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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묵상] 창세기 1장 1절-13절, 내 인생의 흑암을 걷어내는 한 마디, "빛이 있으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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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550장,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새 찬송가 21장, 다 찬양하여라 서론: 인생의 תֹּהוּ וָבֹהוּ (토후 와 보후) 를 마주할 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참으로 분주하고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근 한 경제 일간지의 기사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경제, 환경, 심리적 불안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 복합 위기(Poly-crisis) ’의 시대에 진입했다고 합니다. 많은 이들이 "열심히 사는데도 왜 마음은 늘 공허한지 모르겠다", "내 삶이 통제 불능의 상태인 것 같다"며 깊은 무질서와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창조 직후의 상태를 히브리어로 'תֹּהוּ וָבֹהוּ (토후 와 보후)', 즉 '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상태 '라고 말합니다(창 1:2). 이는 마치 우리 현대인이 겪는 방향 상실과 내면의 허무함을 그대로 묘사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바로 그 절망의 자리가 하나님의 창조가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복음서에는 우리 인생의 혼돈을 잠재우는 감동적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 한가운데서 예기치 못한 광풍을 만났습니다. 배에 물이 차오르고 죽음의 공포가 엄습한 그 순간은 그야말로 ‘혼돈(토후)’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고물에서 주무시던 예수님이 깨어나 바람을 꾸짖으시며 “잠잠하라 고요하라” 말씀하시자, 요동치던 바다는 즉시 깊은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창조의 첫새벽에 흑암을 뚫고 울려 퍼진 “빛이 있으라”는 말씀처럼, 주님의 한 마디는 모든 무질서를 잠재우고 생명의 질서를 회복시켰습니다. 오늘 우리 삶의 거친 파도 앞에서도 주님은 동일한 창조의 음성으로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마가복음 4:35-41) 오늘 이 새벽, 우리 인생의 풍랑을 잠재우시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말씀이 여러분의 심령에 임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본론 1. 말씀이 임할 때, 즉각적인 변화가...

스바냐 1장 1절-13절, 여호와의 날에 누가 설 수 있습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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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0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은 스바냐 1장 1절-10절로, 안일함에 잠든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경고를 주시는 말씀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또한 오늘 우리에게도 영적 안일함과 세상의 소음 속에 잠든 신앙을 깨우시는 하나님의 경고를 깨닫습니다. 찌꺼기 같이 가라 앉은 거짓 믿음에서 벗어나, 임박한 여호와의 날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함께 나눕니다. 스바냐 1장 1절-13절, 여호와의 날에 누가 설 수 있습니까?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새 찬송가 542장, 구주 예수 의지함이 서론: 깨어남을 향한 첫걸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다 왕국의 역사상 가장 캄캄했던 시절, 히스기야 왕의 신앙을 뒤로하고 그의 아들 므낫세와 손자 아몬이 57년간 나라를 우상숭배와 죄악으로 물들였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하늘의 일월성신을 섬기는 제단이 성전 안에까지 세워졌고, 백성들의 삶은 포악과 거짓으로 가득 찼습니다. 바로 이 영적 폐허 속에서 여덟 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요시야가 있었습니다. 그는 열여섯 살이 되던 해, 그를 둘러싼 죄악의 문화와 타락한 유산을 거부하고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거대한 물결을 거스르는 의지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끓는 물 속의 개구리 증후군’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갑자기 넣으면 즉시 뛰쳐나오지만, 차가운 물에 넣고 서서히 온도를 높이면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채 안주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른다는 비유입니다. 이 이야기는 점진적인 변화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혹시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지 않습니까? 세상의 가치관과 죄악의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는 것을 느끼지 못한 채, 약간의 타협, 기도 없는 습관적인 신앙생활, 하나님을 향한 첫사랑의 뜨거움을 잃어버린 미지근한 상태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요시야처럼 부패한 시대를 거슬러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찾을 것인가, 아니면 영적 안일함이라는 따뜻한 물속에서 서서히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