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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일 묵상] 야고보서 3장 1-12절, 내 혀에 물리는 십자가의 재갈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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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3장 1-12절, 내 혀에 물리는 십자가의 재갈 야고보서 3장 1-12절, 우리 입술에 어떻게 재갈을 물려야 합니까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20장, 너 성결키 위해 새 찬송가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서론: 새벽에 살펴보는 우리의 말과 마음 주방에서 쓰는 부엌칼을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어머니 손에 쥐어진 부엌칼은 가족들을 배불리 먹이는 따뜻한 밥상을 차리고, 아픈 아이를 위해 사과를 깎아주는 고마운 살림 밑천입니다. 똑같은 칼이라도 손이 미끄러지는 순간 내 살점을 깊게 베어 피를 흘리게 하고, 강도의 손에 들어가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무서운 흉기로 돌변합니다. 칼 자체는 손바닥만 한 쇳조각이지만, 그 작은 쇳조각 하나가 밥상을 차리기도 하고 피비린내 나는 비극을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 입술 안에 들어 있는 작은 혀가 바로 이 부엌칼과 똑같습니다. 찬 바람 부는 이른 새벽,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와 무릎을 꿇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눈물로 찬양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그 거룩한 고백을 담아내는 그릇이 바로 우리 입술입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혹은 아침 밥상 머리에서 가족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 신경이 곤두서는 순간 우리는 그 입술로 곧장 칼을 휘두릅니다. 조금 전까지 하나님을 높이던 바로 그 혀로 남편과 아내의 가슴에 상처를 주고, 자녀의 기를 꺾어놓습니다. 왜 우리는 매일 아침 거룩한 예배자로 엎드렸다가, 문밖을 나서는 순간 사나운 칼잡이처럼 돌변하고 마는 것일까요? 내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수 있다고 믿었던 이 작은 세 치 혀가, 실상은 내 삶 전체를 베어 넘어뜨리고 온 생애를 불사르는 맹독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 신앙의 가장 부끄럽고 아픈 영적 민낯을 정면으로 들추어냅니다. 내 힘과 결단으로는 결코 다스릴 수 없는 이 혀의 무서운 파괴성을 인정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철저하게 무력한 ...

[10월 19일 묵상] 야고보서 2장 14-26절, 행함으로 증명되는 살아있는 믿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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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2장 14-26절, 행함으로 증명되는 살아있는 믿음 야고보서 2장 14-26절, 고백은 화려한데 식탁은 냉냉하다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23장,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새 찬송가 324장,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서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참된 믿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겪는 일 중에 이런 상황이 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에게 "엄마, 내 방에 가보세요. 정말 깨끗하게 청소해 놨어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그런데 막상 엄마가 방 문을 열고 들어가 보면, 침대 위에는 입던 옷이 엉클어져 쌓여 있고 책상 위에는 온갖 장난감과 연필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습니다. 아이의 입술로는 "방을 깨끗하게 청소했다"고 완벽하게 고백하지만, 실제로 방 안의 모습은 전혀 정리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입니다. 이럴 때 엄마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얘야, 말로만 깨끗이 치웠다고 하지 말고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게 정돈된 모습을 보여주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야고보서의 말씀도 이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당시 교회 안에는 입술로는 하나님을 뜨겁게 믿는다고 고백하고, 화려한 교리와 지식을 자랑하는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삶의 현장에서는 가난하고 헐벗은 이웃을 외면하고, 자기의 이익만을 챙기는 모습이 만연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오늘 본문을 통해 이처럼 삶의 열매와 행동이 빠진 신앙 고백은 마치 청소하지 않은 방처럼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준엄하게 꾸짖습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는 과연 우리의 믿음이 말뿐인 허울에 머물고 있는지, 아니면 삶의 구체적인 순종과 사랑으로 증명되고 있는지 깊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음성 앞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있는 믿음의 본질을 함께 깨닫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본론 1. 구원하지 못하는 죽은 믿음의 실체 첫 번째로 살펴볼 진리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

[10월 18일 묵상] 야고보서 2장 1-13절, 최고의 법을 지키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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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2장 1-13절, 최고의 법을 지키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 야고보서 2장 1-13절, 차별의 저울을 내려놓고 왕의 법을 따르라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새 찬송가 484장,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서론 어스름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성도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이 땅에는 수많은 법률이 존재하며, 그중 가장 높은 최고 규범을 헌법이라 부릅니다. 국회에서 법을 만들거나 법원에서 재판할 때도 헌법 정신에 어긋나지 않는지 먼저 살핍니다. 대법원의 판결조차 헌법에 위배되면 헌법 소원으로 되돌릴 수 있을 만큼 헌법은 큰 위력을 지닙니다. 한 나라의 헌법도 이토록 큰 권위를 가졌다면,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법은 얼마나 더 준엄하겠습니까. 본문 8절에서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지켜야 할 최고 규범을 ‘ 최고의 법 ’이라 부릅니다. '최고의 법'으로 번역된 헬라어 ‘노모스 바실리코스’는 문자 그대로 ‘왕의 법’, 곧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 속한 법이며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가장 높은 법입니다. 5절 말씀처럼 하나님이 택하사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받게 하신 천국 시민들, 바로 오늘 새벽을 깨우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나라의 법칙을 야고보는 '최고의 법'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본론 1. 최고의 법을 지키는 성도는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절을 통하여 야고보는 차별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야고보서 2: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이어서 야고보는 8절의 최고의 법과 대조하여, 9절에서 “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라고 경고합니다. 최고의 법의 핵심은 내 몸에 아낌없이 주듯 상대방의 필요를 보고 사랑을 펼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차별은 그...

[10월 17일 묵상] 야고보서 1장 19-27절, 자유케 하는 온전한 법을 바라보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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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장 19-27절, 자유케 하는 온전한 법을 바라보라 야고보서 1장 19-27절, 다시 온유함의 자리로 돌아오라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새 찬송가 200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서론 성경을 보면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도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 앞에서 주저앉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갈멜산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불로 응답하셨던 기도의 용사도, 끝없는 고립감 앞에서 기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광야의 로뎀나무 그늘 아래 엎드려 "여호와여 지금 내 생명을 거두어 주옵소서"라며 절규했습니다. 탈진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왜 믿음이 없느냐고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천사를 보내 어루만지시며, 숯불에 구운 떡과 시원한 물 한 병을 건네셨습니다. 지쳐 잠들면 다시 깨워 먹이시며 세미한 음성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오늘 우리 현실도 엘리야의 광야와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피로사회》에서 오늘날 사람들을 가리켜 '자기 착취에 빠진 번아웃 환자'라고 진단했습니다. 타인의 강요 때문이 아니라, '더 잘해야 한다', '멈추면 뒤처진다'는 자신의 내면 강박에 짓눌려 스스로를 소진시킨다는 것입니다. 늦은 밤까지 일터와 가정에서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겨우 눈을 붙였다가 다시 새벽을 맞이하는 성도들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자칫 우리 마음을 더 무겁게 짓누르기 쉽습니다. 말을 아껴라, 성내지 마라, 행함이 없으면 가짜다. 가뜩이나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성도의 등 뒤에 또 다른 짐을 얹는 것처럼 다가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야고보 사도가 전한 권면의 의도가 아닙니다. 야고보는 본문 바로 앞 18절에서 '하나님이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는 복음을 먼저 선포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를 몰아세우는 훈계가 결코 아닙니다. 오히...

[10월 16일 묵상] 야고보서 1장 12-18절, 변함없는 빛들의 아버지 품에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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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장 12-18절, 변함없는 빛들의 아버지 품에서 야고보서 1장 12-18절, 고단할 때 빛이신 아버지를 바라보십시오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12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새 찬송가 415장, 십자가 그늘 아래  서론 로뎀나무 그늘 아래 힘없이 주저앉아 "여호와여, 지금 내 생명을 거두어 주옵소서" 탄식하던 선지자 엘리야의 깊은 탈진을 기억합니다. 갈멜산에서 하늘의 불을 끌어내리며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던 영적 거인도, 끝없이 옥죄어 오는 위협과 누적된 고단함 앞에서는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현대인의 심리와 탈진을 연구한 학자들은 번아웃 증후군을 가리켜 " 감정의 연료가 완전히 바닥나 영혼이 차갑게 식어버리는 상태 "라고 진단합니다.  오늘 이른 새벽, 무거운 눈꺼풀과 천근만근 같은 몸을 이끌고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오신 성도 여러분의 어깨에도 어쩌면 그 차가운 탈진의 무게가 고스란히 얹혀 있을지 모릅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 생계를 잇기 위해, 쉼 없이 밀려오는 인생의 거친 파도를 견뎌내느라 영과 육이 새카맣게 타버린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 제 삶은 왜 이토록 곤단하기만 합니까?"라고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탄식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가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바로 그런 성도들을 향해 오늘 말씀을 건넵니다. 박해와 가난으로 흩어져 숨죽여 흐느끼던 성도들의 거친 손을 따뜻하게 잡으며, 그들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영혼 깊은 곳으로 하나님의 자비로운 시선을 간절함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론 1. 흔들리는 인생의 밤, 변함없는 빛들의 아버지를 바라보십시오. 고난이 깊어지면 사람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립니다. 몸이 아프고, 물질에 쪼달리게 되고, 믿었던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질 때, 우리 안에서는 "하나님이 나를 미워하시나? 왜 나를 이런 구렁텅이에 밀어 넣으실까?" 하는 서운함과 의심이 생깁니다. ...

[10월 15일 묵상] 야고보서 1장 1-11절, 여러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뻐하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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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장 1-11절, 여러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뻐하라 야고보서 1장 1-11절, 시련을 넘어 온전함으로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새 찬송가 373장, 고요한 바다로 서론 이른 새벽, 쌀쌀한 공기를 가르고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성도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기 전, 우리는 저마다 가슴속에 크고 작은 짐을 안고 이 자리에 엎드렸습니다. 성경을 가만히 펼쳐보면,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셨던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목전에 둔 그 캄캄한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엎드려 울부짖으셨던 장면을 만나게 됩니다. 가장 깊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도 인생의 모진 시험과 마주할 때는 마음이 흔들리고 눈물이 쏟아지기 마련입니다. 오늘 야고보 사도가 편지를 보낸 초대 교회 성도들의 형편도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고향을 떠나 낯선 땅으로 흩어진 디아스포라, 곧 나그네들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거친 차별과 가난 속에서 하루하루 믿음을 지키는 일 자체가 버거운 영적 전투였습니다. 바로 그들을 향해, 그리고 오늘 이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 주님은 오늘 새벽 야고보서 1장의 말씀을 통해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위로의 손길을 내미십니다. 본론 1. 온전한 인내를 이루는 기쁨을 가지십시오. 야고보 사도는 편지를 시작하자마자 아주 낯설고 충격적인 권면을 건넵니다.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야고보서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상식적으로 시험을 만나면 슬퍼하고 낙심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합니다. 억지로 웃는 척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시험’으로 번역한 헬라어 πειρασμός(페이라스모스)는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하려는 사탄의 유혹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삶에서 마주하는 온갖 종류의 외적 시련과 환난을 두루 품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10월 14일 묵상] 사사기 21장 13-25절, 왕이 없던 자리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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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21장 13-25절, 왕이 없던 자리 사사기 21장 13-25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21장 13-25절, 내 삶의 핸들을 내려놓고, 참된 왕을 바라봅니다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새 찬송가 539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서론: 전쟁은 끝났지만 평화는 오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새벽 우리가 읽은 말씀은 마음 편히 읽기 어려운 본문입니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베냐민 지파의 남자 육백 명이 살아남았고, 이스라엘 회중은 그들에게 평화를 선포합니다. 이제 모든 일이 수습되는 듯합니다. 그러나 그 평화의 뒤편에는 이름조차 남지 않은 여인들의 눈물이 있습니다. 야베스 길르앗에서 끌려온 여자 사백 명이 베냐민 사람들의 아내가 됩니다. 그래도 이백 명이 부족하자, 이번에는 실로의 딸들을 붙잡아 오게 합니다. 한 가지 죄를 심판하려고 시작한 일이 또 다른 죄들을 낳았습니다. 그 죄를 수습하려다가 더 약한 사람이 희생되었습니다. 문제는 해결된 듯 보이지만, 상처는 더 깊어졌습니다. 성경은 이 광경을 가리키며 “그래도 베냐민 지파를 살렸으니 잘한 일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용히 묻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가? 오늘 본문은 옛날 이스라엘이 실패자들임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일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좋은 뜻으로 시작했다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옳은 말을 붙들다가 사랑을 놓칠 수 있습니다. 이 새벽,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우리 마음의 왕좌에 누가 앉아 있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본론: 자기 소견을 내려놓고 참된 왕을 바라보십시오 1. 회개해야 또 다른 죄를 짓지 않습니다. 먼저, 13절을 읽겠습니다. 사사기 21:13, 온 회중이 림몬 바위에 있는 베냐민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어 평화를 공포하게 하였더니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