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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일 묵상] 요한복음 1장 35절-51절, 인생의 검색창을 끄고, 그리스도를 대면하십시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52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새 찬송가 323장,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서론: 소외된 현대인의 갈망과 야곱의 사닥다리 최근 한 일간지 기사에는 ‘초연결 사회의 역설’이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통계가 실렸습니다. 하루 종일 수백 명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SNS로 타인의 일상을 관찰하지만, 정작 "내가 지금 너무 힘들다"고 말할 단 한 사람을 찾지 못해 고독사하거나 극단적인 외로움을 느끼는 현대인이 급증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는 손가락 하나로 전 세계의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정작 ‘나’라는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찾기 위해 영혼의 검색창을 두드릴 때는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습관적으로 확인하는 스마트폰의 알림보다, 내 영혼의 깊은 갈증을 해결해 줄 진짜 '연결'이 우리에게는 절실합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은 구약성경 창세기 28장의 야곱을 떠올리게 합니다. 형 에서의 낯을 피해 광야로 도망친 야곱은 빈손이었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지켜보지 않는다고 믿었던 그 외로운 광야의 밤, 야곱은 차가운 돌베개를 베고 잠이 듭니다. 그때 하나님은 하늘과 땅이 맞닿은 신비로운 '사닥다리'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야곱은 비로소 깨닫습니다. "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 나만 홀로 남겨졌다고 생각한 그 처절한 고립의 현장이 사실은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성소(벧엘)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야곱의 사닥다리가 실체가 되어 우리 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합니다. 우리가 인생의 빈칸을 채우기 위해 헤맬 때, 주님은 이미 우리를 보고 계셨으며 우리를 향해 " 와서 보라 "라고 초대하고 계십니다. 본론 1. 갈망의 방향을 바꾸는 초대, "무엇을 구하느냐?" 본문 35절에서 39절은 세례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르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들은 요...

[2월 2일 묵상] 요한복음 1장 19절-34절, 사라지는 소리, 영원한 어린 양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68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새 찬송가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서론: 나는 누구인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새벽에 주님 전을 찾으신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질문을 받지만, 가장 근원적인 질문은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일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직함, 소유, 능력으로 우리를 정의하려 합니다. 때로는 우리 스스로가 내가 가진 것보다 나를 더 부풀려 생각하며 교만해지기도 하고, 반대로 나의 초라한 모습 때문에 낙심하며 무가치하게 느끼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삶의 문제들과 나의 연약함 앞에서 "도대체 나는 누구이며, 나는 누구를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가?"라는 영적인 혼란을 겪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오늘 본문은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 요한의 증언을 통해, 우리의 참된 위치를 깨닫고 참된 구원자를 바라보는 복된 새벽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1.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겸손: "나는 소리다" 오늘 본문 19절을 보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요한을 찾아와 묻습니다. "네가 누구냐?"라고 말입니다. 이 질문을 받던 당시 요한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에게 몰려와 세례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혹시 오실 메시아(그리스도)가 아닌지, 아니면 엘리야나 그 선지자인지 궁금해했습니다. 요한은 이 질문 앞에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숨김없이 말합니다. "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 그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니라고 부인합니다. 사람들이 그를 높여줄 때, 그는 철저하게 자신을 낮춥니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이렇게 밝힙니다. 23절입니다. 요한복음 1:23,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2월 1일 묵상] 요한복음 1장 1절-18절, 어둠을 밝히는 참 빛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 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새 찬송가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서론: 어둠을 뚫고 오는 새벽 할렐루야! 오늘도 어둠을 뚫고 기도의 자리로 나오신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새로운 하루를 시작합니다. 어두컴컴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우리는 본능적으로 '빛'을 찾습니다. 빛이 있어야 하루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영혼의 하루는 어떻게 시작됩니까?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고단한 일상,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여전히 캄캄한 어둠 속에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영혼의 어둠을 몰아내는 '참 빛'에 대해 말씀합니다. 본론 1. 태초의 말씀,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 오늘 본문 1절은 아주 웅장하게 시작합니다.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여기서 '말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계셨던 영원하신 하나님, 온 우주를 창조하신 능력의 주님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선포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 우리가 아침에 스마트폰 알람 소리에 깨어나는 것은 육신의 잠에서 깨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진짜 깨어나려면 '생명의 빛'이 필요합니다. 전기가 들어와야 가전제품이 작동하듯이, 우리 영혼에는 예수님의 생명이 들어와야 비로소 사람답게 살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하루의 시작을 누구와 함께하고 계십니까? 단순히 시간을 관리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을 넘어, 태초부터 계신 창조주,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께 접속되어 있습니까? 그분이 나의 빛이 되시지 않으면, 우리는 대낮에도 영적인 어둠 속을 헤매게 될 것입니다. 2. 영접하는 자에게 주시는 권세 그런데 문제가 ...

[1월 31일 묵상] 창세기 21장 22절-34절, 신실한 약속, 영원한 언약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새 찬송가 70장, 피난처 있으니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새벽, 여러분의 마음속에 어떤 걱정거리나 불안감이 자리하고 계십니까? 혹시 풀리지 않는 관계의 문제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깊은 숨을 내쉬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우리 삶에는 예기치 않은 갈등과 어려움들이 찾아와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평안을 빼앗아갈 때가 많습니다. 특히, 힘들게 얻어낸 기쁨과 안정 뒤에 찾아오는 또 다른 문제들 앞에서, '과연 내 삶에 진정한 평화는 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생애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인 이삭의 탄생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아들을 얻은 기쁨도 잠시, 아브라함은 다시금 현실적인 문제와 씨름해야 했습니다. 바로 우물 문제였습니다. 물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기에, 우물은 곧 생명과 평화의 상징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중요한 문제 앞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오늘 우리는 브엘세바에서 아브라함이 경험했던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분이 맺으신 영원한 언약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며, 우리 삶의 갈등 속에서 어떻게 참된 평화와 안전을 누릴 수 있을지 함께 찾아보고자 합니다. 본론 1. 삶의 갈등 속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인정하라. 본문은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찾아와 함께 언약을 맺자고 제안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22절 말씀을 보십시오. 창세기 21:22,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의 삶을 지켜보면서, 그에게 임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능력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고백입니다. 이방 민족의 왕이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고백하며, 그 신실하신 하나님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을 맹세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에게는 아비멜렉과의 관계에서 여전히 ...

[1월 30일 묵상] 창세기 21장 1절-21절, 불신의 비웃음이 기적의 웃음으로 변할 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새 찬송가 420장, 너 성결키 위해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삶에도 '정말 이럴 수 있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혹은 '이렇게까지 되어야만 할까?' 싶어 마음 아파했던 순간들이 있으신가요? 늙은 부모에게 자녀가 태어나고, 자녀의 탄생으로 인해 또 다른 자녀가 쫓겨나는 이야기... 마치 막장 드라마 같은 오늘 본문은, 사실 우리 삶의 한 단면을 정확히 보여줍니다. 우리는 때로 간절히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낙심하고, 너무 오래 기다리다 지쳐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언제쯤 내 삶에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까?’, ‘이 힘든 상황은 언제쯤 끝날까?’라는 질문으로 밤잠 설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오늘 우리는 이삭의 탄생과 하갈의 추방이라는 다소 복잡한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우리의 절망과 실수를 뛰어넘어 성취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베푸시는지 함께 묵상하며,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다시 붙잡는 은혜의 시간을 갖기 원합니다. 본론 1.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약속 성취 오늘 본문의 1절과 2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창세기 21:1-2,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이 말씀 안에 얼마나 많은 의미와 감동이 담겨있는지 모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 사라는 90세였습니다. 이미 생물학적으로는 자녀를 낳을 수 없는,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마 사라를 보며 비웃었을 것이고, 그들의 약속은 허황된 꿈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사라 자신도 처음에는 약속을 듣고 비웃었습니다. “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 (창 18:12). 그러나 하나님은...

[1월 29일 묵상] 창세기 20장 1절-18절, 반복되는 나의 실패, 변함없는 주의 은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70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새 찬송가 391장,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서론: "또 시작이네..." 반복되는 우리의 모습 성도 여러분, 평안히 주무셨습니까? 오늘 우리는 창세기 20장을 통해 너무나 인간적인, 어찌 보면 실망스러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만납니다. 혹시 '데자뷔(기시감)', 어디선가 이미 본 것 같은 느낌을 느끼지 않으십니까? 오늘 본문은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이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아내 사라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였던 사건과 너무나 똑같습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고, 수많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건만, 위기의 순간이 닥치자 아브라함의 옛 습관, 두려움이라는 고질병이 또다시 튀어나옵니다. 본론 이 모습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엔 다르겠지, 이제는 믿음으로 살아야지" 다짐하지만, 현실의 문제 앞에서 또다시 무너지고 타협하는 나약한 모습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의 반복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만나기를 소원합니다. 1. 두려움은 믿음의 눈을 가리고 옛 습관을 부릅니다. 아브라함이 그랄 땅으로 이주했을 때, 그는 또다시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11절에 그의 속마음이 나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창세기 20:11,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아브라함은 지금 눈에 보이는 현실인 그랄 사람들의 위협만 보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놓쳤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아브라함에게서 사라지자, 세상을 향한 두려움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습니다. 그 두려움은 그를 다시 거짓말이라는 옛 습관으로 몰아갔고, 결국 약속의 어머니인 사라를 이방 왕에게 빼앗기는 치명적인 위기를 자초했습니다. 우리가 새벽을 깨워 기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현실의 두려움이 내 믿음의 눈을 가리지 않게 하기 위...

[1월 28일 묵상] 창세기 19장 24절-38절, 뒤를 돌아보지 않는 새벽의 믿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47장, 허락하신 새 땅에 새 찬송가 499장, 흑암에 사는 백성들을 보라 서론 성도 여러분, 이 새벽 하나님의 전을 찾으신 여러분에게 주님의 평안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새로운 하루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오늘도 어제와 같은 문제들로 힘들지는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과 세상이 주는 달콤한 유혹들이 우리 발목을 잡을 때가 참 많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본문은 성경에서 가장 어둡고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 하늘에서 유황과 불이 비처럼 쏟아지는 심판의 현장, 그리고 구원받은 이후에 벌어지는 참담한 인간의 실패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무거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오늘 이 새벽을 깨우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실까요? 본론 1.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뒤를 돌아보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심판은 실제적이고 준엄합니다. 해가 돋을 때 평화로워 보이던 소돔과 고모라에 하늘로부터 유황과 불이 비같이 내렸습니다(24절). 하나님은 죄악을 결코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이 급박한 탈출의 순간에 비극이 일어납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창세기 19: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17절을 보면, 천사들은 분명히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여기서 '돌아보았다'( נָבַט, 나바트 )는 것은 단순히 고개를 돌린 실수를 넘어선, 더 깊은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그녀의 시선에는 소돔에 두고 온 재물, 화려한 삶, 세상의 즐거움에 대한 깊은 미련과 애착이 담겨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발은 소돔을 빠져나왔지만, 그녀의 눈은 소돔을 아쉬워하며 바라보았고 마음은 여전히 소돔 한복판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녀는 구원의 문턱에서 심판의 상징인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