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이 자비인 게시물 표시

[2월 13일 묵상] 요한복음 5장 1절-15절,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이미지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28장,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새 찬송가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서론: '로데발'에서 '베데스다'까지 찾아오시는 은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자비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베데스다' 연못가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묘사하는 베데스다의 풍경은 이름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곳은 자비가 흐르는 곳이 아니라, 누군가를 짓밟고 먼저 들어가야만 살 수 있는 ' 무한 경쟁의 현장 '이었습니다. 이 본문을 대할 때면 우리는 구약의 한 인물을 떠올리게 됩니다. 바로 사울 왕의 손자이자 요나단의 아들이었던 ' 므비보셋 '입니다. 그는 두 발을 다 절며 '로데발'(로드발), 즉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숨어 지내던 사람이었습니다. 스스로는 왕의 식탁에 나갈 자격도, 힘도 없던 그에게 다윗 왕이 먼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찾아냅니다. 므비보셋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왕이 베푸는 '언약적 자비(חסד)'를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본론 오늘 본문의 38년 된 병자 역시 '베데스다'라는 이름의 '로데발'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므비보셋처럼 스스로 움직일 힘이 없었고, 그를 도와줄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라는 그의 탄식은 오늘날 치열한 세상 속에서 "도와줄 이 하나 없다"고 느끼며 고립된 우리의 고백과 너무나도 비슷합니다. 이 새벽, 므비보셋을 찾았던 다윗처럼, 절망의 자리에 누워 있는 우리를 먼저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1. 예수님은 우리의 '희망 없음'을 먼저 아십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가슴 뭉클한 구절이 등장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요한복음 5: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

[1월 27일 묵상] 창세기 19장 12절-23절, 새벽을 깨우는 자비의 손길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이미지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새 찬송가 52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서론: 익숙함과의 결별이 주는 어려움 샬롬, 샬롬. 오늘 이 새벽,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나오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오늘 새벽 따뜻한 이불속에서 나오기가 혹시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익숙한 안락함을 포기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피곤한 몸을 일으켜 새벽을 깨우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자리, 죄악된 습관의 자리인 줄 알면서도, 우리는 그곳이 주는 익숙함과 달콤함 때문에 쉽게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롯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소돔 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코앞에 닥쳤음에도 그는 머뭇거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머뭇거릴 때조차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강권적으로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본론 1. 심판의 경고 앞에서도 머뭇거리는 인간의 연약함 오늘 본문 12절에서 두 천사는 롯에게 소돔 성의 멸망을 예고하며, 가족들을 데리고 속히 떠날 것을 명령합니다. 그리고 13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이곳을 멸하시려 하신다"라고 천사들이 재촉합니다. 하나님의 경고는 분명하고 단호했습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경고 앞에서의 반응은 충격적입니다. 롯의 사위 될 사람들은 장인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14절). 하나님의 심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세상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롯의 모습입니다. 15절에 동이 틀 때에 천사들이 재촉하지만, 16절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창세기 19:16,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여기서 '지체하다'(מ...

역대하 27장 1절-28장 15절, 승리보다 위대한 자비함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이미지
10월 17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역대하 27장 1절-28장 15절을 통하여, 진짜 승리가 무엇인지를 묵상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본문에는 아하스의 죄악과 심판, 그리고 그 속에서 나타난 북이스라엘의 놀라운 자비를 통해, 참된 승리를 확인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승리보다 더 위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하심을 배우고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자 작성한 설교문입니다. 역대하 27장 1절-28장 15절, 승리보다 위대한 자비함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새 찬송가 270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서론: 이겼지만 졌습니다 여러분, 혹시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전쟁에서 이기긴 이겼는데, 너무나 큰 희생을 치른 나머지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을 말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한 왕이 전투에서 승리한 후 "한 번만 더 이렇게 이기면 우리는 완전히 망하겠다"고 한탄한 데서 유래한 말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피로스의 승리'가 참 많습니다. 부부싸움을 할 때, 목소리를 높이고 논리적으로 따져서 배우자의 입을 막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겼습니까? 아닙니다. 마음의 벽은 더 높아졌고 관계는 냉랭해졌습니다. 이겼지만 사실은 진 것입니다. 직장에서 동료와의 경쟁에서 이겨서 원하는 자리에 올랐지만, 주변의 모든 사람을 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승리일까요? 우리는 이기는 것에 너무나 익숙하고, 이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내 뜻을 관철시키는 것을 성공이라 여깁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 '승리'가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승리입니까? 어쩌면 우리는 승리에 취해, 이기는 것에 눈이 멀어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승리를 추구하다가 잔인해지고, 의를 내세우다가 사랑을 잃어버리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마...

누가복음 7장 1절-17절, 믿음, 자비 그리고 말씀의 능력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이미지
2월 26일 수요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누가복음 7장 1절-17절에는 두 가지의 놀라운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부장의 믿음과 나인성 과부의 슬픔을 통해 예수님의 권능과 자비, 그리고 말씀의 능력을 깊이 묵상합니다.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믿음의 등불을 밝히고, 삶 속에서 기적을 경험하도록 이끄는 새벽 예배 설교문 개요입니다. 누가복음 7장 1절-17절, 믿음, 자비 그리고 말씀의 능력 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465장, 주 믿는 나 남 위해 새 찬송가 380장, 나의 생명 되신 주 서론 성도 여러분, 오늘도 고요한 새벽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예수님의 이야기는, 백부장의 간절한 믿음이 만들어낸 종의 치유 기적, 그리고 절망 속에서 울부짖던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다시 살아나는 놀라운 기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두 기적은 2천도 더 된 과거에 이스라엘 땅에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적을 경험한 인물들이 만난 예수님을 의지할 때, 우리의 삶에도 이같은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예수님은 어떤 권능을 가지셨기에 질병을 치유하시고 죽음조차도 굴복시키실 수 있었을까요? 본문의 기적들은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소망의 등불이 되어 줄 수 있을까요? 함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이 새벽에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한 시간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본론 첫째, 믿음과 기적 첫 번째 이야기는 백부장의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으로서,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 제국의 권력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종이 병들어 죽게 되자 유대인 장로들을 통해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예수님을 직접 만나 뵙는 것조차 감당할 수 없다고 여겼다는 점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이방인이었던 백부장은,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 자체가 주제넘은 행동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여호수아 20장 1절-9절,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예수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이미지
1월 30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여호수아 20:1-9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가 조화롭게 나타난 도피성 제도를 통해 우리의 완전한 피난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습니다. 실수로 인한 살인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피성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와 연약함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시는 궁극적인 피난처가 되십니다. 이 구원은 모든 이에게 열려있으며, 우리는 이 소식을 전하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여호수아 20장 1절-9절,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예수님 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70장, 피난처 있으니 새 찬송가 419장,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서론 고대 도시의 성벽은 단순히 적을 막아내는 역할만 하지 않았습니다. 고대 근동의 성벽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안전한 피난처였습니다. 여행자들, 상인들, 그리고 안전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는 하나의 피난처로서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한 목적을 가진 여섯 개의 도시를 지정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도시들이 바로 도피성입니다. 본론 첫째,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의 표현으로서의 도피성 도피성은 실수로 사람의 생명을 빼앗거나 심각한 상해를 입힌 사람들이 피난하여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3절은 도피성의 목적에 대한 설명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수아 20:3,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도피성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마음과 공의로우신 성품을 동시에 보여주셨습니다. 도피성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고,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해 생겨나는 각종 문제들의 궁극적인 피난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특별한 제도였습니다. 도피성은 실수로 인한 살인자를 위한 보호처였습니다. 고의성이 없는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피의 보복자로부터 도망쳐 생명을 보전할 수 있는 생명의 피난처였던 것입니다. 우리 생명...

예레미야 49장 1절-6절, 암몬을 향한 심판과 회복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이미지
8월 11일의 매일성경 묵상 본문인 예레미야 49:1-6은 암몬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을 예언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자비로운 회복의 약속을 배우고, 교만을 경계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본문을 큐티하고 새벽설교로 정리하였습니다. 예레미야 49장 1절-6절, 암몬을 향한 심판과 회복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73장,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새 찬송가 272장,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참고할 글 예레미야 49장 1절-6절, 암몬에 대한 말씀 - 매일성경 큐티 구조와 주석 서론 암몬 족속은 비옥한 땅에 살고 있었으며, 지리적으로도 매우 유리한 위치에서 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풍성한 물이 있었고 목초지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양을 기르는데 유리하고 농사를 짓기에도 좋았습니다. 게다가 왕의 대로라는 고대의 중요한 무역로가 통과하고 있었기에, 여러 모로 경제적으로 풍성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암몬 족속의 북쪽에는 이스라엘의 갓 지파가 있었기에 다메섹으로 이어지는 고대 무역로의 일부분이 막히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암몬은 다메섹까지 이어지는 왕의 대로를 모두 차지하기 위하여 갓 지파의 땅을 불법적으로 점령하였던 것입니다. 경제적인 유익을 위해 하나님께서 갓 지파에게 주신 땅을 점령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단순히 땅을 정복한 것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였던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교만한 암몬에 대해 계속해서 심판의 예언을 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단순히 심판만을 선언하시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경우와도 같이 하나님께서는 암몬의 회복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첫째, 땅을 불법적으로 점령한 암몬 하나님께서는 먼저 1절-3절에서 암몬이 이스라엘의 갓 지파의 땅을 불법적으로 점령한 사실을 지적하셨습니다. 1절입니다. 예레미야 49:1, 암몬 자손에 대한 말씀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이 자식이 없느냐 상속자가 없느냐 말감이 갓을 점령하며...

신명기 30장 1절-20절, 주께 돌아오면 긍휼히 여겨 주십니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이미지
4월 19일의 매일성경 묵상 본문은 신명기 30:1-20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가나안 땅에서 쫓겨난 이스라엘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긍휼히 여겨 주십니다. 본문을 큐티하고 "긍휼"의 히브리어 원어를 살피고 회복 시키시는 하나님에 대해 새벽설교를 준비하였습니다. 신명기 30 장 1 절 -20 절 , 주께 돌아오면 긍휼히 여겨 주십니다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5 장 , 큰 영화로신 주 새 찬송가 290 장 ,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돌아온 어거스틴 초기 기독교 교회에 큰 영향을 끼진 성 어거스틴의 젊은 시절에 대해서는 한 번쯤은 다들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 그는 어린 시절에는 기독교 교육을 받았지만 , 사춘기 이후에는 방탕한 생활을 하고 마니교에 빠져 살았습니다 . 하지만 , 386 년 , 밀라노의 주교였던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듣고서 회심을 하고 다시 복음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 이후에 그는 성경을 연구하며 기독교 신학의 기초를 새롭게 놓게 됩니다 . 비록 어거스틴이 범죄하였고 방탕한 삶에 빠졌었지만 ,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 우리도 혼란스럽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실패하고 넘어지며 하나님을 부인할 지도 모릅니다 . 그러나 , 우리 하나님의 넓은 가슴은 하늘보다 넓고 깊음을 기억하고 돌아올 수가 있습니다 .   불순종하여 심판을 받는 이스라엘 오늘 본문의 앞 부분인 신명기 29 장의 말씀에서 ,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면 이스라엘이 형통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그러나 , 이스라엘이 말씀에 불순종하고 우상을 섬기면 , “ 이방인들에게 멸망 당하고 포로가 되어 흩어지게 될 것이다 ” 라고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 신명기 29:28 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신명기 29:28, 여호와께서 또 진노와 격분과 크게 통한하심으로 그들을 이 땅에서 뽑아내사 다른 나라에 내던지심이 오늘과...

신명기 25장 1절-19절,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세 가지 부당한 일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이미지
4월 10일 매일성경 묵상의 본문은 신명기 25:1-19로, 하나님께서 통치 하시는 나라는 부당한 일들이 없는 나라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에는 부당한 처벌이나 부당한 회피, 부당한 거래가 없는 정직하고 공의로운 나라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큐티하고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세 가지의 부당한 일들을 중심으로 새벽예배설교문을 작성하였습니다. 신명기 25장 1절-19절,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세 가지 부당한 일들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595장, 나 맡은 본분은 새 찬송가 458장,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할 때 서론 : 부당한 병역 거부 일부 이단들 중에는 인명을 경시한다는 이유로 군 복무를 거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군 복무를 거부하는 이단 신자들이 군 영창이나 감옥에 가는 일도 있었지만, 요즘은 행정직과 같은 대체 복무를 통하여 국방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병역을 거부하고 군 복무 자체를 부정하게 보는 이들을 위해 배려를 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들만 신념을 지킬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본론 :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세 가지 부당한 일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신명기 25장 1-19절 말씀을 통해 공정과 정의에 대해 묵상하고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성도로서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지혜로운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은 세 가지의 부당한 일들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부당한 처벌을 금하셨습니다. 본문 1-3절에서 "사십대까지만 때리고 그 이상 과다히 때리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25:3. 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지니 만일 그것을 넘겨 매를 지나치게 때리면 네가 네 형제를 경히 여기는 것이 될까 하노라 죄에 대한 응당한 형벌은 필요하지만, 지나친 처벌은 모욕과 학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시편 100편 1절-5절, 감사함으로 가까이 나아가라 - 매일성경 큐티 구조와 주석

이미지
2월 4일 주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은 시편 100:1-5로, 하나님은 인자하시며 자비로우시기 때문에 그의 백성은 마땅히 찬송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주인이심을 선언합니다. 본문의 큐티와 새벽설교를 위한 구조와 주석입니다. 시편 100편 1절-5절, 감사함으로 가까이 나아가라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1장, 다 찬양하여라 본문의 구조 시편 100편은 '감사의 시'라는 표제어가 붙은 시로서, 세상 만물이 하나님을 섬기며 찬송하며 감사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1. 여호와를 찬송하라 (1-2절) 시편 100편의 저자는 온 땅이 여호와 하나님께 즐거이 찬송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은 모두가 기쁨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큰 소리로 주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2.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찬송하라 (3-4절) 이어서 저자는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우리의 목자가 되신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목자이시기에, 주의 양인 우리는 감사하며 찬송해야 합니다. 3. 인자와 성실하심을 찬송하라 (5절) 마지막으로, 시인은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기 때문에, 주의 이름을 찬송해야 한다고 100편을 맺습니다. 본문의 주석 1. 100편 1절-2절 주석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쁨으로 그분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성역이나 임재 앞에 들어가는 두 가지 중요한 조건이었습니다. 2. 100편 3-5절 이 구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자 목자라는 역할이 함께 언급되고 있습니다. 3. 100편 1절 주석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라는 선언은, ‘크게 외치다’ 혹은 ‘개가를 올리다’는 뜻인 본 용어는 수도성에 입성하는 왕을 환영할 때 혹은 왕의 행렬을 맞이할 때 만백성과 신하들이 그에 대한 복종과 경의를 표하는 것을 묘사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66:1, 98:4, 6). 비록 ‘여호와는 왕이시다’로 시작하고 있지는 않지만, 본 시편은 ...

마태복음 12장 1절-8절, 안식일의 주인 - 매일성경 강해 주석 해설

이미지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마태복음 12장 1절부터 8절까지의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날인 안식일의 주인이 예수님이심을 선포하신 본문입니다. 제자들은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먹었고,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 자신이라고 선포하신 본문의 주석과 해설입니다. 마태복음 12장 1절-8절, 안식일의 주인 1절, 강해 주석 해설 그 때에 … 안식일에 이삭이 익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일년 전 4월의 유월절과 밀추수를 기념하는 칠칠절(태양력으로는 5-6월에 해당)의 중간 어느 한 안식일이다. 그런데 이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안식일을 취하신 날로서, 율법에는 이 날을 기념할 것과 쉴 것을 동시에 명하고 있다. 만약 이 명령을 어기는 자에게는 죽음과 같은 극단의 형벌이 예비되어 있었다(출 20:9 ff, 31:14 ff, 신 5:12 ff). 밀밭 사이로 가실새 먼저 랑게(Lange)에 의하면 전답(田畓)으로, 루터(Luther)에 의하면 곡식으로 이해되고 있는 ‘밀밭’(스포리모스)은 파종한 밭 혹은 곡식 밭으로 이해되며, 그중에서도 특별히 ‘보리밭’으로 해석 될 때가 많다. KJV에서는 ‘곡식밭’(grainfieled)으로 번역하고 있다. 한편 본문에 언급된 바 제자들이 이삭은 잘라 먹은 일에 대한 시비가 논쟁의 초점으로 대두된 것으로 보아 이때 예수의 사건은 바리새인들이 규정하고 있는 안식일에 여행할 수 있는 거리(약 1.8 km) 내에서 발생한 것이 분명하다. 한편 그 당시 팔레스타인에 있는 경작지들은 대부분 길고 좁다란 이랑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 이랑 사이의 땅이 사람이 지나다니는 통로로 활용되었다. 제자들이 사장하여 그 당시 제자들은 안식일의 그지 조항을 간과해 버릴 만큼 몹시 배가 고파 있었던 것이다. 이는 그 당시 예수의 선교활동이 매우 활발하고도 촉급하게 진행되고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이삭을 잘라 먹으니 율법에 의하면 이 행위는 추수하는 것과 동일한 일로 간주되었다. 한편 평행구인 눅 6:1에 보면 ‘손으로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