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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1일 묵상] 이사야 39장 1절-8절, 자랑할 것인가, 간증할 것인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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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9장 1절-8절, 자랑할 것인가, 간증할 것인가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새 찬송가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서론: 자랑하고 싶은 현대인의 마음과 히스기야 인간은 어릴 때부터 누군가에게 인정 받고 칭찬 받기를 갈망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의 심부름을 하고 받는 100원의 보상보다 부모님의 칭찬이 더 기뻤던 기억이 있습니다. 결혼 후에는 아내에게 칭찬 받는 것이 좋습니다. 아마도 여러분들도 누군가에게 칭찬 받고 인정 받는 것이 너무나도 기쁜 일이고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때로는 우리가 칭찬 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욕심으로 변하고 교만으로 변할 때가 있습니다. 단순한 인정 욕구를 넘어서서, 감사보다도 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교만의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남유다의 훌륭한 왕, 히스기야처럼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그 크고 놀라운 은혜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이 새벽,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을 말씀에 비추어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1. 간증의 자리를 자랑의 자리로 바꾸다. 오늘 본문 1절과 2절을 보면, 바벨론의 왕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에게 편지와 예물을 보냅니다. 왜 보냈을까요?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렸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제 본문인 이사야 38장에서 히스기야는 죽음에 대한 선고를 받은 후, 하나님께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그 눈물을 보시고 그의 수명을 15년이나 연장해 주셨고, 해 그림자가 십 도나 뒤로 물러가는 엄청난 기적까지 보여주셨습니다. 바벨론의 사절단이 유다에 도착했을 때,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기적과 은혜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완벽한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들은 이방 나라 사람들이었습니다. 만약 저와 여러분이 히스기야였다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여...

[8월 28일 묵상] 이사야 37장 1절-20절, 절망의 편지를 받았던 날에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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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새 찬송가 406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이사야 37장 1절-20절, 절망의 편지, 소망을 주는 주의 십자가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이사야 37장 1절-20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절망의 편지를 은혜의 제단 위에 펼칠 때 서론: 압도적인 현실과 무력한 인간 몇 해 전, 주일 새벽에 갑자기 오른쪽 발가락에 극심한 통증이 생겼습니다. 양말도 신발도 신을 수 없었고 걷는 것도 힘이 들 정도였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그저 통증으로 고통스러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주일이니 병원을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주일을 정신 없이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통풍이라는 질병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 서게 됩니다. 예상치 못한 질병이 찾아 와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경우를 맞이합니다. 무너지는 경제적 형편, 깨어진 관계와 같은 문제들은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우리를 덮쳐 오고, 우리는 무기력하게 서 있을 수 밖에 없기도 합니다. 본론 히스기야 왕과 유다 백성에게 앗수르는 감당할 수 없는 압도적인 현실의 파도와 같았습니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최강의 제국 앞에서 유다는 너무나 작고 무력해 보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만 바라본다면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의 크기에 압도될 때, 우리는 그 문제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크기를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은 위기보다 크신 하나님의 통치를 바라보게 합니다. 1. 기도는 현실을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는 행동입니다. 위기를 만난 히스기야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군사력을 점검하거나 외교적 해법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협하는 현실을 그대로 들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14절을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이사야...

[6월 10일 묵상] 고린도전서 6장 12절-20절, 너희 몸은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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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20장, 너 성결키 위해 새 찬송가 311장, 내 너를 위하여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던 어린 소년 다니엘을 기억하십니까? 그는 이방 왕의 궁정에 들어갔을 때,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결단했습니다. 서슬 퍼런 제국 한복판에서, 음식 하나 먹는 문제가 뭐 그리 대수였겠습니까? 적당히 타협하고 목숨을 부지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자신의 몸이 바벨론 왕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의 몸은 이방 땅에서도 그 땅이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소였던 것입니다. 오늘 이 이른 새벽,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오신 여러분의 발걸음을 축복합니다. 사실 나이가 들수록 여기저기 쑤시고 아파지는 육신을 보며 한숨 짓지만, 사실 이 연약한 몸이 하나님이 가장 아끼시는 보물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 때가 참 많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관절이 뻣뻣하고, 예전 같지 않은 체력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기도 하시지요. "아이고, 이 껍데기 같은 몸, 주님 나라 갈 때까지만 버텨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신 적 없으신가요? 우리는 종종 영혼은 하나님께 속해 있으니 귀하고, 육신은 늙고 병드니 별 볼 일 없다고 여기곤 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 중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의 입술을 통해 우리의 몸이 얼마나 존귀한지, 그리고 이 몸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진짜 행복한 삶인지를 다정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본론 1. 내 뜻대로가 아닌, 주님께 유익한 자유 먼저 하나님은 우리에게 ' 주님께 유익한 자유 '를 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6: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당시 고린도 사람들은 헬라 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들은 "내 영혼은...

[3월 14일 묵상] 요한복음 12장 34절-43절, 빛이 있을 때에 빛의 아들로 걸어가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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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502장, 빛의 사자들이여 새 찬송가 510장, 하나님의 진리 등대 서론: 영적인 골든타임을 놓치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새벽 주님의 전을 찾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여러분, 혹시 외출 중에 '스마트폰 배터리 1%' 알림이 뜨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당장 중요한 연락을 해야 하는데 화면이 깜빡거리면 우리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충전기부터 찾습니다. 그때 우리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입니다. "꺼지기 전에 연결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안 된다는 그 절박함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대중 사역, 즉 공생애 사역이 공식적으로 마감되는 매우 엄숙한 장면입니다. 이제 곧 십자가의 밤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 앞에서 엉뚱한 신학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요한복음 12:34,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이들의 논쟁의 핵심은, "율법에 메시아는 영원히 계신다는데, 왜 당신은 자꾸 죽는다고 합니까? 인자가 들려야 한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입니다. 본론 그런데, 주님은 그들의 지적인 호기심을 채워주는 대신, 아주 시급하고 본질적인 권고를 하십니다. 35절입니다. 요한복음 12:35,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오늘 우리가 이 새벽에 붙들어야 할 핵심적인 단어는 바로  '영적 골든타임' 입니다. 은혜의 빛이 비칠 때, 말씀이 내 귀에 들릴 때, 기도의 자리에 앉아 있을 때가 바로 우리가 결단해야 할 시간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빛은 무엇인지, 우리가 구하는 영광은 누구의 것인지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 은혜의 기회: 빛이 있...

[3월 9일 묵상] 요한복음 11장 38절-46절, 나흘이나 지나 냄새가 나도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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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365장, 마음 속에 근심 있는 사람 새 찬송가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서론: 마른 뼈의 골짜기에서 서울의 아파트 숲까지 구약의 선지자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한 골짜기에 이릅니다. 그곳에는 죽은 지 오래되어 바싹 마른 뼈들이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은 물으십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에스겔의 대답은 “주께서 아시나이다”였습니다. 인간의 눈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절망, 생명의 기운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완전한 죽음과 절망의 상태가 바로 에스겔이 마주한 현실이었습니다. 이 '마른 뼈의 골짜기'는 2026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회의 단면과 참 닮아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적 침체, 고독사로 대변되는 관계의 단절, 그리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번아웃되어 영혼이 바싹 말라버린 직장인들의 뒷모습까지. 우리는 겉으로는 화려한 도시의 불빛 속에 살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나만의 무덤'을 하나씩 품고 삽니다. "이제는 늦었어", "우리 집 문제는 해결 안 돼", "내 신앙은 여기까지야"라는 포기라는 수의를 입은 채 말입니다. 본론 오늘 본문의 마르다 역시 " 주여, 죽은 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라며 현실적인 장벽 앞에 무너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부패한 냄새가 진동하는 무덤 앞으로 당당히 걸어가십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생기가 불어와 군대를 이루었듯, 오늘 이 새벽 우리 삶의 팍팍한 일상과 막막한 미래라는 무덤 속에 주님의 생기가 불어오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끝'이라고 말하는 그 지점이 바로 주님이 '영광'을 시작하시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1. 불신앙의 돌을 옮겨 놓으십시오. 예수님은 무덤 앞에 이르러 " 돌을 옮겨 놓으라 "라고 명령하십니다. 마르다는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난다며 ...

[3월 6일 묵상] 요한복음 11장 1절-16절, 사랑으로 기다리시는 나의 하나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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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새 찬송가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서론: 기다림이 사라진 시대, 하나님의 '읽씹'? 현대인의 인스탄트식 사랑은 모든 것을 '즉시'와 '속도'로 평가하곤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상대가 원하는 것을 바로 들어주고, 메시지를 보내면 1분 안에 답장이 와야 하며, 배달 음식조차 도착 예정 시간을 넘기면 사랑의 온도가 식었다고 오해하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인스탄트 공식'을 대입합니다. "주님, 내가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사랑을 고백하는데, 왜 내 삶의 문제는 '배송 지연' 상태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르다와 마리아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시던 가족이었습니다. 오빠 나사로가 죽어간다는 급보를 보냈을 때, 그들은 당연히 주님이 모든 일을 제쳐두고 달려오실 줄 믿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움직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절박할 때 느껴지는 하나님의 침묵은 마치 우리의 기도를 '읽고 무시하는(읽씹)' 냉담함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여러분, 혹시 오늘 새벽 "새벽 배송보다 늦은 하나님의 응답" 때문에 상처받은 마음으로 이 자리에 앉아 계시지는 않습니까? "남들은 다 잘 풀리는 것 같은데, 왜 내 인생의 골든타임만 속절없이 흘러가는가"라는 박탈감이 우리를 괴롭힐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충격적인 진실을 알려줍니다. 주님은 사랑하지 않아서 늦으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기다림'이라는 선물을 준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본론: 위기를 영광으로 바꾸는 세 가지 하늘 원리 1. 사랑하기 때문에 기다리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5절과 6절에는, 어쩌면 답답하게 느껴지는 예수님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요한복음 11:5-6, ...

[3월 1일 묵상] 요한복음 9장 1절-12절, 불행의 원인을 묻는 인생에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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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새 찬송가 445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서론: '왜'라는 질문에 갇힌 현대인의 초상 현대인의 가장 큰 고민은 단연 ‘ 불확실성 ’과 그로 인한 ‘ 인과관계에 대한 집착 ’입니다. 우리는 공정한 세상에 산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뜻하지 않은 고난이 닥치면 본능적으로 그 원인을 과거에서 찾으려 애를 씁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병에 걸렸을까?", "우리 아이가 방황하는 건 내가 기도가 부족해서일까?", 혹은 "직장에서의 이 갑작스러운 퇴사가 내 역량 부족 때문일까?"라는 자책 섞인 질문들이 우리를 밤잠 설치게 합니다. 특히 재테크 실패나 자녀 교육 문제, 혹은 갑작스러운 건강 검진 결과 앞에서 우리는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가"를 따지며 스스로를 정죄하거나 타인을 원망하는 감정의 굴레에 빠지곤 합니다. 본론: 어둠을 이기고 나타나는 하나님의 일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들의 질문도 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고 그들은 "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라고 묻습니다. 고통을 오직 '심판'이나 '인과응보'의 틀로만 해석하려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은 우리의 이 낡은 질문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으십니다. 1. 과거의 '원인'이 아닌 미래의 '목적'을 선포하십시오.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3절입니다. 요한복음 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주님은 지금 제자들의 시선을 '과거의 죄'에서 '미래의 영광'으로 옮겨놓고 계십니다. 세상은 불행을 보면 과거를 캐묻습니다. 원인을 규명해야...

[2월 28일 묵상] 요한복음 8장 42절-59절, 진리의 음성을 듣는 자가 누구인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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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04장, 주의 말씀 듣고서 새 찬송가 80장, 천지에 있는 이름 중 서론: 떨기나무의 음성이 오늘의 새벽으로 약 3,500년 전, 미디안 광야의 한 모퉁이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신비로운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80세의 노인 모세가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떨기나무 앞에 섰을 때,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WHO I AM)" 라고 답하셨습니다. 이 선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상징하는 선포였습니다. 하지만 그 거룩한 음성을 직접 들었던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오늘 본문에서는 그 '음성의 실체'이신 예수님을 앞에 두고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비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라는 말을 듣거나 혹은 타인들에게 그러한 말을 하곤 합니다. 특히 부부 사이나 부모 자녀 관계에서 같은 한국말을 쓰는데도 도무지 소통이 안 되어 답답함에 가슴을 친 적이 있으실 겁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바로 곁에서 말씀하셔도 그것은 소음이나 비난으로 들릴 뿐입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의 음성을 제대로 '청종'하고 있는지, 아니면 유대인들처럼 내 생각의 틀에 갇혀 진리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자신을 정직하게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본론: 진리의 음성을 듣는 자의 정체성 1. 영적 소속은 '말씀을 듣는 귀'로 결정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영적 혈통을 날카롭게 지적하십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부했지만, 실상은 '거짓의 아비'인 마귀에게 속해 있었습니다. 47절을 보십시오. 요한복음 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마귀의 특징은 진리에 서지 못하고 자기 것을 ...

[2월 22일 묵상] 요한복음 7장 14절-24절, 사람의 영광인가, 하나님의 영광인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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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새 찬송가 452장,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서론: '자격'을 묻는 시대, 진리의 근원을 찾아서 최근 한 달 사이, 우리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슈 중 하나는 전문직종의 권위와 그 자격에 대한 사회적 갈등이었습니다. 특정 분야의 정책 변화를 두고 전문가 집단과 정부, 그리고 시민들 사이에서 "누구의 말이 옳은가?", "그 제안의 숨은 의도는 무엇인가?"를 따지는 고통스러운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상대방의 주장이 담긴 본질보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자격'이나 '학벌', 혹은 '집단 이기주의' 여부를 먼저 따지며 불신을 키워갔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피로감은 " 진정으로 믿을 만한 권위는 어디에 있는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 권위의 정당성 '에 대한 도전은 성경 역사 속에서도 반복되었습니다. 구약 민수기 16장을 보면, 고라와 다단, 그리고 아비람이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사건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지도력이 하나님의 선택이 아닌, 인간적인 독점이라고 비난하며 외적인 평등을 내세워 영적 질서를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모세가 배운 학문이나 그의 지위가 그를 지도자로 만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이 그 권위의 근거였음을 그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본론 오늘 본문 속 유대인들 역시 동일한 실수를 범합니다. 명절 중간에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을 향해 그들은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라며 학문적 배경, 즉 '스펙'을 문제 삼습니다. 그들...

[2월 15일 묵상] 요한복음 5장 31절-47절, 지도를 보며 길을 잃어버린 당신에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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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00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새 찬송가 202장,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 서론: 검색은 하지만 접속하지 않는 신앙 여러분, 오늘 새벽 공기를 가르며 이 자리에 오시기까지 어떤 마음이셨나요? 우리는 참 바쁜 세상을 삽니다. 어디를 가든 스마트폰 지도를 켜고 '검색'부터 하죠. 맛집을 찾고, 리뷰를 보고, 가장 빠른 길을 찾습니다. 그런데 가끔 이런 경험 없으신가요? 화면 속 지도를 너무 열심히 들여다보다가 정작 바로 앞에 있는 목적지 간판을 못 보고 지나쳐 버리는 일 말입니다. 정보는 가득한데 실체와는 멀어지는 역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 디지털 일상 '입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참 닮았습니다. 우리는 매일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예배'라는 키워드를 검색하며 삽니다. 하지만 정작 그 모든 말씀이 가리키는 종착지인 ' 예수 그리스도 '와 인격적으로 마주 앉아 본 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성경 박사라고 자부하던 유대인들에게 뼈아픈 말씀을 하십니다. "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39-40절) ." 본론 오늘 이 새벽, 우리는 '종교적 열심'이라는 지도를 잠시 내려놓고, 그 지도가 가리키는 '살아계신 예수님'께 직접 접속하길 원합니다. 우리의 결핍과 종교적 매너리즘을 뚫고 들어오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1. 충분한 증거, 그러나 닫힌 마음 예수님은 지금 마치 법정에 서 계신 듯합니다. 당시 유대 법은 한 사람의 주장이 참되려면 적어도 두 명 이상의 증인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자신을 위해 네 가지 증인을 세우십니다. 세례 요한의 증언,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 성부 하나님의 음성, 그리고 결정적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누구의 증언도 필요 없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