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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일 묵상] 고린도전서 14장 20절-40절,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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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83장, 빈 들에 마른 풀 같이 새 찬송가 184장, 불길 같은 주 성령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고린도교회는 하나님 앞에 모였지만 어느새 하나님보다 자기 표현이 더 커졌습니다. 은사는 많았지만 덕은 세워지지 않았고, 열심은 있었지만 예배는 흐트러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라고 말하고, 마지막에는 “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라고 권면합니다. 사실 우리도 비슷합니다. 예배 자리에 나와도 마음은 여전히 분주합니다. 관계의 피로, 생활의 무게, 미래에 대한 불안, 쌓인 감정 때문에 하나님보다 내 생각이 더 크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말씀보다 내 기분이 앞서고, 공동체보다 내 방식이 더 중요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예배는 하나님을 드러내기보다 나를 드러내는 시간이 되기 쉽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의 예배는 누구를 드러내고 있느냐?” 오늘 이 질문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길 원합니다. 그리고 한 문장으로 오늘 말씀을 붙들면 이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나를 드러내지 않고, 교회를 세웁니다. 본론 1. 성숙한 예배는 사람의 시선을 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하나님 앞에 세웁니다. 바울은 먼저 “아이와 같이 되지 말고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20절 말씀을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4: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은사가 없다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은사가 많았습니다. 문제는 그 은사를 성숙하게 사용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자기 체험을 앞세우고, 공동체의 유익보다 자기 표현을 더 크게 여겼습니다. 그 결과 예배가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방언과 예언의 열매를 비교합니다. 해석 없는 방언은 외부인에게 낯설게 들리고, 심지어 “미쳤다”는 반응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들...

[6월 9일 묵상] 고린도전서 6장 1절-11절,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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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20장, 사랑하는 주님 앞에 새 찬송가 218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서론: 밤새 나를 괴롭히던 생각과 마음의 응어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밤 편안하게 주무셨습니까? 혹시 밤사이 마음에 걸리는 누군가의 얼굴 때문에, 혹은 억울하고 속상한 일 때문에 잠을 설치지는 않으셨는지요. 살아가다 보면 참 다양한 아픔을 겪게 됩니다. 자녀들이 상속 문제로 서로 등지기도 하고, 평생을 믿었던 이웃이나 심지어 동역자에게 속아 억울한 눈물을 흘릴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본능적으로 분노가 솟구칩니다. "내가 왜 가만히 있어야 해? 내 권리를 찾고야 말겠어!" 이런 생각에 법의 힘을 빌려서라도 상대를 꼼짝 못 하게 만들려고 법원으로 달려가기도 합니다. 요즈음 한국 교회 안에서도 목회자와 성도 간에, 성도와 성도 간에 법정에 고소고발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고린도 교회 사정도 이와 비슷했습니다. 은혜도 많이 받고 은사도 풍성했지만, 정작 삶의 현장에서는 아주 사소한 이권 다툼과 자존심 싸움 때문에 갈라져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 법정으로 달려가 형제를 고발했습니다. 바울은 이 안타까운 소식에 눈물로 편지를 보냅니다. 오늘 이 아침, 바울을 통해 전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마음의 상처가 아물고, 십자가의 넉넉함을 회복하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론 1. 우리의 진짜 정체성을 기억하십시오. 바울은 먼저 다툼을 안고 세상으로 뛰어가는 성도들에게 묻습니다. 우리의 진짜 신분이 얼마나 귀하고 위대한지 알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본문 2절과 3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6:2-3,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누가복음 12장 49절-59절, 분열을 넘어 화평으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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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9일 수요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은 누가복음 12장 49절-59절로, 평소의 예수님의 모습과는 다른 다소 과격한 내용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시지만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 중에는 불가피하게 분열과 다툼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을 큐티하고 분열을 넘어 화평으로 나아가야 함을 새벽설교로 정리하고 나눕니다. 누가복음 12장 49절-59절, 분열을 넘어 화평으로 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323장,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새 찬송가 352장, 십자가 군병들아 서론 성도 여러분, 오늘 새벽에도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들을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을 묵상하며 우리의 믿음을 굳건히 다져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다소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오셨다고 흔히 생각하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오히려 분열을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론 첫째, 불을 던지러 오신 예수님 먼저, 49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2: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이 말씀은 우리의 일반적인 예수님에 대한 이미지, 사랑과 인자하심이 충만하신 모습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왜 불을 던지러 오셨다고 말씀하실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불은 단순한 파괴적인 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던지시는 불은 우리의 낡은 가치관과 죄악을 태우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변화와 심판의 불을 의미합니다. 철을 제련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불순물이 섞인 철이 뜨거운 불 속에서 녹아내릴 때 불순물이 분리되고 순수한 철만 남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던지신 불은 우리 삶의 불순물을 태워 없애고 순수한 믿음만을 남기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일 수 있지만, 결국에는 우리를 정결하고 온전하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때로는 주의 말씀이 지키기 어렵...

마태복음 10장 34절-42절,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 - 매일성경 강해 주석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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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큐티의 본문인 마태복음 10장 34절부터 42절까지의 말씀은, 복음 때문에 생기는 갈등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고 주를 따라가는 자들만이 참된 제자들이며, 주께서 영접해 주실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4절-42절,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 34절, 강해 주석 해설 내가 … 온 줄로 생각지 말라 예수 당시 많은 사람들은 메시아가 와서 정치적 해방과 물질적인 번영을 가져야 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예수는 바로 이 같은 그릇된 기대들을 일거(一擧)에 거부하시면서 당신이 이 땅에 오신 참된 목적을 피력(披瀝)하셨다. 화평이 아니요 이 어구는 마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순전히 불화(不和)와 반목(反目)을 일으키기 위함인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화평에 대한 유대인들의 개념을 이해하게 되면 쉽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즉 화평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샬롬’이고, 헬라어로는 ‘에이레네’이다. 유대인들은 영적 문제이든 세속적 문제이든 온갖 종류의 복을 기원할 때 이 말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이 세상의 모든 번영이 유대 땅을 중심으로 해서 꽃피울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예수께서 본문에서 화평을 주러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우리는 이를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바로서의 화평, 즉 현상적(정치, 경제 등)이고 외적인 평화를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실로 예수는 본질적(하나님과 인간의 화목, 요일 4:10)이고 내적인 평화를 선사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또한 이 말씀은 신앙으로 생기는 외부적 박해나 갈등을 의미할 수 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공회에 넘겨주겠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며(마 10:17), 그들은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갈 것이다(마 10:18). 장차 신앙 때문에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고,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