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이 실로암인 게시물 표시

[3월 1일 묵상] 요한복음 9장 1절-12절, 불행의 원인을 묻는 인생에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이미지
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새 찬송가 445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서론: '왜'라는 질문에 갇힌 현대인의 초상 현대인의 가장 큰 고민은 단연 ‘ 불확실성 ’과 그로 인한 ‘ 인과관계에 대한 집착 ’입니다. 우리는 공정한 세상에 산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뜻하지 않은 고난이 닥치면 본능적으로 그 원인을 과거에서 찾으려 애를 씁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병에 걸렸을까?", "우리 아이가 방황하는 건 내가 기도가 부족해서일까?", 혹은 "직장에서의 이 갑작스러운 퇴사가 내 역량 부족 때문일까?"라는 자책 섞인 질문들이 우리를 밤잠 설치게 합니다. 특히 재테크 실패나 자녀 교육 문제, 혹은 갑작스러운 건강 검진 결과 앞에서 우리는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가"를 따지며 스스로를 정죄하거나 타인을 원망하는 감정의 굴레에 빠지곤 합니다. 본론: 어둠을 이기고 나타나는 하나님의 일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들의 질문도 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고 그들은 "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라고 묻습니다. 고통을 오직 '심판'이나 '인과응보'의 틀로만 해석하려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은 우리의 이 낡은 질문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으십니다. 1. 과거의 '원인'이 아닌 미래의 '목적'을 선포하십시오.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3절입니다. 요한복음 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주님은 지금 제자들의 시선을 '과거의 죄'에서 '미래의 영광'으로 옮겨놓고 계십니다. 세상은 불행을 보면 과거를 캐묻습니다. 원인을 규명해야...

요한복음 9장 13절-41절, 예수님을 향한 다양한 고백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이미지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실로암 연못에 가서 진흙이 발라진 눈을 씻고 밝히 보게 된 맹인은, 바리새인들에게 불려 와 조사를 받게 됩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9:13-41의 말씀에는, 예수님을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사람들, 망설이는 사람들, 담대하게 고백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9장 13절-41절, 예수님을 향한 다양한 고백들 서론 우리는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9:13-41의 말씀에 나타난 맹인의 치유 사건을 통해 예수님과 바리새인들 사이의 시각 차이를 보게 됩니다. 이러한 차이는 같은 성경을 읽어도 우리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바리새인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성경의 진리를 왜곡했습니다. 그들은 맹인이 고침받은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안식일에 일어난 일이라는 이유로 예수님을 정죄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글자를 지키는 데에만 집착하며 그 본질을 잃어버렸습니다. 반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담긴 성경의 참된 의미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맹인을 고쳐주심으로써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드러내셨습니다. 그분은 율법의 형식보다는 사람의 필요를 우선시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성경을 읽어도 우리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얻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기득권과 전통에 집착한다면, 우리는 바리새인들처럼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성경의 참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게 되며,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본론 본문에서 바리새인들은 맹인의 눈을 고쳐 주신 예수님을 향하여 어떤 비난을 하고 있습니까? 첫째, 안식일을 어겼다고 비난하였습니다. 먼저, 본문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맹인을 고치신 사건을 인정하면서도, 안식일을 어겼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리새인들의 억지 비난을 통하여, 안식일의 참...

요한복음 9장 1절-7절, 실로암으로 보내신 이유 - 주일 설교

이미지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신 예수님은,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을 고치셨습니다. 주님은 맹인을 실로암으로 보내시며 눈을 씻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9:1-7의 말씀은,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실로암에 주께서 보내신 이유에 대한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9장 1절-7절, 실로암으로 보내신 이유 - 주일 설교 서론 예수님께서는 길거리에서 눈먼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눈에 진흙을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명하셨습니다. 그가 순종하자 눈이 밝아졌습니다. 이 사건은 영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도 영적으로 소경인 상태에 있습니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으로, 우리가 주님께 보냄을 받은 자들임을 뜻합니다.  본론 만일 우리가 영적 소경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낮은 마음으로 주님을 만나는 법 실로암 못은 예루살렘에서 가장 낮은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가서 눈을 씻는다는 것은 가장 낮은 곳에 무릎을 꿇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께서 소경에게 실로암 못으로 가라고 하신 것은 가장 낮은 마음, 겸손한 마음을 가지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셨습니다. 구유에 태어나셨고 가난한 나사렛에서 살았으며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주님은 가장 낮은 마음의 소유자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높은 마음으로는 주님을 뵐 수 없고, 오직 낮은 마음을 갖출 때에만 밝은 눈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낮은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섬기는 마음,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도 섬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마음을 갖게 되면 우리를 섬기시는 주님을 뵙게 됩니다. 둘째, 섬김의 삶으로 주님을 증거하는 법 우리 교회에는 전문 청소부가 없이 직접 청소하고 정돈합니다. 그 이유는 서로를 섬기기 위함입니다. 섬김의 삶을 살아야 참된 예배가 가능합니다. 예배는 찬송과 설교만으로는 부족하며, 반드시 섬김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가난하고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