 주님의 그릇,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시는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입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던 사울, 즉 사도 바울도 이와 같은 은혜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와 같다고 말했고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여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고전 15:8-9)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바울의 이 고백은, 자신이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성도 여러분! 무한한 사랑을 가지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탐욕과 아집, 더러운 생각과 낮은 자아 속에 있는 나를 은혜로 불러 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내 안에 어떤 선한 것이 있어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초라하고 약하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시는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여기까지 내가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주님의 은혜 덕분임을 절대로 잊지 말고 지금 감사하십시오.
결론 : 순종과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살아갑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핍박자인 사울을 만나시고 아나니아를 통하여 복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이방인을 위한 주의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사용하여 역사하시는 주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오늘 나를 어떤 자리로 부르시든 겸손히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말도 안되는 상황 속에서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베푸시는 주님의 은혜를 절대로 잊지 말고 기억하고 감사하십시오. 내 삶에 기쁨이 풍성하게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함께 하는 기도
십자가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주께서 나를 찾아 주시고 구원해 주셔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지나 온 내 삶의 모든 부분에 주님의 은혜가 깃들여 있음에 감사 드리며, 오늘 하루도 주님께 내 인생을 맡기오니 주님 뜻대로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복음과 주의 영광을 위한 열정을 가지고 오늘을 살게 하소서.
- 오직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겸손히 살아가게 하소서.
- 우리 교회의 어르신들과 교육부에게 복을 주소서.
- 날마다 주께 더 가까이 가는 삶이 되게 하소서.
참고할 글
- 사도행전 9장 1절-19a절, 사울의 폭주가 멈추다 - 매일성경 큐티 구조와 주석
- [5월 19일 묵상] 사도행전 9장 1절-19a절, 핍박자에게도 복음이 선포된다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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