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3일 묵상] 창세기 9장 18절-29절, 의인 노아는 왜 벌거벗었습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1월 13일 묵상] 창세기 9장 18절-29절, 의인 노아는 왜 벌거벗었습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420장, 너 성결키 위해
  • 새 찬송가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서론: 가장 안전할 때가 가장 위험합니다


할렐루야! 이 새벽에 주님 앞에 나오신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혹시 인생에서 '이불킥' 하고 싶은 부끄러운 기억이 있으십니까? 너무나 창피해서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그런 순간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한 사람의 '이불킥' 순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노아입니다.

노아가 누구입니까? "당대에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창 6:9)라는 극찬을 들었던 사람입니다. 온 세상이 물로 심판받을 때 유일하게 구원받은 믿음의 영웅입니다. 그런데 그런 노아가 오늘 본문에서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큰 산을 넘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영적 허리띠를 풀어버리곤 합니다. 바로 그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오늘 본문은 의인 노아의 실수를 통해,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한순간도 영적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됨을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본론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붙잡아야 할 영적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영적 방심은 거룩함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본문 20절과 21절을 보십시오.

  • 창세기 9:20-21,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었습니다.

성경은 노아를 가리켜 '농사를 시작했다'고 표현하는데, 원어적으로는 '땅의 사람(ישא האדמה)'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홍수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경험했지만, 땅에 정착하고 삶이 평안해지자 그는 다시 '땅에 속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가 포도주에 '취했다'는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닙니다. 자기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입니다. 그 결과 그는 '벌거벗었습니다'. 구약에서 벌거벗음은 수치와 부끄러움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방주를 지었던 거룩한 제사장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인사불성이 되어 자신의 부끄러운 치부를 다 드러내고 만 것입니다.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홍수가 끝나고, 무지개 언약을 받고, 모든 것이 평안해졌을 때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큰 기도 제목이 응답 받았을 때,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우리는 "이제 좀 살만하다"하며 영적 무장을 해제합니다. 사탄은 바로 그 틈을 노립니다. 다윗도 전쟁터가 아닌 평안한 왕궁 옥상에서 무너졌습니다.

우리가 '안전하다, 평안하다' 할 그때에 영적 잠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과거의 은혜가 오늘의 타락을 막아주지 못합니다. 오늘 하루도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우리는 금방 넘어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하며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1월 13일 묵상] 창세기 9장 18절-29절, 의인 노아는 왜 벌거벗었습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2. 타인의 수치를 대하는 태도가 우리의 영성을 보여줍니다.

노아의 실수는 자식들의 반응을 통해 더 큰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22절을 보면 둘째 아들 함이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알립니다.

  • 창세기 9: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여기서 '보고'라는 단어는 단순히 우연히 본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수치를 즐기며 바라본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형제들에게 떠벌렸습니다. 아버지의 권위를 무시하고 부끄러움을 조롱거리로 만든 것입니다.

반면에 23절을 보십시오. 셈과 야벳은 어떻게 합니까?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질 쳐 들어가서 아버지의 하체를 덮으며, 그들의 얼굴을 돌이키고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실수를 보지 않으려고 애썼고, 그 수치를 덮어주려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두 가지 태도는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가정 안에서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볼 때 어떻게 반응합니까? 우리는 '함'처럼 반응하기 쉽습니다. 누군가의 실패나 약점을 발견하면 그것을 은근히 즐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며 험담의 소재로 삼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은 우리의 타락한 본성입니다. 그러나 성숙한 성도는 '셈과 야벳'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벧전 4:8).

더 나아가, 셈과 야벳의 행동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벌거벗은 죄인들입니다. 우리의 수치는 노아보다 더 큽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수치를 보고 비웃거나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십자가에서 친히 발가벗겨지심으로 우리의 수치를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의로운 옷으로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셨습니다.


[1월 13일 묵상] 창세기 9장 18절-29절, 의인 노아는 왜 벌거벗었습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이 은혜를 받은 자로서 우리는 마땅히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됩니다. 오직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실 때 가능합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의 허물이 보일 때 함처럼 들추어내지 않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덮어주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결론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첫째, 인간은 아무리 큰 은혜를 체험했어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죄의 본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의인 노아도 무너졌습니다. 우리도 언제든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의 신앙 경력이나 업적에 안주하지 말고, 날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둘째,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우리의 수치를 덮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실수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덮어주시고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오늘 하루, 영적 방심을 경계하며 깨어 기도합시다. 그리고 나의 수치를 덮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형제의 허물을 덮어주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홍수의 영웅 노아도 평안함 속에 무너졌음을 봅니다. 과거의 은혜에 안주하여 영적 긴장을 놓지 않게 하소서. 타인의 허물을 볼 때 함처럼 정죄하지 않게 하시고, 셈과 야벳처럼 사랑으로 덮게 하소서. 십자가로 우리의 수치를 덮으신 주님만 의지하며 오늘도 깨어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평안할 때 영적 긴장을 늦추지 않고 깨어있게 하소서.
  • 타인의 허물을 볼 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덮게 하소서.
  • 나의 죄된 본성을 이길 성령의 능력을 부어 주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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