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cker

6/recent/ticker-posts

다니엘 7장 1절-14절, 바다에서 올라온 네 짐승 - 매일성경큐티 주석과 해설 정리

매일성경큐티 본문인 다니엘 7장 1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네 종류의 짐승을 환상을 보여 주시는 내용입니다. 이 짐승들의 환상을 통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쳐 주십니다. 본문의 내용을 묵상하고 새벽설교로 정리할 주석과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다니엘 7장 1절-14절, 바다에서 올라온 네 짐승


다니엘 7장 1절-14절, 바다에서 올라온 네 짐승



다니엘 7장의 구분


  • 네 짐승들과 한 뿔(7:1-8, 산문)
  • 하나님의 심판(7:9-14, 시)
  • 다니엘의 반응(7:15-22, 산문)
  • 해석(7:23-28, 시)



다니엘 2장과 7장 비교


다니엘 2장의 신상

다니엘 7장의 네 짐승

적용

, 머리

사자, 독수리의 날개

바벨론

, 가슴과 팔

, 세 갈비뼈

메대와 바사

, 배와 넓적다리

표범, 네 날개 네 머리

헬라

, 두 다리

무서운 짐승, 철 이를 가짐

로마 제국

열 발가락

열 뿔

제국의 분열

없음

작은 뿔

교황 로마

없음

책들이 펴 놓임

심판의 광경

돌에 의해 신상이 가루가 되고 새로운 나라가 세워짐

그리스도께 통치권이 넘겨짐, 성도가 나라를 얻음

종말

 


1절, 주석과 해설


벨사살 왕 원년

이 연대는 기원전 550/549년 즉 바벨론 멸망 10 년 전으로 잡는 학자도 있고, 기원전 553년으로 잡는 학자도 있다. 나보니두스의 아들 벨사살은 세계를 호령하던 바벨론의 마지막 최상권 시절 동안 바벨론의 통치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가 이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을 때는 40-50 세 사이였다. 7장의 계시는 역사적 순서로는 4장과 5장 사이에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꿈을 꾸며 머리 속으로 환상을 받고

꿈과 환상을 동일한 뜻으로 반복하여 말하고 있다. “꿈, 즉 환상들”과 같이 설명적인 묘사이다.



2절, 주석과 해설


하늘의 네 바람

‘네’는 나침반의 네 방향을 가리킨다. 즉 모든 방향을 의미한다(렘 49:36, 슥 6:5, 마 24:31). ‘하늘’이라는 말은 때때로 하나님을 나타낸다. 즉 네 바람은 하늘의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다. 개역개정판 성경에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단 4:26)이라고 번역된 것을 공동번역에서는 “하늘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을”이라고 번역하였고, 새국제역(NIV) 성경에서도 “Heaven rules”로 번역하였다.

‘바람’은 아람어와 히브리어가 동일하게 ‘루아흐’인데, 그 의미는 ‘공기’(렘 2:24, ‘헐떡거림’으로 번역됨), ‘숨’(욥 19:17), 인간의 ‘마음’(시 32:2), 하나님의 ‘영’(시 51:12, ‘심령’으로 번역됨), ‘바람’(출 10:13), ‘생기’(겔 37:9) 등 다양하다. 이곳에서처럼 상징적인 이상(異像)에 사용될 경우 이 단어는 어떤 형태의 활동이나 능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에스겔의 상징적인 이상에서 마른 뼈들을 소생시킨 ‘생기’는 생명이 없는 이스라엘 나라를 소생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냈다(겔 37:9-14).

다니엘서의 바람, 곧 네 짐승을 등장시키면서 큰 바다 위에 불던 ‘바람’은 그 기간의 역사를 구체화시켰던 외교, 전쟁, 정치 등의 움직임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네 바람’은 분명히 세상의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활동을 나타낸다. 그리고 ‘하늘의 네 바람’이란 표현을 통하여, 이 활동은 세상 나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렘 49:36, 슥 6:5).


큰 바다

지중해와 같은 특정한 바다를 가리킨다고 할 수도 있으나 꼭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곳의 바다는 세상 나라들, 곧 모든 시대에 속한 인간의 ‘큰 바다’를 상징한다(계 17:15, 사 17:12).



3절, 주석과 해설


짐승 넷

이 상징 즉 네 짐승은 “세상에 일어날 네 왕”(단 7:17)을 가리킨다. ‘왕’이 70인역(LXX), 테오도티온역(맛소라 역본의 하나) 그리고 불가타역(5세기 초의 라틴어 성경)에는 ‘왕국들’로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이 네 짐승은 제2장의 금속 신상으로 상징된 것과 같은 세상의 네 세력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4절, 주석과 해설


사자

사자는 강하고, 빠른 동작에 두려움이 없으며 위엄 있는 모습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잠 30:30, 삿 14:18). 성경에서 사자는 힘에 관하여 긍정적, 부정적 상징 모두에 사용된다(계 5:5, 벧전 5:8). 바벨론은 실제로 사자로 표상되었음이 고고학에 의하여 발굴된 바벨론 성벽의 부조와 조각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성경에도 실제로 바벨론을 사자로 직접 표현하였다(렘 4:7).


독수리의 날개

여기에서 ‘독수리’는 아람어로 ‘네샤르’인데, 먹이를 사냥하는 새의 아름다움과 위엄을 함축하는 ‘황제 독수리’(imperial eagle)가 가장 잘 어울린다. 예레미야는 그가 사자와 독수리로 비유한 바벨론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교만한 에돔 백성들의 파멸에 대하여 예언한다(렘 49:19-22). 독수리는 또한 빠름을 상징한다(애 4:19).

독수리의 날개가 있는 사자는 바벨론에 대한 적절한 상징이다. 날개 달린 사자는 바벨론의 예술품들에서 볼 수 있다. 사자와 독수리의 결합은 일반적인 주제였으며, 흔하게는 독수리의 날개를 지닌 사자로, 때로는 발톱이나 부리를 지닌 사자로 나타나며, 이와 유사한 합성은 사자의 머리를 한 독수리였다. 날개가 달린 사자는 종종 바벨론 도성의 수호신인 마르둑과 함께 전쟁하는 사자의 모습들 가운데 하나이다.

다른 선지자들도 느부갓네살 왕을 이와 흡사한 모습으로 언급하였다(렘 4:7, 렘 50:17, 44, 애 4:19, 겔 17:3, 12, 합 1:8). 짐승의 왕인 사자와 새의 왕인 독수리는 영광이 최고조에 달했던 바벨론 제국을 적절히 나타냈다. 사자는 힘이 세기로 이름나 있으며, 독수리는 그 비행하는 힘과 활동반경이 넓기로 유명하다. 느부갓네살은 권세를 바벨론 안에서 뿐 아니라 지중해에서 페르시아 만까지, 소아시아에서 애굽까지 떨쳤다. 그러므로 바벨론의 세력 확장을 나타내기 위해 사자에게 독수리의 날개를 달아준다면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날개가 뽑혔고

그 사자는 더 이상 그 먹이 위에 독수리처럼 날아 덮칠 수 없었다. 이것은 바벨론 왕국에서 느부갓네살 이후에 좀 더 힘이 약한 통치자들이 이어지던 때를 언급할 수 있다. 그들의 통치 아래 바벨론은 영광과 힘을 잃었다. 어떤 이들은 느부갓네살의 생애 후기에 그의 권세뿐 아니라 이성(理性)까지 잃었던 7년 기간을(4:31-33) 언급할 수도 있다고 한다.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받았으며

사람처럼 똑바로 서는 사자는 사자의 특질들을 상실했다는 표시이다.


사람의 마음

“사람의 마음”을 가진 사자는 겁과 소심함을 소유하였음을 나타낸다. 쇠퇴하는 만년(晩年)에 바벨론은 부와 사치로 연약하게 되었으며 메대 바사 나라의 먹이로 전락했다. 어떤 이들은 “사람의 마음”이라는 표현이 바벨론 왕에게서 짐승의 특징인 탐욕과 사나움이 사라지고 인간답게 된 것을 나타낸다고 본다. 그러한 표현은 느부갓네살이 치욕적인 경험을 한 이후에는 적용될 수 있으나, 그 나라의 만년(晩年)을 적절히 나타내는 표현은 아니다.



5절, 주석과 해설


곰과 같은데

곰과 같은 짐승은 2장 신상의 은에 해당하는 메대 바사 제국을 상징한다. 은이 금보다 못한 것처럼 적어도 어떤 면에서는 곰이 사자보다 못하다. 그러나 곰은 잔인하고 탐욕스럽다. 메대 사람들은 곰과 같이 잔인하였다(사 13:18). 특히 한번 제정하면 변경할 수 없는 메대 바사의 미련한 법의 성질은 곰의 특성에 부합한다.


몸 한편을 들었고

이 표현은 불명확하다. 이것은 공격하기 위하여 뒷다리로 서는 것이나, 반은 웅크리고 있거나, 한 쪽 다리가 짧은 곰이 균형을 잃고 있는 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8:3, 20과 비교해 볼 때 이것은 분명히 그 나라가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두 민족으로 구성된 이 제국이 바벨론을 정복하기 몇 해 전에 메대와 바사 가운데 후자가 지배적인 세력이 되었다(단 8:3, 20).


세 갈빗대

이것은 곰이 다른 동물을 먹었고 그 뼈 중의 얼마가 짐승의 입에 아직도 있다는 뜻이다. 다수의 주석자들은 이것들이 메대 바사 제국에 의하여 정복된 세 주요 세력, 곧 리디아, 바벨론 그리고 애굽에 대한 상징이라고 해석한다.

  • 기원전 547년 12월에 크뢰수스가 다스리던 리디아(Lydia, 지금의 터키)를 정복하였다.
  • 기원전 539년 10월 13일에 바벨론을 정복하였다.
  • 기원전 525년에는 프삼틱(Psamtic) III세가 통치하던 애굽을, 고레스의 뒤를 이어 왕위를 받은 캄비세스 II세가 정복하였다.

셋이라는 수는 때때로 온전한 승리나 온전한 멸망의 개념과 관련 있다. 그러므로 메대 바사의 혁혁한 승리를 뜻할 수도 있다.


말하는 자들

말하는 자들의 정체는 명시되지 않아 알 수 없다.


이르기를 일어나서

문자적으로 “그러므로 그들이 그것에 말하기를 ‘일어나라’”는 뜻이다. 그 명령을 발한 사람들은 확인되지 않는다. ‘일어나라’는 명령은 ‘바로 일어서라’나 ‘온전히 일어서라’로 이해될 수 있다. 왜냐하면 곰이 ‘몸 한편을 들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많은 고기를 먹으라

이 명령은 바사가 시도했던 서방 대원정에서 치른 전쟁을 묘사하기에 적절하며, 더 넓은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바벨론 보다 더 많은 살육의 전쟁을 치렀다.



6절, 주석과 해설


표범과 같은 것

표범은 동물과 사람을 먹이로 하는 가장 위험하고 빠른 동물 중 하나이다. 숨어 배회하며 소리 없이 움직이고, 예상치 못하게 공격하는 등, 표범은 공포를 일으키게 한다(합 1:8, 호 13:7). 바사 제국을 이어받은 세력은 8:21에서 ‘헬라’(그리스)로 그 정체가 밝혀진다. 이 헬라를 바사가 멸망하기 전의 고전 시대의 헬라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다니엘서의 헬라는 소위 헬레니즘 시대를 연 알렉산더 대왕의 반(半)헬라 마게도냐 제국이었다. 알렉산더 시대가 되기까지는 “능력 있”으며 “큰 권세”를 가진(11:3) 헬라 제국의 “그 첫째 왕”(8:21)에 대한 언급을 할 수가 없다.

B.C. 336년에 알렉산더는 헬라 북방 변경에 있던 반(半)헬라 국가인 마게도냐의 왕위를 이어받았다. 알렉산더의 아버지 빌립은 B.C. 338년경에 이미 헬라 대부분의 도시 국가들을 자신의 통치 아래 연합시켰다. 알렉산더는 헬라와 드라게에서 일어난 반란들을 진압함으로써 그의 용기를 입증했다. 자기 나라의 질서를 회복한 후에 알렉산더는 자기 부친에게 이어받은 야망 즉 바사 제국을 정복하는 일에 착수했다. 그 젊은 왕이 자기의 계획에 박차를 가하도록 했던 요인들 가운데는 개인적인 야망, 경제적인 확장의 필요성, 헬라 문화를 확산시키려는 욕망, 과거에 자기 백성이 가졌던 관계 때문에 생긴 바사인들에 대한 자연스러운 적대감 등이 있었다.

B.C. 334년에 알렉산더는 단지 35,000 명의 군사와, 현금 70 달란트의 적은 돈 그리고 한 달 분의 식량만을 가지고 헬레스폰트(Hellespont) 해협을 건너 바사 영토로 들어갔다. 그 원정은 계속되는 승리였다. 첫 번째 승리는 그라니쿠스(Granicus)에서, 다음 승리는 다음해 잇수스(Issus)에서, 다음 승리는 이듬해에 두로(Tyre)에서 거두었다. 알렉산더는 팔레스타인을 지나 가사(Gaza)를 정복했으며, 그 다음에는 실제로 저항을 받지 않은 채 애굽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B.C. 331년에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했다. 그는 자기를 바로의 후계자로 선포했으며 그의 군대는 그를 신(神)으로 환호했다. 그 해에 다시 출정하면서 그는 자기 군대를 바사 제국의 중심지인 메소포타미아로 향하도록 명령했다. 바사인들은 힛데겔 강과 대(大)자브(Zab)강이 만나는 곳의 동편 아르벨라(Arbela) 근처에 포진하였으나 그 군대는 패퇴했다. 세계의 최대 제국의 엄청난 부(富)가 25세의 젊은 왕 앞에 열려 있었다.

자기 나라를 임시로 조직한 후에 알렉산더는 북쪽과 동쪽으로 정복해 나갔다. B.C. 329년경에 그는 현재 투르키스탄(Turkistan)에 있는 사마르칸드(Samarkand)인 마라칸다(Maracanda)를 점령했다. 2년 후에 그는 인도의 북서부를 침공하였다. 그러나 인더스 강을 건넌 직후에 그의 군대는 더 이상 전진하기를 거절하였으며 그는 그들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바사와 메소포타미아로 돌아오면서 알렉산더는 자기 영토의 통치체계를 조직해야 하는 엄청난 사업에 직면하게 되었다. B.C. 323년에 그는 그 때까지도 느부갓네살 당시의 영광을 생각나게 해 주는 잔재들을 간직하고 있던 바벨론에 도읍하였다. 같은 해 알렉산더는 한 바탕 폭주(暴酒)를 한 후에 병에 걸렸고, 말라리아의 옛 이름이거나 그 비슷한 질병으로 여겨지는 “습지 열”(swamp fever)로 죽었다.


새의 날개 넷

날개는 신속함을 상징하는데, 날개 넷은 비상한 속도를 나타낸다. 표범 자체도 빠른 짐승이지만 그 본래의 민첩함도 알렉산더의 놀라운 정복 속도를 묘사하기에는 불충분했던 것 같다. 그 상징은 알렉산더와 그의 마게도냐 군대가 10년도 채 되지 않아 그 때까지 세상에 알려진 가장 큰 제국을 소유하게 된 그 번개 같은 속도를 가장 적절하게 묘사한다. 고대에 그렇게 빠른 군사 행동을 통해 그렇게 크고 성공적인 규모로 땅을 정복한 다른 사례가 없다.


머리 넷

8장의 숫염소의 네 뿔과 평행하는 것으로, 알렉산더의 단명(短命)했던 정복 사업들을 통해 얻은 영토를 차지했던 네 나라(후에 셋으로 감소했다)를 나타낸다. 12년 간이나 계속된 내란 후에 알렉산더를 계승하여 통일된 대제국을 주장하며 왕으로 자처하고 나선 안티고누스와, 이에 반대하는 네 장수들, 즉 캇산더, 리시마쿠스, 셀루쿠스, 프톨레마이오스의 연합 세력은 마침내 기원전 301년 입수스에서 대제국, 나아가서는 세계 역사의 장래를 결정짓는 대회전을 치렀다. 싸움은 네 장수들의 연합 세력의 승리로 끝났고, 안티고누스는 살해되었으며, 땅들은 이미 왕들로 모습을 바꾼 네 장수들에 의해 분할되었다.

“기원전 301년에 있었던 입수스 전쟁은, (알렉산더의) 제국이 로마의 세력에 들어가기까지 그 제국의 역사를 결정지은 것으로, 고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쟁들 가운데 하나였다. 승리자들은 더 이상 일개의 장군으로서가 아니라 왕들로서 제국을 자기들끼리 나누어 가졌다. 셀루쿠스는 브리기아에서 인도까지의 아시아를, 리시마쿠스는 서부 소아시아와 드레이스를 차지했다. 알렉산더 사후 이집트의 총독으로 갔던 프톨레마이오스는 그곳을 자신의 왕국으로 삼았으며, 캇산더는 이미 마케도니아의 통치자였었지만, 이제는 왕으로 인정되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알렉산더의 제국은 네 개의 왕국으로 분할된 것이다.” (G. W. Botsford, A History of Greece, 318, 319)

이렇게 넷으로 나누어진 알렉산더의 제국은 20 년 후에 리시마쿠스가 제외되었으므로, 세 나라로 되었다가 후에 하나씩 하나씩 네 번째 짐승인 로마 제국에 의해 흡수되고 말았다.



7절, 주석과 해설


넷째 짐승

처음 세 짐승의 경우처럼 특정한 짐승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점으로 보아 자연계 가운데는 이 무시무시한 동물을 나타낼 수 있는 유사한 짐승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짐승이 2장의 큰 신상의 쇠 다리로 묘사된 세력과 동일한 세력을 나타낸다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예언상의 세 번째 왕국을 계승한 세계적인 세력이 로마였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명백하다. 그러나 그 이행 과정은 점진적이었으므로 그 전환을 구분할 수 있는 특정한 사건을 지적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미 언급한 대로 알렉산더의 제국은 301년 후에 네(후에는 세) 헬레니즘 왕국으로 나뉘었으며, 로마 제국이 그들을 대신한 것은 여러 가지 주요한 단계에 걸쳐 이루어진 점진적인 과정이었다. 저자들에 따라 중요한 전환점으로 택하려는 시점도 서로 다르다.

B.C. 200년경, 카르타고가 더 이상 적수가 되지 못했을 때(비록 반세기가 더 지나기까지 그 나라는 멸망하지 않았지만) 로마는 지중해 서부의 지배자였고 동부와의 접전을 시작하였으며 그 후에 그곳도 지배하게 되었다. B.C. 197년에 로마는 마게도냐를 패배시키고 헬라의 작은 국가들을 자국의 보호 아래 두었다. B.C. 190년에 로마는 안티오쿠스 III세를 패배시키고 동쪽으로는 타우루스(Taurus) 산맥까지 셀류쿠스의 영토를 차지하였다. B.C. 168년 퓌드나(Pydna) 전투에서 로마는 마게도냐에서의 군주 정치를 끝내고 그 지역을 네 개의 연방 체제로 분할하였으며, 아마도 같은 해에 애굽을 공격하려던 안티오쿠스 IV세를 경고하여 물러나게 하였다. B.C. 146년에 로마는 마게도냐를 영지로 합병시키고, 대개의 헬라 성읍들을 마게도냐의 총독 관할 아래 두었다.

만약 동쪽에 대한 로마의 지배가 로마 세력에 의해 헬라 문화권의 세 나라 군주들이 제거된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계산한다면, B.C. 168년을 그 과정의 첫 단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셀루쿠스 왕조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왕들은 훨씬 후까지 존속하였는데, 수리아와 애굽에서 각각 B.C. 63년과 B.C. 30년까지 존속하였다. 만일 이 세 나라가 로마의 영지로 합병된 시기를 택한다면 각각 B.C. 146년, B.C. 64년, B.C. 30년이 될 것이다. 어떤 역사가들은 B.C. 168년을 강조하는데 그 이유는 그 때에 로마가 마게도냐를 정복했고, 단지 안티오쿠스 IV세가 침공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애굽이 셀류쿠스 왕국에 넘어가는 것을 면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로마가 그 때까지 한 나라만을 정복했지만 실제로는 그 세 나라를 모두 지배했음을 증명한 것이다.

점진적인 과정에서 단 하나의 연대를 제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날짜나 날짜들로 어느 것을 택하든 상관없이 세계적인 세력이 로마로 바뀐 것은 명백하며, 마게도냐에서 유프라테스까지의 알렉산더 영토를 흡수하는 일은 B.C. 30년에 완료되었다.


무섭고 놀라우며

선지자 다니엘로 하여금 앞서의 경우처럼, 다른 맹수의 표현을 찾지 못하게 했을 만큼 로마제국이 무섭고 놀랍게 여겨진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이 로마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비롯하여, 야고보와 베드로, 바울 등 모든 사도들이 로마의 쇠로 된 큰 이에 의해 순교 당했으며, 200 년 이상 계속된 핍박을 통해 무수한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제국의 가혹한 핍박으로 재산과 생명을 잃었다. 이러한 배경들이 선지자 다니엘을 번민하도록 무섭게 만들었을 수 있다.


쇠로 된 큰 이

성경에서 쇠는 힘과 멸망의 개념과 잔인성을 나타낸다(시 2:9, 단 2:40). 이 짐승이 그 기괴한 이로 먹이를 찢고 삼켰듯이, 로마는 정복을 통해 나라와 백성들을 삼켰다. B.C. 146년 고린도의 경우처럼 어떤 때는 도시 전체를 파멸시켰으며, 그 다음에는 마게도냐와 셀루쿠스 왕조의 영토를 그렇게 한 것처럼 나라들을 태수 관구들로 분할하였다.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로마가 멸망시키지 않거나 백성을 복종시키지 않은 곳에서는 종종 그들을 노예로 삼거나 노예로 팔았다. 멸망시키는 힘의 강도에서 로마는 이전에 세상을 다스린 나라들을 능가하였다.


열 뿔

성경에서 뿔은 정치적(왕권)이거나 종교적인 것으로 힘과 권세를 나타낸다. ‘열’은 연합된 전체에 대한 대표적인 수로 자주 사용된다. 24절에서 열 뿔은 ‘열 왕’으로 설명되었다. 17절의 ‘네 왕’이 2장의 네 제국에 해당하는 나라들을 나타낸다면, 이 ‘열 왕’도 염소의 네 뿔이 ‘네 나라’(8:22)인 것과 마찬가지로 열 나라들로 이해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수많은 게르만족들의 잇따른 로마 제국 침공과, 로마가 여러 개의 분리된 나라나 군주국으로 대체된 것은 역사적으로 충분히 확증된 사실이다. 20여족 이상의 야만족들이 로마 제국을 침공했으므로 주석자들은 창설된 나라들의 다양한 목록들을 작성하였다. 다음의 목록이 대표적인 것이다. 동고트, 서고트, 프랑크, 반달, 수에비, 알라만니, 앵글로-색슨, 헤룰리, 롬바르드, 부르군디. 어떤 이들은 알라만니 대신에 훈족(Huns)을 목록에 넣기를 선호하지만 훈족은 정착된 나라를 남기지 못하고 일찍이 사라졌다. 그 시기는 큰 격변과 혼란과 변화의 때였으며, 그 기간에 대다수의 나라들이 독립했다.



8절, 주석과 해설


다른 작은 뿔

이 작은 뿔은 나중에 “동류보다 커 보”(단 7:20)였다. 그것은 로마의 권세가 로마 교회로 이어진 사실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로마의 폐허에서 로마 교회라는 ‘거대한 형태’로 위대한 도덕적 제국이 일어났다.” (A. C. Flick, The Rise of the Medieval Church [1900], 150)

“로마 제국 아래서 교황들은 세속적인 권세를 소유하지 않았다. 그러나 로마 제국이 해체되고 그 자리를 다수의 거칠고 야만적인 나라들이 차지했을 때 로마 가톨릭 교회는 종교적인 문제에서 국가로부터 독립했을 뿐 아니라 세속적인 문제들도 지배하게 되었다. 간혹 샤를마뉴 대제(Charlemagne, 768-814), 옷토 대제(936-973) 그리고 하인리히 III세(1039-1056)와 같은 통치자가 다스릴 때에 민간 세력이 어느 정도 교회를 통제했으나 일반적으로 약한 정치적 봉건제도 아래서 교황을 수장으로 한 교회, 즉 잘 조직되고 통일되고 중앙집권제를 갖춘 교회는 교회 문제에서 독립했을 뿐 아니라 민간 문제들도 주장했다.” (Carl Conrad Eckhardt, The Papacy and World-Affairs [1937], 1)


뿔 중의 셋

“작은 뿔”은 교황 로마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세 뿔이 뽑힌다는 것은 그 야만적인 나라들 셋이 전복됨을 상징한다. 교황 로마가 정치적인 세력으로 부상하는 데 주된 장애물이 되었던 나라들 가운데는 헤룰리, 반달 그리고 동고트가 있었다. 그 셋은 모두 가톨릭교 신앙의 가장 만만찮은 적수였던 아리우스주의(Arianism) 지지자들이었다.


사람의 눈

눈은 대개 지성에 대한 상징으로 여겨진다. 대부분 무식한 야만인들과는 대조적으로, “작은 뿔”로 나타난 세력은 그 지성과 통찰력과 선견지명으로 이름나 있었다. 작은 뿔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7:24-25의 주석에서 하고자 한다.



9절, 주석과 해설


왕좌

“왕좌”를 뜻하는 아람어 ‘코르사완’은 ‘코르세’의 복수형이다. 이 복수는 위엄의 복수형이거나, 한 사람 이상이 이 심판을 주재하고 있음을 가리킬 수 있다. 어떤 유대 전통은, 첫째는 공의를 위한 것이며, 둘째는 자비를 위한 것으로 보았다. 또는 하나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윗을 위한 것인 두 보좌로 보았다(시 110:1).

여러 신약의 구절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후에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고 표현한다(마 26:64, 막 14:62, 눅 22:69). 다른 성경 구절에서는 성도가 심판 때에 하나님의 옆에 앉는 특권이 허락된다(눅 22:30, 고전 6:2, 계 3:21).

본 절에서 두 번째로 나오는 “보좌”는 단수형 ‘코르세’를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보좌를 언급하는 것이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

아람어를 문자적으로 읽으면 “날들이 오래된 한 존재”(an Ancient of days), 혹은 “한 존재, 날들이 오래된”(One, ancient of days)이 된다. 이 표현은 명칭이라기보다는 묘사이며, 그 장구(長久)함과 경험으로 말미암아 그의 결정이 지혜롭고 공의롭다는 신뢰를 불러일으키는 영원한 분을 묘사한다. 고대의 가나안 문헌에서 최고의 신인 엘(El)은 “연수가 오래된 아버지”(father of years)로 불린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는 성부 하나님을 가리킨다.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비슷한 표현이 요한계시록에도 나온다(계 1:14). 성경에서 희다는 것은 정결함과 의(義)를 상징한다(사 1:18).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불에 대한 상징은 자주 성경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의 거룩함에 대해 사용된다(출 3:2, 출 19:18, 시 97:3, 히 12:29). 보좌에는 바퀴가 달려있다. 고대 근동에서 보좌는 움직일 수 있었다. 이 개념은 에스겔서에도 나온다(겔 1:15). 이 바퀴 달린 보좌는 아마도 고대 근동에 널리 퍼진 신의 병거라는 개념과 관련되는 것 같다(시 68:17).



10절, 주석과 해설


천천이요 … 만만이며

셀 수 없는 하나님의 군대 전체를 묘사하기 위해서 “점층법”(numerical progression)이라는 문학적 특성이 이곳에서 사용된다(시 68:17).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법정의 장면이 시작된다는 의미이다. “책들”은 인간의 모든 행실이 하늘에 간직된 책들에 주의 깊이 기록된다는 성경 시대 사람들의 믿음에 기초한다(시 56:8, 시 69:28, 말 3:16, 계 20:15). 위의 성경절들을 보면 생명책과 기념책과 죄책이 있는 것 같다. 



11절, 주석과 해설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이것은 넷째 짐승 곧 로마 나라가 완전히 멸망할 것을 표현하는 말인데, 단 7:26에는 “심판이 시작되면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완전히 멸망할 것이”라고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 짐승과 작은 뿔에 대한 말이 나올 때마다 곧 심판의 말이 뒤따르는 것을 7장에서 세 번이나 보게 된다(9-11, 20-22, 24-26). 이것은 9-14절에 베푼 심판의 자리에서의 심판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확인해 준다.

심판의 대상은 큰 말하는 작은 뿔이다. 그런데 죽임을 당하는 것은 왜 짐승인가? 그것은 뿔이 짐승을 의지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상징되었기 때문이다. 짐승이 완전히 죽으면 짐승의 머리에 있는 작은 뿔도 완전히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작은 뿔과 동일한 세력을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 “불법한 자”라고 언급하면서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멸망할 것을 말한다(살후 2:3-8).


타오르는 불에 던져졌으며

이 불은 하나님의 심판의 완전성과 모든 그릇된 것을 태우고 정화하는 불이다. 작은 뿔은 유황불에 던져져 완전히 소멸될 것이다(계 19:20).



12절, 주석과 해설


남은 짐승들은 그의 권세를 빼앗겼으나 그 생명은 보존되어

남은 짐승은 첫째, 둘째, 셋째 짐승을 뜻한다. 이 나라들은 넷째 나라보다 먼저 망했는데 권세는 빼앗겨도 생명은 보존된다니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다음과 같은 제안이 있다.

  • 세상의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롬 13:1). 그러므로 권세를 빼앗겼다는 것은 국가로서의 통치권을 이미 잃었으나 그 생명 즉 정신은 계속되어 정한 시기에 망할 것을 뜻한다.
  • 바벨론의 영토는 바사에 종속되었으나 바벨론의 백성은 계속해서 살도록 허용되었다. 그와 같이 마게도냐가 바사를 정복하고, 로마가 마게도냐를 정복했을 때도 정복된 나라들의 거주민들은 멸망을 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작은 뿔의 세력이 마지막으로 멸망함과 더불어 온 세상에는 사람이 살지 않게 될 것이다.



13절, 주석과 해설


인자 같은 이

아람어를 더 적절하게 표현한 것은 “한 존재, 인간의 형태를 한”이다. 그는 누구인가? 첫째, 인자는 하늘의 존재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칭호가 암시하듯이 그는 인간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는 심판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오는 신인(神人)이다. 둘째,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인자의 모습은 신약 성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림의 장면이다. 그러나 단 7:13은 인자가 하늘에서 땅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옛적부터 계신 이 앞에 나타나기 위해서 하늘의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수평적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셋째,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인자에 대한 묘사는 여호와의 가시적인 현현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 이미지는 또한 속죄일에 성소 정결을 수행하기 위해 분향단의 연기로 자욱한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대제사장을 연상하게 한다.

인자는 또한 왕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는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단 7:14)의 섬김을 받는다. ‘섬기다’라는 동사는 또한 ‘경배하다’라는 의미로 번역될 수 있다. 이 단어는 단 1~7장에서 9번 등장하며(단 3:12, 14, 17, 18, 28, 6:16, 20, 7:14, 27) 신께 경의를 표한다는 개념을 담고 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법을 고치려는 시도의 결과로서 작은 뿔로 대표되는 그 종교 체계는 하나님께 드릴 예배를 변질시킨다. 하지만 여기서 묘사하고 있는 심판은 진정한 예배가 마침내 회복되리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교황권이 마련한 예배 제도는 무엇보다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로 세운다.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을 대표하여 설 자격이 있는 유일한 중재자는 인자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성경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고 증언한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성육신 때에 친히 인간의 형상을 취하셨으며(요 1:1-4, 12, 14, 빌 2:7, 히 2:14 등) 사람의 아들이 되셨으므로, 결코 끊어지지 않을 줄로 신성을 인성과 결합하셨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대표하는 분으로 그들과 “같은 이”, 곧 모든 면에서 그들과 같이 시험을 받으시고 그들의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분을 모신다(히 4:15).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으로 재림하시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분께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성소 정결을 위해 지성소로 오시는 것을 나타낸다.



14절, 주석과 해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눅 19:12-15에서 그리스도는 손수 나라를 받으려고 먼 나라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귀인으로 묘사된다. 아직 하늘에 있는 동안 성소에서 제사장 봉사를 마치실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나라를 받으시고 자신의 성도들을 위해 이 땅으로 돌아오신다.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예수님과 성도들이 받게 되는 나라는 흥망을 반복하는 세상 나라들과는 달리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다.



참고할 글



댓글 쓰기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