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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일 묵상] 시편 2편 1절-12절,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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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72장, 만왕의 왕 앞에 나오라 새 찬송가 151장,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서론 오늘 이 새벽, 오직 주만 바라보며 하늘의 은혜를 구하며 나오신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무거운 짐을 벗겨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새벽에 기도하러 왔는데도 마음이 조용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자녀 걱정, 건강 문제, 돈 문제, 앞으로의 일을 주께 맡기러 왔는데, 여전히 마음 속에 가득하여 염려가 한꺼번에 밀려옵니다. 몸은 예배당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아직 세상 소식과 걱정 속을 오갑니다. 조용히 눈을 감아도 마음 한쪽에서는 계속 계산이 돌아갑니다. “이 일은 어떻게 되지? 저 사람은 왜 그랬을까? 앞으로 괜찮을까?” 새벽은 고요한데, 마음은 고요하지 않습니다. 시편 2편도 조용히 시작하지 않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 세상이 들끓습니다. 왕들이 모이고 권력자들이 서로 의논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맞서는 대상은 단순한 제도나 종교가 아닙니다. “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입니다. 이 반역은 세상 밖에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생명의 길로 믿는다고 말하지만, 때로는 그것을 나를 묶는 결박처럼 느낍니다. 그래서 내 뜻, 내 계획, 내 걱정을 왕처럼 붙듭니다. 주님께 맡긴다고 말하면서도, 밤새 마음으로는 내가 붙들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오늘 말씀은 흔들리는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세상은 흔들려도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아들에게 피하는 사람이 복 있습니다. 본론 1.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는 왕을 세우셨습니다. 1절은 열방의 소란을 보여 줍니다. 1절을 다시 제가 읽겠습니다. 시편 2: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분노하며”라는 말은 히브리어 רָגְשׁוּ(라그슈)로, 마음과 세상이 함께 들끓는 모습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유는 평안을 주지...

[7월 1일 묵상] 시편 1편 1절-6절, 메마른 영혼이 다시 뿌리내리는 길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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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00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새 찬송가 546장,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서론: 우리는 어디에 앉아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벽에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몸은 아직 무겁고, 마음에는 어제의 걱정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자녀 문제, 건강 문제, 생활의 염려, 누군가를 향한 서운함이 마음 한쪽에 앉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조용히 물으십니다. “너는 지금 어디에 앉아 있느냐? 그리고 어디에 심겨 있느냐?” 창세기의 롯을 생각해 봅니다. 롯은 어느 날 갑자기 소돔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먼저 소돔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다음 소돔 가까이 장막을 쳤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소돔 성문에 앉았습니다. 죄는 늘 그렇게 옵니다. 우리를 갑자기 끌고 가지 않습니다. 조금씩 익숙하게 만들고, 어느새 그 자리가 편안하게 느껴지게 만듭니다. 시편 1편은 그 길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몰라서만 흔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보다 사람의 말, 염려의 말, 세상의 계산에 더 오래 마음을 내어주기 때문에 흔들립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를 다시 부르십니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라. 말씀의 시냇가에 다시 심기라.” 본론 1. 악의 자리에 오래 머물지 마십시오. 1절은 복 있는 사람을 먼저 “무엇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을 피하는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편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가면히 보면, 여기에는 영혼이 무너지는 순서가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걷다”는 הָלַךְ(할라크), “서다”는 עָמַד(아마드), “앉다”는 יָשַׁב(야샤브)입니다. 걷다가, 서다가, 앉습니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생각처럼 보입니다. “그 정도는 괜찮아.” 그러다가 그...

[5월 30일 묵상] 창세기 49장 29절-50장 14절,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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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새 찬송가 492장,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서론: 무엇이 우리를 끝까지 붙들어 줍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새벽 성전 문을 열고 들어오실 때 어떤 마음이셨습니까? 가족 걱정, 약해진 건강, 노후나 자녀의 앞날로 무거운 마음을 안고 나오진 않으셨습니까? 인생의 가을날을 지나며 우리는 문득 질문하게 됩니다. “내가 평생 힘써 붙들고 살아온 것들이, 과연 내 인생 마지막 날에도 나를 붙들어 줄 수 있을까?” 피땀 흘려 마련한 집, 든든한 통장, 소중한 자녀와 직장, 사람들의 인정... 모두 소중하지만, 인생의 어느 순간 우리는 그것들이 우리를 영원한 곳까지 데려가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 야곱이 등장합니다. 야곱의 인생은 참으로 파란만장했습니다. 형을 피해 도망쳐야 했고, 라반에게 속아 고된 노동을 했으며, 아내 라헬과 아들 요셉을 잃고 피눈물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종착역에 선 그의 마지막은 신세 한탄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녀들을 모아놓고 담담히 유언합니다. “나는 이제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간다.” 그리고 자신을 화려한 애굽이 아닌, 가나안 땅의 초라한 ‘막벨라 굴’에 장사하라고 간곡히 당부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상의 안정에는 쉽게 흔들리면서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은 자주 희미하게 여깁니다. 오늘 하루 버티는 것이 버거워 하나님의 언약을 놓치고 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오늘 말씀은 힘겨운 우리에게 손을 내밀며 선포합니다. 성도가 마지막까지 붙들어야 할 것은 눈앞의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의 참된 소망은 세상의 풍요가 아니라,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약속에 있습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 우리 삶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두 가지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 믿음으로 걸어가는 두 가지 길 1. 하나님 약속을 붙잡는 길 첫째로, 참된 믿음은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느헤미야 11장 1절-36절, 성전 안에서도, 마을 밭에서도 우리는 거룩한 백성입니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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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느헤미야 11장 새벽예배 설교문입니다. "흩어짐과 모임, 어디서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우리가 살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묵상하며 깨닫습니다. 예루살렘 성 밖의 삶도 거룩한 기업임을 묵상하고, 성도들을 가정과 일터라는 선교지로 파송하는 복음적인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설교 대지, 예화, 결단 기도문, 추천 찬송가, 주보 칼럼까지 포함된 설교 자료입니다.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의 균형을 통해 일상의 거룩함을 회복하는 은혜를 나누시길 바랍니다. 느헤미야 11장 1절-36절, 성전 안에서도, 마을 밭에서도 우리는 거룩한 백성입니다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23장,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새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서론 할렐루야, 이 복된 새벽에 기도의 자리로 나오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우리가 오늘 읽은 느헤미야 11장은 언뜻 보면 지루한 인명과 지명들이 나열되 것처럼 보입니다. 앞부분에는 예루살렘 성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명단이 나오고, 오늘 우리가 집중해서 볼 25절 이하에는 예루살렘 밖, 유다와 베냐민의 여러 마을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의 거주지가 나옵니다. 우리는 흔히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 즉 제사장이나 레위인, 그리고 제비 뽑혀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만이 특별한 사명자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성전 가까이 있는 것이 더 거룩하고, 멀리 떨어져 농사짓고 장사하며 사는 일상은 덜 거룩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놀라운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느헤미야는 성벽 안쪽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성벽 바깥 "브엘세바에서 힌놈의 골짜기까지(30절)" 흩어져 사는 백성들의 마을 이름을 하나하나 소중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예루살렘에 모여 예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자의 마을로 흩어져 삶의 터전을 일구는 것 또한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

스가랴 10장 1절-12절, 참 목자께서 늦은 비를 주신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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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7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스가랴 10장 1절-12절에 관한 강해 새벽예배설교입니다. 세상의 헛된 우상은 우리를 목자 없는 양처럼 고통스럽게 합니다. 참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늦은 비, 곧 성령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고 회복시키십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을 의지하여 참된 생명과 평안, 영원한 승리를 누리는 비결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스가랴 10장 1절-12절, 참 목자께서 늦은 비를 주신다 스가랴 10장 1절-12절, 참된 목자의 음성을 따르라 - 설교 연구 자료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569장,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새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서론 갈멜 산 위, 아합 왕과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엘리야 선지자가 외칩니다. “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 엘리야 선지자 맞은 편에 서 있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은 종일 자신의 신을 불렀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여호와께 기도하자 불이 내려와 제물을 태웠고, 곧이어 그가 기도하자 3년 6개월간 닫혔던 하늘이 열려 큰 비가 내렸습니다. 헛된 우상은 생명을 주지 못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은 참된 복과 생명의 단비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본론 스가랴 선지자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예언했습니다. 그들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 낙심하고 있었고, 가나안의 우상 풍습에 다시 물들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러한 백성에게 참된 복의 근원이 누구이시며, 누가 그들의 진정한 목자인지를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헛된 우상과 거짓 지도자들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봄비를 내리시는 여호와께 구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흩어진 백성을 모으고, 그들을 강하게 하여 원수들을 이기게 하실 것이라는 회복의 소망을 보여 주셨습니다. 1.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늦은 비를 구하라 먼저 하나님께서는 늦은 ...

스가랴 2장 1절-13절,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는 사랑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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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7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은 스가랴 2장 1절-13절 강해 새벽예배설교입니다. 인간의 측량줄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신뢰하십시오. 친히 '불 성곽'이 되어주시고 '눈동자같이'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측량불가한 사랑과 보호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절망의 자리에서 참된 위로와 영광스러운 회복의 길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스가랴 2장 1절-13절,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는 사랑 스가랴 2장 설교 핵심 정리,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비전 - 성경 강해 스가랴 2장 1절-13절,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 설교 연구 자료 스가랴 2:8의 ‘눈동자’: 하나님의 가장 소중한 것에 대한 신학적 탐구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새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서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향했습니다. 그가 가진 것은 하나님의 약속뿐이었지만, 그 믿음의 발걸음은 장차 세워질 거대한 하나님 나라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역시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것입니다. 본론 오늘의 본문 말씀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환상입니다.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앞두고, 한 젊은이가 성의 크기를 측량하려고 합니다. 이 모습은 인간적인 계산과 한계에 갇힌 우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측량할 수 없는 예루살렘의 영광과 회복을 보여주십니다. 무너진 성벽 앞에서 절망하던 백성에게 하나님은 친히 불 성곽이 되어 주시고, 그들 가운데 거하시며 영광을 나타내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 건축을 넘어,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고 그들과 함께 거하기를 원하시는 뜨거운 사랑의 표현을 해 주신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계획을 신뢰해야 합니다. 먼저 오늘 환상 속에 등장하는 측량줄을 든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스가랴 2:1, 내가 또 눈을...

역대상 25장 1절-31절, 당신은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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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주의와 끊임없는 경쟁에 지친 영혼을 위한 벽예배설교입니다. 6월 25일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역대상 25장 1절-31절을 통해, 내 힘으로 나를 증명하려는 불안의 소음을 끄고,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은혜의 노래를 통해 참된 쉼과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당신의 삶이 고된 독주에서 기쁨의 찬양으로 변화되는 복음의 원리를 발견하고, 진정한 예배자로 거듭나십시오. 역대상 25장 1절-31절, 당신은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까?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10장,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새 찬송가 149장,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서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종종 쉼 없는 오디션 무대와 같아 보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오늘도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의 막이 오릅니다. 30대는 유능한 직원과 좋은 부모라는 역할을 완벽히 해내려 애쓰고, 50대는 쌓아온 성취로 자신의 가치를 지키려 분투하며, 70대는 남겨진 시간 속에서 의미 있는 족적을 찾고자 합니다. 이 무대 위에서 우리는 모두 ‘성과’라는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나 그 노래의 배경에는 ‘이만하면 됐을까?’ 하는 불안의 소음과 ‘혹시 뒤처지면 어쩌나’ 하는 경쟁의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소란스러운 자기 증명의 노래에 지쳐, 영혼의 깊은 안식을 주는 다른 노래를 간절히 갈망합니다. 본론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 말씀의 이 긴 이름들의 목록은, 바로 그 다른 노래, 하나님께서 본래 의도하신 삶의 아름다운 악보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주는 놀라운 청사진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의도대로 삶의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1. 세상의 노래를 끄십시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우리에게 부르라고 강요하는 노래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나’를 위한, ‘나’에 의한, ‘나’의 노래라는 점입니다. 나의 성공, 나의 만족을 위한 이 노래는 필연적으로 경쟁과 고립을 낳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통해 듣기 원하시는 노래는 그 목적과 질서가 ...

역대상 14장 1절-17절, 당신의 승리는 누구의 것입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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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은 역대상 14:1-17로, 다윗의 왕국이 번성해 가는 가운데 일어난 위기에 대한 내용입니다. 다윗은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하였는데, 그의 성공과 승리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다윗은 기도와 순종으로 승리하였음을 깨달았습니다. 본문을 큐티하면서 나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설교문으로 정리하여 나눕니다. 역대상 14장 1절-17절, 당신의 승리는 누구의 것입니까 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새 찬송가 369장,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서론 모압과 암몬, 그리고 마온 연합군이 거대한 군사력을 이끌고 유다를 침공해 왔습니다. 군사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였습니다. 이 때 유다의 왕인 여호사밧은 군대를 소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로 얼굴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에 금식을 선포합니다. 역대하 20:12,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따라 여호사밧과 유다 군대는 노래하는 찬양대를 제일 앞세우고 적들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바로 이 때, 하나님께서 적들 사이에 복병이 일어나게 하시고 자기들끼리 분열하여 결국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여호사밧과 유다 군대는 전쟁터에 나아가 찬양만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방법이지만, 순종하였을 때 승리를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본론 오늘 본문의 말씀은 다윗 왕의 성공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다윗이라는 한 인간의 위대함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 본문은 다윗을 통하여, 그리고 다윗을 넘어서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일하시는 주권자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진정한 성공이란 나의 목적과 성공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나타내는 것임을 확인하게 ...

역대상 7장 1절-8장 40절, 힘과 능력이 아닌 순종의 중요성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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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은 역대상 7:1-8:40으로, 이전과 마찬가지로 족보가 계속 이어집니다. 그러나, 본문을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용사"라는 단어가 반복됨을 확인하고, 인간의 능력의 한계와 참된 힘의 근원에 대하여 묵상하고 설교문을 작성하였습니다. 진정한 회복과 축복은 세상적 강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대한 순종에 있음을 보았습니다. 역대상 7장 1절-8장 40절, 힘과 능력이 아닌 순종의 중요성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549장, 내 주여 뜻대로 새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서론 미디안의 압제 속에서 고통 받던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매우 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부르실 때, 기드온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입니다"(삿 6:15)라고 말할 정도로 힘이나 능력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였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300명만 남기고 모든 이스라엘 군사들을 돌려 보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기드온과 300 용사들은 그들이 가진 군사적 무기와 군대의 숫자로 승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승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였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본론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역시 수많은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는 족보입니다. 누가 누구의 아들이고, 어느 지파에 속했는지, 그 가문의 용사가 몇 명인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족보를 읽다 보면, 반복해서 등장하는 "용사", "큰 용사", "용감한 장사" 등과 같은 단어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북이스라엘 지파들은 군사력과 경제력이 강력했으며 번성하였습니다. 이후에 남북왕조로 나누어졌을 때에도 북이스라엘은 군사력과 경제력이 남유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었습니다. 용...

마태복음 11장 20절-30절, 다 내게로 오라 - 매일성경 강해 주석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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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큐티의 본문인 마태복음 11장 20절부터 30절까지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은 많은 이적과 권능을 베풀어 주셨음에도 회개하지 않는 도시들에 대해 심판을 선포하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초대하고 계십니다. 큐티와 강해 주석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0절-30절, 다 내게로 오라 20절, 강해 주석 해설 권능(뒤나미스) 이말은 원래 자연의 물리적인 힘(롬 1:4)이나 하나님의 능력(롬 1:16)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본문에서는 ‘이적’또는 ‘초자연적인 행위와 사건’을 가리킨 말로 쓰이고 있다. 한편 공관복음서에서는 그리스도의 이적적 사역을 표현함에 있어서 흔히 이 ‘권능’이란 말을 쓰고 있다.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먼저 ‘고을’이란 신앙과 인격의 주체로서의 전체 성읍을 가리킨다. 실로 고을의 운명은 그 거주자들의 신앙 유무(有無)에 따라 결정이 된다는 것은 히브리인들의 전통적 사상이었다(창 18:22 ff). 그런 점에서 예수께서는 선교 대상으로 삼았던 고을들이 당신을 배척하거나 비난했기 때문에 책망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곧 메시아시라는 신적(神的)인 이적들을 도시들에서 행하였음에도(5, 6절) 불구하고 그들이 회개하고 당신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책망하신 것이다(3:2, 4:17). 이로써 확인하건대 인간이 심판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베푼 이적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이적을 믿지 않았기 때문인것이다. 만일 주께서 그 고을의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고와 이적들을 다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면 주님은 그들의 완고한 태도에 그렇게까지 분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때에 11:20-24의 내용은 눅 10:12-15에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누가는 본문을 70인 전도파송 사건 다음에 다루고 있어 예수의 갈릴리 사역 중 후기에 해당하는 때임을 알 수 있다. 반면 마태는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온 사건 다음에 다루고 있다. 이중 누가의 시간 순서가 정확한 것으로 보이며, 그렇다면 이는 마태가 연대순(chr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