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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9장 1절-34절, 기적 후에 주신 사명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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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9:1-34의 말씀에는, 나면서부터 보지 못하는 맹인이 예수님을 만나고 실로암에 가서 눈을 씻는 장면, 그리고 예수님을 시기한 유대인들이 맹인되었던 자를 심문하는 장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적 후에 맹인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9장 1절-34절, 기적 후에 주신 사명 서론 초등학교 시절로 기억이 됩니다. 여름성경학교의 프로그램 중에, 천로역정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중에, 두 명 씩 짝을 지어 무덤이 있는 근처의 장소까지 갔습니다. 그 곳에는 이미 두세 팀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덤 옆에는 나무로 만든 두 개의 관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선생님께서 "이제부터 한 사람씩 이 관에 들어가서 60초 동안 죽은 사람이 되어 보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살아 있지만, 관에 들어간다는 것이 너무나도 무서웠습니다. 두려움 속에서 관에 들어가 누웠더니, 관 뚜껑을 "쾅"하고 닫으시고 망치로 못질을 하는 소리까지 들렸습니다. 실제로 못을 박아서 봉인한 것은 아니지만, 관 뚜껑 소리와 망치 소리에 두려움도 잠시였습니다. 금방 주변이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 졌고, 저 역시 관 속에서 죽음이 무엇인지 잠시나마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경험하기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먼저 경험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을 살아간다는 사실에 감사해야만 합니다.   본론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9:1-34의 말씀에는 우리는 결코 경험해 보지 못한 고통을 겪었던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했던 사람으로, 어둠 속에 살아가다가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복음에는 인과응보 법칙이 아닌 은혜의 법칙이 적용됨을 보여 줍니다. 제자들은 맹경의 원인을 죄의 탓으로 돌렸지만, 예수님은 이 사람이나...

요한복음 9장 1절-7절, 실로암으로 보내신 이유 -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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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신 예수님은,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을 고치셨습니다. 주님은 맹인을 실로암으로 보내시며 눈을 씻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9:1-7의 말씀은,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실로암에 주께서 보내신 이유에 대한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9장 1절-7절, 실로암으로 보내신 이유 - 주일 설교 서론 예수님께서는 길거리에서 눈먼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눈에 진흙을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명하셨습니다. 그가 순종하자 눈이 밝아졌습니다. 이 사건은 영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도 영적으로 소경인 상태에 있습니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으로, 우리가 주님께 보냄을 받은 자들임을 뜻합니다.  본론 만일 우리가 영적 소경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낮은 마음으로 주님을 만나는 법 실로암 못은 예루살렘에서 가장 낮은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가서 눈을 씻는다는 것은 가장 낮은 곳에 무릎을 꿇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께서 소경에게 실로암 못으로 가라고 하신 것은 가장 낮은 마음, 겸손한 마음을 가지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셨습니다. 구유에 태어나셨고 가난한 나사렛에서 살았으며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주님은 가장 낮은 마음의 소유자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높은 마음으로는 주님을 뵐 수 없고, 오직 낮은 마음을 갖출 때에만 밝은 눈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낮은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섬기는 마음,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도 섬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마음을 갖게 되면 우리를 섬기시는 주님을 뵙게 됩니다. 둘째, 섬김의 삶으로 주님을 증거하는 법 우리 교회에는 전문 청소부가 없이 직접 청소하고 정돈합니다. 그 이유는 서로를 섬기기 위함입니다. 섬김의 삶을 살아야 참된 예배가 가능합니다. 예배는 찬송과 설교만으로는 부족하며, 반드시 섬김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가난하고 처...

마가복음 10:46-52, 외치는 자에게 응답하시는 예수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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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시게 되었습니다. 마침 거기에는 맹인 거지였던 바디매오가 있었고, 그는 믿음으로 예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 10:46-52는, 가장 비참한 상황의 그의 기도에 응답하신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3월 12일 묵상 본문을 큐티하고 새벽예배 설교문으로 정리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0:46-52, 외치는 자에게 응답하시는 예수님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59장, 누가 주를 따라 새 찬송가 368장, 주 예수여 은혜를 내려 주사 본문의 개요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 길 가에 앉아 있던 맹인 거지 바디매오라는 사람이 예수님이시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는 즉시 소리를 높여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칩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시자, 바디매오는 즉시 자신의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예수님께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원하는 바를 물으셨고, 바디매오는 믿음으로 보기를 원한다고 고백합니다. 주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고치시고 그는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본문에서 바디매오가 보였던 세 가지의 모습을 살펴보고 우리가 깨닫게 되는 진리를 찾고자 합니다. 본론 : 외치는 자에게 응답하시는 예수님 바디매오는 오늘 본문에서 어떤 세 가지의 놀라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모습들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첫째,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바디매오는 자신의 형편과 처치를 알았습니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그로 인해 스스로 일할 수 없었기에 거지였습니다. 육신의 질병에다가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짊어지고 있는, 그야말로 불쌍한 인생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사렛 예수시라는 말을 듣고 무엇이라고 외치고 있습니까? 47절입니다. 마가복음 10: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바디매오는 예수님께 자신을 "불쌍히"(ἐλεέω, 엘레에오) 여겨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는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 즉...

마가복음 10:46-52, 길 가에서 길 위로 - 매일성경 큐티 구조와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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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2일 화요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은 마가복음 10:46-52의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여리고에서 바디매오를 고치신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8장에서 맹인을 고치시던 장면과는 달리, 본문에서는 말씀으로 바디매오를 고치셨고 그는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본문의 큐티와 새벽설교를 위한 구조와 주석을 정리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0:46-52, 길 가에서 길 위로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59장, 누가 주를 따라 본문의 구조 1. 주를 부르는 바디매오 (46-47절)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 바디매오라는 한 맹인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님을 부르며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가 이미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며, 자신도 고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 더욱 더 크게 주를 부르는 바디매오 (48-50절) 바디매오가 소리치자 사람들은 그를 꾸짖고 잠잠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만이 자신을 고치실 것임을 알았던 바디매오는 더욱 크게 소리 치며 예수님을 부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부르시자, 그는 즉시 뛰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3. 보기를 원하나이다 (51-52절) 예수님 앞에 나온 바디매오는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고쳐 주셨습니다. 앞을 보게 된 그는 예수님을 길에서 따릅니다. 본문의 주석 1. 10:46-52 주석 마가는 8장에서 맹인에 대한 이야기로 길에서의 여정을 시작하였고, 오늘 본문에서 맹인의 이야기를 통하여 길에서의 사건을 끝냅니다. 본문에서는 맹인이지만 볼 수 있는 사실과, 제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볼 수 없는 사실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2. 10:46 주석 여리고 성은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30여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해발 200미터 아래에 위치해 있는 도시였습니다. 큰 무리는 유월절 순례자들로 구성되었습니다. 3. 10:47-48 주석...

마가복음 8:14-26, 보지 못하는 제자들 - 매일성경 큐티 구조와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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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 토요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은, 마가복음 8:14-26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배를 타고 가시며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누룩을 조심하라 말씀하셨으나, 제자들은 이해하거나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한 맹인을 두 번의 안수를 통하여 고쳐 주셨습니다. 본문의 큐티와 새벽설교 준비를 위한 구조와 주석을 정리하였습니다. 마가복음 8:14-26, 보지 못하는 제자들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524장,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본문의 구조 본문인 마가복음 8:14-26에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제자들은 단순히 떡이 없어서라고 수군거리기만 합니다. 이후, 벳새다에서 한 맹인을 두 번에 걸쳐 안수해 주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1. 주의 가르침을 오해한 제자들 (14-16절)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오해하고 있습니다. 헤롯과 바리새인들의 잘못을 범하지 말라는 의미로 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문자 그대로의 떡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2. 마음이 둔한 제자들 (17-21절) 예수님께서는 거듭해서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표적을 보고서도 예수님의 능력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이적을 직접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깨닫는 바가 없어 예수님이 답답해 하십니다. 3. 맹인을 고치시는 예수님 (22-26절) 예수님께서는 벳새다에서 한 맹인을 고치십니다. 예수님은 두 번에 걸쳐서 맹인을 안수하시고 그의 눈을 회복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고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의 주석 1. 8:14 주석 빵 한 덩어리로는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먹일 수 없었습니다. 2. 8:15 주석 예수님의 두 번의 경고는 강한 훈계를 나타냅니다. 누룩은 스며들고, 퍼지고, 자랍니다. 그것은 악이나 부패를 상징합니다(고전...

마태복음 9장 27절-38절, 긍휼히 여기시는 목자 - 매일성경 강해 주석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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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큐티의 본문인 마태복음 9장 27절부터 38절까지의 말씀은, 앞을 못 보는 맹인들과 귀신 들려 말을 못하는 자를 예수님께서 고쳐 주신 내용입니다. 이들의 상황은 목자 없이 방황하는 양들의 모습과 같음을 예수님은 안타깝게 여기셨습니다. 마태복음 9장 27절-38절, 긍휼히 여기시는 목자 27절, 강해 주석 해설 거기서 떠나 가실새 예수께서는 회당장의 딸을 살리신 후 그의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고 있었다. 다음 절(28절)에 언급된 ‘집’이란 말에는 정관사가 붙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위치해 있는 자신의 거처가 아니면 다시 마태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던 중임을 짐작할 수 있다. 두 맹인이 복음서에는 소경이 치유함을 받고 눈을 뜨는 장면이 가끔 나타난다(20:29-34, 막 10:46-52, 눅 18:35-43, 요 9장). 그런데 마태복음 후반부(20:29-34)에 등장하는 소경 치유 기적은 바디메오라는 소경에게 발생한 것으로서 막 10:46-52과 눅 18:35-43과 평행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본문의 소경 치유 사건과 요한 9장의 실로암 사건과는 각기 별개의 사건이었던 것 같다. 여하튼 팔레스타인 지방에는 동쪽으로부터의 극심한 모래 바람과 거기에다 지면에 수분이 늘 부족한 관계로 일어나는 석회석의 먼지 등으로 인해 소경 및 안질환자가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다윗의 자손이여 유대인들은 이 말을 메시아에 대한 별칭으로 이해하고 있었다(1:1 주석 참조). 그런데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이 호칭으로 불리워진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사야는 메시아 시대의 특징을 지적하면서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 ”(사 35:5 이하)라고 예언한 바 있는데 진정 메시아라면 이사야의 예언과도 같이 자기들의 눈을 밝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여기서 두 가지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은 (1) 이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일 것이라는 견해를 이미 받아들이고 있었으며(요 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