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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 묵상] 고린도전서 15장 50절-58절,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12장,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새 찬송가 333장, 충성하라 죽도록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다 보면 죽음이 마지막 말처럼 들릴 때가 있습니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마음은 쉽게 지치고, 오래 붙들고 기도한 일도 금세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날은 이런 생각이 듭니다. “ 내가 이렇게 애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결국 다 사라지는 것 아닌가 .” 그런데 오늘 바울은 그 흔들리는 마음 앞에 아주 분명하게 말합니다. 죽음이 마지막 말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마지막 말씀을 하신다고 말입니다. 바울은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마지막 나팔에 모든 성도가 변화되며, 사망의 독침은 그리스도 안에서 힘을 잃었고, 그러므로 성도의 수고는 주 안에서 헛되지 않다고 선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복음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는 죽음의 두려움과 수고의 허무 앞에서 쉽게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우리를 꾸짖기보다 흔들리는 우리 심령을 먼저 붙들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성도의 끝은 썩음이 아니라 변화이고, 패배가 아니라 승리이며, 허무가 아니라 열매입니다." 본론 1. 성도의 끝은 썩음이 아니라 변화입니다. 바울은 먼저 하나님 나라의 유업에 대해 선언합니다. 5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바울은 몸 자체가 악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와 죽음 아래 놓인 현재의 상태로는 하나님 나라의 충만한 영광을 그대로 감당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썩어짐을 뜻하는 원어 φθορά(프토라)와 썩지 아니함을 뜻하는 ἀφθαρσία(압타르시아)를 대비시켜, 지금 우리의 존재가 유한하고 약하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드러냅니다. 그런데 바울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51절을 통하여 이렇게 선언합니...

[6월 27일 묵상] 고린도전서 15장 35절-49절,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80장, 하나님의 나팔소리 새 찬송가 179장, 주 예수의 강림이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더 자주 묻게 됩니다. “이 몸이 이렇게 약해지는데, 정말 부활이 있을까?” 병원에 다녀오고, 여기저기 쑤시고,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겪고 나면 부활은 교리책의 문장이 아니라 내 현실 속의 질문이 됩니다. 성경에도 그런 질문이 있었습니다. 오늘 35절입니다.  고린도전서 15:35,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이건 장난스러운 질문이 아니라, 두려움이 묻어 있는 질문입니다. 끝이 정말 끝이 아닌지, 무덤이 인생의 마지막 장소인지 묻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 앞에서 바울은 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보게 하고, 그리스도를 보게 하고, 마지막에는 우리를 소망으로 이끕니다. 오늘 우리의 연약함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입술로는 부활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눈앞의 약함과 죽음의 현실 앞에서는 쉽게 흔들립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분명히 말합니다. 성도의 몸은 무덤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흙에 묻힌 몸을 버리지 않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의 몸으로 다시 일으키십니다. 그러니 오늘 말씀 앞에서 이렇게 귀를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내 눈에 보이는 연약함보다, 주님의 약속을 더 크게 보게 하소서.” 본론 1. 하나님은 묻힌 몸을 영광으로 일으키십니다. 36절부터 44절까지 바울은 씨앗의 비유를 들고, 이어서 네 번의 강한 대조로 부활의 몸을 설명합니다. 이 구절들 중에 4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사도 바울은 먼저 말합니다. 씨앗이 땅에 들어갈 때 사라지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거기서 전혀 새로운 생명의 형체를 일으키십니다. 38절의 핵심은 사람의 상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이 “그 뜻대로” 몸을 주...

[6월 26일 묵상] 고린도전서 15장 20절-34절,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62장, 부활하신 구세주 새 찬송가 160장, 무덤에 머물러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죽음 앞에 서면 갑자기 말이 줄어듭니다. 건강 이야기를 할 때는 웃으며 말하다가도, 병원 이야기, 장례식 이야기, 마지막 이야기만 나오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죽음 앞에서는 누구도 담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장년의 시기를 지나는 우리는 이 문제를 더 현실적으로 느낍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고, 주변의 이별 소식이 잦아지고, 어떤 날은 “내 앞에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불쑥 떠오릅니다. 또 죽음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의 허무도 우리를 흔듭니다. 열심히 살았는데 남는 것이 없는 것 같고, 버티며 살아왔는데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날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바울은 바로 그 자리에 복음의 문을 엽니다. 고린도전서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 한 분만의 기적이 아닙니다. 우리의 미래를 여는 사건입니다.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오늘을 함부로 살지 않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해 꼭 붙들어야 할 한 문장이 있습니다. 주님이 살아 계시면, 우리의 미래도 살아 있습니다. 이 진리가 오늘 우리 마음에 다시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본론 1.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미래를 이미 여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첫 열매라는 말은 헬라어 ἀπαρχή(아파르케) 입니다. 단순히 첫 번째라는 뜻이 아닙니다. 뒤따를 수확 전체를 보증하는 첫 열매라는 뜻입니다. 곧, 예수님의 부활은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의 부활을 미리 열어 놓으신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이게 얼마나 큰 위로입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만 살아나셨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 예수님께 속한 자들도 반드시 살게 된다 ”는...

[6월 25일 묵상] 고린도전서 15장 12절-19절, 가장 불쌍한 사람이십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65장, 주님께 영광 새 찬송가 171장,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서론: 부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고요하고 복된 새벽에 하나님의 은혜 보좌 앞으로 한 걸음씩 차근차근 걸어 나오신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밤새 영육의 평안을 주신 하나님께서 오늘 아침에도 변함없이 신실하고 따뜻한 사랑으로 우리를 맞아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세상은 언제나 우리에게 남들과의 경쟁에 대해 말합니다. 하지만, 이 새벽만큼은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서두르지 않고 한 번에 하나씩, 주님의 세밀한 음성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의 마음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밝은 소망으로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마음의 무릎을 꿇고  묵상할 본문의 핵심적인 내용은 ' 부활 '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가장 찬란한 보물이자, 인간이 마주하는 가장 깊은 영적 절망을 영원한 소망으로 바꾸어 놓는 위대한 반전의 단어가 바로 부활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본문의 복음 증언을 통해, 부활의 진리가 우리의 삶 속에 어떻게 은혜를 전해 주는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 1. 우리의 절망감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직면했던 심각한 영적 위기이자 인간 실존의 어두운 절망감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당시 교회 안에는 헬라의 철학적 이성주의와 회의론에 갇혀,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지 어떻게 육체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느냐며 " 죽은 자의 부활은 없다 "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부활을 부정하는 이들의 논리를 격파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 만약 너희 말대로 정말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라는 비참한 가정을 세우고, 부활이 없을 때 마주해야 할 영적 절망의 원인들을 날카롭게 파헤칩니다. 본문 14절에서 바울은 단호한 어조로 선포합니다. 고린도전서 15: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

[6월 24일 묵상] 고린도전서 15장 1절-11절,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새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서론: 어두운 새벽을 밝히는 은혜의 빛 아직 어둠이 다 가시지 않은 이 새벽, 차가운 공기를 뚫고 주님의 제단 앞에 나오신 성도 여러분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어제 하루 여러분의 삶은 어떠셨나요? 직장에서, 혹은 가정에서 마음먹은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조용히 한숨을 쉬며 베개에 머리를 묻지는 않으셨습니까? " 내가 정말 예수 믿는 사람답게 잘 살고 있는 걸까? " 하는 자책과 함께,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져 무거운 마음을 안고 이 자리에 주저앉아 계시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일상은 늘 흔들림의 연속이고, 우리는 매번 자신의 연약함과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와 똑같이, 아니 우리보다 훨씬 더 처절하게 흔들리고 넘어졌던 인물들이 가득합니다. 새벽닭이 울기 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 그리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짓밟고 믿는 이들을 잡아 가두는 데 앞장섰던 바울이 그랬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향해 아주 아프고도 솔직한 고백을 던집니다. 8절을 보면 자신을 "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나 "라고 표현합니다. 이 말은 태중에 온전히 자라지 못하고 칠삭둥이나 팔삭둥이처럼 미숙하게 태어난 아이라는 뜻입니다. 사도로서, 또 신앙인으로서 자신은 아무런 자격도 없고 도저히 쓸모없는 상태였다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하루를 시작할 때 느끼는 부족함, 무기력함, " 과연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하시고 사용하실까? " 하는 그 깊은 자책감이 바로 바울이 마주했던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자책의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오늘 바울의 이 고백을 통해, 하나님께서 흔들리는 우리의 새벽을 어떤 소망으로 채우길 원하시는지 두 가지 믿음의 비밀을 마음에 담기를 바랍니다. 본론 1. 흔들리지 않는 복음의 반석 위에 서십시오. 첫째로, 우...

[6월 23일 묵상] 고린도전서 14장 20절-40절,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83장, 빈 들에 마른 풀 같이 새 찬송가 184장, 불길 같은 주 성령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고린도교회는 하나님 앞에 모였지만 어느새 하나님보다 자기 표현이 더 커졌습니다. 은사는 많았지만 덕은 세워지지 않았고, 열심은 있었지만 예배는 흐트러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라고 말하고, 마지막에는 “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라고 권면합니다. 사실 우리도 비슷합니다. 예배 자리에 나와도 마음은 여전히 분주합니다. 관계의 피로, 생활의 무게, 미래에 대한 불안, 쌓인 감정 때문에 하나님보다 내 생각이 더 크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말씀보다 내 기분이 앞서고, 공동체보다 내 방식이 더 중요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예배는 하나님을 드러내기보다 나를 드러내는 시간이 되기 쉽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의 예배는 누구를 드러내고 있느냐?” 오늘 이 질문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길 원합니다. 그리고 한 문장으로 오늘 말씀을 붙들면 이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나를 드러내지 않고, 교회를 세웁니다. 본론 1. 성숙한 예배는 사람의 시선을 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하나님 앞에 세웁니다. 바울은 먼저 “아이와 같이 되지 말고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20절 말씀을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4: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은사가 없다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은사가 많았습니다. 문제는 그 은사를 성숙하게 사용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자기 체험을 앞세우고, 공동체의 유익보다 자기 표현을 더 크게 여겼습니다. 그 결과 예배가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방언과 예언의 열매를 비교합니다. 해석 없는 방언은 외부인에게 낯설게 들리고, 심지어 “미쳤다”는 반응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들...

[6월 22일 묵상] 고린도전서 14장 1절-19절, 은사보다 사랑입니다 - 매일성경 큐티 새배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96장 성령의 은사를 새 찬송가 299장, 하나님 사랑은 서론: 세상의 분주함 속, 진짜 통하는 말 한마디 바쁜 아침을 준비하는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는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온종일 스마트폰을 쥐고 카카오톡으로, 문자 메시지로 끊임없이 대화하지만, 참 신기하게도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허전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그 사람과 진짜 소통하긴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불쑥 머리를 스칩니다. 수많은 말들이 허공을 둥둥 떠다니지만, 정작 내 영혼을 촉촉이 적셔주고 내 가족의 마음을 감싸 안아주는 '진짜 말 한마디'는 참 만나기 힘든 세상입니다. 우리의 대화가 어긋나고 서로의 마음이 어두워지는 순간, 그것은 마치 소리가 섞여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던 구약의 바벨탑 언덕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루를 시작하는 이 고요한 새벽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섰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아주 흥미롭고도 뼈아픈 이야기를 던집니다. 신비로운 하늘의 언어라고 자랑하던 '방언'보다, 곁에 있는 연약한 이들의 귀에 들리고 그들의 마음에 남는 위로의 언어인 '예언'을 훨씬 더 사모하라고 권면합니다. 이 아침에 주시는 말씀을 통해, 우리의 메마른 삶을 적시고 무너진 이웃의 마음을 따뜻하게 일으켜 세우는 '하늘의 언어, 사랑의 말'이 우리 입술에 가득 채워지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1. 사랑을 따라, 공동체의 아픔을 안아주는 말을 하십시오. 오늘 본문 1절에서 사도 바울은 인생의 위대한 이정표를 세워줍니다. 고린도전서 14: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여기서 ' 추구하다 '로 번역된 헬라어 διώκετε(디오케테)는 사냥꾼이 목표를 향해 온 힘을 다해 달리듯, 우리가 평생 쫓아가야 할 참된 푯대가 오직 ' 사랑 '임을 선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