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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일 묵상] 요한복음 12장 1절-11절, 십자가를 준비하는 아름다운 헌신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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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211장,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새 찬송가 311장, 내 너를 위하여 서론: 이익만을 찾는 인생, 옥합을 깨뜨리는 신앙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차가운 새벽 공기를 뚫고 주님 앞에 나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시는 엄숙한 걸음의 서곡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살면서 ‘가성비’ 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적은 비용을 들여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척도가 된 시대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어느덧 우리의 영성 안에도 깊숙이 침투해 있습니다. "이 정도 기도하면 응답하시겠지?", "이 정도 봉사하면 복 주시겠지?"라는 식의 ‘계산기 신앙’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 계산기 신앙의 정점에 서 있는 한 사람과, 그 계산기를 완전히 내버린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본론: 세 가지 관점으로 본 헌신과 갈등 베다니의 한 잔치 자리, 그곳에는 죽음에서 살아난 나사로가 있었고, 분주히 섬기는 마르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잔치의 분위기를 완전히 뒤바꾼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마리아의 돌발적인 행동입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는 마리아가 깨뜨린 옥합에서 흐르는 향기를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 순전한 예배 '의 본질이 무엇인지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1. 계산을 멈출 때 시작되는 진정한 예배 먼저, 우리 함께 3절을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합니다. 첫째는 그 가치입니다. 순전한 나드 한 근은 당시 노동자의 일 년 치 임금인 '300데나리온'에 해당합니다. 오늘날로 치면 수천만 원에 달하는 ...

누가복음 10장 25절-42절, 섬김과 듣는 것 사이에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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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일 화요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누가복음 10장 25절-42절의 말씀을 읽고 큐티하고, "섬김과 듣는 것 사이에서"라는 주제를 정하였습니다. 마르다는 섬김에 집중했지만, 마리아는 섬김보다 말씀을 듣는 일에 우선 순위를 두었습니다. 이 모습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설교문을 작성하여 나눕니다. 누가복음 10장 25절-42절, 섬김과 듣는 것 사이에서 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새 찬송가 50장,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율법교사, 마르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께서는 영생을 얻는 방법을 묻는 율법사에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라고 답하십니다. 본문의 2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누가복음 10: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지만 율법사는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고 질문하며, 율법의 경계 안에서 자신의 의를 지키려 합니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이웃 사랑의 범위를 더욱 넓히셨고, 참된 이웃은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긍휼을 베푸는 자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지만 율법사는 자신의 편견과 이기심을 드러내며, 율법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합니다. 마르다 역시 예수님을 섬기는 일에 분주하며 염려합니다. 섬김 자체는 귀하지만, 마르다는 염려와 근심에 사로잡혀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결국 마리아를 비난하며 예수님께 불평합니다. 반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경청합니다. 마리아는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 예수님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선택합니다. 우리 또한 율법사나 마르다처럼, 율법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분주함 속에서 예수님을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누구를 이웃으로 여기며, 삶에서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습니까? 혹시 섬김에 매몰되어 정작 예수님과의 관계는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새벽, 우리 삶의 중심을 다시 점검해 봅시다. 분주함과 염려, 이웃 사랑의 부재 ...

마가복음 10:32-45,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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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 번째의 수난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러나 3월 11일의 매일성경 묵상 본문인 마가복음 10:32-45에서는, 제자들이 여전히 높은 자리만을 탐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주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밝히셨습니다. 본문을 묵상하고 새벽예배설교문으로 정리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0:32-45,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47장, 이 세상 끝 날까지 새 찬송가 323장,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나폴레옹의 야망 프랑스의 제1제국의 황제였던 나폴레옹은, 어려서부터 야망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급 귀족 가문의 출신이었지만 황제에 대한 야망을 가졌던 사람이었기에, 황제가 되기 위해 많은 전쟁을 치뤘습니다. 유럽의 강대국들과 싸워 많은 승리를 거두며 프랑스를 강력한 국가로 만들었지만, 결국 러시아 원정 실패와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그의 야망은 꺾이고 말았습니다. 이후에는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되어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나폴레옹과 같이 유명한 인물이자 위인 전기의 단골인 인물도, 그의 야망을 완전히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이 땅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은 허전하게 떠나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권력과 야망과 욕망들은, 솔로몬이 말한 바와 같이 헛되고 헛됨을 보여 주는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여전히 이러한 야망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주의 제자들입니다. 본론 :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던 예수님은, 장차 예루살렘에서 맞이하시게 될 고난과 부활 사건에 대해 세 번째로 예고하셨습니다. 하지만, 야고보와 요한은 어리석게도 예수님의 좌우편이라는 높은 자리를 요구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높은 자가 되려면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주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대속물이 되기 위해서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본문의 핵심적인 내용은 다음의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제자들의 야망 고난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던 예수님...

마가복음 10:32-45, 도리어 섬기려 하고 - 매일성경 큐티 구조와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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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일 월요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은 마가복음 10:32-45의 말씀으로, 마가복음 전체의 가장 핵심적인 구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섬기고 나누시는 죽음의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시는데, 제자들은 여전히 높은 자리만을 탐하는 어리석음을 보여 줍니다. 본문의 내용을 큐티하고 새벽설교를 준비하기 위한 구조와 주석을 정리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0:32-45, 도리어 섬기려 하고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47장, 이 세상 끝 날까지 본문의 구조 1. 십자가를 향해 가시는 예수님 (32-34절)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장 서서 걸어가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죽으시고 고난을 당하시며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이 모든 과정들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2. 높은 자리를 탐내는 제자들 (35-40절)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시는 예수님과는 달리, 세베대의 아들 야고와 요한은 높은 자리를 주시길 예수님께 간구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두 제자뿐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동일한 생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좌우편의 자리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도리어 섬기려 하고 (41-45절) 세상의 높은 자리만을 탐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신의 생명을 인류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본문의 주석 1. 10:32 주석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한 여정은 계속됩니다(1, 17; 8:27; 9:2, 30, 33-34). 예루살렘으로 가는 동쪽 길은 도시의 고도 때문에 오르막길입니다. 예수님은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2. 10:33-34 주석 이것은 예수님의 세 번째이자 가장 자세한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신 것은 제자들을 더욱 두렵게 했을 것입니다. 이 마지막 예언에서 예수님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