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장 1절-11절, 무너진 성벽, 깨어난 기도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11월 20일의 묵상 본문인 느헤미야 1장 1-11절을 묵상하고 정리한 새벽 설교입니다. 안락함 속에 살던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서 들려 온 비보에 애통과 중보기도를 하게 됩니다. 이 설교는 우리 삶의 무너진 성벽(가정, 자녀, 사회)을 직시하고, 기도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재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의 담이 허물어지고, 십자가의 능력으로 회복되는 복음을 전합니다. 무너진 자리에서 시작되는 은혜를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느헤미야 1장 1절-11절, 무너진 성벽, 깨어난 기도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369장,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 새 찬송가 279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서론: 내 마음의 '무너진 성벽'
요즘 자녀들을 보며 이런 생각하시는 분들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저 아이를 어떻게 키웠는데... 교회 한 번 안 나가고, 도무지 하나님을 알려고 하질 않으니... 내 신앙 교육이 다 무너졌구나." 자녀의 영적 무관심이라는 '무너진 성벽' 앞에서 부모의 마음은 무너져 내립니다.
혹은, 뉴스를 틀 때마다 들려오는 분열과 갈등의 소식, 다음 세대의 방황, 교회의 신뢰도 하락 같은 소식들은 이 나라와 민족, 그리고 한국 교회의 '무너진 성벽'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본론
이처럼 우리는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크고 작은 '무너진 성벽'을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의 느헤미야 역시 그랬습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의 눈에 보이는 무너진 성벽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무너진 성벽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안락함 속에서 들려온 비보
오늘 본문은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로 시작합니다. 느헤미야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인 수산 궁에서 왕의 술 관원으로 일하던 사람입니다. 왕의 최측근에서 부와 명예, 안락한 삶을 누리던 성공한 이민 2세대, 혹은 3세대였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편안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고국의 비참한 소식을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2-3절을 보면, 그의 형제 하나니가 예루살렘의 끔찍한 소식을 전해줍니다.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이 소식은 느헤미야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소식이 그의 마음에 거룩한 불을 지폈습니다. '성벽이 무너졌다'는 것은 단순히 담벼락이 무너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방 민족의 조롱거리가 되는 '수치'를 의미했고, 적들의 침입에 무방비로 노출된 '위험'을 의미했으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이 무너진 '영적 파탄'을 의미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의 반응을 4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 느헤미야 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느헤미야는 안락한 자신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먼저, '앉아서 울었습니다.' 그리고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는 문제의 심각성을 자신의 아픔으로 끌어안았습니다.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로, 나아가 '내' 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한 부담감'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2. 진정한 성벽 재건자, 예수 그리스도
느헤미야의 기도는 위대합니다. 그는 6-7절에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였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있지도 않았지만, 그 민족의 죄를 '자신의 죄'로 동일시하며 회개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느헤미야를 통해 장차 오실 더 위대한 중보자요, 재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를 발견합니다.
첫째, 느헤미야는 왕궁의 안락한 보좌를 뒤로하고, 무너진 성벽, 고통받는 백성에게로 가고자 했습니다. 이는 하늘의 영광 보좌를 버리고 죄인들의 비참한 땅, 수치와 고통의 현장으로 기꺼이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미리 보여 주고 있습니다.
둘째, 느헤미야는 백성의 죄를 '자신의 죄'로 끌어안고 회개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죄가 없으신 분이시지만 우리의 모든 죄를 '자신의 죄'로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그 죄의 값을 대신 치르셨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가장 궁극적인 '무너진 성벽'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생긴 거대한 단절입니다. 이 성벽은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도 재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외치시며 운명하실 때,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은 말합니다.
- 에베소서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느헤미야가 재건한 돌 성벽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자신의 육체를 찢으심으로 허무셨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진정한 화평이요, 진정한 재건자이십니다. 느헤미야가 무너진 성벽을 재건했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무너진 '우리의 삶'을, '우리의 영혼'을 재건하십니다.
3. 거룩한 부담감을 기도로 승화시키는 삶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나타난 느헤미야의 모습을 보며 이 새벽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첫째, 무너진 성벽을 외면하지 말고 직시하며 '애통'해야 합니다. 한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즘 성도들은 눈물이 메말랐습니다. 나라를 위해서도, 교회를 위해서도, 심지어 자기 영혼을 위해서도 울지 않습니다."
느헤미야는 '앉아서 울었습니다.' 4절의 이 행동은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 할 첫 번째 모습입니다. 내 자녀의 무너진 신앙, 교회의 무너진 거룩성, 이 사회의 무너진 정의를 보며 애통하는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 눈물 젖은 기도가 시작입니다.
둘째, '나'의 죄가 아닌 '우리'의 죄로 고백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6절에서 어떻게 기도하였습니까?
- 느헤미야 1: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라고 기도합니다. 그는 "저들이 잘못했습니다"라고 손가락질하지 않고, "우리가 잘못했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새벽을 깨우며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이 시대의 '느헤미야'가 되어주셔야 합니다. "요즘 젊은 것들은..."이 아니라, "우리가 다음 세대를 신앙으로 바로 세우지 못한 죄를 용서하소서"라고 기도하는 영적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결론: 무너진 데서 시작되는 은혜
오늘 우리는 무너진 성벽 앞에 선 느헤미야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의 자리에서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무너진 자리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는 '기도의 자리'로 바꾸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에, 자녀에게, 혹은 이 나라에 무너진 성벽이 보입니까? 그것은 절망의 신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을 '느헤미야'로 부르시는 '기도의 신호'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재건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로 모든 막힌 담을 허무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능력과 부활의 생명을 의지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무너진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이 새벽, 우리의 눈물이 기도가 되고,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는 통로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하늘의 하나님, 오늘 우리 삶의 무너진 성벽을 바라보며 애통하는 마음을 우리에게 주옵소서. 이 모든 현실들이"저들의 죄"가 아닌 "우리의 죄"임을 고백하며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무너진 가정의 신앙과 이 민족, 교회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진정한 재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능력으로 우리를 다시 세우시고, 우리의 눈물의 기도가 이 땅을 고치는 통로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무너진 우리 가정의 신앙을 회복시켜 주소서.
- 이 민족의 죄악을 용서하시고 거룩하게 하소서.
- 교회가 다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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