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7편 1절-9절, 눈물의 땅에서 부르는 소망의 노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시편 137편 1절-9절, 눈물의 땅에서 부르는 소망의 노래
함께 하는 찬송
- 새 찬송가 338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 새 찬송가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서론: 바벨론이라는 현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새벽, 주님 앞에 나오신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십니까? 본문의 시인은 지금 '바벨론 강가'에 앉아 있습니다. 이곳은 화려한 제국의 중심부입니다. 거대한 운하가 흐르고, 웅장한 건물들이 즐비한 문명의 중심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곳은 '눈물의 장소'였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들은 단순히 고향이 그리워서 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던 성전이 무너졌고, 하나님의 임재가 떠난 것 같은 영적 상실감 때문에 울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화려합니다. 성공과 번영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성도는 때로 깊은 외로움과 영적 목마름을 느낍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가? 내 기도는 듣고 계신가?" 하는 탄식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본론
1. 세상의 조롱과 성도의 거절
바벨론 사람들은 유다 백성들을 조롱합니다. 3절을 보시겠습니까?
- 시편 137: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바벨론 사람들은 유다 백성들에게 "우리를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고 요구합니다. 이것은 음악을 감상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 신이 너희를 구원하지 못했는데, 그 찬양이나 한번 들어보자"는 비아냥거림입니다. 술자리 안주로 찬양을 부르라는 모욕입니다.
이때 시인은 어떻게 합니까? 2절에서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라고 말합니다.
수금을 나무에 걸었다는 것은 '연주 파업'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노래를, 너희들의 유흥거리로 팔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은 우리에게 타협을 요구합니다. "신앙은 적당히 해라. 교회에서는 거룩한 척해도, 직장에서는 우리 방식대로 해라."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의 쾌락을 위해 우리의 거룩함을 팔아 넘길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침묵할지언정, 세상의 조롱거리로 전락하지 않겠다는 거룩한 자존심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2. 기억이 곧 생명이다.
수금을 걸어두고, 시인은 무서운 맹세를 합니다. 5절과 6절입니다.
- 시편 137:5-6,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이 말이 끔찍한 저주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처절한 사랑의 고백입니다.
- "오른손이 재주를 잊는다"는 것은 수금을 타는 연주자에게 사형선고입니다.
- "혀가 입천장에 붙는다"는 것은 다시는 노래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다스림(예루살렘)을 잊어버리고 세상에 동화되어 사느니, 차라리 내 재능을 잃고 벙어리가 되는 게 낫다."라고 말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말할까요?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의 문화는 너무나도 매력적이고 강력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그 속에 동화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의지적으로 '기억'하려고 몸부림칩니다.
그가 기억하려는 '예루살렘'은 단순히 성벽이나 성전과 같은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왕 되시는 곳, 하나님의 언약이 있는 곳입니다. 시인은 결혼식 날의 기쁨보다, 사업이 성공하는 기쁨보다(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기쁨을 더 위에 두겠다고 선포합니다.
3. 우리의 눈을 가리는 바벨론: 스마트폰 중독
- 우리가 바벨론 강가에 앉아 울었도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작은 스크린 앞에 앉아 웃고 있습니다.
2025년 발표된 '아동·청소년 삶의 질' 보고서와 2024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우리나라 10대 청소년 10명 중 4명(42.6%)이 스마트폰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어려운 '과의존 위험군'으로 나타났습니다. 성인을 포함한 전체 국민 중에서도 약 23%가 위험군에 속합니다.
성도 여러분! 바벨론 제국은 거대한 신상으로 사람들을 압도했지만, 현대의 바벨론은 손안의 작은 화면으로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우리가 하루에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은 평균 4~5시간에 달하지만, 하나님을 묵상하는 시간은 10분도 채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바벨론 강가가 아닌, 스마트폰 불빛 아래 앉아 우리의 영혼을 마비시키고 있지는 않습니까?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힘으로는 이 결단을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결단을 하여도 금방 바벨론의 화려함에 눈이 팔리고, 고난 앞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참된 예루살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이라는 바벨론에 오셔서, 조롱과 멸시를 당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내려와 보라"고 조롱할 때, 주님은 묵묵히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님은 겟세마네에서 통곡하셨고,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버림받은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왜입니까? 죄의 포로 된 우리를 해방시켜 영원한 새 예루살렘으로 데려가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그분의 오른손은 결코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을 잊지 않으십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발 디디고 사는 곳은 바벨론 같은 세상일 수 있습니다. 눈물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여 주저앉아 있지 마십시오. 수금을 나무에 걸어둘지언정, 마음의 중심에서는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주님, 세상의 그 어떤 성공보다 주님을 나의 최고의 기쁨으로 삼겠습니다." 이 고백이 회복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닦으시고 우리 입술에 새 노래를 두실 것입니다. 이 은혜가 오늘 하루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사랑의 주님, 바벨론 같은 세상에서 주님보다 눈앞의 성공을 더 사랑했던 죄를 회개합니다. 눈물 골짜기 같은 인생길에도 친히 찾아와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이제는 세상의 헛된 즐거움보다 주님을 나의 최고의 기쁨으로 삼기 원합니다. 유혹과 조롱 앞에서도 타협하지 않는 거룩한 믿음을 주시고, 영원한 본향을 기억하며 오늘을 승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바벨론 같은 세상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 내 인생 최고의 기쁨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게 하소서.
-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이 천국 소망을 가지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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