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27장 1절-28장 15절, 승리보다 위대한 자비함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10월 17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역대하 27장 1절-28장 15절을 통하여, 진짜 승리가 무엇인지를 묵상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본문에는 아하스의 죄악과 심판, 그리고 그 속에서 나타난 북이스라엘의 놀라운 자비를 통해, 참된 승리를 확인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승리보다 더 위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하심을 배우고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자 작성한 설교문입니다.


역대하 27장 1절-28장 15절, 승리보다 위대한 자비함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역대하 27장 1절-28장 15절, 승리보다 위대한 자비함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 새 찬송가 270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서론: 이겼지만 졌습니다


여러분, 혹시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전쟁에서 이기긴 이겼는데, 너무나 큰 희생을 치른 나머지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을 말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한 왕이 전투에서 승리한 후 "한 번만 더 이렇게 이기면 우리는 완전히 망하겠다"고 한탄한 데서 유래한 말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피로스의 승리'가 참 많습니다. 부부싸움을 할 때, 목소리를 높이고 논리적으로 따져서 배우자의 입을 막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겼습니까? 아닙니다. 마음의 벽은 더 높아졌고 관계는 냉랭해졌습니다. 이겼지만 사실은 진 것입니다. 직장에서 동료와의 경쟁에서 이겨서 원하는 자리에 올랐지만, 주변의 모든 사람을 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승리일까요?

우리는 이기는 것에 너무나 익숙하고, 이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내 뜻을 관철시키는 것을 성공이라 여깁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 '승리'가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승리입니까? 어쩌면 우리는 승리에 취해, 이기는 것에 눈이 멀어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승리를 추구하다가 잔인해지고, 의를 내세우다가 사랑을 잃어버리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마주할 인간의 슬픈 현실입니다.



본론


오늘 본문은 극과 극을 달리는 두 왕, 요담과 아하스, 그리고 한 전쟁 이야기를 통해 진짜 승리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첫째, 무너진 예배가 무너진 인생을 만듭니다.

오늘 본문 앞부분에는 요담이라는 괜찮은 왕이 나옵니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이상한 기록이 붙어있습니다. 27장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역대하 27:2, 요담이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여호와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백성은 여전히 부패하였더라

요담 왕은 정직하게 산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을 멀찍이서 섬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왕이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자, 백성들은 부패의 길을 계속 걸었습니다. 괜찮아 보이는 신앙이었지만, 결정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의 아들 아하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는 아예 하나님께 등을 돌립니다. 28장 2절과 3절을 보십시오. 바알 우상을 만들고, 심지어 자기 아들들을 불살라 이방신에게 제물로 바칩니다. 예배가 무너지자, 그의 삶과 가정, 그리고 나라 전체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5절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아람 왕의 손에 넘기시매..." 하나님이 직접 그를 심판의 손에 넘겨버리십니다.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도 12만 명이 죽고 20만 명이 포로로 잡혀가는 끔찍한 패배를 당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죄악의 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 무너진 예배는 결국 처참한 붕괴로 이어집니다. 아하스는 강한 나라 아람과 북이스라엘에게 졌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그는 하나님께 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얻는 세상의 것은 결국 우리를 무너뜨리는 심판의 도구가 될 뿐입니다.

혹시 우리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요담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아하스처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이 내 마음 중심에 자리 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가정과 삶에 이유 없는 무너짐이 있다면, 가장 먼저 예배의 자리를 점검해야 합니다.


둘째, 승리에 취하면 잔인함이 고개를 듭니다.

이제 시선을 승리한 북이스라엘 군대에게로 돌려봅시다. 그들은 엄청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20만 명이나 되는 동족을 포로로 끌고 의기양양하게 수도 사마리아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의를 실현했다고,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했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바로 그때, 오뎃이라는 선지자가 나타나 그들 앞을 가로막고 외칩니다. 28장 9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 역대하 28:9, 그 곳에 여호와의 선지자가 있는데 이름은 오뎃이라 그가 사마리아로 돌아오는 군대를 영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유다에게 진노하셨으므로 너희 손에 넘기셨거늘 너희의 노기가 충천하여 살륙하고

엄청난 말씀입니다. "너희가 이긴 것 같으냐? 착각하지 마라. 하나님이 유다에게 화가 나셔서 너희를 잠시 '몽둥이'로 쓰신 것뿐이다. 그런데 너희는 분노에 차서 하늘에 사무치는 잔인함을 저질렀다!" 라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승리에 취해 자신들이 저지른 잔인함을 깨닫지 못했던 군인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할 때, 내가 이겼다고 생각할 때, 얼마나 쉽게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잔인하게 대합니까? 교회 안에서도 '진리 수호'라는 이름으로 형제를 비난하고, '정의'라는 이름으로 용서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몽둥이로 쓰임 받는 것과 내가 하나님이 되어 심판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북이스라엘은 그 선을 넘어버렸습니다.

최근 여러분이 '이겼다'고 생각했던 논쟁이나 갈등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과정에서 당신은 상대방에게 얼마나 자비로웠습니까? 혹시 승리에 취해 필요 이상의 상처를 주지는 않았습니까?


셋째, 심판을 멈추는 것은 자비뿐입니다.

이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선지자 오뎃의 책망을 들은 북이스라엘 군대와 지도자들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12절을 보면, 네 명의 지도자가 일어나 포로를 데려오지 못하게 막아섭니다. 그리고 28장 1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 역대하 28:13,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포로를 이리로 끌어들이지 못하리라 너희가 행하는 일이 우리를 여호와께 허물이 있게 함이니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더하게 함이로다 우리의 허물이 이미 커서 진노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임박하였느니라 하매

그제서야 북이스라엘은 깨달았습니다. 동족에게 저지른 이 잔인한 행위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인지를 깨닫고 즉시 회개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회개는 말로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15절에는 그들의 행동들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너무나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그들은 군인들이 약탈해 온 것 중에서 옷을 가져다가 벌거벗은 포로들에게 입혔습니다. 신발을 신겼습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었습니다. 상처 입은 자들에게는 기름을 발라 치료해 주었습니다. 약한 자들은 나귀에 태워서, 평화의 성읍 여리고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왔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포로 석방이 아닙니다. 이것은 원수를 향한 완전한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전쟁의 참상 속에서, 심판의 한복판에서, 하나님 나라의 자비가 꽃처럼 피어난 순간입니다. 그들의 이 자비로운 행동이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멈추고, 동시에 자기들을 향할 뻔했던 하나님의 진노마저 멈추게 했습니다. 진정한 승리는 적을 쳐부수는 것이 아니라, 넘어진 적을 일으켜 세우고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혹시 오늘 나의 도움이 필요한 '포로'는 누구입니까? 나의 말과 행동에 상처 입은 가족, 친구, 동료는 없습니까? 오늘 우리가 그들에게 다가가 작은 옷 한 벌, 따뜻한 밥 한 끼, 위로의 말을 건넬 때,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진짜 승리, '자비의 승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역대하 27장 1절-28장 15절, 승리보다 위대한 자비함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결론: 가장 위대한 승리자, 예수를 따릅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요담처럼 어정쩡한 의로움으로 하나님과 거리를 두어서도 안 되고, 아하스처럼 대놓고 하나님을 반역해서도 안 됩니다. 또한 북이스라엘 군대처럼 승리에 취해 교만하고 잔인해져서도 안 됩니다. 이 모든 길의 끝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뿐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가장 위대한 승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와 사망을 이기셨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승리의 능력으로 우리를 심판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한없는 자비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주님을 따라 '자비의 승리'를 살아가는 사람들로 부름받았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힘은 더 큰 목소리, 더 많은 돈, 더 높은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원수를 위해 기도하고,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는 자비의 힘에 있습니다.

오늘 하루, 나의 삶의 자리에서 이 '승리보다 위대한 자비'를 실천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움직여 주시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자비를 실천하는 통로로 사용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 땅에서 작은 예수로 살아가며, 심판을 멈추고 생명을 살리는 진정한 승리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사랑과 자비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승리에 취해 교만하고 잔인했던 우리의 죄를 회개합니다. 원수 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지신 그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우리에게 예수님의 마음을 부어 주셔서, 심판 대신 긍휼을, 미움 대신 사랑을 실천하게 하옵소서. 우리 삶이 주님의 자비를 전하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이기는 것보다, 사랑하는 지혜를 주소서.
  • 우리 가정과 교회가 자비의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 상처 입은 이웃을 돌볼 수 있는 용기를 더하여 주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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