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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0일 묵상] 이사야 11장 1절-16절 심층 연구 리포트: 베인 그루터기에서 피어나는 우주적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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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1. S: Scripture (성경 본문 확정 및 대조) 본문 대조 및 리듬 분석 (사 11:1-16) 이사야 10장 마지막 부분(33-34절)의 '레바논의 빽빽한 숲이 도끼에 찍히는' 심판의 잔혹한 이미지 직후, 11장 1절은 극적인 대조를 이루며 시작됩니다. 원어 리듬: 1-5절은 메시아의 자격과 통치 방식(공의)에 대한 7중의 성령 강림을 점층적으로 묘사하며, 6-9절은 그 결과로 나타나는 에덴의 회복(샬롬)을 시적 병행법으로 노래합니다. 10-16절은 '그 날에(בַּיּוֹם הַהוּא)'라는 종말론적 공식을 반복하며 이스라엘과 이방의 우주적 회복을 선포합니다. 주요 번역 대조: 1절: [חֹטֶר (choter, 줄기/가지)]를 개역개정은 "싹", ESV는 "shoot"으로 번역. [נֵצֶר (netzer, 가지/순)]은 "가지", "branch"로 번역. 생명이 끝난 것 같은 '그루터기(stump)'에서 기적적으로 돋아나는 생명력을 강조. Step 2. m: Personal Meditation Invocatio (기원): 주님, 내 눈을 열어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베어지고 짓밟힌 제 삶의 그루터기 위에서도 생명을 틔우시는 성령의 빛을 비추소서. First Encounter (첫 만남): 6절,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이 구절에서 숨이 멎는다. 약육강식의 세상, 강자가 약자를 포식하는 것이 당연한 이 현실 한가운데서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절대 평화의 선언이 내 마음에 파동을 일으킨다. Temporal (시간성): Before: 앗수르의 폭력과 유다의 불순종으로 다윗 왕조라는 거대한 나무가 처참하게 잘려 나간 절망의 시간. During: 보이지 않는 뿌리에서 메시아가 나시고, 성령의 7중적 충만함으로 왜곡된 재판(공의)이 교정되는 시간. After: 자연계의 맹성과 독성이 ...

[5월 9일 묵상] 창세기 38장 1절-30절, 인생의 막힌 담을 무너뜨리시는 하나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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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새 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서론: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성도 여러분, 혹시 살아가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 아, 내 인생은 이제 여기서 끝이구나. " 차마 남들에게는 말도 못 할 자식 문제로 속을 끓이고, 가슴 깊이 숨겨둔 비밀 때문에 밤잠 설쳐가며 절망의 끝에 서 있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유다의 삶이 딱 그랬습니다. 그는 신앙의 울타리인 형제들을 떠나 세상 문화 속에 푹 빠져 지냈습니다. 게다가 사랑하는 두 아들을 연달아 앞세우는 비극까지 겪었습니다. 집안은 회복 불능으로 보였고, 그의 인생은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난 상태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 본문의 핵심 단어인 ' 에라본(עֵרָבוֹן) '에 주목해야 합니다. 본래 이 말은 물건을 거래할 때 확실한 약속의 증표로 건네는 '담보물' 혹은 '보증금'을 뜻합니다. 유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도장과 지팡이를 다말에게 ‘에라본’으로 주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죄와 어둠 속에서 방황하며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세상에 저당 잡히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신분조차 잃어버린 우리 인생의 뼈아픈 실상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소망을 잃어버린 그 막다른 골목에서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이 아침, 우리 인생의 실패를 뚫고 도도하게 흐르는 그 끈질긴 은혜를 함께 나누길 소망합니다. 본론 1. 세상에 동화되어 무너진 유다 본문 1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창세기 38:1,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여기서 '내려갔다'(יָרַד, 야라드)는 말은 단순히 지리적인 이동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약속의 땅, 신앙의 자리를 벗어나 세상 가치관 속으로 침전하기 시작했다는 영적인 경고입니다. 유다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여인...

[4월 23일 묵상] 창세기 29장 21절-35절, 뒤엉킨 인생에서 시작되는 찬송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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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새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서론: 기대와 다른 아침을 맞이할 때 성도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결혼식 다음 날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떴는데 내가 그토록 기다렸던 사람이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이 내 옆에 누워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이 ‘반전의 아침’이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야곱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을 보면 이렇게 당혹스러운 아침을 맞이한 또 한 명의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신약의 베드로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며 찬란한 영광의 아침을 꿈꿨습니다. 로마를 정복하고 왕의 우편에 앉는 승리의 아침을 기대했지요. 하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은 어떠했습니까? 닭 울음소리와 함께 찾아온 비참한 실패의 아침이었습니다. "주를 위해 죽겠노라" 장담했던 호기는 온데간데없고, 차가운 숯불 앞에서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자신의 초라한 민낯만을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본론 우리의 인생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늘 내가 계획한 대로, 내가 바라는 방식대로 삶이 흘러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일만 잘 풀리면 행복할 거야", "이 사람의 마음만 얻으면 충분해"라고 생각하며 밤낮으로 수고합니다. 하지만 정성을 다해 심은 것이 때로는 '속임수'라는 열매로 돌아오고, 간절히 원했던 사랑 대신 '소외'라는 차가운 현실을 마주할 때가 참 많습니다. 오늘 이 아침, 우리는 이렇게 뒤엉킨 인생의 실타래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함께 바라보길 원합니다. 1.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연단 야곱은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을 마치 며칠처럼 여기며 헌신했습니다.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 고된 세월이 짧게 느껴졌겠습니까? 그러나 외삼촌 라반은 '언니가 먼저'라는 관습을 핑계로 어둠을 틈타 레아를 들여보냅니다. 25...

[2월 10일 묵상] 요한복음 4장 15절-26절, 목마름의 끝에서 만난 참된 생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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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새 찬송가 191장, 내가 매일 기쁘게 서론: 새벽을 깨우는 갈증 오늘 새벽을 깨우고 주님 앞에 나온 우리 모두에게, 주께서 하늘의 위로와 평강을 부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성도 여러분, 평안하십니까? 이 새벽,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우리가 새벽마다 잠을 깨며 물 한 잔을 마시듯, 우리의 영혼도 매일 아침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낍니다. "오늘 하루도 버텨낼 힘이 있을까?", "이 근심은 언제쯤 끝이 날까?" 현대인들의 삶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정오의 뜨거운 태양 아래, 아무도 찾지 않는 시간에 우물을 찾은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생존의 물'을 길으러 왔지만, 그곳에서 '생명의 주인'을 만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 문제, 자녀 걱정, 관계의 아픔이라는 ' 생활 키워드 '를 들고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은 단순히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을 넘어 우리 존재의 근원을 만져주십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를 먼저 찾아와 기다리고 계신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본론 1. 숨기고 싶은 과거를 대면하시는 주님 여인은 예수님께 "그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15절). 여전히 육체적인 편리함에 머물러 있는 여인에게 주님은 갑자기 엉뚱한 말씀을 하십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요한복음 4: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이 말씀은 여인의 가장 아픈 곳을 찌르는 송곳 같았습니다. 그녀에게는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지금 사는 이도 남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왜 굳이 이 수치스러운 사실을 들춰내실까요? 그것은 진정한 생수를 마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의 문제를 직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배의 자리에 나올 때 거룩한 가면을 씁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

[2월 3일 묵상] 요한복음 1장 35절-51절, 인생의 검색창을 끄고, 그리스도를 대면하십시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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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52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새 찬송가 323장,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서론: 소외된 현대인의 갈망과 야곱의 사닥다리 최근 한 일간지 기사에는 ‘초연결 사회의 역설’이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통계가 실렸습니다. 하루 종일 수백 명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SNS로 타인의 일상을 관찰하지만, 정작 "내가 지금 너무 힘들다"고 말할 단 한 사람을 찾지 못해 고독사하거나 극단적인 외로움을 느끼는 현대인이 급증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는 손가락 하나로 전 세계의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정작 ‘나’라는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찾기 위해 영혼의 검색창을 두드릴 때는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습관적으로 확인하는 스마트폰의 알림보다, 내 영혼의 깊은 갈증을 해결해 줄 진짜 '연결'이 우리에게는 절실합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은 구약성경 창세기 28장의 야곱을 떠올리게 합니다. 형 에서의 낯을 피해 광야로 도망친 야곱은 빈손이었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지켜보지 않는다고 믿었던 그 외로운 광야의 밤, 야곱은 차가운 돌베개를 베고 잠이 듭니다. 그때 하나님은 하늘과 땅이 맞닿은 신비로운 '사닥다리'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야곱은 비로소 깨닫습니다. "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 나만 홀로 남겨졌다고 생각한 그 처절한 고립의 현장이 사실은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성소(벧엘)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야곱의 사닥다리가 실체가 되어 우리 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합니다. 우리가 인생의 빈칸을 채우기 위해 헤맬 때, 주님은 이미 우리를 보고 계셨으며 우리를 향해 " 와서 보라 "라고 초대하고 계십니다. 본론 1. 갈망의 방향을 바꾸는 초대, "무엇을 구하느냐?" 본문 35절에서 39절은 세례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르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들은 요...

아모스 9장 1절-15절,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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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9장이 전하는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의 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자비하심을 동시에 발견합니다. 영적 타락 속에서도 메시아를 통한 구원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위로와 소망이 됩니다. 드레스덴 프라우엔 교회의 재건처럼, 하나님의 회복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합니다. 아모스 9장 1절-15절,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10장, 시온성과 같은 교회 도입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독일 드레스덴의 프라우엔 교회는 45년간 무너진 채로 남아있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 시민들이 무너진 건물의 돌들을 하나하나 수거하여 원래 모습 그대로 교회를 재건했습니다. 검게 변색된 옛 돌들 사이로 새 돌들이 섞여 들어가 교회를 완성했듯이,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서도 회복의 은혜는 더욱 아름답게 빛납니다. 무너진 우리의 모습도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회복될 수 있습니다. 서론 및 핵심 메시지 오늘 본문인 아모스 9장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자비로운 회복이라는 두 축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죄악된 이스라엘을 철저히 심판하시되, 그 속에서도 회복의 약속을 잃지 않으십니다. 특히 다윗의 장막을 일으키시겠다는 약속을 통해 메시아를 통한 궁극적 구원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오늘 우리의 소망이 되십니다. 본론과 배경 아모스는 유다 출신의 목자였으나, 북이스라엘을 향해 예언했던 선지자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 통치 하에서 물질적 번영을 누렸지만, 영적으로는 극도로 타락해 있었습니다. 제단 곁에 서 계신 하나님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본문은, 성전에서부터 시작되는 심판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 가운데서도 남은 자들을 통한 회복을 약속하시며,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십니다. 첫째,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 먼저, 본문의 1절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아모스 9:1, 내가 보니 주께서 제단 곁에 서서 이르시되 기둥 ...

사도행전 13장 13절-31절, 복음을 들고 전진하는 바울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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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의 매일성경 묵상 본문은 사도행전 13:13-31입니다. 본문은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분열이 시작되고 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돌아간 요한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는 크게 다투고 서로 갈라져서 따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본문을 큐티하고 끝까지 복음을 들고 전진하는 바울을 중심으로 새벽설교문을 정리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3장 13절-31절, 복음을 들고 전진하는 바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5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새 찬송가 171장, 하나님의 독생자 서론 : 나이가 들어도 해야 할 일 휴대폰을 가지고 계신 분들 중에, 휴대폰의 모든 기능을 사용하시는 분이 계신가요? 모든 기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휴대폰 속에 어떤 기능들이 있는지 알고 계신 분은 계신지요? 아마도 40대 이상이신 분들은 대부분 휴대폰으로 전화통화하고 문자 주고 받으며 몇몇 어플리케이션을 쓰는 것 외에는 휴대폰의 세부적인 기능을 모를 것입니다. 처음에 셋팅 된 상태에서 약간의 변화만 줄 뿐, 세부적으로 모든 설정들을 바꾸는 분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저는 내비게이션과 은행 어플, 메시지 어플 정도 외에는 휴대폰 사용을 할 일이 별로 없어서, 사실 좋은 성능의 휴대폰이 불필요하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휴대폰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복잡한 기능들을 사용하지 못해도, 휴대폰은 있어야만 합니다. 나이가 젊으나 나이가 있으나 반드시 해야만 하는 공통적인 일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입니다. 본론 : 복음을 들고 전진하는 바울 구브로에서 복음을 전하며 거짓 선지자 바예수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바울과 바나바는, 바보에서 배를 타고 지중해를 넘어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렀습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예로 들며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이심을 증거하는 긴 설교를 하였습니다. 첫째, 돌아간 요한, 복음을 전하는 바울 구브로에서 복음을 전하던 바울과 바나바 일행은 계속해...

마가복음 1장 1절-11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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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가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 1:1-11을 통하여 소개하고 있는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창세기 3:15부터 시작하여 구약의 예언자들이 선언했던 구원자이십니다. 겸손하게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성품을 기억하며 새벽예배설교를 준비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장 1절-11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22장,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새 찬송가 80장, 천지에 있는 이름 중 서론 : 여자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함으로 인하여, 이 땅에 죄와 죽음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죄인이 되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창세기 3:15의 말씀과 같이, 여자의 후손을 통한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본론 :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오늘 본문의 말씀인 마가복음 1장 1절부터 11절의 말씀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등장에 관한 내용입니다. 본문은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등장 하셨으며, 그분의 사역이 어떤 모습으로 시작되었는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등장하셨습니까? 첫째, 구약 예언의 주인공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아가 오실 것임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예언자들이 메시아의 등장에 대해 예언하였기 때문입니다. 2절과 3절은 구약의 예언자들이 그리스도 앞에 먼저 오게 될 "사자"에 대해 말씀하면서, 사자의 뒤에는 그리스도가 오실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가복음 1: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3절에 의하면, "주"(κύριος, 퀴리오스)께...

마태복음 15장 21절-39절, 이방인의 메시아 - 마태복음 강해 주석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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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마태복음 15장 21절부터 39절까지의 말씀은, 유대인의 메시아이실 뿐 아니라 이방인의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가나안 여인의 딸을 고치시며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은혜를 선포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5장 21절-39절, 이방인의 메시아 본문의 구조와 개요 1. 가나안 여인의 믿음 (21-22절)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다가와 귀신 들린 딸을 고쳐 달라고 간청합니다. 예수님은 처음에 그녀를 무시하셨지만 이 여인은 끈질기게 믿음을 보였습니다. 2. 딸을 고치심 (23-28절)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여인을 돌려 보내야 한다고 말하고, 예수님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만 보내졌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가나안 여인은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며 끈질기게 간구합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그녀의 믿음을 칭찬하시고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3. 치유와 가르침 (29-31절) 예수님은 갈릴리 호숫가 주변에 가셔서 소경, 벙어리, 다리 저는 자 등 많은 사람들을 고치셨습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4. 사천 명을 먹이심 (32-39절) 예수님은 3일 동안 자신과 함께 있으면서 굶주린 군중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칠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장정만 4천 명을 먹이시고도 일곱 광주리가 가득 차도록 음식이 남았습니다. 본문의 강해 주석 해설 21절, 강해 주석 해설 두로와 시돈은 갈릴리 북쪽 지중해 연안에 있는 항구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들은 이사야 23장과 에스겔 28장에서 책망을 받았으며, 1세기 유대인들은 이 도시들을 악명 높은 도시이자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한 도시로 여겼습니다(11:21). 22절, 강해 주석 해설 마태는 이 여인을 가나안 사람(참조, 막 7:26)이라고 지칭함으로써 이스라엘의 가장 악명 높은 이교도와 대적과 연결 지었습니다. 마태복음 2장에 등장한 동방박사들처럼, 그녀의 역할은 이방인들도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로부터 축...

마태복음 11장 1절-10절, 오실 그 이가 예수님입니까 - 매일성경 강해 주석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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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마태복음 11장 1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은, 세례 요한이 자신의 제자들을 통하여 예수님에 대한 질문을 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과연 구약에서 예언한 오실 그 분이신지에 대한 요한의 질문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확신하게 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절-10절, 오실 그 이가 예수님입니까 1절, 강해 주석 해설 예수께서 … 마치시고 마태는 예수께서 특별한 강화를 끝맺으실 때마다(7:28, 13:53, 19:1, 26:1) 이와 유사한 형태의 종결 문장을 사용하곤 했다. 그런데 엄격한 의미에서 10장과 이 구절을 나눈다는 것은 부자연스럽게 보인다. 즉 본 절은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파송하기 위해 훈련과 각종 선교 지침을 가르치셨던 가버나움 근처에서의 장면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 사건에 뒤이어, 마가나 누가의 기록에는 제자들이 각처에서 전도하고 돌아온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나(막 6:30, 눅 9:10) 마태의 기록에는 생략되어 있다. 아마도 이는 마태가 사건의 진행 과정보다는 예수의 공적 사역에 관심을 더욱 집중시키고 조금 전의 제자 파송이 예수 자신의 일을 덜기 위함이 아니라 바로 천국을 널리 선포하기 위한 조치(management)였음을 보여주려는 집필 의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저희 여러 동네 여기서 ‘저희’(아우톤)라는 대명사는 ‘파송된 제자들’과 연관시킴으로써 (1) 제자들의 출생지(Zigabenus), 또는 (2) 제자들이 전도한 각 동네로 보기도 하고(Fritzsche, Meyer), 그 당시 예수의 전도 중심지라 할 수 있는 ‘갈릴리 사람들’과 연관시켜 (3) 갈릴리 주변의 성읍들로 해석하기도 한다(D.A. Carson). 이 견해들 중 (2), (3)번을 조화시킨 것이 가장 무난한 듯하다. 즉 예수께서는 파송된 제자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시고 갈릴리 근방의 성읍들을 찾아다니시며 당신의 사역을 수행하셨던 것 같다(Bruce, Chrysostome). 이 전도 여행을 끝마친 후 제자들은 가버나움에...