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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7일 묵상] 야고보서 1장 19-27절, 자유케 하는 온전한 법을 바라보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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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장 19-27절, 자유케 하는 온전한 법을 바라보라 야고보서 1장 19-27절, 다시 온유함의 자리로 돌아오라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새 찬송가 200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서론 성경을 보면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도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 앞에서 주저앉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갈멜산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불로 응답하셨던 기도의 용사도, 끝없는 고립감 앞에서 기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광야의 로뎀나무 그늘 아래 엎드려 "여호와여 지금 내 생명을 거두어 주옵소서"라며 절규했습니다. 탈진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왜 믿음이 없느냐고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천사를 보내 어루만지시며, 숯불에 구운 떡과 시원한 물 한 병을 건네셨습니다. 지쳐 잠들면 다시 깨워 먹이시며 세미한 음성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오늘 우리 현실도 엘리야의 광야와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피로사회》에서 오늘날 사람들을 가리켜 '자기 착취에 빠진 번아웃 환자'라고 진단했습니다. 타인의 강요 때문이 아니라, '더 잘해야 한다', '멈추면 뒤처진다'는 자신의 내면 강박에 짓눌려 스스로를 소진시킨다는 것입니다. 늦은 밤까지 일터와 가정에서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겨우 눈을 붙였다가 다시 새벽을 맞이하는 성도들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자칫 우리 마음을 더 무겁게 짓누르기 쉽습니다. 말을 아껴라, 성내지 마라, 행함이 없으면 가짜다. 가뜩이나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성도의 등 뒤에 또 다른 짐을 얹는 것처럼 다가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야고보 사도가 전한 권면의 의도가 아닙니다. 야고보는 본문 바로 앞 18절에서 '하나님이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는 복음을 먼저 선포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를 몰아세우는 훈계가 결코 아닙니다. 오히...

[10월 16일 묵상] 야고보서 1장 12-18절, 변함없는 빛들의 아버지 품에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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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장 12-18절, 변함없는 빛들의 아버지 품에서 야고보서 1장 12-18절, 고단할 때 빛이신 아버지를 바라보십시오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12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새 찬송가 415장, 십자가 그늘 아래  서론 로뎀나무 그늘 아래 힘없이 주저앉아 "여호와여, 지금 내 생명을 거두어 주옵소서" 탄식하던 선지자 엘리야의 깊은 탈진을 기억합니다. 갈멜산에서 하늘의 불을 끌어내리며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던 영적 거인도, 끝없이 옥죄어 오는 위협과 누적된 고단함 앞에서는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현대인의 심리와 탈진을 연구한 학자들은 번아웃 증후군을 가리켜 " 감정의 연료가 완전히 바닥나 영혼이 차갑게 식어버리는 상태 "라고 진단합니다.  오늘 이른 새벽, 무거운 눈꺼풀과 천근만근 같은 몸을 이끌고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오신 성도 여러분의 어깨에도 어쩌면 그 차가운 탈진의 무게가 고스란히 얹혀 있을지 모릅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 생계를 잇기 위해, 쉼 없이 밀려오는 인생의 거친 파도를 견뎌내느라 영과 육이 새카맣게 타버린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 제 삶은 왜 이토록 곤단하기만 합니까?"라고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탄식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가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바로 그런 성도들을 향해 오늘 말씀을 건넵니다. 박해와 가난으로 흩어져 숨죽여 흐느끼던 성도들의 거친 손을 따뜻하게 잡으며, 그들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영혼 깊은 곳으로 하나님의 자비로운 시선을 간절함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론 1. 흔들리는 인생의 밤, 변함없는 빛들의 아버지를 바라보십시오. 고난이 깊어지면 사람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립니다. 몸이 아프고, 물질에 쪼달리게 되고, 믿었던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질 때, 우리 안에서는 "하나님이 나를 미워하시나? 왜 나를 이런 구렁텅이에 밀어 넣으실까?" 하는 서운함과 의심이 생깁니다. ...

[10월 15일 묵상] 야고보서 1장 1-11절, 여러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뻐하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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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장 1-11절, 여러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뻐하라 야고보서 1장 1-11절, 시련을 넘어 온전함으로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새 찬송가 373장, 고요한 바다로 서론 이른 새벽, 쌀쌀한 공기를 가르고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성도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기 전, 우리는 저마다 가슴속에 크고 작은 짐을 안고 이 자리에 엎드렸습니다. 성경을 가만히 펼쳐보면,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셨던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목전에 둔 그 캄캄한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엎드려 울부짖으셨던 장면을 만나게 됩니다. 가장 깊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도 인생의 모진 시험과 마주할 때는 마음이 흔들리고 눈물이 쏟아지기 마련입니다. 오늘 야고보 사도가 편지를 보낸 초대 교회 성도들의 형편도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고향을 떠나 낯선 땅으로 흩어진 디아스포라, 곧 나그네들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거친 차별과 가난 속에서 하루하루 믿음을 지키는 일 자체가 버거운 영적 전투였습니다. 바로 그들을 향해, 그리고 오늘 이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 주님은 오늘 새벽 야고보서 1장의 말씀을 통해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위로의 손길을 내미십니다. 본론 1. 온전한 인내를 이루는 기쁨을 가지십시오. 야고보 사도는 편지를 시작하자마자 아주 낯설고 충격적인 권면을 건넵니다.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야고보서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상식적으로 시험을 만나면 슬퍼하고 낙심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합니다. 억지로 웃는 척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시험’으로 번역한 헬라어 πειρασμός(페이라스모스)는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하려는 사탄의 유혹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삶에서 마주하는 온갖 종류의 외적 시련과 환난을 두루 품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10월 7일 묵상] 사사기 19장 1-10절, 그 저녁, 서둘러 길을 떠나지 못한 우리에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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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9장 1-10절, 그 저녁, 서둘러 길을 떠나지 못한 우리에게 사사기 19장 1-10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19장 1-10절, 떠나야 할 순간에 머물고 있습니까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새 찬송가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서론 새벽에 예배의 자리로 나오는 우리의 모습, 그리고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의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다를까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마주치는 남편의 무심한 눈길에 속에서부터 무언가 치밀어 오르지 않습니까? 소파에 누워 TV만 보는 남편을 보며 혀를 차고, 남편은 밥그릇 내려놓는 소리에도 날을 세우는 아내를 보며 입을 닫지 않습니까? 수십 년을 함께 살았으니 다 안다고 하지만 속마음은 굳게 닫힌 철문 같은 경우들이 많습니다. 자식의 섭섭한 말 한마디에 며칠씩 가슴을 닫고, 자존심에 상처 하나 나면 몇 달을 꽁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남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부터 그렇습니다. 강단에서는 사랑하라 외치지만, 집에 돌아가 사소한 일로 부딪히면 옹졸한 자존심을 꺾지 못해 며칠을 입을 닫습니다. 겉은 그럴듯한데, 속은 무너져 있을 뿐입니다. 본론 오늘 사사기 19장의 레위인의 모습이 이같은 우리의 영적 민낯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거룩해야 할 레위인이 첩을 두었고, 그 첩이 도망치자 넉 달이나 방치하다 뒤늦게 찾아가 ‘다정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얼핏 로맨스 같지만, 체면과 이기심으로 얼룩진 비겁한 미봉책일 뿐입니다. 오늘 본문은 겉만 그럴듯하고 속은 무너져 있는 우리의 비겁한 관계를 정면으로 비춥니다. 1. 허물어지는 인간의 열심 레위인이 장인의 집에 도착했을 때 벌어지는 일을 보십시오. 장인은 사위를 반기며 사흘 동안 먹고 마십니다. 넷째 날에도, 다섯째 날에도 장인은 먹고 마시며 머물라고 사위를 붙잡습니다. 5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사사기 19:5, 넷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 여자의 아버지...

[9월 21일 묵상] 사사기 9장 22절-45절, 어제의 동지가 오늘 내 가슴을 찌를 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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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9장 22절-45절, 어제의 동지가 오늘 내 가슴을 찌를 때 사사기 9장 22절-45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9장 22절-45절, 하나님은 침묵의 시간에도 당신의 눈물을 기억하신다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46장, 주 음성 외에는  새 찬송가 442장,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서론 혹시 냉장고 구석에서 유통기한이 지났는지도 모른 채, 오래된 음식을 꺼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가장 깊숙한 곳에 넣어 두고 까맣게 잊어버려 유통기간이 한참을 지난 음식들은 냄새가 나고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 사이의 관계에도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빠진 이익으로 뭉쳐진 인간관계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익이 끊어지면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창세기 11장에서 사람들은 " 자, 대와 탑을 쌓아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라며 뜻을 모았습니다. 하나님 없는 바벨탑을 쌓아 올릴 때, 그들의 동맹은 세상에서 가장 단단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자마자 그 단단해 보였던 연합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서로 다투며 분열하고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본론 오늘 본문인 사사기 9장 22절-45절은 이익에 따라 붙었다가 떨어졌다가를 반복하는 인간관계의 적나라한 실상을 보여줍니다.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은 불과 3년 전만 해도 "그는 우리의 혈육이다"라며 뜨겁게 포옹하며 하나가 되었었습니다. 은 칠십 개를 내어주어 정치적 동맹을 맺고, 한 바위 위에서 기드온의 아들들 70명을 죽이면서까지 권력을 나누었던 사이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혈연이자 완벽한 정치적 야합이었습니다. 그러나 겨우 3년 만에 그들의 손에는 서로를 향한 배신과 증오의 칼날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탐욕으로 결탁한 관계가 왜 이토록 처참하게 무너지는지, 오늘 새벽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삶의 연대를 돌아보...

[9월 15일 묵상] 사사기 7장 1절-14절, 내 손이 아닌 하나님의 손으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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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7장 1절-14절, 내 손이 아닌 하나님의 손으로 사사기 7장 1-14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무력화(無力化)를 통한 구원과 십자가적 승리에 관한 연구 보고서 사사기 7장 1절-14절, 초라한 보리떡으로 승리하신 생명의 떡 예수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새 찬송가 35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서론 하롯 샘 곁에 웅크리고 앉아 저 먼 골짜기를 응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늘 본문 속에 보입니다. 그들의 시선이 닿는 모레 산 앞 골짜기에는 미디안 연합군 13만 5천 명이 메뚜기 떼처럼 진을 치고 있습니다. 바닷가의 모래처럼 끝없이 펼쳐진 낙타와 병장기들을 내려다보는 기드온과 백성들의 가슴은 두려움과 공포도 가득찼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상식을 뒤흔드는 뜻밖의 말씀을 건네십니다.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참으로 기이한 말씀입니다. 13만 5천 명을 상대하기에는 지금 모여 있는 이스라엘 군사 3만 2천 명으로도 턱없이 모자란 숫자였습니다. 4대 1의 절대적 열세였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너무 적다"고 탄식하시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아서 안 된다"며 손을 내저으십니다. 하나님은 도대체 왜 이런 계산법을 내미시는 것일까요? 본론 1. 숫자를 줄이시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께서 군사를 줄이라고 명하신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우리 함께 2절을 읽어 볼까요? 사사기 7: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하나님은 눈앞의 거대한 적군 미디안보다, 우리 마음속에 도사린 '스스로를 높이는 교만'을 훨씬 더 염려하고 계십니다. 인간은 자원이 조금만 넉넉해도, 조금만 힘이 있어도 금세 하나...

[9월 14일 묵상] 사사기 6장 25절-40절, 네 아버지 집의 바알을 헐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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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6장 25절-40절, 네 아버지 집의 바알을 헐라 사사기 6장 25절-40절, 젖은 양털 너머 우리를 품으시는 그리스도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사사기 6장 25-40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안방의 우상을 깨뜨리고 은혜의 확증으로 서라 - 연구 보고서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새 찬송가 321장, 날 대속하신 예수께 서론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참 가슴 아픈 장면이 나옵니다. 모세가 시내산 위에서 생명의 말씀을 받고 있는 그 엄숙한 순간에, 산 아래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것이 우리를 인도한 신이다"라며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순간, 하나님께서 거룩한 약속의 땅으로 전진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하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금송아지를 불사르고 가루로 만들어 이스라엘이 그 가루를 탄 물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밖으로 나아가는 발걸음보다 안을 거룩하게 비워내는 작업이 언제나 먼저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기드온도 똑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7년 동안 미디안의 잔인한 수탈에 시달리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13만 5천 명이라는 엄청난 군대가 메뚜기 떼처럼 밀려들어 모든 곡식을 빼앗아 갔습니다. 기드온은 얼마나 두려웠던지 포도주 틀이라는 비좁은 구덩이에 숨어서 겨우 밀 이삭 몇 개를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 기드온을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큰 용사여"라고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께서 그 즉시 기드온의 손에 칼을 쥐여 주시고 미디안 진영으로 돌격하게 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원수 미디안을 치러 나가기 전에, 기드온의 발걸음을 전혀 뜻밖의 장소로 돌려세우십니다. 그것은 바로 그가 날마다 밥을 먹고 잠을 자던 곳, '네 아버지의 집'이었습니다. 본론 1. 내 삶과 가정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25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사기 6:25, 그 날 밤에 여...

[9월 7일 묵상] 사사기 3장 12절-31절, 여호와께서 세우신 왼손잡이 구원자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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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3장 12절-31절, 여호와께서 세우신 왼손잡이 구원자 사사기 3장 12절-31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연약함의 틈바구니로 흘러 내리는 온전한 구원의 은혜에 관한 연구 보고서 사사기 3장 12절-31절, 부족한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새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서론: 인생의 그늘진 자리에서 들려오는 주님의 부르심 연말이나 연초에 교회에서 일을 맡아 달라고 연락을 받아 보셨습니까? 저도 목사로서 교회 일을 요청을 드릴 때 제일 먼저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믿음이 없어서 못해요", "저는 능력이 부족해서 부담되요"라는 말씀을 많이 듣게 됩니다. 주를 위해 봉사하겠노라 결단하지만, 우리는 막상 내게 일이 주어지는 상황에서는 갈등하고 고민할 때가 많습니다. 출애굽기 4장을 보면, 하나님께 부름받은 모세가 자신의 부족함을 이유로 주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하지 못하는 자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40여년 동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생활을 하던 모세에게는 내세울 만한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의 능력이 아니라 순종을 요구하셨고, 그의 약함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본론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사람의 조건과 세상의 계산을 뛰어 넘어 일하시는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강해 보이는 사람만 찾지 않으십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부르시고 사용하십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까지 사용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의 지배 아래 18년 동안 고통받자, 그들은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에훗을 구원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를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사사기 3:1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9월 5일 묵상] 사사기 2장 11절-23절, 또 넘어진 삶, 구원을 베푸시는 은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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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2장 11절-23절, 또 넘어진 삶, 구원을 베푸시는 은혜 사사기 2장 11-23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포기하지 않으시고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사사기 2장 11절-23절, 반복되는 죄의 사슬을 끊으신 영원한 사사 예수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79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새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고단한 인생길 힘겨운 오늘도 서론 오늘 본문을 읽으시면서, "어? 내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 있네?"라는 느낌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광야를 지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억하시지요. 그들은 매일 아침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었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돌보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물이 조금만 부족하고 길이 험해지면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불신했습니다. 그들은 건져주시고 필요를 채워 주시면 하나님께 감사하다가도, 조금만 숨이 트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옛 습관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인간의 전 생애를 80년 넘게 추적 조사했던 조지 베일런트(George Vaillant)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고 인생의 경험이 쌓인다고 해서 저절로 온전해지거나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놀라울 정도로 자신의 낡은 실패와 방어기제를 평생토록 반복하는 취약한 존재다." 반백 년을 살고, 예순과 일흔을 넘기며 수많은 산전수전을 다 겪었어도, 우리는 여전히 작은 걱정거리 하나 때문에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까. 똑같은 실수 앞에서 자책하며 주저앉기도 합니다. 좀전에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넘어지고 실패하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을 보게 됩니다. 본론 1.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보다 더 자비로우시다. 먼저, 오늘 본문 16절을 다 함께 마음으로 읽어보고자 합니다. 사사기 2:16,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나 그리고 18절의 뒷 부분에는 "...

[9월 3일 묵상] 사사기 1장 22절-36절, 타협에 길들여진 영혼을 깨우는 십자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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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장 22절-36절, 타협에 길들여진 영혼을 깨우는 십자가 사사기 1장 22절-36절, 미완의 순종을 덮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승리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사사기 1장 22-36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실패의 자리에서 영원한 안식으로 초대하시는 은혜의 손길에 대한 연구 보고서 함께 할 찬송 새찬송가 342장, 너 시험을 당해 새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서론: 안락이라는 이름의 달콤한 타협 "괜히 정리했네"라고 후회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몇 달에 한 번씩 책상을 정리하는데, 처음에 정리하고 나서는 항상 후회합니다. 익숙했던 자리에 있던 물건들을 새롭게 찾아야만 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익숙함을 극복하고 새롭게 정리를 하면, 책상이 깨끗해지기도 하고 새로운 마음이 들기도 하는 장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광야에 들어선 이스라엘 백성은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는 기적 속에서도, 이미 익숙한 안락함을 그리워하며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외쳤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편리함과 안락함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버린 사회'인 것 같습니다. 교회 역시 거룩한 사명을 지키기 위한 믿음의 모험 대신, 당장의 안정과 실용적인 편안함을 위해 너무나 쉽게 믿음의 원칙을 포기하고 영적인 타협을 이어가곤 합니다. 본론 오늘 본문인 사사기 1장 22절 이하의 말씀은 바로 이 타협의 비극을 생생하게 고발하는 본문입니다.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도 죄를 온전히 몰아내기보다 현실의 실리와 안락함을 선택했던 이스라엘의 모습이 지금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지는 본문입니다. 이 새벽, 말씀을 통해 내 삶에 숨어 있는 타협의 자리를 발견하고, 십자가에서 완전한 승리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다시 일어서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 현실의 실리적 타협은 죄와의 위험한 동거를 부릅니다. 먼저, 본문 22절은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시니라"라는 소망 가득한 선포로 문을 엽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