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6장 1절-14절, 나는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않겠노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11월 25일 화요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느헤미야 6장 1-14절 새벽예배 설교문입니다. 대적들의 유혹과 비방, 두려움 조장 속에서도 "나는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않겠노라"고 선포한 느헤미야의 영성을 배웁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시고 구원을 완성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오늘 우리에게 닥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을 제시합니다. 타협하지 않는 믿음과 기도의 능력으로 하루를 시작하세요.
느헤미야 6장 1절-14절, 나는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않겠노라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35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 새 찬송가 361장, 기도하는 이 시간
서론: 새벽을 깨우는 거룩한 고집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새벽에 주님의 전을 찾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른 장면을 봅니다. 성벽은 연결되었고, 이제 문짝만 달면 끝이 납니다. 그런데 여러분, 마라톤에서도 가장 힘든 구간이 결승선 직전인 것처럼, 영적인 싸움도 완성이 가까울수록 더 치열해집니다.
오늘 본문에서 대적 산발랏과 도비야는 무려 세 번이나 집요하게 느헤미야를 공격합니다. 칼과 창이 아닌, '유혹'과 '두려움'이라는 무기로 말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를 주저앉히려는 세상의 소리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본론
1. 분주함의 덫을 피하고 우선순위를 지키십시오
첫 번째 공격은 '타협'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 느헤미야 6:2,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하고자 함이었더라
대적들이 느헤미야에게 "오노 평지에서 만나자"고 합니다. 오노 평지는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의 중간 지점입니다. 겉보기에는 평화 회담 같고, 합리적인 제안 같습니다. "우리 싸우지 말고 적당히 중간에서 만나 대화하자."
하지만 느헤미야는 3절에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성도 여러분, 이것이 영적 분별력입니다. 느헤미야는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그냥 벽돌을 쌓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큰 역사'임을 알았습니다.
사탄은 종종 "나쁜 일"을 하라고 유혹하지 않습니다. 대신 "덜 중요한 일"에 시간을 쓰게 하여 "가장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 새벽에 기도하러 나오신 여러분, 세상은 자꾸 우리를 "오노 평지"로 부릅니다. 적당히 타협하자고 합니다. 그때 우리는 단호히 말해야 합니다. "나는 기도의 큰 역사를 감당하고 있다. 예배의 큰 역사를 감당하고 있다. 그러므로 세상의 헛된 논쟁으로 내려가지 않겠다." 여러분의 자리를 지키십시오.
2. 비방과 두려움을 기도로 돌파하십시오
두 번째 공격은 '비방'입니다. 5절에 보면 '봉하지 않은 편지'를 보냅니다. 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느헤미야 6:5, 산발랏이 다섯 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냈는데
그들이 보낸 편지는 봉하지 않은 편지입니다.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적으로 가짜 뉴스를 퍼뜨린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왕이 되려 한다, 반역하려 한다"는 헛소문입니다. 이것은 리더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어 두렵게 하려는 전형적인 수법입니다(9절). 억울한 소리를 들으면 우리는 해명하고 싶어집니다. 싸우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사람과 싸우는 대신 하나님께 무릎 꿇습니다. 9절 하반절의 짧은 기도를 보십시오.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얼마나 놀라운 대응입니까? 그는 루머를 해명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두려움을 기도의 재료로 바꾸었습니다. 오늘 하루,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억울한 말을 듣거나 오해를 받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 변명하기보다 하나님께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의 변호자가 되어 주십니다.
3. 말씀으로 거짓을 분별하십시오
마지막 공격은 가장 교묘한 '종교적 위장'입니다. 스마야라는 선지자가 그럴듯한 예언을 합니다. 10절입니다.
- 느헤미야 6:10, 이 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 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그가 이르기를 그들이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머물고 그 문을 닫자 저들이 반드시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
"암살자들이 오니 성전 외소로 도망가서 숨자." 생명을 지키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율법을 알았습니다. 민수기 율법에 의하면 제사장이 아닌 자가 성소에 들어가면 죽습니다. 만약 느헤미야가 살겠다고 성전으로 도망쳤다면, 그는 율법을 어긴 비겁한 지도자로 낙인찍혀 모든 리더십을 잃었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11절에서 외칩니다.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들어가지 않겠노라." 그는 자신의 생명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것이 그를 살렸습니다. 우리의 분별력은 어디서 옵니까? 내 감정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서 옵니다. 말씀의 기준이 서 있는 사람은 위급한 상황에서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결론: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느헤미야가 대적들을 향해 "나는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않겠노라"라고 외친 이 선포는, 훗날 골고다 언덕에서 완성될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침묵과 맞닿아 있습니다.
2천 년 전, 로마 군병들과 대제사장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조롱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주님께는 십자가에서 당장 내려올 능력이 있으셨습니다. 천군 천사를 동원하여 대적들을 쓸어버릴 힘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능력이 없어서 못 내려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에 안 내려오신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셨다면 우리의 구원이라는 '큰 역사'는 실패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주님이 끝까지 고통의 자리에서 버티셨기에, 저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는 하나님이 맡기신 '큰 역사'의 현장입니다. 때로는 가정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일이, 직장에서 반복되는 업무를 처리하는 일이, 교회에서 이름 없이 섬기는 그 자리가 너무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나, 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며 편안한 타협의 장소, '오노 평지'로 내려가고 싶은 유혹이 밀려올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못 박힌 손으로 끝까지 자리를 지키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은 오늘 이 새벽, 지친 여러분의 어깨를 감싸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버티었다. 나도 내려가지 않았다. 그러니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 딸아, 너도 그 사명의 자리에서 내려가지 말라."
주님이 버티셨기에 우리가 구원받았듯이, 오늘 여러분이 기도의 자리, 인내의 자리를 지켜낼 때 여러분의 가정이 살아나고, 우리 교회가 굳건히 세워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 주님이 여러분의 손을 붙잡고 계십니다. 타협하지 않는 믿음, 세상으로 내려가지 않는 그 거룩한 고집으로 오늘 하루도 승리의 성벽을 완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 앞에 회개합니다. 세상의 유혹과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사명의 자리에서 내려가려 했던 우리를 용서해 주옵소서. 십자가를 참으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간구하오니, 온갖 방해 속에서도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며 맡겨진 큰 역사를 완수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타협하지 않는 믿음으로 가정과 일터를 거룩하게 세우도록 우리를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세상의 유혹에 타협하지 않고 기도의 자리를 지키게 하소서.
- 거짓된 비방과 두려움 앞에서도 주님만 의지하게 하소서.
- 우리 교회가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하나 되어 굳건히 서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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