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큐티의 본문인 다니엘 10장 1절부터 9절까지의 말씀에는, 고레스 왕의 통치 제3년에 유다 귀환이 시작된 상황이지만 다니엘은 환상을 봅니다. 다니엘의 환상에는 큰 전쟁에 관한 내용이 나타나 있습니다. 매일성경큐티와 새벽설교를 위한 주석과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다니엘 10장 1절-9절, 다니엘의 탄식
1절, 주석과 해설
개요
일견 산란하고 혼란스럽게 보이는 세계 역사에 분명한 방향이 있고 의미와 목적이 있음을 거듭 확인하였다. 다니엘 2장에서는 정치적 측면에서의 세상 역사를, 7장에서는 선악의 대쟁투에 관련된 정치와 종교의 역사를, 8장과 9장에서는 세상 역사의 핵심이요 내용인 인간의 구속(救贖)이 성소를 중심으로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보여주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10장에서 12장까지의 계시에서는 지금까지의 모든 계시처럼 상징이나 표상에 의하지 않고, 바로 직접적으로 모든 것을 종합하고 결론짓고 있다.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히 4:13)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생각으로 살아야 할 것인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벧후 3:11-12)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10장과 11장은 결부(結付)되어 있다. 10장의 내용은 11장의 서론이 되고, 12장은 그 결론이 된다.
고레스 제삼년
고레스 제3년은 봄이나 가을에 시작되는 한 해 계산법에 따라 바벨론 멸망 때부터 계산하면 이 때는 B.C. 536/535년이 된다. 이란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안샨(Anshan)이라는 작은 나라의 왕자로 비교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난 고레스는 몇 년 사이에 메대, 리디아 그리고 바벨론 제국을 성공적으로 정복하고 자기 통치 아래 연합시킴으로써 그 때까지 알려진 가장 큰 왕국을 건설하였다. 다니엘이 B.C. 605년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 18 세였음을(교회증언 4권, 570) 감안하면, 그 때 그는 분명히 자기 생애의 끝이 가까운 88 세쯤 되었을 것이다.
한 일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나타났는데
“한 일”이라는 표현을 고려해볼 때 이 예언은 분명히 상징적인 형상이나 상징에 대한 계시가 아니라 실제적인 언어로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다니엘은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환상을 깨달”았다.
큰 전쟁
이 말은 “한 긴 전쟁”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이것은 11장에 나오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긴 시간의 범위 때문이다. 또 이 말은 “한 큰 전쟁”으로도 이해될 수 있는데, 그것은 이 계시가 다니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이 전쟁이 우주적인 싸움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2절, 주석과 해설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기원전 535년경이면, 이미 2년 전 쯤에 유대인들이 고레스의 석방령으로 귀국한 때였다(대하 36:21-23, 라 1:1-3). 그런데 왜 다니엘은 그토록 사모하던 예루살렘에 돌아가지 않고 남아 있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가 아직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중임을 맡고 있으면서 유대인들을 위해 궁중에서 해야 할 일이 있음을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가 세 주일 동안 금식하며 슬픔에 잠겨 있었을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 고레스의 석방령으로 귀국한 유대인의 수가 그냥 남아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너무도 적은 5만 명도 못되는 소수였고(42,360 명, 라 2:64),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벨론에 정착할 생각이었다. 게다가 돌아간 사람들은 처음부터 안팎의 난관에 부딪혀 돌아간지 2년이 되었어도 성전의 재건을 착수하지 못하였다(라 3:8). 특히 사마리인들의 방해는 심각하여, 건축을 방해하고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다(라 4:4-5).
- 유대인들이 역사적으로 반역적인 민족임을 들어 예루살렘 성전의 중건을 허락한 고레스의 정책을 번복시키려는 거짓 고발들이 바사의 궁으로 날아들었다. 고레스의 마음은 혼란스러웠으며, 유대인과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자신의 관용정책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었다.
이러한 심상치 않은 사태를 감지한 다니엘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하나님의 영광과 민족의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었음을 알았다. 다니엘은 다시 3 주간 계속된 기도를 시작했으며, 그의 기도는 마침내 들으신바 되어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받게 되었다(10:12). 그 결과로 다니엘은 자신의 생각을 뛰어넘는 새로운 이해를 갖게 되는데 그것은 큰 전쟁(10:1), 즉 선악의 대쟁투의 일면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3절, 주석과 해설
좋은 떡
문자적으로 “기쁨의 떡”을 말한다. 이런 종류의 음식은 “잔치 음식”을 가리킬 수 있다. 다니엘은 세 이레 동안 자기의 힘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가장 단순한 음식을 먹은 것 같다.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는 사치스러운 음식이거나 잔치 음식을 묘사한다. 다니엘은 특별히 하나님과 교통하기 위하여 특정 음식들을 제한한 것 같다. 그렇다면 다니엘은 이런 특별한 기도의 기간 이외에는 고기와 포도주를 먹었는가? 아래의 화잇 선지자의 언급을 보면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1장의 먹는 시험 이후부터 또는 그 이전부터 고기와 포도주를 먹지 않은 것 같다.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향기롭게 된 감람유는 일반적으로 피부의 한 부분으로 머리와 얼굴에 발랐는데, 건조한 기후와 열기로 인해 머리카락을 돌보는데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기름을 사용하는 것은 고대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가 있었다. 선지자는 금식과 기도를 하는 동안 개인적인 사치를 삼가는 것이 합당하다고 보았다.
4절, 주석과 해설
첫째 달 이십사일
이 날짜는 정확하게 언제였는지 알 수 없다. 그 이유는 이 날짜가 바벨론과 바사의 달력을 따른 것인지 아니면, 유대인 달력을 사용한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바벨론과 바사의 달력을 따른 것이라면 이때는 기원전 536년 3월이나 4월이 될 것이고, 유대인 달력을 따른 것이라면 기원전 535년 3월이나 4월이 된다. 첫째 달 이십사일은 다니엘의 기도가 마쳐진 때이며, 기도가 마쳐졌을 때 천사를 통하여 그 응답이 온 것이다.
힛데겔
티그리스(Tigris) 강의 옛 이름이다. 티그리스는 “강들 사이의 땅”을 뜻하는 메소포타미아의 경계가 되는 두 큰 강 중 하나이다. 또 하나의 강은 바벨론 고대 도시를 관통하여 흘렀던 유프라테스 강이다.
5절, 주석과 해설
한 사람
이 사람은 그리스도인 것이 분명하다. 이 사람을 묘사한 것이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그리스도와 비슷하기 때문이다(계 1:13-15).
세마포 옷
세마포(細麻布)는 아마 섬유의 실로 만들어진 흰색 천을 가리킨다. 그것은 질기고 시원하였으므로 제사장들이 입는 옷에 대한 전통적인 재료가 되었다.
우바스 순금 띠
우바스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이 명칭은 구약에서 유일하게 렘 10:9에 나오는데 거기서 우바스는 금의 출처로 간주되었다. 어떤 이들은 우바스가 정금으로 유명했던 오빌과 동일한 곳이라고 말했다(참고 왕상 9:28). 양자가 동일한 곳일 가능성은 있다. 우바스와 오빌은 히브리어 글자로 써놓으면 비슷하다.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이 표현들은 그분의 모습이 찬란하게 빛나고, 위엄과 장엄함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7절, 주석과 해설
개요
그리스도를 보았을 때의 다니엘의 신체적 반응과 주변의 반응이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고 요한이 밧모섬에서 그리스도를 보았을 때와 동일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1) 다니엘 홀로 보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떨며 도망함.
-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행 9:7)
(2) 육신의 힘이 없어지고 죽은 자 같이 됨.
-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행 9:4)
-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계 1:17)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을 때 사람은 그 위엄과 장엄함을 견딜 수 없게 된다. 베드로도 밤새도록 헛수고를 한 후에 그리스도의 명령으로 환한 낮에 그물을 던지고 놀라운 어획량을 본 후에 비슷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였다(눅 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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