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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7장 15절-28절, 그 누림이 영원하리라 - 매일성경큐티 주석과 해설 정리

매일성경큐티 본문인 다니엘 7장 15절부터 28절까지의 말씀은, 다니엘이 본 환상 중의 네 짐승들에 대한 해석입니다. 네 짐승들은 악한 권력자들인데 이들이 성도들을 핍박하겠지만, 결국 성도들이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본문의 주석과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다니엘 7장 15절-28절, 그 누림이 영원하리라



다니엘 7장 15절-28절, 그 누림이 영원하리라



16절, 주석과 해설


모셔 선 자들 중 하나에게

이 존재는 10절에 묘사된 수많은 천사들 중 하나일 수도 있고, 특별히 가브리엘일지도 모른다(단 8:16). 이곳에서 다니엘은 아직도 이상 가운데 있으며, 그가 말을 건 존재는 아마도 심판을 수행하는 자들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천사들은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해주기를 열망한다. 그들은 섬기는 영으로서(히 1:14), 하늘에서 땅으로 기별을 가져오기 위해 하나님이 임명하신 자들이다(행 7:53, 히 2:2, 계 1:1).



17절, 주석과 해설


세상에 일어날

3절에서는 바다에서 나왔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세상에 일어날 왕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바다는 세상을 상징하는 것이다. (2절의 주석을 참고하라.)



18절, 주석과 해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의 정체는 수 세기 동안 논쟁거리였다. 어떤 학자들은 천사라는 견해를 취하였고, 다른 학자들은 인간이 바로 지극히 높은 이의 성도의 무리를 이룬다고 주장한다.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그 근거를 27절에서 가져온다.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단 7:27)

그런데 많은 수의 다른 학자들은 천사들과 사람들로 구성되는 무리라고 생각한다.


나라를 얻으리니

이 땅의 모든 왕과 정부는 사라질 것이지만 지극히 높으신 자의 나라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악한 자들의 찬탈과 실정(失政)은 얼마 동안 지속될지 모르지만 머지않아 그와 같은 일은 끝날 것이다. 그 때에 이 땅은 정당한 소유주에게 돌려질 것이며 그분은 이 땅을 성도들과 함께 나누실 것이다.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이 구절을 반복하는 것은 영원성의 개념을 강조하는 것이다. 회복된 지구를 점유하는 일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그 기간은 결코 종료되지 않을 것이며, 그 거민들은 자신의 거처에서 안전할 것이다.



24절, 주석과 해설


단 7:8과 7:24-25는 작은 뿔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 말씀들을 토대로 작은 뿔의 정체과 특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일어나는 장소: 넷째 나라 즉 로마에서 일어난다.
  • 일어나는 때: 넷째 짐승(로마제국)이 열 뿔(열 나라)로 나누인 직후에 일어난다.
  • 국가적 속성: 다른 열 나라(뿔)와 같은 점도 있으나 눈과 입이 있는 점에서 다르다. 이것도 뿔 가운데 하나이므로 왕국(군주 국가)인 것은 틀림없으나, 눈과 입으로 감독하는 기능을 가졌다.
  • 도덕적 특성: 큰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등 교만하고 신성모독적이다.
  • 준법적 속성: 때와 법을 마음대로 변경하는 등 무법적이다.
  • 성도와의 관계: 하나님의 참 백성들을 오랫동안 핍박할 세력이다.
  • 존속될 전성기간: 한 때 두 때 반 때 즉 1260 년간이다.
  • 최후의 운명: 통치권을 빼앗기고 결국 파멸 당할 것이다.

이상의 8 가지 신원에 맞는 나라를 찾고자 한다면 그것이 로마 교황권, 즉 교황 로마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실제로 서기 330년 로마제국이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기면서, 로마 황제의 보좌는 로마교회의 감독에게 양도되었고, 5세기에 이르러 게르만 민족의 침입으로 서로마가 망한 뒤에는 명실공히 로마교회의 감독이 황제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정치적 로마의 폐허로부터 로마교회의 거대한 형태로 거대한 도덕적 왕국이 일어났다.” (A. C. Flick, The Rise of the Medieval Church, 1900, 15)



작은 뿔의 특성과 역할


1. 작게 시작된 큰 세력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에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첫 번째 뿔 중의 셋이 그 앞에서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들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더라”(단 7:8)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서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을 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그의 동류보다 커 보이더라”(단 7:20)

교황권의 실제적 대두는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에 있었지만, 그 뿌리는 일찍부터 자라고 있었다. 특히 제국로마가 교황로마로 넘어간 과정은 아주 점진적이었으며,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요한은 이미 1세기 말에,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예고했다(요일 4:3). 바울도 불법의 비밀이 이미 작용하기 시작했다고 경고했다(살후 2:7). 살후 2:7에서 그것을 막는 자는 주석자에 따라 로마제국 또는 하나님으로 제안한다.


2. 다음의 로마 교회 지도자들이 이 일을 점진적으로 가능하게 했다.

  • 빅토르 I세(Victor I, 193-203): 동방교회에 부활절을 일요일로 정하라고 명했으나 거절하자 그들을 출교시켰다.
  • 율리우스 I세(Julius, 341-352): 343년에 열린 사르디카 종교회의에서는 로마의 감독이 서로 분쟁하는 다른 감독들을 재판하는 권한을 부여했다.
  • 인노센트 I세(Innocent I, 402-417): 로마교회의 감독은 온 세상의 감독이라는 개념을 부각시켰다.
  • 식스투스 III세(Sixtus III, 432-440): 자신은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교회를 보살피도록 임명되었다고 주장했다.
  • 레오 I세(Leo I, 440-461): 로마교회의 감독은 베드로의 후계자로 그에게만 아버지를 뜻하는 “Pope”라는 칭호를 쓸 수 있게 했으며, 로마교회의 감독이 가장 높다는 조서를 반포했다.
  • 시마쿠스(Symmachus, 498-514): 로마 교황은 하나님 대신으로 재판장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자의 대리자로서 이 일을 이행하게 되었다.
  • 요한 II세(John II, 532-535):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533년 그를 모든 교회의 머리라고 선포했다.
  • 그레고리 I세(Gregory I, 590-604): 자신이 왕인 것처럼 행동했다. 로마 교회는 결코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선언하고, 교황은 최고의 재판장으로 왕들과 황제들을 마음대로 폐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여 세속권을 강화했다.
  • 인노센트 III세(Innocent III, 1198-1216): 교황권의 세력은 절정에 달하여, 유럽 세계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가 되었다.

현재 세계 각국에 흩어진 12억의 신자를 다스리는 종교적 대제국인 바티칸 시국의 영토는 0.44 ㎢, 2013년 인구가 약 839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다. 이렇게 작은 나라가 중세 12세기(1260년) 동안 서구 세계를 장악했으며, 이제 또 다시 세계적인 존재로 군림했다는 사실은 성경의 예언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역사의 불가사의이다.


2. 열 나라 가운데서 일어난 나라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에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첫 번째 뿔 중의 셋이 그 앞에서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들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더라”(단 7:8)

다니엘은 이 작은 뿔(교황로마)이 열 뿔이 나온 후에, 다시 “그 사이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과연 교황권의 확립은 33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긴 후, 4세기 후반부터 북 유럽에 거주하던 게르만 민족이 일제히 로마제국의 영토 안으로 밀려내려 옴으로써 새 전기를 맞게 되었다.

① 즉 황제가 떠나간 서로마의 새로운 실권자로 등장한 로마교회 감독 레오 1세는 훈족의 침입을 외교로 막아내고(452년), 그레고리 1세는 롬바르드의 침입을 막으면서 실제로 로마의 국왕의 일을 맡게 되었다.

② 496년 로마제국 영토 안에 게르만 민족이 세운 가장 강력한 나라인 프랑크의 이교도 왕인 클로비스가 강적인 알라마니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계기로 가톨릭으로 개종함으로써 교황권의 맏딸이 되었다.

③ 한편 아라비아에서 메뚜기 떼처럼 일어나 아프리카를 거쳐 스페인의 피레네 산맥을 넘어 유럽으로 쳐 올라오는 모슬렘군대를 프랑크의 재상이었던 찰스 마르텔이 732년 투르 평야에서 막아냄으로써 유럽을 회교로부터 지키는 수훈을 세웠다.

④ 그 후 찰스 마르텔의 아들인 피핀은 아버지를 이어 프랑크의 실권을 잡은 뒤 왕을 몰아내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 이렇게 불법으로 왕위를 찬탈한 피핀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신의 왕위를 합법적으로 인정받기 원하여, 752년에는 교황 스테반 2세의 사절인 대주교 보니파스의 손을 빌려 왕관을 받는 형식을 취했다.

⑤ 찬탈자인 자기를 합법적인 왕으로 인정해준 것에 대한 감사로, 그 후 피핀 왕은 교황이 게르만 민족의 다른 부족인 롬바르드에 의해 한창 시달리고 있는 이태리 반도로 내려가, 곤경에 빠진 교황을 건져 주었다. 그리고 롬바르드에게서 빼앗은 동로마제국 총독의 영지를 교황에게 주어 교황령이 되게 했다. 이 때로부터 교황은 영토를 가진 군주가 되었고 로마교회는 이제 교회의 차원을 벗어나 교회 국가(the church state)가 되어 중세기의 주권자가 되는 발판을 굳혔다.

⑥ 이와 같은 발판을 기초로 그 후 열 뿔로 표상된 게르만 국가들의 틈새에서 그 능한 말과 기민한 눈으로 국제세계의 정정(政情)을 살피고, 시대적 조류에 편승하여, 마침내 11세기부터 13세기 동안에는 명실공히 유럽을 호령하는 왕 중 왕이 되었다.


3. 이전의 나라들과 다른 나라

“그 열 뿔은 그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단 7:24)

이전의 나라들은 모두 정치적 군주국가였으나, 교황로마는 정치적 절대 군주국가이면서도 종교적 군주국가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이전의 왕국들은 사람의 몸을 다스렸으나, 후자는 사람의 영혼까지 다스린다는 점에서도 다르며, 다른 나라들은 자국의 영토 내에 있는 백성들만 다스리지만 교황로마는 영토와 민족에 관계없이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범세계적 국가라는 점에서도 다르다(계 13:7).

국가의 이러한 독특한 성질과 함께 가장 심각한 차이는 군주로서의 교황의 신분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다음은 이에 대한 가톨릭교회 자체의 진술이다.

“바티칸이 지니고 있는 놀라울 만한 영광의 비밀은 교황이라는 한 마디 말로 집약된다. 바티칸 시국은 교황에 의하여 창립되어, 교황의 정신적 기능을 외부의 아무런 간섭 없이 행사할 수 있기 위하여 존재한다. 세속적으로 볼 때, 교황은 불과 수백 명의 국가 원수이지만, 그의 존재는 그리스도의 후계자로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6억 가톨릭 신자들의 운명을 하나님 앞에서 책임지는 최고 책임자로서의 임무를 더 잘 수행하기 위한 것 뿐이다.” (뽈 뿌빠르, 백민관 역, 바티칸(서울: 성 바오로 출판사, 1969), 55)


4. 세 나라들을 뿌리뽑음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에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첫 번째 뿔 중의 셋이 그 앞에서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들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더라”(단 7:8)

세 뿔이 그 앞에서 뿌리까지 뽑혔다는 것은 먼저 있던 세 왕을 복종시킬 것으로 자체적으로 해석되어 있다(단 7:24).

① 게르만 민족들이 로마제국의 영토 안으로 밀려들어온 4세기 후반에 이미 로마에 자리를 잡고 이태리 반도에서 착실히 세력을 키워 온 로마교회는, 5세기와 6세기 초에 걸쳐 극복해야 될 최대의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하여 로마교회와 견해를 달리하는 아리안주의(Arianism)로 개종한 게르만의 몇 국가들이 로마를 유린함으로써 로마교회의 존재와 권위를 크게 위협하였다.

② 로마를 처음 유린한 세력이 헤룰리(Heruli) 족인데 아리안주의 신봉자로 용병 대장이었던 오도아케르(Odoacer)는 이들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476년 서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소년 왕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Romulus Augustus)를 폐위시키고 자신이 왕으로 즉위했다. 이리하여 로마는 아리안주의 게르만 세력에 들어가게 되었다.

③ 이렇듯 서로마가 위협을 당하자, 동로마의 황제 제노는 다른 게르만 민족인 동고트족의 지도자 데오도릭(Theodoric)을 충동하여 헤룰리를 치게 하여 493년 오도아케르의 항복을 받고, 얼마 후에는 그를 죽임으로써 헤룰리의 종말을 가져왔다. 그러나 데오도릭도 신실한 아리안주의 신봉자로 로마교회를 견제하는 이질적인 세력이었다.

④ 이러는 동안에 겐세릭(Genseric)이 이끄는 게르만의 또 다른 민족인 반달족(Vandals)은 고울지방(프랑스)을 거쳐 스페인을 지나 북 아프리카로 건너가서, 439년에는 카르타고를 점령한 후에, 거기에 왕국을 세우고 지중해 일대를 위협하였다. 특히 445년에는 해상으로 로마에 침입하여 가공할 만한 약탈을 자행하였다. 이들 반달족은 광신적인 아리안주의자들로 호전적이었으므로 그들이 이단이라고 부른 로마 가톨릭에 대해서는 더욱 적대적이었다.

⑤ 이 때쯤 동로마의 유능한 황제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는 잃어버린 서로마를 회복하려는 방편의 하나로, 단합된 교회의 힘을 이용하기 위해 533년 로마교회의 감독을 전 세계 교회의 머리라고 선언함과 동시에 명장 벨리사리우스(Belisarius)를 파견하여 반 로마교회 세력인 반달족을 치게 하여, 그 이듬 해인 534년 그들을 완전히 정복했다. 이리하여 서로마 지역에서 로마 교황권의 지상권에 장애가 되는 세력은 동고트만 남게 되었다.

⑥ 내친 걸음으로, 벨리사리우스 장군은 534년 이태리를 다스리는 동고트족에 대해 전쟁을 시작했고, 536년 12월 9일에는 로마에 개선 입성하였다. 물러갔던 동고트인들은 로마시의 방어가 약화되었음을 알고, 동고트의 왕인 위티기스(Witigis)는 15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겨우 5천명의 로마 군사가 수비하는 로마를 재침하여 벨리사리우스 장군과 그의 군사들은 1년 9일간 포위되어 있었다.

538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급히 증원군을 이태리에 상륙시켰으며, 그들은 동고트의 수도 라벤나(Ravenna)에서 하룻 길 밖에 안 되는 아리미늄(Ariminum)을 점령하자, 로마를 포위했던 동고트군은 포위를 풀고, 3월 중순 막대한 피해를 입으며 퇴각했다.

“아리미늄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로마에 도착하자, 고트족은 그들이 쳤던 천막의 말뚝들을 즉시 불태우고, 떠날 준비를 했다. 벨리사리우스는 그들이 무사히 후퇴하도록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고트족의 병력 중 절반 쯤이 밀비안 다리를 건너기를 기다렸다가, 그의 모든 병력을 총동원하여 그들을 공격했다. 그들의 손실은 상당했다. 전투에서 죽임 당한 군사들 외에도 다수가 티베르 강에 빠져 죽었다. 이리하여 1년 9일 동안 계속되었던 포위가 538년 3월 중순 경에 끝나게 되었다.” (J. B. Bury, History of the Later Roman Empire, vol. 2, 194)

⑦ 이리하여 로마 교황권의 지상권을 가로막던 헤룰리(493년)와 반달(534년),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고트(538년)가 제거됨으로써, “첫 번째 뿔 중의 셋이 그(교황로마) 앞에서 뿌리까지 뽑”히게 되었으며, 로마교황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선언대로 세계교회의 머리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뽑힌 세 뿔 중 첫 번째 뿔을 헤룰리에 적용시키지 않고 508년 격퇴된 서고트족이라고 하는 학자(William H. Shea)도 있다. 이것은 서고트족이 제거된 해인 508년을 단 12:11의 1290 일의 기산점으로 잡을 때 설명의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해석일 수 있다.


5. 사람의 눈을 가진 나라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에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첫 번째 뿔 중의 셋이 그 앞에서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들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더라”(단 7:8)

특이하게도 이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들이 있었다. 눈은 성경에서 지성(知性), 예지(叡智) 혹은 통찰(洞察)을 상징하는 것으로 자주 쓰였다(마 6:22-23). 특별히 구약에서는 선지자를 선견자(先見者, seer)라고도 하여, 영적 통찰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로마 교회의 초기 지도자들은 최초에는 교회를 보살피는 자(overseer)로서의 감독(監督, bishop)이었다. 후에 로마 감독은 “세계 교회의 감독”으로 성장한 것이다.


6. 큰 말하는 입을 가진 나라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에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첫 번째 뿔 중의 셋이 그 앞에서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들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더라”(단 7:8)

교황 로마는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이 상징은 단 7:25의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로마 교황의 칭호는, 지도자에게 돌려지는 존칭 이상으로 하나님께만 합당한 표현이 참람히 사용되었음을 쉽사리 알 수 있다. 다음은 역대의 교황들에게 돌려지거나 자칭한 표현들이다.

“교황은 그토록 큰 위엄과 높음 때문에, 그는 단순히 한 사람의 인간이 아니라, 말하자면,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교황은 하늘과 땅과 지하 세계의 왕으로서, 삼중관을 쓰고 있다.”

“교황은, 말하자면, 땅 위의 하나님이요, 그리스도를 신실히 믿는 사람들의 유일한 지배자이며, 많은 권세를 가진 왕 중 왕이다. 그리고 그에게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땅 위의 나라들의 방향 뿐 아니라, 하늘 나라의 방향까지 위임하여 주셨다.”

“교황은 그토록 큰 권위나 능력에 속하였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수정하거나, 서명하거나, 해석할 수 있다.”

“교황은 그의 권세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을 수정할 수 있고, 땅 위의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그는 그의 양들을 매고 푸는 가장 큰 권세를 가지고 행동한다.”

“주 하나님 자신과 구속주가 하시는 것으로 언급된 것은, 무엇이든 그가 믿음에 어긋나지 않게 행한다는 조건이면, 그의 대리자도 한다.” (Lucius Ferrais, “Papa II” Prompta Bibliotheca, vol. VI, 25-29)

1512년 제5기 라테란 종교회의에서는 교황에 관해 언급하면서 “당신은 지상에 있는 또 하나의 하나님이시다”(Thou art another God on earth.)라는 대담한 선언을 했다.

“교황만이 가장 거룩하다고 불릴 수 있으며 … 거룩한 군주, 지고한 황제, 그리고 왕 중 왕(King of Kings)이라고 불릴 수 있다. 교황은 그토록 큰 위엄과 능력에 속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동일한 심판을 구성할 수 있다. 그래서 교황이 행한 바는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발해진 것처럼 여김을 받는다.” (“Pope”, Ferraris, Ecclesiastical Dictionary)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지상권을 뜻한 것으로 성경에서 그에게 돌려진 모든 명칭들은 교황에게도 마찬가지로 돌려진다.” (Bellarmine, On the Authority of Councils, bk. 2, ch. 17)

이러한 존칭들이야말로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는 구체적인 표현들이다. “대적”이라고 번역된 말은 히브리어로 ‘차드’인데, “옆, 측면”(side)을 뜻한다. 이는 교황이 자신을 하나님 위치까지 높인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적 그리스도적인 선언에 대해, 바울과 요한은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다(살후 2:4, 계 13:5-6).


7. 성도를 박해할 세력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단 7:25)

이 작은 뿔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단 7:25), “이 뿔이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그들에게 이겼”(단 7:21)다고 해석되었다. 교황권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단(異端)을 징치(懲治)한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사람들, 특히 성도들을 고문하거나 죽였다. 다음의 인용문들은 가톨릭교회의 문헌에서 발췌한, 공언하고 있는 박해의 정당성이다.

“만약 교회의 어느 신자가 불신실하게 되든가, 이단에 빠져들든가, 혹은 어떤 다른 중대한 죄를 지었을 경우, 이러한 교인은 그가 의존돼 있는 교회의 권위에 의하여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교회는 신자들을 견책할 수 있는 권한뿐만 아니라 교회가 타당하다고 생각하면, 외적인 형벌로써 고통을 줄 수 있고 세속적인 권력에 의뢰할 수도 있다.” (Schouppe, A Course of Religious Instruction, 74)

“화폐 위조범이나 다른 범죄자들이 세속적인 당국자들에 의해서도 즉시로 합당하게 사형에 넘겨지거든, 하물며 이단으로 정죄된 자들이야말로 즉시 파문할 뿐만 아니라, 분명히 사형에 처해야 하지 않겠는가.” (St. Thomas Aquinas, Moral Theology, cited by Gane, 53)

그럼 가톨릭교회에서 말하는 이단자는 누구인가?

“이단자(heretic)란 누구인가? 이단자란 가톨릭교회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것으로 가르치는 특정한 진리를 분명히 알면서도, 이를 고집스럽게 반대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믿을 것과 안 믿을 것을 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공언하는 신자이다.” (M. 뮤럴, 가톨릭교회의 전통적 해설, 4권 1885, 170)

이렇게 독선적으로 규정된 이단의 개념에 따라 이단자로 정죄되면 행정을 맡은 시장이나 당국자들은 닷새 이내에 그를 나무에 달아 불태워 죽여야 하며, 만약 당국자가 이를 지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그도 파문에 처해지고 이단자로 취급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러한 제도 아래서 얼마나 많은 억울한 이단들, 특히 성도들이 고통과 죽임을 당했는가!

“스페인에서만도 종교재판에 의하여 고난당한 사람들은, 산 채로 화형 당한 사람이 31,912 명으로 헤아려졌고, 소위 복종하도록 강요된 참회자가 291,450 명으로 계산되었다. … 알비젠스인(Albigenses)들의 대학살에서는 백만명이 죽임을 당했다. 제수이트(Jesuits) 제도가 처음 확립된지 30 년 동안에, 900,000 명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살해당하였다. 네덜란드에스는 알바 공(公)의 지시에 따라 36,000 명이 보통 집행자들에 의해 신속히 사형에 처해졌다는데, 알바 공은 이러한 행위를 자랑했다. 찰스 5세의 치하에서는 50,000 명의 프랑드르인들(Flanders)과 독일 사람들이 교수형과 화형과 산 채로 매장당했다.” (Guinness, Key to the Apocalyps, 92-93)

세계 역사에서 가장 잔인한 살상 행위로 꼽히는 1572년 8월 24일의 바돌로매(Bartholomew) 제일(祭日)의 대학살이 바로 로마 가톨릭교회에 의해 저질러졌음을 세상이 알고 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프랑스의 어린 왕 찰스 9세의 섭정 태후였던 캐더린(Catherine)은 강력해져 가는 개신교도들인 위그노파를 제거하기 위해, 위계(僞計)를 써서 그들을 한 데 모아 놓고, 졸지에 살상을 감행하여 남녀노유 신분 여하를 막론하고 위그노면 모두 죽여, 파리 시내에서만 일주일 내에 8,000 여명을 죽였고, 두 달 동안 전국으로 확대한 살육을 통해 8만 명 이상을 죽였음은 가공(可恐)할 역사로 기록돼 있다. 이러한 살육의 소식을 들은 교황청과 스페인 황실에서는 도덕적인 극악성에 대해서는 아랑공하지 않고, 이를 열광적으로 환영하였고, 로마에서는 이를 축하하는 기념 메달이 발행되었다.

“교황권의 한 낮은 세계의 한 밤중이었다.” (J. A. Wylie, The History of Protestantism, vol. I, 16)

“일찍이 존재했던 어느 다른 제도보다도, 로마교회는 더 많은 무죄한 피를 흘리게 했다는 사실이 역사에 대해 완전한 지식을 가진 개신교도에게는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참으로 로마 교회의 허다한 핍박에 관한 기념물들이 지금은 너무나 없기 때문에, 그들에 의한 엄청난 희생자들에 대한 완전한 개념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William E. H. Lecky, History of the Rise and Influence of the Spirit of Rationalism in Europe, vol II, 35, 37)

“로마 교황은 저희 신앙 때문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로마 교회의 우상 숭배에 편들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성경을 높이 쳐들며, 저희 생명의 죽음도 불사하고 죄를 대항하여 피로써 항거한 5천만의 남녀들을 살해한 것으로 추산된다.” (H. G. 게이네쓰, 시대의 임박한 종말, 204)

로마 교회는 이러한 대대적인 박해의 수단으로 1179년에 라테란 종교회의에서 최초로 그들이 이단으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무력으로 박멸하기 위해 십자군(十字軍)을 투입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십자군이 짓밟은 지역의 뒤처리를 위해 1229년 툴루스 종교회의(the Council of Toulouse)의 결정에 따라 악명 높은 종교 재판소(the Inquisition)를 개설한 것이다. 주로 도미니칸 신부[수도승(修道僧)]들에 의해 운영된 이 종교 재판소는 비밀리에 기소되고 집행되는 무서운 살인 및 고문 기구로, 처음에는 왈덴스인들과 알비젠스인들을 색출하여 박멸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종교개혁이 일어나자 1542년부터 다시 예수회(Jesuits) 신부들에 의해 운영되어 개신교 박멸에 무서운 힘을 드러냈다.

1400년 알프스 프라겔라(Pragela) 골짜기에 은신했던 왈덴스인들이 로마 교회가 보낸 토벌군에 의해 기습을 받아 짓밟히고 살해당한 뒤, 피하여 도망친 사람들은 엄동설한에 심산유곡(深山幽谷)에서 얼어 죽었다.

1488년 교황 인노센트 8세의 왈덴스인 박멸령에 따라 프랑스 군대들이 알프스의 로이스(Loyse) 골짜기에 덮치자, 왈덴스인들은 동굴로 피신했으나, 입구에 불을 놓아 3천여 명이 질식해 죽기도 했다. 이 모든 죄악은 알프스에 의하여 심판날에 증언될 것이다.

로마 교회의 이러한 박해의 정신은 사라지지 않았다. 1949년 로마에 있는 예수회의 기관지(La Civilita Cattolica)는 진술을 통해, 로마 교회는 그들이 소수일 때는 종교적 자유를 옹호하지만, 그들이 압도적인 다수가 될 때에는 종교적 차별을 실천한다고 역설했다. 전해져 오는 역사의 증언대로, “로마 교회는 자신들이 불리한 입장에서는 양처럼 온순하고, 동등한 처지에서는 여우처럼 교활하지만, 번성하게 되면 이리처럼 사나워진다.”(Rome is a lamb in adversity, a fox in equality, and a wolf in prosperity.) 이리처럼 사나워진 로마 교회가 다시 출현하고 있고, 세상에 편만할 것이다.


8. 때와 법을 변경하려 함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단 7:25)

“때”란 세상의 역사에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계획 즉 구속의 경륜을 이루시기 위하여 설정된 “정한 때” 혹은 “정해진 기간”을 의미한다. 특별히 다니엘서에는 구속의 경륜의 일정표인 2300 주야의 예언이 나타나 있어, 그리스도의 초림과 봉사, 죽으심과 부활 등이 시간적으로 예고되어 있다. 동시에 그리스도 께서 재림하실 때와 연관되어, 성도들이 나라를 얻을 때가 드러나 있다(7:22).

이러한 구속의 역사의 실현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2:21), 나라들의 흥망을 주장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나 교황 로마는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과 권위에 도전하여 구속의 경륜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하도록 배도에 앞장섰으며, 마침내 중세기에는 임의대로 왕들을 세우고 폐하며, 국가들의 운명을 장악하려 함으로써 정한 때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계획에 도전한 것이다.

“법”은 인간의 법이나 하나님의 법을 의미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하나님과 관계된 법 즉 십계명을 비롯한 종교에 관한 법을 지칭하는 것이 분명하다. 교황권에 의하여 변경된 하나님의 법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넷째 계명인 제칠일 안식일의 준수를 창조주일의 첫째 날인 일요일로 옮겨 놓은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하나님의 율법이라 할지라도 변경하거나 취소할 수 있음을 다음과 같이 공언하고 있다.

“베드로와 그의 후계자들은 교훈이나 금지에 관한 율법을 부과할 수 있는 권세를 가졌음과 아울러, 이러한 율법들로부터 면제해 줄 권세도 있고, 필요하다면 폐지시킬 권세도 있다. 율법을 범한 자들을 재판할 권한도 있고, 이에 대한 형벌을 부과하거나 면제해 줄 수도 있다. 이러한 사법상의 권한은 심지어 죄까지라도 용서할 수 있는 권세를 포함하고 있다.” (“Pope”, The Catholic Encyclopedia, vol. XII, 265, col. 2)

뿐만 아니라, 성경에 의하지 않고서 가톨릭교회의 전통에 따라 안식일을 변경했음을 가톨릭교회의 완전한 교리문답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오직 성경에 포함되어 있는 교리들을 믿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다. 우리는 전승(tradition)도 믿어야 한다. … 만약 우리가 전승이 없이 성경만을 참고했더라면, 지금도 우리는 일요일 대신 유대인과 함께 토요일을 거룩히 지켜야 할 것이다.

어느 날이 주님의 날(主日)인가?

예전의 율법에는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창조의 사업을 마치신 후에 그 날에 하나님이 안식하신 것을 기념하는 주일 중의 일곱째 날 즉 안식일이 주일이었다. 새 율법에서는 주일 중 첫째 날 즉 일요일이 주일이다.” (Joseph Deharbe, A Full Catechism of the Catholic Religion, 73, 183, 209-211)

다른 교리 문답서에는 개신교회들이 가톨릭교회가 제정한 일요일을 준수하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문: 개신교인들은 성경의 주제에 대해 모순되는 어떤 것을 가르치고 있는가?

답: 그렇다. 그들은 신자들에게 성경은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포함하고 있으며, 성경에 명백히 설정된 것 외에는 아무 것이라도 믿거나 실행해서는 안 된다고 설득하려고 하고 있다. 만약 성경이 그들의 유일한 신앙규범이라면, 그들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에 따라 일요일이 아니라 안식일을 지켜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이 계명이 바뀌지도 않았고 폐지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Challoner, The Catholic Christian Instructed, 209-211)

1910년 1월 25일에 공인된 “회심자의 가톨릭 교리문답서”의 안식일 조항 일부를 인용한다.

“문: 어느 날이 안식일인가?

답: 토요일이 안식일이다.

문: 우리는 왜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는가?

답: 가톨릭교회가 라오디게아 종교회의(the Council of Laodicea)에서 그 존엄성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옮겼기 때문이다.”

다음은 가톨릭의 십계명이다.

  • 하나이신 천주를 만유 위에 공경하여 높이고,
  • 천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불러 헛 맹세를 발하지 말고,
  • 주일을 지키고,
  • 부모를 효도하여 공경하고,
  • 사람을 죽이지 말고,
  • 사음을 행하지 말고,
  • 도적질을 말고,
  • 망령된 증참을 말고,
  • 남의 아내를 원치 말고,
  • 남의 재물을 탐하지 말라.” (천주교 요리, 제1권, 제28절)


9. 1260년간 전성기를 누림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단 7:25)

작은 뿔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동안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히며 그들을 장악할 것이라고 했다(단 7:25, 12:7, 계 11:2-3, 12:6, 14, 계 13:5). 이 구절들이 동일한 기간을 가리키는 것은 문맥을 통해서 보면 명백하다. 단 7:25에서 “때”는 아람어로 ‘잇단’인데, “해”(year, 年)을 의미한다(단 4:16, 23, 25, 32). 1260일이 42달로, 혹은 3년 반(한 때 두 때 반 때)으로 표현된 것은, 한 달이 30 일이 되는 성경 고유의 예언적 역법(曆法)에 따른 것이다.

예언의 하루를 실제로는 일 년으로 계산하는 원칙은 성경에 나타나 있다(민 14:34, 겔 4:6).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단 7:25의 주석을 참조하라. 1260 년의 기간은 사탄의 세력이 하나님의 백성을 압도하여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행사할, 중세기 천년 이상에 걸친 교황권의 전성시대를 가리킨다.

1260 년의 시작은, 로마 교황의 지상권을 가로막던 헤룰리(493년)와 반달(534년)을 멸망시키고, 동고트를 마지막으로 격퇴한 538년으로 본다. 그리고 1789년 유럽에서의 교황권의 요람이었던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나면서 치명상을 입게 된다. 1798년 혁명 정부의 베르띠어(Berthier) 장군은 이태리로 내려가, 바티칸에 침입하여 왕정의 상징인 교황 피우스 6세(Pius VI)를 포로로 잡아가 프랑스에 투옥했으며, 교황은 거기서 옥사(獄死)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1260 년의 기간은 538-1798년이다.



25절, 주석과 해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작은 뿔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동안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히며 그들을 장악할 것이라고 했다(단 7:25, 12:7, 계 11:2-3, 12:6, 14, 계 13:5). 이 구절들이 동일한 기간을 가리키는 것은 문맥을 통해서 보면 명백하다. 단 7:25에서 “때”는 아람어로 ‘잇단’인데, “해”(year, 年)을 의미한다(단 4:16, 23, 25, 32). 1260일이 42달로, 혹은 3년 반(한 때 두 때 반 때)으로 표현된 것은, 한 달이 30 일이 되는 성경 고유의 예언적 역법(曆法)에 따른 것이다.


연일(年日)원칙

예언에 나오는 하루를 실제로는 일 년으로 계산하는 원칙으로, 민 14:34, 겔 4:6의 말씀에 근거한다. 다니엘서와 계시록의 여러 예언들(단 7:25, 8:14, 계 11:2-3, 12:6, 14, 13:5)에는 연일원칙의 근거가 되는 세 가지 요소, 즉 상징의 사용, 긴 시간의 기간, 그리고 독특한 표현이 있다.

첫째, 나라들을 대표하는 맹수나 뿔들과 같은 상징들은, 시간적 표현들 역시 상징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맹수와 뿔들은 문자적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즉 예언의 다른 부분을 문자가 아닌 상징으로 이해해야 한다면 왜 시간 예언만 문자적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당연히 그래서는 안 된다.

둘째, 예언에서 묘사하고 있는 사건들과 나라들은 많은 세기들의 기간에 걸쳐서 일어난다. 그래서 예언에서 제시된 시간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그런 긴 기간이 주어질 수 없다. 반면 연일원칙이 적용되면 그 기간들은 놀랍도록 정확하게 각 사건들과 맞아떨어진다. 시간 예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끝으로, 이러한 시간의 기간을 정하기 위해 사용된 독특한 표현들은 상징적인 해석을 제시한다. 다시 말해서 이 예언들 속에서 시간이 언급된 방식은 일반적으로 시간을 표현하는 일반적인 방식들이 아니다(예, 단 7:25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8:14의 ‘2,300 주야’). 이는 그 안에 묘사되어 있는 시간 요소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26절, 주석과 해설


심판이 시작되면

심판은 교황권의 종식을 선고할 것이다. 이 세력은 최후까지 성도들과 전쟁을 계속할 것이다. 그 때에 성도들에 대한 그 지배권이 영원히 제거될 것이며 그것은 소멸될 것이다.



27절, 주석과 해설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성도들을 위해 곧 돌아오실 것이며 그들을 영원한 나라로 인도해 들여 상급을 주실 것이다.



28절, 주석과 해설


번민하였으며

이는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대적하는 악의 세력들의 끔찍스러움과 함께, 1260년간이나 지속될 작은 뿔에 의해 성도들이 당하게 될 사건들은 그를 몸서리치게 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미래에 대한 확실한 소망과 믿음을 가졌으면서도 그 때가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이 현실에서 당해야 하는 고난과 끝까지 인내해야 하는 시련을 생각하며 번민하고 근심하는 다니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하나님께 대한 분명한 믿음과 재림의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렇게도 자주 낙심하고 괴로워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참고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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