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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 묵상] 요한복음 16장 25절-33절, 세상을 이긴 주님 안에서 누리는 참된 평안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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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70장, 피난처 있으니 새 찬송가 406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서론: 영적 호언장담의 끝에서 마주하는 우리의 민낯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국의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위대한 신학자이자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토머스 크랜머(Thomas Cranmer)'를 아십니까? 그는 평생을 종교개혁의 진리를 수호하는 데 바쳤지만, 튜더 왕조의 메리 여왕 치하에서 화형이라는 끔찍한 죽음의 위협 앞에 서게 됩니다. 두려움에 압도된 크랜머는 결국 자신의 신앙을 부인하는 철회 문서에 서명하고 맙니다. 살기 위해 비굴하게 진리를 저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다시 덮었을 때, 그는 자신의 배교를 뼈저리게 회개합니다. 그리고 화형대 위에 섰을 때, 배교의 문서에 서명했던 자신의 오른손을 가장 먼저 불길 속에 집어넣으며 "이 불의한 오른손이 먼저 벌을 받아야 한다" 라고 외치며 순교했습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신앙인의 뼈아픈 실패를 보며 무엇을 느낍니까? 우리 역시 평안할 때는 주님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을 것처럼 호언장담합니다. 그러나 막상 내 삶에 고난의 그림자가 드리우면 어떻습니까? 당장 오늘 아침, 고물가 시대를 견뎌내야 하는 팍팍한 출근길이나, 숨 막히는 직장 상사와의 갈등, 끝이 보이지 않는 자녀 양육의 피로도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 간밤에 했던 굳은 결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분노와 좌절, 타협의 자리로 도망치고 마는 것이 우리의 근원적인 연약함입니다. 본론: 완성된 약속과 십자가의 역설 오늘 본문은 십자가라는 우주적이고 거대한 죽음의 위기 앞에서, 철저히 무너질 수밖에 없는 제자들의 민낯과, 그런 우리를 대신해 홀로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위대한 은혜를 보여줍니다. 오늘 새벽, 내 힘으로 버티는 율법주의적 신앙을 내려놓고, 세상을 이기신 주님 안에서 누리는 참된 평안의 비결을 '약속사'의 관점에서 깊이 파헤쳐 보겠습니다. 1. 대언자를 넘어선 아버지의 직접적인 사랑 ...

[3월 25일 묵상] 요한복음 16장 16절-24절,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리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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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86장,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새 찬송가 361장, 기도하는 이 시간 서론: 가장 어두운 밤에 잉태된 영광의 찬양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741년 영국의 한 작곡가는 인생의 가장 어두운 골짜기를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조지 프레드릭 헨델(George Frideric Handel)입니다. 당시 그는 계속된 흥행 실패로 막대한 빚더미에 앉아 파산 직전이었고, 뇌졸중으로 인해 오른쪽 신체가 마비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깊은 우울증과 절망 속에서 그의 음악 인생은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세상의 관점에서는 완벽한 실패요, 짙은 슬픔만이 가득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해 여름, 친구 찰스 제넨스가 보내온 성경 구절들로 엮은 대본을 읽는 순간, 헨델의 영혼에 놀라운 빛이 비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작은 방에 틀어박혀 24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며 미친 듯이 곡을 써 내려갔습니다. 그 슬픔과 고통의 용광로 속에서 탄생한 인류 최고의 명작이 바로 오라토리오 '메시아(Messiah)' 입니다. 특히 '할렐루야 코러스'를 작곡할 때 헨델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내 눈앞에 천국이 열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보좌에 앉아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의 극심했던 슬픔은 하나님을 향한 영원한 기쁨의 찬양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본론 오늘날 우리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들려오는 '불확실한 미래', '끝없는 불경기', '치솟는 물가'라는 문제들이 우리의 얇은 지갑과 무거운 어깨를 더욱 짓누릅니다. 우리는 현재 직면한 질병, 재정의 결핍, 관계의 단절이라는 고난에 갇혀,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다 이해하지 못한 채 깊은 슬픔과 영적 혼란에 빠지곤 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들의 마음도 이처럼 캄캄한 절망이었습니다. 3년을 동고동락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예고하시며 떠나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