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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9일 묵상] 요한복음 11장 38절-46절, 나흘이나 지나 냄새가 나도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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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365장, 마음 속에 근심 있는 사람 새 찬송가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서론: 마른 뼈의 골짜기에서 서울의 아파트 숲까지 구약의 선지자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한 골짜기에 이릅니다. 그곳에는 죽은 지 오래되어 바싹 마른 뼈들이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은 물으십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에스겔의 대답은 “주께서 아시나이다”였습니다. 인간의 눈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절망, 생명의 기운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완전한 죽음과 절망의 상태가 바로 에스겔이 마주한 현실이었습니다. 이 '마른 뼈의 골짜기'는 2026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회의 단면과 참 닮아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적 침체, 고독사로 대변되는 관계의 단절, 그리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번아웃되어 영혼이 바싹 말라버린 직장인들의 뒷모습까지. 우리는 겉으로는 화려한 도시의 불빛 속에 살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나만의 무덤'을 하나씩 품고 삽니다. "이제는 늦었어", "우리 집 문제는 해결 안 돼", "내 신앙은 여기까지야"라는 포기라는 수의를 입은 채 말입니다. 본론 오늘 본문의 마르다 역시 " 주여, 죽은 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라며 현실적인 장벽 앞에 무너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부패한 냄새가 진동하는 무덤 앞으로 당당히 걸어가십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생기가 불어와 군대를 이루었듯, 오늘 이 새벽 우리 삶의 팍팍한 일상과 막막한 미래라는 무덤 속에 주님의 생기가 불어오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끝'이라고 말하는 그 지점이 바로 주님이 '영광'을 시작하시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1. 불신앙의 돌을 옮겨 놓으십시오. 예수님은 무덤 앞에 이르러 " 돌을 옮겨 놓으라 "라고 명령하십니다. 마르다는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난다며 ...

[3월 8일 묵상] 요한복음 11장 28절-37절, 주님의 눈물, 그 속에 담긴 사랑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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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새 찬송가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서론: 시대의 어둠 속에서 찾는 하나님의 얼굴 2026년 현재, 우리가 마주한 국제 정세는 여전히 안개 속을 걷는 듯 불안정합니다. 다시 시작된 중동의 멈추지 않는 포성과 강대국들의 자국 우선주의, 그리고 전 지구적인 기후 위기는 우리에게 '평화'가 얼마나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합니다. 벌써, 주유소마다 휘발유와 경유의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절망은 마치 구약성경의 욥이 모든 소유와 자녀를 한순간에 잃고 재 가운데 앉아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는가?"라며 울부짖던 그 극한의 고통과 어쩌면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욥의 고난은 개인의 비극을 넘어, 깨어진 세상 속에서 신음하는 인류의 보편적 절규를 대변합니다. 원인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고난과 고통으로 절망하던 욥이나, 불확실함 속에서 혼란스럽고 삶의 어려워지는 오늘 우리는 모두 어두움 속을 헤매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본론: 슬픔의 현장에 새겨진 하나님의 눈물 이른 새벽, 어제 마셨던 쓴 커피 한 잔의 기운으로 겨우 몸을 깨우면서, 여전히 피곤함을 느낍니다. 매달 돌아오는 대출 이자나 도통 마음을 열지 않는 사춘기 자녀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욥처럼,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마리아처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런 탄식을 내뱉곤 합니다. "주님, 제가 이토록 힘들 때 도대체 어디 계셨습니까?" 오늘 본문은 바로 그 ' 하나님의 부재 '를 경험하며 눈물 흘리는 이들을 향해, 우리 주님이 어떻게 반응하시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위로의 복음의 현장입니다.   1. "만약에"라는 후회를 넘어 찾아오시는 주님 나사로의 죽음에 슬퍼하던 마리아가 예수님을 향해 달려가 그 발 앞에 엎드려 말합니다. 32절입니다. 요한복음 11: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3월 7일 묵상] 요한복음 11장 17절-27절, 죽음을 깨우는 선언,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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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171장, 하나님의 독생자 새 찬송가 164장, 예수 부활 했으니 서론: 현대인이 외면한 죽음, 그 차가운 진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 죽음 '은 철저히 격리되고 소외된 단어입니다. 과거에는 집 마당에서 가족들의 손을 잡고 마지막을 맞이했다면, 이제 죽음은 병원의 하얀 벽과 기계 소리 가득한 중환자실, 그리고 차가운 장례식장 지하실로 숨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마치 '나와는 상관없는 통계'처럼 취급하거나, 의학의 발달로 언제든 미룰 수 있는 '정복 대상'으로 여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 우리 삶에서 보이지 않게 될수록, 죽음에 대한 공포는 더 기괴한 방식으로 우리를 짓누릅니다. 누군가는 죽음을 '완전한 소멸'로 보며 허무주의에 빠지고, 누군가는 죽음 이후의 불확실성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의 쾌락에만 매몰됩니다. 특히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뒤 마주하는 ' 슬픔과 고통 '의 시간 중에 우리는 가장 깊은 절망을 경험하게 됩니다. "조금만 더 일찍 병원에 갔더라면", "그때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는 현대인의 마음속에 거대한 상처와 구멍을 내기도 합니다. 본론: 절망의 자리에 임한 생명의 주 오늘 본문의 마르다 역시 이 현대적인 절망과 맞닿아 있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이미 나흘, 유대인들의 관점으로 보면 영혼마저 몸을 완전히 떠나버린 '절대적 끝'의 시점입니다. 현대 의학이 사망 선고를 내리고 장례 절차가 끝난 것과 다름없는 이 절망의 현장에서, 우리는 "이미 늦었다"는 체념과 마주합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도 이미 ' 마감 기한 '이 지나버려 악취가 나기 시작한 꿈이나 관계, 혹은 영적인 생명력이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주님은 그 차가운 무덤가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1. "만약에"라는 과거의 감...

[3월 6일 묵상] 요한복음 11장 1절-16절, 사랑으로 기다리시는 나의 하나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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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새 찬송가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서론: 기다림이 사라진 시대, 하나님의 '읽씹'? 현대인의 인스탄트식 사랑은 모든 것을 '즉시'와 '속도'로 평가하곤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상대가 원하는 것을 바로 들어주고, 메시지를 보내면 1분 안에 답장이 와야 하며, 배달 음식조차 도착 예정 시간을 넘기면 사랑의 온도가 식었다고 오해하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인스탄트 공식'을 대입합니다. "주님, 내가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사랑을 고백하는데, 왜 내 삶의 문제는 '배송 지연' 상태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르다와 마리아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시던 가족이었습니다. 오빠 나사로가 죽어간다는 급보를 보냈을 때, 그들은 당연히 주님이 모든 일을 제쳐두고 달려오실 줄 믿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움직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절박할 때 느껴지는 하나님의 침묵은 마치 우리의 기도를 '읽고 무시하는(읽씹)' 냉담함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여러분, 혹시 오늘 새벽 "새벽 배송보다 늦은 하나님의 응답" 때문에 상처받은 마음으로 이 자리에 앉아 계시지는 않습니까? "남들은 다 잘 풀리는 것 같은데, 왜 내 인생의 골든타임만 속절없이 흘러가는가"라는 박탈감이 우리를 괴롭힐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충격적인 진실을 알려줍니다. 주님은 사랑하지 않아서 늦으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기다림'이라는 선물을 준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본론: 위기를 영광으로 바꾸는 세 가지 하늘 원리 1. 사랑하기 때문에 기다리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5절과 6절에는, 어쩌면 답답하게 느껴지는 예수님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요한복음 11: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