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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0일 묵상] 요한복음 18장 12절-27절, 실패하는 제자, 승리하시는 주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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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 새 찬송가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은혜가 가득한 평안한 새벽입니다. 구약성경 다니엘서에는 참으로 귀한 믿음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다니엘의 세 친구 이야기입니다. 바벨론의 강력한 왕 느부갓네살은 거대한 금 신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 앞에 끌려갔습니다. 생명이 오가는 참으로 두려운 심문의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조금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주실 것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왕의 신상에 절하지 않겠습니다." 그들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당당하게 진리를 선택했습니다. 어둠을 이긴 참으로 따뜻하고 아름다운 승리의 장면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와 비슷한 또 하나의 심문 현장을 마주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신 직후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전직 대제사장인 안나스에게 끌려가십니다. 요한복음은 이 어두운 밤의 사건을 아주 독특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안나스 앞에서 심문을 받으시는 ‘예수님의 당당한 모습’을 먼저 보여줍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의 뜰 밖에서 벌어지는 ‘베드로의 세 번 부인’을 교차하여 보여줍니다. 본론 우리는 오늘 이 두 장면을 천천히, 하나씩 번갈아 살펴볼 것입니다. 심문자 앞에서도 진리를 타협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반면 두려움에 빠져 주님을 부인하는 베드로가 있습니다. 이 대조적인 모습을 우리의 마음속 신앙의 노트에 정성껏 기록해 보기를 원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연약함을 정직하게 직면하고, 동시에 우리를 덮으시는 십자가의 변함없이 따뜻한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불의한 심문 앞에서도 당당하신 예수님 먼저 대제사장의 집 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불의한 상황 속에서도 조금도 흔들림 없으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대제사장 안나스는...

[3월 29일 묵상] 요한복음 18장 1절-11절, 스스로 마신 아버지의 잔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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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51장, 만 왕의 왕 내 주께서 새 찬송가 149장,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서론: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인생의 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마지막 식사를 마치시고 겟세마네 동산을 향해 가시는 장면입니다. 본문 1절은 예수님께서 "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가셨다 "라고 기록합니다. '기드론'은 '검은 물, 탁한 물'이라는 뜻으로, 다윗 왕이 압살롬의 배신을 피해 울며 맨발로 건넜던 슬픔의 장소입니다(삼하 15:23). 참된 왕이신 예수님 역시 제자 유다의 배신을 앞두고, 십자가라는 죽음의 그림자가 깔린 이 어두운 계곡을 묵묵히 건너가십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질병의 위기, 재정적 무너짐, 관계의 단절 등 탁한 '기드론 시내'를 건너야 할 캄캄한 밤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종종 그 밤의 두려움에 압도되어 숨거나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오늘 요한복음 속 예수님은 위기 앞에서 피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거룩한 위엄으로 당당히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인생의 캄캄한 밤에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세상의 칼'과, 기꺼이 들어야 할 '아버지의 잔'이 무엇인지 깨닫는 은혜의 새벽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본론 1. 자발적인 헌신과 신성한 위엄 첫째로, 예수님은 무력하게 끌려가신 희생자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내어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유다가 로마 군대와 성전 경비병들을 이끌고 겟세마네 동산에 들이닥쳤을 때, 주님은 어둠 속에 몸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첫 번째 아담은 죄를 짓고 에덴동산의 나무 사이에 숨었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동산에서 친히 나아가 "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라고 물으십니다. 무리가 "나사렛 예수라"라고 답하자, 주님은 " 내로라(에고 에이미, I AM) "라고 선언하십니다. 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18:5, 대답하되 나사렛 예...

[3월 7일 묵상] 요한복음 11장 17절-27절, 죽음을 깨우는 선언,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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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171장, 하나님의 독생자 새 찬송가 164장, 예수 부활 했으니 서론: 현대인이 외면한 죽음, 그 차가운 진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 죽음 '은 철저히 격리되고 소외된 단어입니다. 과거에는 집 마당에서 가족들의 손을 잡고 마지막을 맞이했다면, 이제 죽음은 병원의 하얀 벽과 기계 소리 가득한 중환자실, 그리고 차가운 장례식장 지하실로 숨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마치 '나와는 상관없는 통계'처럼 취급하거나, 의학의 발달로 언제든 미룰 수 있는 '정복 대상'으로 여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 우리 삶에서 보이지 않게 될수록, 죽음에 대한 공포는 더 기괴한 방식으로 우리를 짓누릅니다. 누군가는 죽음을 '완전한 소멸'로 보며 허무주의에 빠지고, 누군가는 죽음 이후의 불확실성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의 쾌락에만 매몰됩니다. 특히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뒤 마주하는 ' 슬픔과 고통 '의 시간 중에 우리는 가장 깊은 절망을 경험하게 됩니다. "조금만 더 일찍 병원에 갔더라면", "그때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는 현대인의 마음속에 거대한 상처와 구멍을 내기도 합니다. 본론: 절망의 자리에 임한 생명의 주 오늘 본문의 마르다 역시 이 현대적인 절망과 맞닿아 있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이미 나흘, 유대인들의 관점으로 보면 영혼마저 몸을 완전히 떠나버린 '절대적 끝'의 시점입니다. 현대 의학이 사망 선고를 내리고 장례 절차가 끝난 것과 다름없는 이 절망의 현장에서, 우리는 "이미 늦었다"는 체념과 마주합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도 이미 ' 마감 기한 '이 지나버려 악취가 나기 시작한 꿈이나 관계, 혹은 영적인 생명력이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주님은 그 차가운 무덤가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1. "만약에"라는 과거의 감...

[2월 26일 묵상] 요한복음 8장 21절-30절, 당신은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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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새 찬송가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서론: 장대 위의 놋뱀, 그리고 우리의 시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걷다 마음이 상하여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을 때, 그들 진영에 불뱀이 나타났습니다. 치명적인 독에 물려 온 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 죽어갈 때, 하나님은 살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바로 장대 위에 '놋뱀'을 높이 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쳐다보는 자는 살리라." 이 구약의 사건은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들려 올려질 인자'에 대해 미리 보여 주신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아래의 문제' 혹은 '세상의 문제'에 함몰되어 살아갑니다. 어제 마친 업무의 피로가 가시지 않은 채,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스마트폰 알람 소리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만원 지하철과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오늘 하루를 걱정하는 우리 일상의 고단함은, 때로 우리 시선을 하늘이 아닌 발바닥 밑의 흙먼지에만 고정시키게 만듭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잊은 채 당장의 갈증과 결핍에만 매달리는 것, 이것이 바로 본문이 지적하는 인간의 비극적 실존인 '아래에서 난 자'의 모습입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는 독에 물려 죽어가는 자처럼 땅만 보던 시선을 들어, 우리를 위해 높이 들리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본론 1. 소속의 경계 — 당신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유대인들과 자신의 근본적인 차이를 '공간적 기원'으로 설명하십니다. 23절입니다. 요한복음 8: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아래'와 '이 세상'은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기중심성에 갇힌 죄의 영역을 의미합니다. 땅에서 난 자는 땅의 언어만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