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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묵상] 요한복음 20장 1절-18절, 빈 무덤, 새 창조의 시작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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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60장, 무덤에 머물러 새 찬송가 162장, 부활하신 구세주 서론: 에덴의 상실과 인생의 짙은 어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약성경 창세기 3장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의 동산, 에덴을 창설하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이 생명의 정원을 돌보는 제사장적 왕으로 부름받았지만, 뱀의 유혹에 빠져 불순종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인류는 생명의 동산에서 쫓겨났고, 온 땅에는 가시덤불이 돋아났으며, 피할 수 없는 사망과 절망의 저주가 덮였습니다. 에덴을 잃어버린 이후, 인류의 역사는 거대한 무덤을 향해 걸어가는 슬픈 여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20장 1절은 바로 그 절망의 끝자락에서 시작됩니다. "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 마리아는 예수님의 처참한 십자가 처형을 두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날이 채 밝지 않은 물리적인 시간으로서의 새벽 어둠보다 더 짙고 차가운, 영적인 무지와 슬픔의 어둠에 갇혀 있었습니다. 본론 우리 성도님들의 삶에도 이런 '아직 어두울 때'가 찾아오지 않습니까? 예기치 않은 질병, 경제적인 붕괴,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이라는 '상실감' 앞에서 우리는 캄캄한 무덤 곁에 서 있는 것 같은 끔찍한 절망을 경험합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사랑했던 예수님이 영원히 죽어 과거의 기억 속에만 머물러 있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시신마저 도둑맞았다는 착각 속에서 숨조차 쉴 수 없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깊은 어둠의 자리, 가장 깊은 무덤 속에서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타내셨습니다. 1. 도굴할 수 없는 생명,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부활 무덤에 달려온 제자 베드로와 요한이 발견한 것은 참담한 시신 훼손의 현장이 아니었습니다. 본문 6절과 7절은 이렇게 증언합니...

[3월 6일 묵상] 요한복음 11장 1절-16절, 사랑으로 기다리시는 나의 하나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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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새 찬송가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서론: 기다림이 사라진 시대, 하나님의 '읽씹'? 현대인의 인스탄트식 사랑은 모든 것을 '즉시'와 '속도'로 평가하곤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상대가 원하는 것을 바로 들어주고, 메시지를 보내면 1분 안에 답장이 와야 하며, 배달 음식조차 도착 예정 시간을 넘기면 사랑의 온도가 식었다고 오해하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인스탄트 공식'을 대입합니다. "주님, 내가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사랑을 고백하는데, 왜 내 삶의 문제는 '배송 지연' 상태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르다와 마리아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시던 가족이었습니다. 오빠 나사로가 죽어간다는 급보를 보냈을 때, 그들은 당연히 주님이 모든 일을 제쳐두고 달려오실 줄 믿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움직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절박할 때 느껴지는 하나님의 침묵은 마치 우리의 기도를 '읽고 무시하는(읽씹)' 냉담함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여러분, 혹시 오늘 새벽 "새벽 배송보다 늦은 하나님의 응답" 때문에 상처받은 마음으로 이 자리에 앉아 계시지는 않습니까? "남들은 다 잘 풀리는 것 같은데, 왜 내 인생의 골든타임만 속절없이 흘러가는가"라는 박탈감이 우리를 괴롭힐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충격적인 진실을 알려줍니다. 주님은 사랑하지 않아서 늦으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기다림'이라는 선물을 준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본론: 위기를 영광으로 바꾸는 세 가지 하늘 원리 1. 사랑하기 때문에 기다리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5절과 6절에는, 어쩌면 답답하게 느껴지는 예수님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요한복음 11:5-6, ...

[2월 12일 묵상] 요한복음 4장 43절-54절, 표적을 구하는 신앙에서 믿는 신앙으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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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542장, 구주 예수 의지함이 새 찬송가 35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서론: "보이지 않는 신호를 신뢰하는 능력" 최근 한 경제 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현대 사회를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로 ' 비대면 신뢰 기술(Trust Tech) '이 꼽혔습니다. 특히 '원격 수술'이나 '자율 주행' 기술의 핵심은 내가 눈으로 직접 보고 있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데이터와 신호가 정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기사는 이렇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이제 눈앞의 실체보다 전송되는 신호를 더 믿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신앙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기술은 보이지 않는 신호를 믿으며 발전하는데, 정작 우리의 영성은 여전히 '눈에 보이는 표적'이 없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이러한 인간의 모습은 구약성경 열왕기하 5장에 등장하는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의 사건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나아만은 자신의 나병을 고치기 위해 엘리사를 찾아왔을 때, 엘리사가 밖으로 나와 화려한 손동작을 하며 안수 기도를 해줄 것이라는 '보이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얼굴도 비추지 않은 채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말씀'만 던집니다. 나아만은 분노합니다.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손을 흔들어 고칠까 하였도다." 그는 표적을 원했지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한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본론 오늘 본문의 왕의 신하 또한 나아만과 같은 한계에 부딪혀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직접 가버나움까지 '내려오셔서' 아들을 만져주셔야만 병이 나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와 동행하는 대신, 오직 단 한 마디의 신호, 즉 말씀을 던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