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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6일 묵상] 시편 6편 1절-10절, 밤새 흘린 눈물을 주님이 세고 계십니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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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37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새 찬송가 272장,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서론: 밤새 잠 못 이루는 불면의 침상에서 인생을 살다 보면, 온 세상의 불이 다 꺼진 깊은 밤에 홀로 눈을 뜨고 있는 그런 고독한 밤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마음에는 무기력감과 번아웃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풀리지 않는 삶의 숙제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밤 말입니다. 그럴 때면 침대 매트리스마저 날카로운 바늘방석처럼 느껴집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같은 세상의 상투적인 위로는 차가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갈 뿐, 밤새 땀과 눈물로 젖어가는 베개를 말려주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이 바로 그런 처절한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윗은 영혼과 육체가 완전히 무너지는 듯한 쇠약함 속에서 신음합니다. 더 두려운 것은, 이 극심한 질병과 고통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자신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 같고, 내 울부짖음에 침묵하시는 것 같은 그 영적 어두움이 다윗을 절망의 벼랑 끝으로 몰아갑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의 이 정직한 탄식을 통해, 우리의 비참한 현실 속에서 여전히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본론 1. 자격이 없을 때, 오직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 '헤세드'를 붙잡으십시오 우리는 흔히 고난을 당하면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며 인과응보의 논리에 갇히곤 합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런 벌을 받나", "내가 기도가 부족해서 하나님이 침묵하시나" 하는 생각이 우리를 율법주의적 정죄로 몰아갑니다. 다윗도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2절과 3절을 보십시오. 시편 6:2-3,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다윗의 몸의 기력은...

[4월 9일 묵상] 창세기 22장 1절-24절, 여호와 이레, 소중한 것을 바치는 아침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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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56장,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새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서론: 겟세마네의 밤과 모리아의 아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고요하고 거룩한 새벽, 우리의 영적인 시선을 신약성경 누가복음 22장에 기록된 겟세마네 동산으로 먼저 향해 보기를 원합니다.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을 눈앞에 두고,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땅에 떨어지며 간절히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발견하게 됩니까?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하나뿐인 생명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조차 하나님 아버지의 섭리와 뜻 앞에 온전히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처절하고도 거룩한 '내어드림'의 기도가 바로 죽었던 우리를 다시 살려낸 십자가 구원의 위대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구약성경 창세기 22장의 본문에는, 이 신약의 겟세마네 동산과 너무나도 깊이 맞닿아 있는 가슴 시린 고대 구약의 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바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쳐야만 했던 모리아 산의 아침입니다. 본론 여러분, 우리가 치열하고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며 매일 밤낮으로 새벽잠을 설치게 만드는 근심의 진짜 이유들이 무엇입니까? 자녀의 막막한 진로와 학업 문제, 매월 바닥을 드러내는 재정적인 어려움, 혹은 내 힘과 의학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육체의 깊은 질병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또, 나도 모르게 내 삶의 유일한 희망이자 동아줄로 꽉 움켜쥐고 있는 '나만의 이삭'이 흔들릴 때 우리는 깊은 절망과 두려움에 빠져 허우적거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을, 정작 선물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하는 우리의 연약한 우상숭배적 본성 때문입니다. 오늘 이 새벽, 눈물을 머금고 산을 오르는 아브라함의 무거...

[4월 4일 묵상] 요한복음 19장 31절-42절, 완전한 유월절 어린 양, 예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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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51장, 만 왕의 왕 내 주께서 새 찬송가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 서론: 세상의 눈치를 보던 자에서 십자가의 증인으로 초대 교회의 위대한 전도자였던 사도 바울의 고백을 기억하십니까? 1세기 로마 제국 사회에서 '십자가'는 입에 담기조차 끔찍하고 수치스러운 사형 틀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징표였고, 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실패의 상징일 뿐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십자가를 조롱하고 피할 때,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서 이렇게 폭탄과도 같은 선언을 던집니다. "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 바울은 세상의 조롱과 매맞음, 감옥에 갇히는 끔찍한 위협 앞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오직 십자가만을 당당히 자랑하는 위대한 증인으로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감옥에 갇히거나 채찍에 맞지는 않지만, 매일같이 차가운 세상의 시선이라는 보이지 않는 위협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직장 동료들의 ' 눈치 '를 보며,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짧게 눈만 감았다 뜨는 식사 기도를 하고, 회식 자리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나의 ' 평판 '이 깎이거나 진급에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숨기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의 가치관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영적인 비겁함과 두려움이 우리 내면을 서서히 갉아먹고 있습니다. 본론 그러나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본문의 말씀은, 이처럼 세상이 두려워 꽁꽁 숨어 있던 나약한 제자들이 어떻게 십자가라는 가장 끔찍한 절망 앞에서 완전히 뒤바뀌어 생명을 건 위대한 헌신자로 거듭났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합니다. 십자가에서 완성된 구속의 은혜가 어떻게 우리를 참된 ...

[1월 12일 묵상] 창세기 9장 1절-17절, 심판의 활은 왜 하늘을 향해 있습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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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52장, 나의 죄를 씻기는 새 찬송가 546장,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로운 하루를 여는 이 새벽,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인생의 큰 폭풍우를 만납니다. 노아의 홍수처럼, 모든 것이 쓸려나가는 것 같은 아픔과 절망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폭풍은 결국 지나가고, 우리는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옵니다. 끝까지 참음으로써 폭풍을 이겨 내거나, 시간이 지나가며 저절로 사라지기도 합니다. 혹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폭풍우를 극복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이제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하나?" 막막함이 밀려옵니다. 폭풍은 지나갔지만, 내 안의 연약함과 죄성은 여전히 그대로인 것 같아 두렵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도 해결되지 않은 삶의 무거운 짐을 지고, 여전히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주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진정한 '새로운 시작'의 비밀을 말씀해 주십니다. 본론 오늘 본문은 홍수 심판이 끝나고, 방주에서 나온 노아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언약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오늘 우리의 삶이 새롭게 회복되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1. 새로운 시작은 예배의 회복에서 비롯됩니다. 오늘 본문 9장 1절은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라고 시작합니다.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창세기 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나님은 홍수 이후 인류의 새로운 시작을 축복으로 여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축복의 언약이 언제 주어졌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바로 앞장인 창세기 8장 20절을 보면, 노아가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린 것', 즉 예배였습니다. 1년 넘게 방주 안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습니까? 나오자마자 집을 짓거나, 농사를 짓거나, 앞으로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