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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 묵상] 창세기 47장 27절-48장 7절, 고센의 풍요 속에서 가나안을 꿈꾸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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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새 찬송가 491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서론: 진짜 가야 할 고향을 아는 나그네 인생이라는 긴 여행길을 걷다 보면, 가끔 길가에 핀 아름다운 꽃에 마음을 빼앗겨 걸음을 멈추곤 합니다. 혹은 여행을 갔다가 잠시 머무는 호텔 방이 너무 아늑해서, 아예 그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은 없으신가요?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안락한 의자'를 원합니다. 저도 큰 창 앞에 흔들의자를 두고서 천천히 흔들거리는 의자에 앉아서 창 밖을 바라보는 삶을 꿈꿉니다. 이처럼, 힘겨운 일상 속에서 내 몸 하나 편히 뉘일 공간,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재정과 환경을 갖추는 일은 우리 삶의 중요한 목표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속 이스라엘 가족들이 바로 그러한 달콤한 안정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47장 27절은 이스라엘이 애굽 고센 땅에 머무르며 그곳에서 생업을 얻고 생육하며 번성했다고 기록합니다. 기근을 피해 도망치듯 내려온 피난길이었는데, 요셉의 은덕으로 애굽에서 가장 기름진 고센 땅을 차지하고 큰 부를 일구었습니다. 자녀들도 많아졌고, 삶은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해졌습니다. 삶이 이 정도로 안정되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아, 여기가 좋사오니, 그냥 여기서 평생 살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고센 땅은 그들에게 더 이상 임시 거처가 아니라, 영원히 머물고 싶은 안식처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는 147세가 되어 죽음을 눈앞에 둔 한 노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는 바로 야곱입니다. 그는 고센 땅의 풍요로움에 취해 잠들어 있던 이스라엘 가족들의 영혼을 깨우는 장엄한 선언을 던집니다. "나를 애굽에 장사하지 말라.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야곱은 지금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것일까요? 화려하고 안락한 애굽을 두고, 왜 굳이 멀고 황량한 가나안 땅의 막벨...

[1월 24일 묵상] 창세기 18장 1절-15절, 일상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법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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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539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새 찬송가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서론: 나른한 오후, 뜻밖의 방문객 새벽을 깨우며 주님 앞에 나오신 성도 여러분, 오늘도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갑니다. 때로는 그 일상이 너무 분주해서, 때로는 너무 지쳐서 영적인 감각이 무뎌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도 그렇습니다. "날이 뜨거울 때에"(1절)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팔레스타인의 정오, 모든 활동이 멈추고 더위를 피해 그늘로 들어가며, 나른함이 몰려오는 시간입니다. 아브라함도 장막 문에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가장 평범하고, 어찌 보면 가장 영적으로 나태해지기 쉬운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기도를 드릴 때만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설거지 통 앞에 서 있을 때, 꽉 막힌 출근길 차 안에서 한숨 내쉴 때, 지쳐서 소파에 누워있을 때, 바로 그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으로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부지중에 찾아오시는 주님을 어떻게 영접해야 할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 말씀의 깊이 속으로 1. 부지중에 오시는 주님을 '달려가' 영접하십시오 아브라함은 정오의 더위 속에서도 길 위의 세 사람을 보자마자 어떻게 하였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창세기 18: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달려가서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다시 말해서 최선을 다하여 맞이했습니다. 그는 그들이 하나님인지 천사인지 처음엔 몰랐을 것입니다. 그저 도움이 필요한 나그네로 보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영성은 '부지중에' 일어난 만남을 '최고의 섬김'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고운 가루 세 스아를 반...

[1월 23일 묵상] 창세기 17장 1절-27절, 비웃음을 기쁨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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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새 찬송가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보여도 서론: 침묵의 미학, 기다림의 가치 사회심리학에는 ‘ 시간적 비일관성(Hyperbolic Discounting) ’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보상이 멀리 있을수록 그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당장 눈앞에 있는 작은 성과에 쉽게 굴복하는 인간의 본성을 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거대한 ‘이삭’을 기다리기보다, 지금 당장 내 결핍을 채워줄 ‘이스마엘’이라는 대안에 집착하곤 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조급함은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때도 나타납니다. 주님은 곧장 달려가지 않으시고 “이틀을 더 유하시며” 의도적인 침묵을 선택하셨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주님의 늦장 대응에 절망하며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이라며 원망했지만, 예수님은 인간의 골든타임을 지나 하나님의 전능함을 드러낼 ‘부활의 타이밍’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본론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 역시 13년이라는 긴 침묵의 터널을 지납니다. 우리는 ‘ 새벽 배송 ’처럼 즉각적인 응답이 없으면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다며 불안해합니다. “ 내 노력이 다 물거품이 된 건 아닐까? ”라는 생각에 밤잠 설쳐본 적 없으신가요? 이러한 성과 지향적 신앙은 우리를 영적 탈진으로 몰아넣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가능성이 0%가 된 99세에 나타나 ‘엘 샤다이’의 역사를 선포하십니다. 1. 인간의 소망이 멈출 때, 하나님의 전능함이 시작됩니다. 아브라함에게 닥친 13년의 침묵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인간의 '자기 의'가 죽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86세에 얻은 이스마엘을 보며 그것이 최선이라 믿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생물학적 가능성이 완전히 메마른 99세에 나타나셨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창세기 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99세라는 숫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