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5장 1절-14절,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성전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9월 19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은 역대하 5장 1절-14절로, 건물로서의 솔로몬의 성전이 완공되는 순간,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안에 가득했음을 묘사하는 본문입니다. 주의 영광이 충만한 이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묵상하고 설교문으로 정리하여 나눕니다. 연합된 찬양과 거룩한 준비를 통해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하고, 참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삶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역대하 5장 1절-14절,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성전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21장, 다 찬양하여라
- 새 찬송가 8장,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
서론: 준비된 곳에 임하시는 하나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광야에서 성막을 짓던 모세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십니까? 출애굽기 40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설계도 그대로, 단 하나의 오차도 없이 성막을 완성합니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는 말씀을 무려 일곱 번이나 반복합니다. 철저한 순종으로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34절은 증언합니다.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대로 정결하게 준비된 그곳에 영광으로 임재하셨습니다.
이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삶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인생의 멋진 집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좋은 아파트를 분양받고 최신 가구로 집을 꾸미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해도, 그곳에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 살지 않는다면 그저 텅 빈 건물에 불과합니다. 가족의 웃음소리와 온기가 채워질 때, 비로소 그 건물은 ‘우리 집’이라는 따뜻한 이름의 안식처가 됩니다. 건물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누가 거하는가’가 본질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솔로몬 성전도 마찬가지입니다. 7년간의 대역사로 지어진 화려한 건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건물이 진정한 하나님의 집, 성전이 되는 결정적인 순간은 바로 오늘 본문에서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을 가득 채우실 때였습니다.
본론: 솔로몬 성전 봉헌의 그날
오늘 본문은 아버지 다윗의 오랜 꿈이자, 아들 솔로몬의 7년의 헌신이 결실을 맺는 감격적인 날의 기록입니다. 솔로몬은 성전 건축을 마친 후, 다윗 성 시온에 있던 여호와의 언약궤를 새로 지은 성전의 가장 깊은 곳, 지성소로 옮기기 위해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를 예루살렘으로 소집합니다. 온 백성의 기대와 환호 속에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지성소의 그룹 날개 아래에 안치합니다.
이때 성경은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강조합니다. 10절입니다.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본래 언약궤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도 함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만나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공급하심을, 싹 난 지팡이는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상징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영광스러운 이 순간, 언약궤 안에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진 두 돌판, 즉 언약의 말씀만이 남아있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는 과거의 기적이나 인간의 권위가 아닌, 오직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 언약 위에 굳건히 서야 함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뜨거운 체험이나 직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우리의 삶을 세워나갈 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1. ‘하나의 소리’가 불러온 하나님의 임재
언약궤가 안치되고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드디어 하나님의 영광을 불러온 결정적인 장면이 펼쳐집니다. 1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 역대하 5:13,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어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13절에 의하면, 하나님의 영광은 언제 임했습니까? 바로 찬양하는 모든 이들이 ‘일제히’, 즉 ‘하나의 소리’를 내었을 때입니다. 이 모습은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와 같습니다. 오케스트라에는 바이올린, 첼로, 트럼펫, 팀파니 등 수십 가지의 악기가 있습니다. 만약 연주자들이 지휘자를 무시하고 저마다 자기 실력을 뽐내며 다른 곡을 연주한다면, 그곳은 아름다운 연주회장이 아니라 끔찍한 소음의 현장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각기 다른 소리를 가진 연주자들이 지휘자의 손끝에 집중하고 하나의 악보를 따라 조화롭게 연주할 때, 그들의 소리는 하나의 장엄한 교향곡이 되어 듣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영적 오케스트라입니다. 우리는 각기 다른 은사와 성품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내려놓고, 우리의 유일한 지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며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할 때, 바로 그 연합의 소리 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133편 1절은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고 노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연합의 자리에 복을 명령하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우리 가정이 불평과 다툼의 소음이 아닌, 연합된 찬양의 교향곡을 울리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압도적인 영광, ‘카보드’
하나의 소리로 드리는 찬양이 울려 퍼질 때, 성전에는 구름이 가득했고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14절입니다.
- 역대하 5:14, 제사장들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거룩한 직무를 수행해야 할 제사장들조차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하나님의 임재가 그곳을 덮은 것입니다. 여기서 ‘영광’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카보드’(כבוד)입니다. 이 단어의 뿌리는 ‘무겁다’, ‘중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안개처럼 가볍고 희미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거룩한 무게감과 실체를 지닌 하나님의 실제적인 임재를 의미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너무나 실제적이고 강력했기에, 제사장들은 그 영광의 무게 앞에 압도되어 쓰러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영광스러운 임재에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바로 ‘거룩함’입니다. 레위기 10장을 보면,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제사장으로 위임받은 직후, 하나님께서 명령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가지고 분향하려다 하나님의 불에 삼켜져 죽는 끔찍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나는 나를 가까이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솔로몬 성전의 제사장들이 경험한 영광의 구름과, 나답과 아비후를 삼킨 심판의 불은 모두 동일한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의 다른 모습입니다. 순종과 연합으로 나아가는 자에게는 축복의 영광이 되지만, 자기 마음대로 가볍게 나아가는 자에게는 심판의 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되, 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분의 거룩하심 앞에 서야 합니다.
3. 참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삶
사실, 건물로 보이는 구약의 성막과 솔로몬의 성전은 궁극적인 성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실체는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유일하고 참된 성전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이 놀라운 진리를 이렇게 선포합니다.
-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여기서 ‘거하시매’(σκηνόω, 스케노오)라는 헬라어 단어는 ‘장막을 치다’, ‘성막을 세우다’라는 뜻입니다. 즉, 요한은 구약 시대 성막과 성전에 가득했던 바로 그 하나님의 영광, ‘카보드’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 안에 온전히 거하게 되었음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 돌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만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과 연합할 때, 성경은 우리의 몸이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요,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전’이라고 선언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사명은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성전 된 우리의 삶과 공동체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한 가지 구체적인 실천을 결단하기 원합니다. 오늘 하루, 나의 언어와 행동에서 불평과 비난 대신 감사와 찬양을 ‘하나의 소리’로 내는 연습을 하십시오. 내 삶이라는 작은 성전에서부터 연합된 찬양이 시작될 때,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삶과 가정, 그리고 교회에 가득하게 될 줄 믿습니다.
결론: 영광의 임재를 사모하는 성도가 되라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순종으로 준비된 곳에 임재하십니다. 하나님은 연합된 찬양의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에 하나님의 위엄이 가득하고 실제적인 영광, ‘카보드’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영광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이제 우리는 그분을 모신 살아있는 성전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더 이상 형식적인 종교 생활에 머무르지 마십시오. 우리의 삶과 교회 안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가 가득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와 함께 거하기를 원하셔서 죄 많은 이 땅에 찾아오시는 주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한마음으로 찬양할 때 영광으로 임재하셨던 주님, 우리의 분열되고 이기적인 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성전 된 우리의 삶이 불평의 소음이 아닌 감사의 찬양으로 가득하게 하시고, 우리 교회가 하나의 소리로 주님을 높이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삶과 교회 위에 하늘의 영광이 충만히 임하는 것을 목도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우리 가족이 한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 거룩한 성전으로서 오늘을 살아가게 하소서.
- 주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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