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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일 묵상] 야고보서 1장 1-11절, 여러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뻐하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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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장 1-11절, 여러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뻐하라 야고보서 1장 1-11절, 시련을 넘어 온전함으로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새 찬송가 373장, 고요한 바다로 서론 이른 새벽, 쌀쌀한 공기를 가르고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성도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기 전, 우리는 저마다 가슴속에 크고 작은 짐을 안고 이 자리에 엎드렸습니다. 성경을 가만히 펼쳐보면,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셨던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목전에 둔 그 캄캄한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엎드려 울부짖으셨던 장면을 만나게 됩니다. 가장 깊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도 인생의 모진 시험과 마주할 때는 마음이 흔들리고 눈물이 쏟아지기 마련입니다. 오늘 야고보 사도가 편지를 보낸 초대 교회 성도들의 형편도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고향을 떠나 낯선 땅으로 흩어진 디아스포라, 곧 나그네들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거친 차별과 가난 속에서 하루하루 믿음을 지키는 일 자체가 버거운 영적 전투였습니다. 바로 그들을 향해, 그리고 오늘 이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 주님은 오늘 새벽 야고보서 1장의 말씀을 통해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위로의 손길을 내미십니다. 본론 1. 온전한 인내를 이루는 기쁨을 가지십시오. 야고보 사도는 편지를 시작하자마자 아주 낯설고 충격적인 권면을 건넵니다.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야고보서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상식적으로 시험을 만나면 슬퍼하고 낙심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합니다. 억지로 웃는 척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시험’으로 번역한 헬라어 πειρασμός(페이라스모스)는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하려는 사탄의 유혹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삶에서 마주하는 온갖 종류의 외적 시련과 환난을 두루 품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10월 10일 묵상] 사사기 20장 1-7절, 칼을 뽑기 전에 먼저 무릎을 꿇었는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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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20장 1-7절, 칼을 뽑기 전에 먼저 무릎을 꿇었는가 사사기 20장 1-7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20장 1-7절, 분노가 아니라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새 찬송가 364장, 내 기도하는 그 시간 서론: 분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부의 사회학자들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분노 시대"로 정의를 내립니다. 도로 위에서 운전자들은 분노 속에서 운전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정치 속에도 분노가 가득 차 있고, 가정에도 분노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나와 생각이 다르면 거부하고 분노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너무나도 쉽게 분노하고 다투는 모습을 우리 주변에서 자주 목격하고, 나 자신도 분노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상대방의 해명에는 관심이 없고 듣지도 않으며, 내 생각과 내 감정만을 중시하면서 분노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속의 이스라엘 총회도 자신들의 감정에만 충실하였습니다. 사건의 전후를 따지지도 않고 하나님께 묻지도 않았습니다. 레위인의 첩이 참혹하게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에 온 이스라엘 지파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일어났습니다. 미스바에 집결한 군사만 무려 사십만 명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여호와 앞에” 모였다고 증언합니다. 겉모습만 보면 불의를 참지 못해 달려 나온 거룩한 영적 각성을 한 것 같습니다. 기브아의 패륜을 심판하겠다며 피를 흘릴 기세로 칼을 빼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총회 뒤에 숨은 실상을 들여다보면 너무나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사십만 명이 모여 피 끓는 의분을 쏟아내면서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해 무릎을 꿇는 사람이 사십 만명 중에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님께 엎드려 묻는 간절한 기도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본론: 내 소견을 꺾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있습니다 1. 자기 의(義)에 취해 칼을 빼어 들다. 총회 한복판으로 걸...

[10월 7일 묵상] 사사기 19장 1-10절, 그 저녁, 서둘러 길을 떠나지 못한 우리에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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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9장 1-10절, 그 저녁, 서둘러 길을 떠나지 못한 우리에게 사사기 19장 1-10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19장 1-10절, 떠나야 할 순간에 머물고 있습니까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새 찬송가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서론 새벽에 예배의 자리로 나오는 우리의 모습, 그리고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의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다를까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마주치는 남편의 무심한 눈길에 속에서부터 무언가 치밀어 오르지 않습니까? 소파에 누워 TV만 보는 남편을 보며 혀를 차고, 남편은 밥그릇 내려놓는 소리에도 날을 세우는 아내를 보며 입을 닫지 않습니까? 수십 년을 함께 살았으니 다 안다고 하지만 속마음은 굳게 닫힌 철문 같은 경우들이 많습니다. 자식의 섭섭한 말 한마디에 며칠씩 가슴을 닫고, 자존심에 상처 하나 나면 몇 달을 꽁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남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부터 그렇습니다. 강단에서는 사랑하라 외치지만, 집에 돌아가 사소한 일로 부딪히면 옹졸한 자존심을 꺾지 못해 며칠을 입을 닫습니다. 겉은 그럴듯한데, 속은 무너져 있을 뿐입니다. 본론 오늘 사사기 19장의 레위인의 모습이 이같은 우리의 영적 민낯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거룩해야 할 레위인이 첩을 두었고, 그 첩이 도망치자 넉 달이나 방치하다 뒤늦게 찾아가 ‘다정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얼핏 로맨스 같지만, 체면과 이기심으로 얼룩진 비겁한 미봉책일 뿐입니다. 오늘 본문은 겉만 그럴듯하고 속은 무너져 있는 우리의 비겁한 관계를 정면으로 비춥니다. 1. 허물어지는 인간의 열심 레위인이 장인의 집에 도착했을 때 벌어지는 일을 보십시오. 장인은 사위를 반기며 사흘 동안 먹고 마십니다. 넷째 날에도, 다섯째 날에도 장인은 먹고 마시며 머물라고 사위를 붙잡습니다. 5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사사기 19:5, 넷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 여자의 아버지...

[10월 2일 묵상] 사사기 16장 1-14절, 내가 길들일 수 있다고 믿었던 맹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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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6장 1-14절, 내가 길들일 수 있다고 믿었던 맹수 사사기 16장 1절-14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16장 1-14절, 십자가, 가장 연약할 때 가장 강해지는 역설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42장, 너 시험을 당해 새 찬송가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서론 올 여름에, 교회 마당의 작은 화단의 무화과 나무에 가느다란 넝쿨 하나가 삐져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처음엔 연초록 잎이 참 앙증맞고 예뻐서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이 조그만 풀잎이 나무를 어쩌겠나' 싶었지요. 그런데 몇 차례 비가 오고 가을이 깊어가는 지난 주에 보니 그 가느다란 줄기가 무화과 나무 전체에 걸쳐 거미줄처럼 줄기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옆집의 철로된 담장까지 타고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넝쿨이 주변을 모두 점령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작고 귀엽게만 보여서 곁에 두었던 것이, 어느 순간 화단 전체를 삼켜버릴 듯 위협하는 억센 맹수로 자라 있었던 것입니다. 본론 우리 신앙생활도 이 넝쿨과 참 많이 닮았습니다. 처음부터 대놓고 죄를 짓겠다고 작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정도 타협은 괜찮겠지', '이 작은 습관 하나쯤이야 내가 언제든 통제할 수 있어'라며 슬그머니 마음에 죄의 자리를 내어줍니다. 죄를 무서운 독사로 보지 않고, 내 손바닥 위에서 재롱부리는 애완동물처럼 다루는 셈입니다. 삼손의 비극도 바로 그 방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 영적 방심으로 욕망의 문을 열어두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십시오. 사사기 16:1,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이 구절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보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아(רָאָה)'입니다. 라아는 단순히 눈동자로 사물을 식별하는 동작을 넘어, 마음을 빼앗겨 탐닉하고 욕망에 사로잡혀 뚫어지게 응시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삼손은 앞서...

[9월 18일 묵상] 사사기 8장 22절-35절,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리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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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8장 22절-35절,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리라 사사기 8장 22-35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기드온의 금 에봇과 거짓 신정일치의 비극 - 연구 보고서 사사기 8장 22절-35절, 입술의 고백을 넘어 삶의 순종으로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새 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서론 가을이 접어들면서, 감기 환자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감기 조심하십시오. 여러분, 심한 감기에 걸렸거나 치통으로 밤새 끙끙 앓은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통풍으로 인해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아파서 밤을 지새울 때, 우리는 "제발 통증이 사라지게 해 주십시오. 다음에는 옷을 따뜻하게 입고 건강을 지키겠습니다. 양치를 깨끗하게 하겠습니다. 건강을 소중히 여기며 운동하며 살겠습니다"라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며칠 뒤 건강이 회복되고 몸이 씻은 듯이 나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감사함을 잊어버리고 다시 일상 속으로 돌아갑니다. 평안해지면 가장 먼저 은혜를 잊어버리고 과거의 어리석음으로 돌아가는 이러한 모습은 어쩌면 우리 인간의 연약한 모습일 겁니다. 새해에 특별한 감동과 은혜를 받아서 새로운 노트를 사서 감사의 제목, 묵상의 내용을 기록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첫 장, 둘째 장은 빼곡하게 그리고 정성스럽게 내가 받은 은혜를 기억합니다. 하지만, 삼일을 넘기지 못하고 우리는 그 노트를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우리는 이처럼 건망증이 심한 존재들입니다. 여러분! 출애굽 직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비극적인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놀랍게도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의 엄청난 기적을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한 지 불과 한 달 남짓 지났을 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들 역시 하나님의 은혜를 금방 잊어버리고 우상 숭배의 어리석은 길로 접어 들었습니다. 본론 오늘 본문 속의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위기 앞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경험하였...

[9월 15일 묵상] 사사기 7장 1절-14절, 내 손이 아닌 하나님의 손으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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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7장 1절-14절, 내 손이 아닌 하나님의 손으로 사사기 7장 1-14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무력화(無力化)를 통한 구원과 십자가적 승리에 관한 연구 보고서 사사기 7장 1절-14절, 초라한 보리떡으로 승리하신 생명의 떡 예수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새 찬송가 35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서론 하롯 샘 곁에 웅크리고 앉아 저 먼 골짜기를 응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늘 본문 속에 보입니다. 그들의 시선이 닿는 모레 산 앞 골짜기에는 미디안 연합군 13만 5천 명이 메뚜기 떼처럼 진을 치고 있습니다. 바닷가의 모래처럼 끝없이 펼쳐진 낙타와 병장기들을 내려다보는 기드온과 백성들의 가슴은 두려움과 공포도 가득찼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상식을 뒤흔드는 뜻밖의 말씀을 건네십니다.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참으로 기이한 말씀입니다. 13만 5천 명을 상대하기에는 지금 모여 있는 이스라엘 군사 3만 2천 명으로도 턱없이 모자란 숫자였습니다. 4대 1의 절대적 열세였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너무 적다"고 탄식하시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아서 안 된다"며 손을 내저으십니다. 하나님은 도대체 왜 이런 계산법을 내미시는 것일까요? 본론 1. 숫자를 줄이시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께서 군사를 줄이라고 명하신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우리 함께 2절을 읽어 볼까요? 사사기 7: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하나님은 눈앞의 거대한 적군 미디안보다, 우리 마음속에 도사린 '스스로를 높이는 교만'을 훨씬 더 염려하고 계십니다. 인간은 자원이 조금만 넉넉해도, 조금만 힘이 있어도 금세 하나...

[4월 16일 묵상] 창세기 26장 1절-11절, 두려움을 넘어 언약을 붙드십시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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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06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새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가끔 '믿음의 조상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하며 당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하겠다고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던 아브라함의 부끄러운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게도 그의 아들 이삭이 아버지의 그 치명적인 죄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삭은 이런 어리석은 선택을 했을까요? 1절은 그 이유를 단 한 문장으로 설명합니다. "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 바로 생존을 위협하는 극심한 '흉년' 때문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흉년의 이야기가 결코 남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날 우리의 삶에도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적 불황, 턱없이 치솟는 물가와 무거운 대출 이자, 그리고 자녀들의 불확실한 미래라는 차가운 기근이 수시로 불어닥치기 때문입니다. 평온할 때는 흔들림 없이 믿음으로 살겠다고 다짐하지만, 막상 생존의 위기가 코앞에 닥치면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나님보다 내 경험이나 금방 들통날 거짓말, 세상의 편법을 먼저 의지하려는 것이 바로 연약한 우리의 적나라한 본성입니다. 오늘 이 고요한 새벽, 밑바닥까지 드러난 이삭의 실패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연약함마저 덮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바라보며 우리의 무너진 믿음을 다시 굳건히 세우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1. 삶의 흉년과 하나님의 명령 고대 근동 사회에서 흉년은 곧 생존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재난이었습니다. 극심한 기근이 찾아오자, 이삭은 나일강이라는 풍부한 수원이 있어 웬만해서는 가뭄의 영향을 받지 않는 비옥한 땅, 애굽으로 내려가려 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가장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십...

[3월 31일 묵상] 요한복음 18장 28절-38절, 진리의 왕이 다스리시는 아침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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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86장, 내가 늘 의지하는 예수 새 찬송가 268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서론: 진리의 빛을 구하는 아침 시편 25편 4절과 5절에서 다윗은 "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라고 간절히 고백합니다. 이 고백처럼, 어두운 밤이 지나고 밝아온 새로운 하루의 첫 시간에 우리는 세상의 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진리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 구약의 백성들이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인류를 구원할 참된 왕, 곧 진리의 빛을 간절히 기다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바로 그 오랜 기다림에 대한 응답을 보여줍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님의 모습은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구속사의 절정을 나타냅니다. 동시에, 죄인이 창조주를 심판하는 기막힌 역설의 현장입니다. 이 고요한 아침,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깊이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본론 1. 겉모양의 정결함을 넘어 참된 유월절 어린양을 보십시오. 본문 28절을 보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8:28,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예수님을 끌고 가면서도 유월절 식사를 거룩하게 지키겠다는 명목으로 이방인인 로마 총독의 관정에는 들어가지 않는 기막힌 모순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마음은 이미 무죄한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려는 끔찍한 살의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눈이 멀어 겉모습의 정결함에만 집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의 모습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타락한 인간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구약 시대,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던 밤 문설주에 발랐던 어린양의 피가 죽음을 넘어가는 구원의 표적이 되었듯이, 지금 그들 앞에는 인류의 죄를 짊어지실 ...

[3월 30일 묵상] 요한복음 18장 12절-27절, 실패하는 제자, 승리하시는 주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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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 새 찬송가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은혜가 가득한 평안한 새벽입니다. 구약성경 다니엘서에는 참으로 귀한 믿음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다니엘의 세 친구 이야기입니다. 바벨론의 강력한 왕 느부갓네살은 거대한 금 신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 앞에 끌려갔습니다. 생명이 오가는 참으로 두려운 심문의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조금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주실 것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왕의 신상에 절하지 않겠습니다." 그들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당당하게 진리를 선택했습니다. 어둠을 이긴 참으로 따뜻하고 아름다운 승리의 장면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와 비슷한 또 하나의 심문 현장을 마주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신 직후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전직 대제사장인 안나스에게 끌려가십니다. 요한복음은 이 어두운 밤의 사건을 아주 독특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안나스 앞에서 심문을 받으시는 ‘예수님의 당당한 모습’을 먼저 보여줍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의 뜰 밖에서 벌어지는 ‘베드로의 세 번 부인’을 교차하여 보여줍니다. 본론 우리는 오늘 이 두 장면을 천천히, 하나씩 번갈아 살펴볼 것입니다. 심문자 앞에서도 진리를 타협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반면 두려움에 빠져 주님을 부인하는 베드로가 있습니다. 이 대조적인 모습을 우리의 마음속 신앙의 노트에 정성껏 기록해 보기를 원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연약함을 정직하게 직면하고, 동시에 우리를 덮으시는 십자가의 변함없이 따뜻한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불의한 심문 앞에서도 당당하신 예수님 먼저 대제사장의 집 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불의한 상황 속에서도 조금도 흔들림 없으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대제사장 안나스는...

[2월 7일 묵상] 요한복음 3장 16절-21절, 어둠을 이기는 사랑의 빛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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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새 찬송가 526장, 목 마른 자들아 서론: 어둠을 뚫고 비치는 새벽빛처럼 캄캄한 어둠을 뚫고 주님의 전으로 발걸음을 옮기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평안하셨습니까? 하루 중 가장 고요하면서도 신비로운 이 새벽 시간, 우리는 인생의 가장 깊은 질문 앞에 섭니다. 우리는 흔히 "밤이 깊을수록 별이 빛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막상 우리 삶에 짙은 어둠이 찾아오면, 우리는 그 어둠을 즐기기보다 그 속에 숨어버리거나 혹은 그 어둠에 압도되어 절망하곤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기독교 신앙의 정수이자 '복음 중의 복음'이라 불리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익숙해서 자칫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이 말씀 속에, 사실은 우리 인간의 가장 처절한 결핍과 하나님의 파격적인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본론 성도 여러분, 어제 하루 여러분의 마음을 무겁게 했던 ' 숨기고 싶은 비밀 '이나 '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마음의 짐 '이 있지는 않으셨나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허물이나 실수가 밝은 대낮의 햇빛 아래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만 마음의 커튼을 치고 어둠 속으로 숨어듭니다. " 이런 내 모습을 하나님이 아시면 나를 버리시지 않을까? " 혹은 " 내 삶의 이 부끄러운 부분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라는 걱정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만듭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본문이 지적하는 인간의 부끄러운 자화상, 즉 '어둠을 더 사랑하는 본성'입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은 그 어둠 속에 웅크린 우리를 향해 심판의 몽둥이가 아닌, 구원의 손길을 내미십니다. 1. 하나님의 사랑은 '정죄'가 아닌 '건져냄'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려 내시기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