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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7일 묵상] 야고보서 1장 19-27절, 자유케 하는 온전한 법을 바라보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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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장 19-27절, 자유케 하는 온전한 법을 바라보라 야고보서 1장 19-27절, 다시 온유함의 자리로 돌아오라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새 찬송가 200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서론 성경을 보면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도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 앞에서 주저앉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갈멜산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불로 응답하셨던 기도의 용사도, 끝없는 고립감 앞에서 기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광야의 로뎀나무 그늘 아래 엎드려 "여호와여 지금 내 생명을 거두어 주옵소서"라며 절규했습니다. 탈진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왜 믿음이 없느냐고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천사를 보내 어루만지시며, 숯불에 구운 떡과 시원한 물 한 병을 건네셨습니다. 지쳐 잠들면 다시 깨워 먹이시며 세미한 음성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오늘 우리 현실도 엘리야의 광야와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피로사회》에서 오늘날 사람들을 가리켜 '자기 착취에 빠진 번아웃 환자'라고 진단했습니다. 타인의 강요 때문이 아니라, '더 잘해야 한다', '멈추면 뒤처진다'는 자신의 내면 강박에 짓눌려 스스로를 소진시킨다는 것입니다. 늦은 밤까지 일터와 가정에서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겨우 눈을 붙였다가 다시 새벽을 맞이하는 성도들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자칫 우리 마음을 더 무겁게 짓누르기 쉽습니다. 말을 아껴라, 성내지 마라, 행함이 없으면 가짜다. 가뜩이나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성도의 등 뒤에 또 다른 짐을 얹는 것처럼 다가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야고보 사도가 전한 권면의 의도가 아닙니다. 야고보는 본문 바로 앞 18절에서 '하나님이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는 복음을 먼저 선포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를 몰아세우는 훈계가 결코 아닙니다. 오히...

[10월 16일 묵상] 야고보서 1장 12-18절, 변함없는 빛들의 아버지 품에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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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장 12-18절, 변함없는 빛들의 아버지 품에서 야고보서 1장 12-18절, 고단할 때 빛이신 아버지를 바라보십시오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12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새 찬송가 415장, 십자가 그늘 아래  서론 로뎀나무 그늘 아래 힘없이 주저앉아 "여호와여, 지금 내 생명을 거두어 주옵소서" 탄식하던 선지자 엘리야의 깊은 탈진을 기억합니다. 갈멜산에서 하늘의 불을 끌어내리며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던 영적 거인도, 끝없이 옥죄어 오는 위협과 누적된 고단함 앞에서는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현대인의 심리와 탈진을 연구한 학자들은 번아웃 증후군을 가리켜 " 감정의 연료가 완전히 바닥나 영혼이 차갑게 식어버리는 상태 "라고 진단합니다.  오늘 이른 새벽, 무거운 눈꺼풀과 천근만근 같은 몸을 이끌고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오신 성도 여러분의 어깨에도 어쩌면 그 차가운 탈진의 무게가 고스란히 얹혀 있을지 모릅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 생계를 잇기 위해, 쉼 없이 밀려오는 인생의 거친 파도를 견뎌내느라 영과 육이 새카맣게 타버린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 제 삶은 왜 이토록 곤단하기만 합니까?"라고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탄식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가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바로 그런 성도들을 향해 오늘 말씀을 건넵니다. 박해와 가난으로 흩어져 숨죽여 흐느끼던 성도들의 거친 손을 따뜻하게 잡으며, 그들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영혼 깊은 곳으로 하나님의 자비로운 시선을 간절함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론 1. 흔들리는 인생의 밤, 변함없는 빛들의 아버지를 바라보십시오. 고난이 깊어지면 사람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립니다. 몸이 아프고, 물질에 쪼달리게 되고, 믿었던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질 때, 우리 안에서는 "하나님이 나를 미워하시나? 왜 나를 이런 구렁텅이에 밀어 넣으실까?" 하는 서운함과 의심이 생깁니다. ...

[10월 10일 묵상] 사사기 20장 1-7절, 칼을 뽑기 전에 먼저 무릎을 꿇었는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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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20장 1-7절, 칼을 뽑기 전에 먼저 무릎을 꿇었는가 사사기 20장 1-7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20장 1-7절, 분노가 아니라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새 찬송가 364장, 내 기도하는 그 시간 서론: 분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부의 사회학자들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분노 시대"로 정의를 내립니다. 도로 위에서 운전자들은 분노 속에서 운전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정치 속에도 분노가 가득 차 있고, 가정에도 분노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나와 생각이 다르면 거부하고 분노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너무나도 쉽게 분노하고 다투는 모습을 우리 주변에서 자주 목격하고, 나 자신도 분노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상대방의 해명에는 관심이 없고 듣지도 않으며, 내 생각과 내 감정만을 중시하면서 분노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속의 이스라엘 총회도 자신들의 감정에만 충실하였습니다. 사건의 전후를 따지지도 않고 하나님께 묻지도 않았습니다. 레위인의 첩이 참혹하게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에 온 이스라엘 지파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일어났습니다. 미스바에 집결한 군사만 무려 사십만 명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여호와 앞에” 모였다고 증언합니다. 겉모습만 보면 불의를 참지 못해 달려 나온 거룩한 영적 각성을 한 것 같습니다. 기브아의 패륜을 심판하겠다며 피를 흘릴 기세로 칼을 빼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총회 뒤에 숨은 실상을 들여다보면 너무나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사십만 명이 모여 피 끓는 의분을 쏟아내면서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해 무릎을 꿇는 사람이 사십 만명 중에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님께 엎드려 묻는 간절한 기도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본론: 내 소견을 꺾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있습니다 1. 자기 의(義)에 취해 칼을 빼어 들다. 총회 한복판으로 걸...

[10월 8일 묵상] 사사기 19장 11-21절, 아무도 문을 열지 않았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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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9장 11-21절, 아무도 문을 열지 않았다 사사기 19장 11-21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19장 11-21절, 신앙의 문은 열려 있습니까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93장, 주의 사랑 비칠 때에 새 찬송가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서론 여러분, 길 한복판에 사람이 앉아 있는데도 못 본 척 지나친 적이 있습니까? 눈은 분명히 마주쳤는데 마음속에서 얼른 계산부터 합니다. 괜히 나섰다가 일이 커지면 어쩌지. 누군가 돕겠지. 저도 이런 본문 앞에서는 쉽게 남을 꾸짖지 못하겠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를 미루고, 형편이 뻔히 보이는데도 모른 척한 얼굴들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새벽에 말씀을 펴 놓고도 마음 한쪽이 부끄러워집니다. 기브아 사람들의 얼굴이 낯설지 않습니다. 내 얼굴도 그들 사이에 보입니다. 레위인 일행은 여부스를 지나 기브아로 갑니다. 여부스는 이방인의 성읍이고, 기브아는 베냐민 지파의 성읍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백성이 사는 곳이 낫겠지. 그런 기대였을 겁니다. 그런데 해가 지도록 아무도 문을 열지 않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여행자들도 아니었습니다. 짚도 있고 양식도 있고 포도주도 있었습니다. 잠자리 하나면 됐습니다. 그 작은 자리마저 내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기브아의 죄는 요란한 함성보다 먼저, 조용한 외면에서 시작됐습니다. 본론 1. 왕이 사라진 마음은 이웃을 외면합니다 사사기는 이 시대를 한 문장으로 진단합니다. 제가 사사기 21장 25절을 읽겠습니다. 사사기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왕이 없다는 말은 왕궁이 비었다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말씀보다 내 형편이 앞섰고, 이웃의 고통보다 내 평안이 더 소중해졌습니다. 그러자 사람을 보면서도 짐으로만 여기게 됐습니다. 기브아 사람들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을 겁니다. 하루 종...

[10월 3일 묵상] 사사기 16장 15-31절, 힘이 빠져야 비로소 보입니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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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6장 15-31절, 힘이 빠져야 비로소 보입니다 사사기 16장 15-31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16장 15-31절, 내어드릴 때 시작되는 십자가의 은혜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38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새 찬송가 542장, 구주 예수 의지함이 서론 시월로 접어드니 새벽 공기가 제법 쌀쌀합니다. 이른 시간에 몸을 일으켜 교회로 오실 때 무릎이나 허리가 뻐근해서 "아이고~"라는 가벼운 신음이 절로 나오기도 하지요. 젊을 때는 밤을 꼬박 새워 일해도 거뜬했고, 내 힘과 의지만 있으면 세상에 넘지 못할 산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쉰을 넘기고 예순, 일흔의 고개를 넘어가면서 우리는 몸으로 배웁니다. 손아귀 쥐는 힘도 예전 같지 않고, 자식 일이나 집안 살림도 내 고집대로 풀리지 않는 날이 점점 많아집니다. 내가 쥔 기운과 지혜가 다 닳았다는 사실을 문득 마주할 때, 우리 마음에 불쑥 쓸쓸함이 찾아오곤 합니다. 사사 삼손도 꼭 그랬습니다. 나귀 턱뼈 하나로 천 명을 쓰러뜨리던 괴력을 자랑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엄청난 힘이 하나님께서 값없이 부어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어느덧 자기 원래 실력인 양 으스대며 살았습니다. 들릴라의 무릎에 머리를 누이고 잠들었다가 머리털이 다 밀려나갔는데도,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장담했습니다. 주님께서 이미 곁을 떠나셨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영적으로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내 힘으로 얼마든지 상황을 뒤집을 수 있다는 교만한 착각이 결국 그를 쇠사슬에 묶인 죄수로 전락시켰습니다. 두 눈이 뽑힌 채 블레셋 가사의 감옥에서 짐승처럼 맷돌을 돌릴 때, 삼손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평생 자랑거리였던 완력도, 영웅이라는 명성도 흙먼지 속에 짓밟혔습니다. 성경은 바로 그 비참한 밑바닥에서 그의 머리털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다고 조용히 증언합니다. 스스로 버티던 견고한 벽이 와르르 ...

[10월 2일 묵상] 사사기 16장 1-14절, 내가 길들일 수 있다고 믿었던 맹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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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6장 1-14절, 내가 길들일 수 있다고 믿었던 맹수 사사기 16장 1절-14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16장 1-14절, 십자가, 가장 연약할 때 가장 강해지는 역설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42장, 너 시험을 당해 새 찬송가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서론 올 여름에, 교회 마당의 작은 화단의 무화과 나무에 가느다란 넝쿨 하나가 삐져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처음엔 연초록 잎이 참 앙증맞고 예뻐서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이 조그만 풀잎이 나무를 어쩌겠나' 싶었지요. 그런데 몇 차례 비가 오고 가을이 깊어가는 지난 주에 보니 그 가느다란 줄기가 무화과 나무 전체에 걸쳐 거미줄처럼 줄기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옆집의 철로된 담장까지 타고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넝쿨이 주변을 모두 점령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작고 귀엽게만 보여서 곁에 두었던 것이, 어느 순간 화단 전체를 삼켜버릴 듯 위협하는 억센 맹수로 자라 있었던 것입니다. 본론 우리 신앙생활도 이 넝쿨과 참 많이 닮았습니다. 처음부터 대놓고 죄를 짓겠다고 작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정도 타협은 괜찮겠지', '이 작은 습관 하나쯤이야 내가 언제든 통제할 수 있어'라며 슬그머니 마음에 죄의 자리를 내어줍니다. 죄를 무서운 독사로 보지 않고, 내 손바닥 위에서 재롱부리는 애완동물처럼 다루는 셈입니다. 삼손의 비극도 바로 그 방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 영적 방심으로 욕망의 문을 열어두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십시오. 사사기 16:1,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이 구절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보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아(רָאָה)'입니다. 라아는 단순히 눈동자로 사물을 식별하는 동작을 넘어, 마음을 빼앗겨 탐닉하고 욕망에 사로잡혀 뚫어지게 응시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삼손은 앞서...

[9월 30일 묵상] 사사기 14장 1절-20절, 나의 빈 손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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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4장 1절-20절, 나의 빈 손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사기 14장 1절-20절, 나의 어리석음보다도 크신 하나님의 일하심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사사기 14장 1-20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83장, 빈 들에 마른 풀 같이 새 찬송가 197장,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서론 어제 일입니다. 요즘 노안이 와서 작은 글자를 잘 못 읽습니다. 그래서 깨알같은 글자들은 안경을 벗고 읽기 시작했는데, 왼손에 안경을 들고서 한참을 찾았습니다. 한참을 찾다가, 왼손에 안경을 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한참동안 헛웃음을 짓고 있었습니다. '업은 아기 삼면을 찾는다'는 말이 바로 제 이야기가 되었었습니다. 살다 보면 집을 나선 뒤에야 중요한 것을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처럼 안경을 찾다가 왼손에 들고 있는 안경을 발견하기도 하고, 휴대전화를 찾으면서 손에 든 전화기로 가족에게 전화를 걸기도 합니다. 그때는 웃고 넘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에는 웃을 수 없는 빈손의 순간도 찾아옵니다. 다른 한 손에라도 들고서 깜빡 잊어버렸다면 다행이지만, 양 손에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는 순간은 '절망의 순간'이며 '두려움의 순간'일 수 있습니다. 병원에서 뜻밖의 말을 들었을 때가 그렇지 않습니까. 자녀의 문제 앞에서 내가 해 줄 말이 없거나 도와 줄 능력이 없을 때, 내가 가진 돈도 방법도 바닥났을 때가 그렇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속으로 묻습니다. “이제 무엇으로 버티지?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지?” 본론 오늘 본문의 삼손도 빈손으로 섰습니다. 딤나의 포도원 길에서 젊은 사자가 으르렁거리며 달려왔습니다. 도움을 청할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칼도 없습니다. 창도 없습니다. 손에 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사자를 만난 것도 갑작스러운데, 준비할 시간마저 없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런 사자가 갑자기 달려들 때가 있습...

[9월 28일 묵상] 사사기 13장 1절-14절, 부르짖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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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3장 1절-14절, 부르짖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사사기 13장 1절-14절, 답을 더 구하기 전에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사사기 13장 1-14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90장, 예수가 거느리시니 새 찬송가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서론 매일 새벽 4시 정도에 일어납니다. 그리고 교회의 사무실로 올라 옵니다. 아직 어두운데 집을 나서다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세상은 다 잠든 것 같은데, 빵집 안에는 벌써 불이 켜져 있습니다. 주인은 반죽을 하고, 오븐을 달구고, 손님이 오기 전에 빵을 굽습니다. 손님은 아침에 문을 열고 들어가 따뜻한 빵을 보면서 그제야 일이 시작된 줄 압니다. 그런데,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가 문을 열기 전부터 누군가는 일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도 그럴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알아차리기 전부터, 기도 제목을 제대로 말하기 전부터, 하나님은 이미 움직이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은 참 답답한 모습입니다. 블레셋의 손에 눌려 지낸 세월이 사십 년입니다. 사십 년이면 갓난아이가 중년이 될 만큼 긴 시간입니다. 이전에는 어려움이 닥치면 뒤늦게라도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그 부르짖음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고통에 익숙해진 것입니다. 블레셋의 지배도 익숙하고, 하나님 없이 사는 형편도 익숙해졌습니다. 아픈데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상태. 그것이 그 시대의 영적 현실이었습니다. 이제 죄의 순환이 되풀이되는 수준을 넘어 점점 깊어지는 모습입니다. 본론 그런데,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회개운동을 시작해서가 아닙니다. 마노아가 구원자를 달라고 철야기도를 한 것도 아닙니다. 한 이름 없는 여인, 아이를 낳지 못해 오랜 세월 마음이 무너졌을 여인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먼저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은 백성이 부르기도 전에 구원의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새벽 우리가 붙들 말씀도 여기에 있습니다. 내...

[9월 25일 묵상] 사사기 11장 12절-28절, 섬기는 신이 다르면 인생의 결론도 다릅니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 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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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1장 12절-28절, 섬기는 신이 다르면 인생의 결론도 다릅니다 사사기 11장 12-28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11장 12절-28절, '우연'이라 말하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손'을 믿는 신앙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22장,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새 찬송가 171장, 하나님의 독생자 서론 아마 이런 경험은 한두번 이상 있으셨을 겁니다. 티비를 보다가 리모컨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상하지요. 분명히 조금 전까지 손에 들고 있었는데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소파 틈을 뒤지고, 식탁 위를 보고, 심지어 냉장고 문까지 열어 봅니다. 그런데 한참 찾다가 보면 내 손에 들려 있을 때도 있습니다. 안경을 찾으면서 안경을 쓰고 있는 일도 있고요. 우리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곁에 계시고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데, 자꾸 다른 곳에서 살길을 찾습니다. 내가 가진 재산의 액수를 세어보고, 자녀에게 전화를 걸고, 힘 있는 사람의 말 한마디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정작 내 옆에 계신 하나님은 놓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신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암몬 사람들이 의지하던 그모스입니다. 다른 한 분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이십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암몬도 자신들의 신인 "그모스"를 말하고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말합니다. 현재 양쪽 모두 전쟁을 앞두고 있습니다. 자기 신이 이 땅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말만 들으면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차이가 드러납니다. 그모스는 자기 백성을 살리지 못합니다. 역사도 붙들지 못하고 판결도 내리지 못합니다. 이름은 있으나 일하지 못하는 신입니다. 본론 우리에게 그모스라는 이름의 우상은 없을지 모릅니다. 작은 신상을 집에 두고 절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마음 깊이 들어가 보면 다른 이름의 우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돈이 넉넉해야 안심됩니다. 몸이 건...

[9월 24일 묵상] 사사기 11장 1절-11절, 지워진 페이지는 하나도 없습니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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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1장 1절-11절, 지워진 페이지는 하나도 없습니다 사사기 11장 1-11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11장 1절-11절, 내 인생의 거친 날들도 주님 손에 있습니다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새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서론 며칠 전 서재 정리를 하다가 20년도 더 지난 낡은 수첩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겉장은 누렇게 바래고 모서리는 닳아 떨어져 얼핏 보면 영락없이 쓰레기통에 들어갈 모양새였습니다. 무심코 첫 장을 넘겼는데, 처음 교육전도사로 중고등부에서 사역하면서 속 썩이던 한 영혼을 두고 가슴 아파하며 눈물로 적어 내려간 기도문이 거기 적혀 있더군요. 남들 눈에는 버려도 그만인 종이쪽지였지만, 제게는 그 어떤 신학 책보다 귀했습니다. 오십을 넘기고 예순, 일흔의 고개를 넘다 보면 가슴 밑바닥에 말 못 할 상처 하나쯤 묻어두지 않은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식에게 털어놓자니 짐이 될 것 같고, 곁에 있는 배우자에게 꺼내자니 속만 상할 것 같아 혼자 삭여온 세월의 멍자국들이 있습니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 집안도 아니었고 내 뜻대로 잘 해결되지 않던 가난이나 부족함 때문에 서러운 눈물을 훔치던 밤도 참 많았습니다. 세상은 번듯한 배경이나 눈에 띄는 열매만 쳐다보며 사람의 가치를 매기니, 그 기준에 맞추느라 참 고단하게 달려왔습니다. 본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속 이스라엘 백성의 처지도 참 막막했습니다. 암몬 족속의 억압 아래서 무려 18년 동안 짓밟히며 숨 한 번 크게 쉬지 못했습니다. 미스바 평원에 모이기는 했는데, 성난 사자처럼 밀고 들어오는 적군 앞에서 군대를 이끌 지휘관 하나 찾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지요. 눈앞은 캄캄하고 사방은 꽉 막힌 그 절망의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까맣게 몰랐겠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은 이미 그들의 짓무른 상처와 가쁜 숨소리를 다 헤아리며 구원의 길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