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6장 1절-11절, 일곱 대접 심판과 하나님의 공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7월 24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요한계시록 16장 1절-11절에 나타난 두려운 일곱 대접 심판에 대한 설교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진노와 심판 앞에서도 끝내 회개하지 않는 인간의 완악한 마음이 있음을 확인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피난처임을 발견하였습니다. 심판의 경고를 넘어서 소망과 구원의 확신을 얻기 원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메시지입니다.
요한계시록 16장 1절-11절, 일곱 대접 심판과 하나님의 공의
참고할 글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265장, 나의 죄를 정케 하사
- 새 찬송가 258장, 샘물과 같은 보혈은
서론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통하여 애굽 땅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고, 그 모든 일들을 애굽의 바로가 직접 목격하였습니다. 나일강이 피로 변하고, 개구리, 이, 파리, 전염병, 독종, 우박, 메뚜기, 흑암, 장자의 죽음 등 이 모든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모든 재앙들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의 명백한 증거들이었습니다.
애굽의 바로는 재앙이 내릴 때마다 잠시 고통을 피하며 모세에게 하나님의 용서를 요청하며 굴복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재앙이 멈추고 숨을 쉴 틈만 생기면, 바로의 마음은 완고해져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곤 하였습니다. 이러한 바로의 모습은, 오늘 본문 속에 나타난 것과 같이 재앙을 겪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기는커녕, 오히려 훼방하고 회개하지 않는 모습과도 동일합니다.
본론
오늘 본문은 너무나도 두렵고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담긴 일곱 대접이 이 땅에 쏟아지는 장면은, 마치 한 편의 재난 영화처럼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고 공포스럽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본문의 말씀은 세상의 마지막에 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묻는 하나님의 질문과도 같습니다.
1.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
오늘 본문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세 번째 진노의 대접이 쏟아지자, 땅과 바다와 강, 즉 생명의 모든 터전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 대접은 사람들의 몸에 직접 악하고 독한 종기를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이 재앙이 모두에게 임한 것은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 요한계시록 16:2, 첫째 천사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더라
2절의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혼란 속에서도 자신의 백성을 구별하시고 지키시는 분이심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애굽 땅에 열 가지의 재앙이 내리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에게는 재앙을 내리지 않으신 것과 같습니다.
둘째와 셋째 대접은 더욱 끔찍합니다. 바다와 강, 모든 물의 근원이 '죽은 자의 피'같이 변하고 있음을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직접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생명의 원천이 되는 물이 죽음의 상징인 피로 변하고 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수도꼭지를 틀면 맑은 물 대신에 피가 쏟아지고, 모든 바닷길이 시체와 피로 막혀버리는 장면을 말입니다. 너무나도 두렵고 공포스럽지 않습니까?
바로 이 때, 우리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선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처럼 끔찍한 심판과 재앙을 내리시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가지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 본문의 6절은 무엇이라 대답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계 16:6). 6절 말씀의 의미는, 인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을 거부하고 순교자들을 핍박하여 피를 흘렸던 악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의 결과가 바로 3개의 심판의 대접을 쏟음으로써 생겨나게 된 두려운 재앙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반드시 임하게 될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인간 마음을 향한 마지막 질문
이어서 넷째와 다섯째 대접 심판이 계속됩니다. 넷째 대접이 해에 쏟아지자, 태양이 사람들을 불로 태우는 심판의 도구가 되고 맙니다. 다섯째 대접은 짐승의 보좌, 즉 세상 권력의 중심에 쏟아져 모든 것을 절망적인 어둠 속에 가두었습니다. 고통은 극에 달해서 사람들은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러한 모든 초자연적이고 두려운 심판의 현장 속에서,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고난이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고,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찾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험한 순간이나 고통의 순간에 "아이고 하나님"이라며 믿지 않는 사람도 무의식중에 하나님을 찾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9절과 11절은 정반대의 반응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요한계시록 16:9,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
이 모습이야말로 가장 큰 비극이자 인간의 어리석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구절입니다. 사람들은 지금 자신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재앙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오고 있음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회개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저주하는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심판 앞에서 사람들은 더욱 완악해지는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심판의 주이신 하나님 앞에서 완악한 마음을 가지는 이 모습이 가장 큰 심판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버림 받게 될 모습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을 향한 완악한 모습이 없는지 곰곰이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이같은 끔찍하고 두려운 마지막 심판의 상황 속에서, 성도들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만 합니까? 마지막 심판의 때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과 함께 하시고,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을 지키는 자들을 살피시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시며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절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극심한 목마름을 경험하시고 하나님께 버림 받으심을 직접 경험하신 이유는, 모든 성도들의 죄로 인해 생겨난 영적인 갈급함과 하나님과의 단절이라는 형벌을 대신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미 우리 믿는 자들을 대신하여 모든 심판과 진노의 잔을 마시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이 지금 당장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은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마지막 때의 징조들이 세상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두려움 대신에 깨어 기도하고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십시오. 우리를 위해 모든 진노의 잔을 미리 마시신 예수님을 찬양하십시오. 오늘도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 찬양하며, 구원의 복음을 증거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하는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 주신 대로, 마지막 심판의 때에 우리가 얼마나 완악한 존재들인가를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시간 우리의 마음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완악함을 회개하오니, 우리를 용서하시고 겸손한 마음을 주옵소서. 진노의 잔을 대신 마시신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오늘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심판의 날이 다가올수록 더욱 겸손히 회개할 마음을 주소서.
- 진노의 심판 중에도 은혜를 주시는 주님께 감사 찬송하게 하소서.
- 마지막 때에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게 하소서.
- 매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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