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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1일 묵상] 이사야 39장 1절-8절, 자랑할 것인가, 간증할 것인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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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9장 1절-8절, 자랑할 것인가, 간증할 것인가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새 찬송가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서론: 자랑하고 싶은 현대인의 마음과 히스기야 인간은 어릴 때부터 누군가에게 인정 받고 칭찬 받기를 갈망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의 심부름을 하고 받는 100원의 보상보다 부모님의 칭찬이 더 기뻤던 기억이 있습니다. 결혼 후에는 아내에게 칭찬 받는 것이 좋습니다. 아마도 여러분들도 누군가에게 칭찬 받고 인정 받는 것이 너무나도 기쁜 일이고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때로는 우리가 칭찬 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욕심으로 변하고 교만으로 변할 때가 있습니다. 단순한 인정 욕구를 넘어서서, 감사보다도 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교만의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남유다의 훌륭한 왕, 히스기야처럼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그 크고 놀라운 은혜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이 새벽,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을 말씀에 비추어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1. 간증의 자리를 자랑의 자리로 바꾸다. 오늘 본문 1절과 2절을 보면, 바벨론의 왕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에게 편지와 예물을 보냅니다. 왜 보냈을까요?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렸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제 본문인 이사야 38장에서 히스기야는 죽음에 대한 선고를 받은 후, 하나님께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그 눈물을 보시고 그의 수명을 15년이나 연장해 주셨고, 해 그림자가 십 도나 뒤로 물러가는 엄청난 기적까지 보여주셨습니다. 바벨론의 사절단이 유다에 도착했을 때,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기적과 은혜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완벽한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들은 이방 나라 사람들이었습니다. 만약 저와 여러분이 히스기야였다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여...

[8월 29일 묵상] 이사야 37장 21절-38절, 왜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구원하셨는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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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7장 21절-38절, 여호와의 열심이 베푸신 온전한 승리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새 찬송가 150장, 갈보리산 위에 서론: 우리는 무엇으로 구원받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려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가 맡은 일을 잘 해냈을 때나 사람들이 칭찬할 때,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질 때가 있다는 것이지요. 또,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고, 열심히 봉사했으며, 나름대로 선하게 살아왔기에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저도 교회 행사를 문제 없이 잘 진행 했을 때,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라고 말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내가 철저하게 준비를 잘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무엇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지에 대해 분명히 말씀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노력이나 행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본론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그 이유를 백성들의 의로움에서 찾지 않으심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나를 위하며 내 종 다윗을 위함이라"(사 37:35)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구원이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언약과 은혜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예루살렘은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시면, 앗수르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철저하게 포위했음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남유다와 예루살렘의 운명이 마치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이같은 위기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 백성들이 의로웠기 때문인가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순종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

[8월 26일 묵상] 이사야 35장 1절-10절, 사막에서 피어난 백합화를 보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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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391장, 오 놀라운 구세주 / 182장 강물 같이 흐르는 기쁨 서론 지난 여름은 참 더웠습니다. 모두에게 힘들고 더운 여름이었지만, 점심 시간에 동네를 돌며 운동하는 저에게는 특히 더 힘든 더위였습니다. 단 100미터만 걸어도 땀이 줄줄 흘러 내리고 목이 탑니다. 가지고 간 500ml의 물병은 금방 바닥을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우리의 무더웠던 여름 날씨보다 기온이 더 높이 올라가는 곳이 시내 광야이고 유대 광야입니다. 그 광야를 걷는 이스라엘 백성을 떠올려 보십시오. 목이 타들어 갑니다. 며칠을 걸어 마침내 물을 찾았지만, 삼킬 수 없는 쓴물입니다. 사람들의 무릎이 꺾입니다. 손에서 힘이 빠집니다. 그런데, 우리의 하루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굳은 관절에서 뚝뚝 소리를 내며 먼저 반응합니다. 문을 나서면,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요동칩니다. 쉼 없이 들려오는 전쟁이나 자연 재난, 다투는 소식들에 한숨이 납니다. 세상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정신이 혼란스럽습니다. 또, 자녀들의 삶이 고달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의 마음이 무너져 내립니다. 학교 생활을 어려워 하고, 직장 속의 갈등 소식을 듣습니다. 때로는 부모를 향한 자녀들의 무언의 원망도 마음으로 듣게 됩니다. 그럴 때면, 우리 마음이 물기 하나 없는 사막이 됩니다. 본론 하지만 오늘, 하나님은 이 절망의 사막 한가운데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메말라 쓰러지고 흔들리는 우리에게 참된 위로의 생수를 건네 주십니다. 1. 사막에 물이 터지고 굳은 무릎이 일어서다. 얼마 전까지, 영남 지방에 비가 내리지 않아서 논밭이 갈라졌었습니다. 그 갈라진 땅을 생각해 보십시오. 곡식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합니다. 심한 곳은 작물들이 말라 죽어 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곳에 서시자, 모래를 뚫고 생수가 터져 나온다고 이사야는 말합니다. 헐벗은 골짜기에 백향목이 빽빽하게 솟아올라서 채웁니다. 메마른 흙 위로 백합화가 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은 ...

[7월 3일 묵상] 시편 3편 1절-8절, 여호와는 나의 방패, 나의 영광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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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93장, 오 신실하신 주 새 찬송가 406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서론: 내 허물 때문에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느껴질 때 이른 새벽, 주님의 전을 찾은 성도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위로가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살면서 사방이 꽉 막힌 것 같은 절망을 마주하곤 합니다. 특히 그 고난이 타인이 아닌 나의 과거 실수나 허물에서 비롯된 것처럼 느껴질 때 영혼은 무섭게 무너집니다. “이건 다 내 탓이야. 하나님도 나를 외면하실지 몰라.” 이런 영적 정죄감이 우리를 짓누르면 기도의 문마저 막혀버립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이 바로 그 처참한 자리에 있었습니다. 가장 사랑했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울며 도망쳐야 했던 다윗에게, 세상은 차가운 조롱을 퍼부었습니다. “죄를 짓더니 천벌을 받는다. 하나님도 저 인간은 버리셨다.” 다윗은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과거의 밧세바 사건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내 죄 때문에 이 징계가 왔다는 생각에 사방이 막혀버린 것입니다. 오늘 새벽, 이 기도를 통해 사방이 막히고 내 영혼마저 스스로를 정죄할 때, 어디서 진짜 영적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지 깊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본론 1. 절망의 한복판에서 나의 방패와 영광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라 다윗은 자신이 마주한 숨 막히는 현실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토로합니다. 본문 1-2절에서 그는 대적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자신을 압박하는지 고백합니다. 시편 3:1-2,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여기서 ' 대적 '의 히브리어 צר(차르)는 '좁다', '사방에서 죄어오다'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원수가 많은 것을 넘어, 숨 쉴 틈 없이 옥죄어오는 극심한 영적 고통을 의미합니다. 대적들은 다윗의 아픈 약점을 찌르며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정죄합니다. 내 죄 때문에 하나님이 침묵하신다는 영적 정죄감이야...

[6월 24일 묵상] 고린도전서 15장 1절-11절,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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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새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서론: 어두운 새벽을 밝히는 은혜의 빛 아직 어둠이 다 가시지 않은 이 새벽, 차가운 공기를 뚫고 주님의 제단 앞에 나오신 성도 여러분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어제 하루 여러분의 삶은 어떠셨나요? 직장에서, 혹은 가정에서 마음먹은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조용히 한숨을 쉬며 베개에 머리를 묻지는 않으셨습니까? " 내가 정말 예수 믿는 사람답게 잘 살고 있는 걸까? " 하는 자책과 함께,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져 무거운 마음을 안고 이 자리에 주저앉아 계시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일상은 늘 흔들림의 연속이고, 우리는 매번 자신의 연약함과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와 똑같이, 아니 우리보다 훨씬 더 처절하게 흔들리고 넘어졌던 인물들이 가득합니다. 새벽닭이 울기 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 그리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짓밟고 믿는 이들을 잡아 가두는 데 앞장섰던 바울이 그랬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향해 아주 아프고도 솔직한 고백을 던집니다. 8절을 보면 자신을 "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나 "라고 표현합니다. 이 말은 태중에 온전히 자라지 못하고 칠삭둥이나 팔삭둥이처럼 미숙하게 태어난 아이라는 뜻입니다. 사도로서, 또 신앙인으로서 자신은 아무런 자격도 없고 도저히 쓸모없는 상태였다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하루를 시작할 때 느끼는 부족함, 무기력함, " 과연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하시고 사용하실까? " 하는 그 깊은 자책감이 바로 바울이 마주했던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자책의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오늘 바울의 이 고백을 통해, 하나님께서 흔들리는 우리의 새벽을 어떤 소망으로 채우길 원하시는지 두 가지 믿음의 비밀을 마음에 담기를 바랍니다. 본론 1. 흔들리지 않는 복음의 반석 위에 서십시오. 첫째로, 우...

[6월 4일 묵상] 고린도전서 2장 1절-16절, 오직 십자가와 성령으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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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91장, 내가 매일 기쁘게 새 찬송가 197장,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서론: 내 힘을 내려놓을 때 시작되는 은혜 오늘도 어김없이 울리는 새벽 알람 소리를 들으며 눈을 뜨셨겠지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차가운 새벽 공기를 뚫고 교회 문을 열고 들어오기까지,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오늘 하루를 채울 수많은 계획과 고민들이 스쳐 지나갔을 겁니다. '오늘 그 사람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이 얽히고설킨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야 하지?' 우리는 매일 아침 본능적으로 내 지혜와 능력을 동원해 완벽한 하루 계획을 설계하려 애를 씁니다. 내 힘으로 인생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싶은 마음, 내가 가진 지식과 말재주로 모든 상황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헤쳐 나가려는 고집스러운 생각들이 우리 마음 한구석에 숨어 있습니다. 저도 오늘 새벽에 하루의 삶의 일정 목록을 기록하고, 그 목록 앞에 우선 순위를 표시하였습니다. 제 나름대로 하루의 순서를 정하고 계획을 세운 것이지요. 이처럼 내 생각과 실력을 하나님보다 먼저 앞세우려는 태도가 바로 우리가 끊임없이 직면하는 뿌리 깊은 자아의 연약함이 아닐까요? 본론 오늘 우리는 본문 속에서 우리와 똑같은 고민을 하며 두려워 떨었던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위대한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지성의 도시 아테네에서 자신의 해박한 철학적 지식을 총동원해 세련된 말로 사람들을 설득하려 했지만, 쓰라린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그리고 깊은 좌절감과 두려움을 안고 이웃 도시인 고린도에 들어왔습니다. 똑똑하고 화려한 웅변가들이 가득했던 그 고린도교회 성도들 앞에 섰을 때, 바울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는 자신의 초라함을 감추려고 화려한 지식의 포장지를 덧씌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본문을 통해 두 가지의 사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나의 연약함을 덮는 십자가의 능력 첫째로, 우리는 내 연약함을 정직하게 인정하며 오직 십자가 예수님만 붙잡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2절...

[6월 3일 묵상] 고린도전서 1장 18절-31절, 약한 나로 강하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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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50장, 갈보리산 위에 새 찬송가 151장,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서론: 매일 아침 우리를 찾아오는 소리 없는 전쟁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벽을 깨우고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따뜻하게 환영합니다. 새벽 공기를 뚫고 교회 문을 열고 들어오실 때, 여러분의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무엇이었나요? 우리는 눈을 떠서 밤에 잠들기까지, 참 피곤하고 숨 가쁜 세상을 살아갑니다. 사실, 우리는 어제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기 전에, 또 새로운 하루를 맞이해야만 합니다. 하루의 삶을 조용히 돌아볼 시간이 없고, 허둥지둥 대다가 잠자리에 들 때도 있습니다. 저도 하루의 삶을 마무리하며 다이어리에 정리하고 잠에 들어야지 하고 결심하지만, 어느샌가 밤이 되고 잠이 쏟아지는 바람에 다이어리 정리를 못하고 잠이 들 때가 참 많습니다. 그 날 해야할 일들을 마무리도 못하고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이 이어지면,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해야 할 일이 쌓이고, 나는 그것들을 감당할 능력이 점점 부족해지는 것 같아서 답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합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교회에서 나의 능력을 보여 주어야 할 것 같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누구보다도 잘 처리한다는 모습도 보여 주어야만 한다는 생각에 조급해집니다. 본론 사도 바울이 편지를 보낸 고린도 교회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고린도라는 도시는 당대 최고의 지성과 철학, 수사학이 넘치던 화려한 대도시였습니다. 사람들은 누가 더 말을 잘하는지, 누가 더 높은 신분을 가졌는지 비교하며 자랑하기 바빴습니다. 슬프게도 그 세상의 가치관이 교회 안까지 고스란히 들어왔습니다. 성도들은 서로 더 훌륭한 지도자를 따르고 있다고 자랑했고, 자기가 가진 은사와 지식을 뽐내며 교회를 파벌로 찢어놓고 있었습니다. 힘을 숭상하고 똑똑함을 자랑하는 세상의 계산법에 교회가 완전히 오염되었던 것이지요. 바로 그 분열과 불안의 한복판에 서 있는 우리와 고린도 성도들을 향해, 바울은 오늘 세상의 계산법을 완...

[4월 8일 묵상] 요한복음 21장 15절-25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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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새 찬송가 323장,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서론: 실패의 밤이 지나고 찾아온 은혜의 새벽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고요한 새벽, 주님의 전을 찾은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하십니까?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소망을 품기도 하지만, 때로는 어제 무너졌던 나의 연약함 때문에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기도 합니다. 직장 생활의 쳇바퀴 속에서 겪는 깊은 '번아웃(Burnout)',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 혹은 자녀에게 쏟아낸 날 선 감정들로 인한 후회, 그리고 '내가 과연 진짜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있는가?' 하는 뼈아픈 ' 자격지심 '과 ' 죄책감 '이 우리를 짓누를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이 펼쳐지는 디베랴 바닷가(갈릴리 호수) 역시, 이처럼 짙은 절망과 실패의 냄새가 배어 있는 현장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곳은 약 3년 전,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제자들을 부르셨던 영광스러운 소명의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베드로와 일곱 제자들은 그 영광을 뒤로한 채 옛 직업인 어부로 돌아가 밤새 그물을 던지고 있습니다.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도망쳤고, 대제사장의 뜰에 피워진 숯불 앞에서는 예수님을 저주하며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 치명적인 영적 실패와 연약함이 베드로를 짓눌렀고, 스스로를 사명자의 자리에서 파면시켜 갈릴리의 밤바다로 숨어들게 한 것입니다. 우리 역시 내 안의 죄악과 연약함을 마주할 때, 하나님을 피하여 영적인 도피처로 숨으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본론 그러나 밤이 새도록 아무것도 잡지 못한 그 텅 빈 바닷가, 가장 춥고 외로운 그 새벽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친히 숯불을 피우고 조반을 지어 기다리신 주님은, 오늘 이 새벽 예배의 자리에 상한 심령을 안고 나온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다가오십니다. 실패한 우리를 찾아오셔서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주님의 세밀한 음성을 듣는 아침이 되기를 소망합...

[4월 3일 묵상] 요한복음 19장 28절-30절과 예수님의 가상칠언, 영원한 갈증을 끝내신 주의 십자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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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58장, 샘물과 같은 보혈은 새 찬송가 259장,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태초에 창세기의 에덴동산을 떠올려 보십시오. 아담과 하와는 피조물의 위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한 욕망에 사로잡혀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단절. 그것은 인류 역사에 지독하고도 끝없는 ' 영적 목마름 '을 가져왔습니다. 죄가 들어온 이후 인간은 영원한 영적인 탈수 상태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바쁜 출근길 속에서 쫓기듯 살아가며, 조금이라도 더 나아 보이는 직장으로의 이직을 꿈꾸고, 쉼 없이 변덕스러운 타인의 박수 소리를 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세상의 헛된 명예와 재물이라는 우물을 아무리 깊이 파 보아도 우리의 영혼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시달립니다. 심지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내 스스로의 종교적 행위나 공로를 쌓아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내려는 율법적 강박 속에서 목말라합니다. 이 지독한 결핍과 타들어 가는 목마름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구속사의 절정인 십자가 현장으로 함께 나아가겠습니다. 본론 1. 창조주의 대속적 목마름 오늘 본문 28절을 보면, 구속사의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작정대로 완성되었음을 주권적으로 아신 예수님께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 내가 목마르다 "라고 외치십니다. 요한복음 19: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주님의 이 외침은 육신의 고통의 신음이었습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반석에서 생수를 내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십자가에 달리사, 철저한 인간의 한계 속에서 극심한 탈수와 생리적 고통을 친히 겪으시는 완전한 인성의 괴로움에 대한 신음입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지 6시간이 지나며 출혈과 뙤약볕 노출로 치명적인 상태에 이...

[4월 1일 묵상] 요한복음 18장 39절-19장 16절, 당신의 왕은 누구입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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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50장, 갈보리산 위에 새 찬송가 151장,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서론: 레위기의 약속과 2026년 우리의 우상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약 성경 레위기 1장에 등장하는 번제 규례를 기억하십니까?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은 흠 없는 수컷 가축을 회막 문 앞으로 끌고 와 그 머리에 안수해야 했습니다. 이 같은 안수는 자신의 죄악과 오염이 무고한 짐승에게 온전히 전가되었음을 뜻합니다. 내 죄를 대신 짊어진 제물이 피 흘리며 제단에서 불태워질 때, 비로소 백성은 용서받고 살 길을 얻었습니다. 이 거룩한 대속의 약속이 수천 년을 넘어 어떻게 완벽하게 성취되었는지 오늘 본문이 분명하게 증언합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우리는 하루하루를 버텨냅니다. 당장 눈앞의 '내 집 마련', '직장 승진', '자녀 교육'이라는 무거운 현실 앞에서 우리는 자꾸만 눈에 보이는 힘을 갈망하게 됩니다. 이 답답한 현실을 단번에 뒤집어줄 세상적인 왕을 원합니다. 오늘 빌라도의 법정에 섰던 1세기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자기 부인과 희생을 요구하는 십자가의 왕을 거부하고, 무력과 돈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가짜 왕들을 선택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은밀한 우상을 버리고, 십자가 위에서 구원의 약속을 성취하신 참된 왕께로 돌아오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1. 세상이 선택한 가짜 평화와 대속의 약속 성취 먼저, 타락한 세상은 참된 구원자 대신 폭력의 상징인 가짜 왕을 선택함으로 대속의 약속을 성취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8장 39절과 40절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8:39-40,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 빌라도는 명절의 폭동을 예방하는 전례를 사용하여 무죄한 예수님을 놓아주려 했습니다. 그러나 군중은 빛이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